이 무렵 록박초이는 한가지 이치를 발견했다. 자기 생각을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진위여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짓도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세상일은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그럴 듯한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의 문제였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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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여행 사전 -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임요희 지음 / 파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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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이 책의 부제가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쩌면 이리도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드는지.

버건디, 여행사전이라고 하니 첫느낌은 여행중에 만난 버건디 이야기겠구나 뿐이었는데 그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시간여행이든 공간여행이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버건디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것임을 느끼게 되니 이 이야기들이 더 좋아졌다. 사실 책을 다 읽고나니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아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슬핏 떠오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은 성당에 가는데 오늘따라 성당의 제단으로 가는 길 바닥에 깔려있는 붉은 카펫,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 적갈색빛으로 칠해진 장궤틀, 스테인글라스 유리창에 입혀진 붉은 유리, 성당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 커다랗게 보자면 정말 주위에 온통 버건디가 나를 반겨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가장 중심은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자가 추억하는 고무 대야가 내게는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듯이 같은 것을 보면서 각자 다른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공간에 있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 것 같다. 저자의 한달, 두달 살이 캐나다 여행과 나의 패키지 일주일 여행은 비교할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녀가 캐나다에서 청소를 하며 공기의 맑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여행이 끝나고 공항을 나와 서울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맡은 매캐한 매연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캐나다의 단풍은 그런 추억을 불러온다. 물론 단풍은 동유럽을 여행할 때 봤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고난 후 그 먹먹해진 마음으로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단풍 든 나무 숲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옛날 그래도 버리지 못한 희망을 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잠시 마음은 설레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닥친 잔혹한 운명을 떠올리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풍의 풍경이 아닐까.

 

여행을 즐기고,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일상의 모습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여행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은 기록의 욕심은 단지 욕심뿐인 것만이 아니라 이제 조금씩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버건디 여행 사전은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 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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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게 그래, 첫 발을 내딛기 전엔 두 번째 걸음을 어딛게 될지 몰라. 두 번째 걸음을 내딛고 나면 또 자기도 모르게, 세번째 걸음을 내딛게 되고, 우린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 중요한 건 그순간 내가 행복한가, 그거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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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풀을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이라면, 인간은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이다. 소의 양식이 풀이라면, 인간의 양식은 경험이다. 소가 무의식 중에 들판의 풀을 뜯듯 인간도 무의식중에 다양한 경험을 한다. 경험은 인간의 양식이라 할 만큼 귀중한 것으로 삶 속의 실수를 줄여주고 세상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인간 어른은 왜 그토록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고리타분한 꼰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반추를 안 했기 때문이다. 되새김질을 안 했기 때문이다. 자기 경험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되새김질을 안 하면 생각이 뻣뻣해진다.
어느 시점에 소가 풀을 게워내 다시 씹듯 인간도 경험을 반추해야 한다. 말하자면 반추는 경험의 소화 과정이다. 경험을 잘 소화해 살과 피로 만들어야 한다. 경험의 반추 과정을 생략하면 자기가 경험한 것들은 아무 의문없이 진리로 굳어버린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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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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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는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로 시작된 시리즈의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는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좀 무리였나보다. 사실 엑스맨 시리즈를 생각하면서 전편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는 생각에 무작정 중간과정을 읽지 않아도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니 이야기의 흐름을 읽는데 큰 불편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것은 겨우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에 대한 시작점일뿐이었고 그마저도 그래픽노블로 첫번째 이야기만을 읽은 것이어서 흐름을 무리없이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이콥 포트먼의 모험과 활약상이 있었고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는데 '시간의 지도'는 바로 그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사실 시리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가 시리즈이며 시간의 지도 역시 3부작으로 구성되어 그 도입부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책표지에 3부작,이라고 되어있는데도 사전정보없이 글을 읽기 시작한 내 탓일뿐이니.

 

아무튼 시간의 지도 3부작은 현실세계로 돌아온 제이콥의 집에서 시작된다.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지만 제이콥은 정신병원에 갇힐 신세가 되어버린다.그런 제이콥의 가족 앞에 페러그린과 제이콥의 친구들이 등장하고 현실과 루프를 통한 이상한 세계를 넘나들며 그들의 또 다른 모험을 예고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할로우 사냥꾼인 할아버지의 친구를 찾아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 진실의 의미를 알려줄 수 있는 H는 ...  이상한 세계를 해방시켜 줄 예언서의 인물인 노어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냥꾼 V를 만나게 해 줘야 하나고 하는데... 시간의 지도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래서 거대한 바람속에서 살고 있는 V를 찾아 떠나게 되는, 시간의 지도 3부작의 두번째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상한 세계에 사는 이상한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20세기 미국의 현실 세계에 적응해보려고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10대 사춘기의 반항이라든가 제이콥과 엠마의 사이에도 제이콥의 할아버지 에이브에 대한 기억들이 끼어들면서 묘하게 얽히는듯한 감정 묘사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관점은 그런것이다. 제이콥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선택'에 대한 대답으로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상한 세계와 이상한 아이들이 우리와 구별되거나 차별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미국 남부에서 자랐다. 기묘한열대 기후속에, 국내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로 가득한 곳이었어도, 여전히 남부였다. 하지만 추악한 과거를 제대로 직면해본적은 없었다. 억지로 접할 기회도 전혀 없었다. 나는 주로 백인들로 가득한부유한 도시에 사는 부유한 백인 아이였다. 그점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단순히 우리주를 통과해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과거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짐 크로(19세기부터 가난과 어리석음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 흑인의 대명사로 쓰인 표현으로, 남북전쟁 후 남부 백인들은 노예 해방을 무효화하기 위해 인종차별법을 제정했고, 이 법률을 짐 크로법‘이라 부름 옮긴이)가 죽었다고 해서 인종차별주의도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젠장, 미국의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그런 차별법이 공식적으로 남아 있었다."(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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