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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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저자 후기에 그렇게 썼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괜히 힘만 들어간 말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원래 이 저자의 글은 재미있다고 하기도 하고 내가 읽었던 책들도 모두 재미뿐만 아니라 그 주제가 전하는 의미도 좋아서 이 저자의 새로운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괜히 관심을 갖고 읽어보곤 한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이 책, 일곱개의 회의는 확실히 재미있다. 이야기의 연과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결과를 보여주게 되는가에 대한 중간 과정의 이야기가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일곱개의 회의는 서로 연결되면서 또 따로 떼어낼 수 있는 옴니버스 형식처럼 씌여졌는데 하나의 이야기가 명쾌하게 끝나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는 이야기의 뒤에는 또 어떻게 해결을 하게 될지 궁금해 한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41)

영업부의 잘 나가는 사카도 과장이 어느 날 회의에서 잠만 자고 있는 무기력한 핫카쿠 계장에게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발을 당했다. 다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과는 사카도 과장의 징계로 인사발령이 났다. 사실 이 첫번째 회의의 결과를 읽을때까지만 해도 정말 조직이란 다 그런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징계의 이면에는 또 다른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는데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뜻밖의 반전과 반전이 일어나는 것처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끝내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떤 길에도 미래를 열어줄 문은 분명 있을 테니까"(494)

 

정말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러 인간군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때로는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해보게 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이런 구조의 회사에서 전쟁같은 경쟁을 하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업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야근을 해야하는 업무량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이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상이 먼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끔 나의 실수에 대해 밝히지 않고 다른 누군가처럼 모른척 넘겨버리거나 다른사람을 핑계대며 남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는데 양심상 그렇지 못하고 따박따박 실수를 밝히고 바로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항상 내 실수만 드러나고 나보다 더 큰 실수를 하고 일을 망치는 다른 직원의 모습은 드러나지도 않는 것에 기분이 안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일들이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믿게 된다. 이것이 드러나는 사실들 속에 담긴 '진실'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동료들과 상사가 있어야 되겠지만.

 

아무튼 일곱개의 회의는 드라마적 구성으로 된 이야기로 소설을 읽는 재미와 우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어쩌면 나 자신의 양심과 일에 대한 자긍심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해 준다. 그래서 더 몰입하며 읽게 되는 소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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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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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머리에서 벌레를 털어내려 애쓰는 남자가 있었다.'

 

첫문장부터 심상치않은 암시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솔직히 이야기속으로 완벽히 빠져들어가지는 못했다. 저자의 명성에 책을 집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 '약물중독'이라는 주제는 쉽지가 않다.

단순하게 SF걸작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아무런 정보없이 무작정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건 과거에 씌여진 미래의 이야기가 현재처럼 되어버린 것인지, 상상속의 이야기인지 헷갈려버렸다. 실제로 미래의 SF소설들이 언급하는 시점의 시기보다도 더 미래가 되어버린 현재지만 인류의 역사는 과거 인류의 통찰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저자 필립k. 딕 역시 약물중독으로 재활과 치료를 받았고 이 책은 그의 자서전적인 글이라고 하는데, 자꾸만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결국은 또렷해지리라는 희망의 의미와는 달리 이 소설은 스캐너가 클리어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여졌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여전히 내게는 이런 말들이 어렵기만 하다.

 

소설의 구성으로 이야기하자면 반전이 있는 이야기이며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약물중독은 어떤 의미가 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조금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책을 읽는 동안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원이 되는 경찰과 경찰조직에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정보원이 되기 위해 경찰이 되는 범죄자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무간도- 혹은 리메이크 된 디파티드,가 떠올랐다. 서로를 정밀하게 속일수록 경찰은 범죄자에 가까워지고 범죄자는 완벽한 경찰이 되어간다.

마약이라는 악을 퇴치하기 위해 마약 중독자를 잡아들이는 경찰이 중개상을 잡아들이기 위해 약물중독자에게 접근을 하고, 그들을 잡아들이려는 경찰의 정체가 밝혀지면 그들이 없애려고 하는 마약을 투여해 중독자로 만들어버리는 약물판매상들... 이들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과연 절대악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울상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며,
우리 모두 변화할 것이니, 즉 다시 뒤집힐 것이다.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343)

 

생각없이 글을 읽다가 내가 전체 이야기를 잘못이해하고 있는건가? 싶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뚜렷이 이해되지는 않는 느낌이지만 일단 앞으로 진행하면서 읽어나가기 시작하니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소설의 이야기가 이해되기 시작하니 이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 공동체이기도 한 세상이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과연 밥 아크터는 악인인 것일까?

 

˝묵직한 것은 세상에 오로지 삶뿐이니.˝ 배리스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단 하나뿐인 묵직한 여정이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덤에 이르는 여정. 모든 인간과 생명이 겪을 수밖에없는 여정.˝(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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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고도 취한 척 살아가는 법 - 일상은 번잡해도 인생은 태연하게
김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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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내게 책임감을 요구했지만 가끔 그 무게를 내려놓아도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인생살이가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왜 이 말에 마음이 꽂혔는지. 사실 저자의 이름을 보고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는 책이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읽어볼까,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이야기하는 광고 문구가 어쩌면 그렇게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 지금 이 책을 펼치지 않고서는 읽을 책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인생살이에 대한 무심한듯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글이 담겨있다. 사실 가장 지금의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는 전력투구하지 않고 설렁설렁 살아간다고 해서 잘못 산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이 바빠 좋아하는 책읽기도 못하고 업무시간이 끝나도 넘쳐나는 일을 끝내기 위해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피곤함을 풀어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시간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문득문득 일을 하다가 '이렇게 죽을 힘 다해 일을 하는 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내이고 있는 요즘이어서 그런것인지.

 

'오늘도 맨 정신으로 하루를 버티는' 우리의 일상을 취한 척 몽롱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화가나는 누군가의 무책임함도, 자기만 아는 동료의 이기적인 행태에도 그저 허허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에피소드마다 BGM곡이 적혀있어서 책을 읽으며 추억에 잠겨들기도 하고, 절대적인 공감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 가볍게 웃으며 넘기기도 하고... 조금은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래도 어쩌면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며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걱정도 해보며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아직 죽음이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지지만 오늘처럼 몸상태가 안좋으면 금세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아 서둘러 나의 삶을 정리해보려 하기도 하고, 뭔가를 해 본다는 것이 이미 늦은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그리고 마시지 않고도 취한 척 살아가는 몽롱한 삶을 기대하면서도 가끔은 또렷한 정신으로 하나의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메이크 미 해피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로또 당첨을 꿈꾼다지만 나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목록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물론 저자 역시 많은 리스트를 만들어도 지금 당장 가장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라고 하고 있으니 나는 하나씩 이루면서 리스트를 늘려나가는 것도 같은 의미가 되겠지.

'인생 꼼수 안내서'라고 하지만 선배 세대의 경험과 사유가 담겨있는 인생 안내서라 생각하고 싶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백발두령이라 불리는 저자 특유의 멋진 손글씨를 기대했는데 없었다는 것. '아무말 속에서 튀어나온 말'이 그의 손글씨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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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햇빛이 눈에 들어온 순간 사노의 뇌리에 항구 풍경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 베란다에서 보던 그 광경이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것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바다이다.
천진난만하게 줄곧 바다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배를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근사했을까. 그런데……..
나는 대체 어디서 길을 잘못 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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