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 - 코렛타 스콧 킹 대상 수상작 I LOVE 그림책
콰미 알렉산더 지음, 데어 코울터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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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막막함이 결국 이 책을 펼쳐보게 하고야 만다.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시대가 있었음을, 차별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자유를 찾아 떠난 사람들을 쫓아가 칼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던 시대가 있었음을 어떻게 말해 줄 수 있을까. 해맑은 아이들에게 말이다. 


오래 전 용산참사 현장에 농성이 계속되고 있었던 시기, 서울에 갔다가 그곳에 잠시 방문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마침 어린 조카들이 집에 있어서 같이 가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서운(?) 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건 안된다는 얘기에 혼자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과연 아이들에게는 어떤 세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참혹한 현실의 진실과 그 진실을 지켜내고 기록하여, 현재가 과거가 될 미래에 전해 줄 이야기들을 지금 현재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말려야했을까.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아이가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하고난 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를 배우며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을 사냥하듯 잡아 와 노예로 만들어 사고팔았으며 온갖 학대와 차별은 노예제도가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되어왔음을 숨긴다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과연 아이들에게 이 아픈 역사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고 나온 결과물이다. 그림 역시 페인팅이 아니라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은 것인데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굳이 우리나라의 역사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만큼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진실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외면하고 싶지만 절대 외면해서는 안되는 진실을 밝히는 역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할 수 있구나... 싶어지는 책이다. 


작가들의 노력만이 아니라 문장 하나, 그림 하나에도 깊은 고민과 역사 인식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대상 자체가 어린이여서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과 내용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노예제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사건과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에 대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잘 알고 있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조금씩 천천히 역사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이 책은 문장 하나, 그림 한 장에도 섬세함이 담겨있어 천천히, 아니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중간에 모심기를 하는듯한 장면이 있어서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그린이의 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조상의 땅에서 납치되어 미국 남부로 끌려온 뒤에도 전통문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보존한 굴라 기치(쌀을 수확하는 모습)에 대한 것입니다. 그 장면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슬픈 까닭은 한 민족으로 훔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꼭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라는 글을 읽는 순간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어도 자꾸만 눈길이 가고 한참을 보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듣기 힘든 이야기를, 마음 아프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그걸 하면 돼요, 목소리를 높이고, 한 손에는 역사를, 다른 한 손에는 희망을 움켜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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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마음 아프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그걸 하면 돼요.
목소리를 높이고,

한 손에는
역사를,

다른 한 손에는
희망을
움켜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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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겠다는 것도 욕심이고,
틀리지 않아야겠다는 것도 욕심이지요.
욕심은 늘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아요.
욕심을 버린다는 건 아름다운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면서자유로워지거든요." - P25

"누구든 사랑받고 존중받을 때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본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본모습이 드러난다는 건타인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이지요." - P29

그런가 하면 1979년 사제로 서품 받은 날,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한 체험에 대해 고백했지요.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40여 년 전의 그 체험을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받아들이는지요.

"제가 성직자부 장관 업무를 시작하고 며칠 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뵈었을 때입니다. ‘교황님,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교황님께 온 마음을 다해 협력하고 교황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또한 작은 바람이 있다면 교황님께 위로와 기쁨까지드리는 삶을 소망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황님은 ‘주교님은 이미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조금 더 직접적인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요. 교황님은 지체하지 않고 ‘십자가(La Croce, 라 크로체)‘라고 답하셨습니다. 순간 40여년 전의 그 기분이 되살아나더군요. ‘죽을 것 같은 기분‘이기분으로 그치지 않고 죽을 각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새롭게 의식하게 됐어요. 그리스도교는 죽음과 부활의 종교입니다. 살기 위해, 부활하기 위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죽는 길만이 사는 길이에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제의 삶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처럼 목숨을 내놓는 삶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제에게는 매일 자신을 버리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 P69

패럴(Farrell) 추기경님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늘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라는 선종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저는 슬픔과 고통, 외로움보다는 고요한 평화를 봅니다. 그분은 슬퍼하기보다 우리가 평화롭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멋있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교황님에 대한 큰 부러움도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20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 미사 후 발코니에서 전 세계인에게 교황님이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랑이 증오를 이겼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겼습니다. 용서가 복수를 이겼습니다. 악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부활의 은혜를 환영하고맞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권세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약한 손을 그분의 크고 강한 손에 위탁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희망의 순례자가 되고, 사랑의 승리를 증명하는 증인이 됩니다. - P103

화해와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선이 있다고 믿으셨던교황님의 다음 말씀이 오래 우리 안에 살아있길 함께 기도합시다.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 주십시오."
희망을 잃지 않고 선을 행하는 여러분의 부활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2025년 4월 22일,
바티칸에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드림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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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을 위한 산책 - 헤르만 헤세가 걷고 보고 사랑했던 세계의 조각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옮김 / 지콜론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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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을 위한 산책,이라니. 더구나 헤르만 헤세의 글이라니. 

