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고 한달 쯤 지나고 슬금슬금 출근을 하고 있었지만 종일 근무는 힘들어 몸상태가 안좋을 때는 쉬기도 하고 저녁 시간에 잠깐 출근해서 급한 업무처리를 하곤 했었다. 그때 다들 건강이 괜찮냐고 물어볼 때 - 사실 지금도 가끔 만나는 분들은 건강은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그런데 그때 퇴원하고 병가중일 때. 내가 줘야하는 서류가 있는데 사실 그게 그리 급한것도 아니고, 사무실의 다른 누구도 그날 꼭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유독 한명이 서류 언제주냐고 재촉을 했었다. 

저녁에 처리를 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건강이 괜찮냐는 인사치레도 없던 그 직원은 그저 서류만 달라고 했다. 평소에 받던대로 달라고 한게 뭐 잘못이냐는 듯이.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 십년을 넘게 같이 일한 직장동료가 아프다는데 그건 그거고. 업무상 자기에게 필요한 거 달라고 하는건 잘못이 아니지. 그건 인성의 문제일뿐이지.


그 직원이 오늘 나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했다. 아무리 돌아봐도 나오는게 없어서 정확히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나보고 예의가 없다고 한다. 다른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너' '야'라고 했다고. 야,라고 한 기억은 없지만 너,라고 한건 맞으니 일단 인정.

근데 왜 너라고 했을까.

그 직원이 실무처리를 해야하는 일정을 물어봤는데 왜 그걸 자기에게 묻냐고,해서 그건 네가 할 일이니까. 라고 대답한 것이 예의가 없는거란다. 그러고서는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시키지도 않는 걸. 시키면 한다고. 

하아. 직장생활 십년이 넘는 애가 시키면 한다,는 자세로 직급만 높으니 해야하는 일에 대한 생각은 없고 예의만 찾으면서 존칭을 써달라고 한다. 내가 예의를 갖추지 않아서 내게 시비건다고 하고 내가 말을 하는데도 '가라'고 한거라고. 

그동안 본인의 업무미숙과 실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사과도 정식으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실실 웃으며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아, 네. 미안합니다' 말하며 지나가버리는 태도를 가진 애가 자기보고 '너'라고 표현했다고 예의를 찾다니.


남자들이 나이를 먹고. 일은 처 못하면서 존중은 받으려고하고. 

언젠가 현실에서 남녀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남자들의 허세. 허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텐데 그걸 못찾겠다. 아무튼 뭣도 아닌것들이 자존심을 세우는 행태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자신이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시당한것만 생각하는 그놈의 직원은. 내가 예의를 갖추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예의를 갖춰 정식으로 업무 일정을 물어본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일뿐이고. 시키는 것만 한다는데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비꼬는 건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시키면 한다는데 먼저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앞으로 업무관련해서 먼저 물어보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라고 했는데. 이 말 자체가 자기를 존중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아, 되는 일이 없다. 


시키는 일만 해도 밉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약간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본인이 그걸 알고 성실하게 묻고 묻고 또 물어보면서 일을 배우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이해력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본인 탓이 아니니까 그걸 이해하고 성실한 자세에 더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생기니까. 귀찮음이 아니라 일을 잘 해결하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더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도무지. 

쥐뿔도 없는 것들이 유세한다, 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절히 체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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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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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은 인도인이다. 그런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해외여행을 하고 입국을 하려고 했을 때 학교 관사의 주소가 적혀있는 여권을 보며 출입국관리 직원이 그가 바로 학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학장의 지인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 것에서부터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테러가 자행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미국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아랍계라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아야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러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랍인이라면 모두가 무슬림이고 무슬림이라면 또 모두가 테러리스트인 것인가.


"인간의 정체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의 것이라는 주장은 단지 암시적이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욱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하나의 분류 범주만 부각됨으로써 생겨나는 편가르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은 그 방안이 절대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저항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격렬한 분열의 선, 단 하나의 굳어진 선에 반대해 작동하며 서로를 넘나드는 정체성의 다원성에 이 혼란한 세상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다"(53)


인종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 젠더 등에 대한 보편적인 정체성이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런 부분이 곧 평화와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종교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 문화, 역사 등 많은 부분에서 편견과 차별이 행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십년전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세상이 변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편협해진 느낌이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살테러를 행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들의 신념은 과연 그 종교적 믿음으로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 누가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는 하겠는데 솔직히 글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들, 보편적인 정체성 - 쉽게 말하자면 선입견 같은 것들을 보편화된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과연 이 글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겠지. 

다른 어려운 정치적인 부분들은 모르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한번쯤 새겨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어떤 이들을 위대함을 억지로 떠맡는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억지로 떠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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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검토를 포함한) 이성적 추론의 범위를 축소하지 않고 확대하는 비종파적, 비교파적 학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같이 표명했다.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억지로 떠맡는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 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억지로 떠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많은 것이 걸려있는 문제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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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친구에게 그림책을 잔뜩 선물했는데.
오늘.
그것도 늦을까봐 헉헉대며 뛰어와서 겨우 출근시간에 들어와 앉았는데.
숨 좀 돌리려고 열어본 알광고.
하얀접시와 하얀머그컵. 그것도 크리스마스 스누피라니.
이런 젠장.
굿즈만 받고싶어라.
미니멀리즘은 어디로 가버린것이냐.

유아, 어린이 책은 살일이없단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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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프리카인 사냥꾼에게 여기서는 저 동물을 뭐라고 부르는지 묻는다.
사냥꾼은 동물을 가리키며 "아르데 바르케(Aarde vaarke : 네덜란드어로 ‘땅돼지‘라는 뜻옮긴이)"라고 답하는데, 이 잘생긴 흑인남자는 몇 세기 전에 네덜란드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붙인 이름을 자기 민족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슬릿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땅돼지‘라고 기록하게"라고 말하자, 에든버러 대학교 박물학과의 제자인 젊은 조수가 그 단어를 순순히 받아 적는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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