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 - 방배동 고양이를 따라가다
단단 지음 / 마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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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보다가 도심지 가까운 공원에서 발견된 여우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토종인 붉은 여우가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멸종위기종인 붉은 여우와 공존할 수 있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집사가 된다는 생각은 절대 못하겠지만 그래도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좋아해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왠만한 고양이 책은 많이 읽어보는 편인데 '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 많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책을 펼쳐들었지만 금세 사진은 잊어버리고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도 역시 안일하게 생각해왔던 길고양이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 많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방배동 산 언저리 공터에 접해있는 집에 살고 있던 저자는 집이 재개발되며 떠나기까지,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공터에서 생활하던 고양이들에 대한 기록을 하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기록 다큐멘터리처럼 철저하고 고양이들의 생활모습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 역시 고양이가 아닌 인간의 과점에서 바라 본 것일뿐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솔직하고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집사가 될 생각이 없었던 저자가 어쩌다 집사가 되었고 그래서 고양이에 대해 체험하며 알게 되어가는 과정이 다 소중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안타까운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한 고양이를 구조해 병원으로 데리고 가 진료를 받게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인간의 손에 잡혀있던 그 하루의 충격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이다. 큰 결심을 하고 길고양이를 집으로 들였지만 결국 12시간만에 내보내야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모든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길고양이보다 집고양이가 더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양이의 삶일 뿐 고양이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기준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 존중받을 것이다.
고양이가 존중받는 세상에서는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는 내 행동도 존중받을 수있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혐오 발언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나이와 성별과 종에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일도 고양이의 일도 결국 하나의 의미로 수렴된다.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도전하고 싸우고 때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모든
‘생명이 하나의 엔들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캣맘의 엔들링이면 좋겠다."(243)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고양이들을 보며 최대한 친밀감을 표현해보고 - 쳐다보며 눈을 깜박거리는 것이 고양이식 인사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후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엄청나게 눈을 깜박거리곤 했는데 지금까지 응답을 받은 건 한번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친밀감의 표현을 계속해볼 것이다. 고양이가 서로 지나칠 때 콧잔등을 비비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한번 봤었는데 그 두 고양이는 어쩌면 가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저자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식이 있듯 고양이 역시 고양이들의 삶이 있을 것이니 내 기준으로 타인과 인류가 아닌 동물의 삶을 재단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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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니제도의 신석기시대 농부들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세계의 패턴을 파악했다. 오랫동안 온건한 기후가 이어졌고 곡식도 풍요로웠다. 하늘의 별들은 늘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이며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사람들은 파종과 수확의 계절 사이에 거대한 거석기념물을 세웠으며 무너뜨리고 다시 세웠다. 그러다 기후와 환경이 변화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이러한 환경 변화를 겪지 않았고 따라서 경로를 수정할 필요도 없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동일한 삶의 패턴이 부단히 반복되었다. 강이 범람하고 곡식이 무르익었으며 농부들은 곡물을 수확하고 저장했다.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관리 감독했던 엄격한 관료제를 통해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집결시켰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묘비를 세웠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죽음을 준비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죽은 자의 집은 변치 않는 돌로 지었으나, 허리 굽혀 일하는 사람들이 살 집은 곧 사라질 진흙 벽돌로 만들었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은 삶 이후의 시간을 꿈꾸었다.
반대로 오크니제도의 사람들은 불안정한 환경 탓에 역동하는 삶 자체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곳의 생활은 고단하기 짝이없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는 일에 몰두했다. 오크니제도에서는 청동기와 철기, 그 밖의 모든 혁신이 탄생했고켈트족, 로마인, 바이킹 등 새로운 민족들이 유입되었다. 고대이집트는 3000년 동안 변함없는 위용을 자랑했으나, 그 변함없음 때문에 변화를 겪지 못했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이지만 큰 변화가 없는삶. 또는 굽이치는 파도를 따라 쉼 없이 나아가 변화를 일궈내는 삶,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둘 중 어느쪽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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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2-07-2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은 다 굽이치는 파도 속에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말부터 계속 격동의 세월을 살고 있는 한국인...
 

땅속에서 찾아낸 화석들은 우리에게 여러 역사적 사실과 지식을 들려주지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왜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딱히 명백하지 않은 수만 가지 이유로 귀하고 특별한 존재다. 약 5만 년 전 야수들과 함께 살아가던 우리의 조상들은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보는 수만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서둘러 판단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아예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만 곁에 있는서로를 배려하고 보살피자. 우리 옆의 누군가가 사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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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 존중받을 것이다.
고양이가 존중받는 세상에서는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는 내 행동도 존중받을 수있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혐오 발언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나이와 성별과 종에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일도 고양이의 일도 결국 하나의 의미로수렴된다.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도전하고 싸우고 때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모든
‘생명이 하나의 엔들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캣맘의 엔들링이면 좋겠다.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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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포식동물이 사냥하고,
피식동물이 피 흘리며 죽는 장면, 온갖 동물이 사체주변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며 잔인하다거나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동물은 그렇게 본능대로 살고 사람은 그런 본능을통제하는 이성적인 존재라며 동물과 사람 사이를 구분짓는다. 점순과 흰눈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런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냥과 폭력을 동일한 행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슴이 성나서 풀을 뜯는 게 아니다. 사자가 화가 나서 사슴의 숨통을 끊는것이 아니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포식동물이 사냥을 할 때는 사냥감에게 은혜로움을 느낄지언정 군림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폭력은 관계를 묵살하고 군림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행위다. 육식동물의 사냥을 ‘폭력적‘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묘사하는 것은 사람이 저지르는 폭력을 마치 본능인 것처럼 정당화하려는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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