솔직히 표현하자면 일정부분 '낭만'에 빠져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산책글을 읽고 싶었을 뿐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떠올려보자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고 쓸쓸함만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항상 느끼는 여행의 유쾌함과는 다른 감성이 담겨있을 것 같아 궁금함이 컸기에 색다른 설레임으로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이 에세이는 헤르만 헤세가 스위스와 독일 남서부를 여행하며 남긴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처럼 거리나 사람들의 풍경보다는 점차 내면으로 들어가는 단상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으려나.

"성숙해지기를 갈망하며 죽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21)


간혹 눈에 띈 오탈자로 인해 문장을 읽는 것 자체가 난독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괜히 그 하나에 매달려 글 읽기가 재미없다고 뒤로 미루다가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이 생기는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의 단상에 대한 문장들을 곱씹으며 소화하기보다는 헤세가 숙소를 이동하며 여행가방을 꾸리는데 자꾸만 빼먹은 짐들이 나와서 가방을 풀고 다시 싸고 그러다가 끝내는 박스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까지 생각해야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느낌은 다르지만 여행 마지막 날에 선물꾸러미로 늘어난 짐을 주체하지 못해 밤새워 가방을 싸매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 이 에세이 나름 재미있는 글이었네?


깊이있게 읽을수록, 혹은 헤세의 단상에 대한 삶의 고찰이 내 경험과 맞물리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될수록 에세이는 천천히 읽게 되고 그것이 더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 

며칠 전 티비를 보다가 티모시 샬라메 닮은꼴 행사에 티모시 본인이 직접 등판했다는 것을 보며 웃었었는데, 헤르만 헤세 역시 자신의 이름을 건 낭독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물론 헤세는 행사 주최자로부터 헤르만 헤세가 직접 오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입장료를 내고 가 보게 된다. 사실 뭔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헤세의 깜짝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기대했지만 헤세는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시가 낭독되면서 몇몇 단어가 바뀌어 낭독되는 것을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감정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쓸쓸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가 내게도 당혹스러움으로 남아있다. 


가벼운 글만 언급했지만 처음 읽어 본 짧은 글을 다시 읽어볼 때 또 다른 느낌이 들고, 새로운 글인 듯 하기도 해서 결국 그냥 간혹 방랑을 위한 산책,이 떠오르면 펼쳐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추천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더 깊어진 시선으로 쓰인 기록"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깊이는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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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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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끝이 날 때가지 문장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야하는 걸 알았다면 이 책을 지금 읽기 위해 집어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맺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의미없이 - 활자중독자처럼 그저 문자를 읽듯 글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호수와 암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되짚어보고 있다. 화자인 연화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재이와 두 사람을 같이 알고 있는 로사, 세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을 짓밟고 괴롭힌 이들에 대한 복수의 시작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묻어버리고 싶은 비밀을 가려주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성차별과 성추행, 성매매... 온갖 추악함이 모두를 노리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항은 쉽지 않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 모든 추악함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과응보처럼 그 죄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행해져야만 우리의 삶이 평온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니, 그래야만 우리는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268)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만 도무지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과연 '죄'라는 것에 대한 판결은 누구에 의한 것인가, 라는 물음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비겁하게 비껴간 문장을 하나 떠올려 본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때마다 기록하고."(107)


나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추행하고 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며 내가 느낀 감정이 있다는 것,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기록할 것.

내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느낀 건 그것때문이다. 교묘하게 나만 괴롭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느끼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이어서 더 그렇다. 


호수와 암실은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밑에 가라앉은 것이 시신일지, 마약일지, 더 추악한 무엇일지 모른다는 것에서 서로 통하는 느낌일까. 서로를 비방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한 인간들에 대한 당연함 너머로 연화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자리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지는 이들에 대한 연민도 한스푼 더해보며 '호수와 암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게는 사무실의 내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서스펜스일지 모른다는 농담을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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