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형편없는 특징들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함께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누가 너를.
너의 그런 면을 사랑하자마자 그 특징들이 짜잔 하고 좋은 게 되니까. 사랑받는 순간 너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귀여운 사색가가 되고, 동화 속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돼. 터무니없는 데이터에 집착하는 사람이아니라 철저하고 꼼꼼한 사람이 되지.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이아니라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알겠어?˝ 그녀는 스테판에게 눈을 돌리며 물었다. 238





"행복해지려면 꼭 알아야 할 네 가지가 있어." 그녀가 말했다. 머리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 전체를 비추었다. "딱 네 가지야. 너를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네가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너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네게는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것."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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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의 내면에는 기민하고도 날카로운 어떤 부분이 남아있었어요.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나서 태평하게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내는 사람의 조용한 행복 같은 것이요. 울프가 한 말 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이거예요. 운명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든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작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벤이 문장을 대신 마쳤다.
오스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혼자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로 머그잔을 가져갔다.
오스나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울프의 뜻을 정말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하는 데 집착하느라 자신의 인생이 작다고 느끼죠. 울프가 한 말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큰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었어요. 울프는 ‘맞춤옷처럼 거슬리는 것 없는 삶을 살라는 얘기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높이가 높은 인생이 아니라, 깊이가 깊은 삶을 살라는 뜻이었겠죠.˝

울프의 내면에는 기민하고도 날카로운 어떤 부분이 남아있었어요.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나서 태평하게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내는 사람의 조용한 행복 같은 것이요. 울프가 한 말 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이거예요. 운명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든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작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벤이 문장을 대신 마쳤다.
오스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혼자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로 머그잔을 가져갔다.
오스나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울프의 뜻을 정말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하는 데 집착하느라 자신의 인생이 작다고 느끼죠. 울프가 한 말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큰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었어요. 울프는 ‘맞춤옷처럼 거슬리는 것 없는 삶을 살라는 얘기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높이가 높은 인생이 아니라, 깊이가 깊은 삶을 살라는 뜻이었겠죠."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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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크레타섬에 있는 왕의 피로에 갇힌,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수)를 죽이고 영광에 젖어 집으로 함해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외딴 해변에 버릴 기회를 찾았지요. 그리고는 돛을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꾸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테세우스가 아버지한테 자기가 이기면 흰 돛을 달겠다고 했거든요. 이 모든 것으로 보아 눈에 보이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상심해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으니까요. 단지 아들이 천을 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아무튼 테세우스의 배는, 노가 서른 개나 있고 어쩌고 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배었다는데, 몇 년 동안 아테네 항구에 머물렀습니다. 아테네인들은 빛나는 사랑과 영예를 담아 그 배를 테세우스의 업적에 대한 증거로 보존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널빤지 일부가 썩고 몇몇 나사에는 녹이 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그것들을 빼고 새 널빤지와 나사를 끼워 넣었지요. 몇 년 뒤에는 널빤지 몇 개를 더 갈고 돛대도 갈았어요. 나중에는 로프와 돛도 갈았고요. 끔찍하게 곰팡이가 늘었거든요. 몇 년에 걸쳐 조금씩 교체하다 보니 결국 원래의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죠.
하지만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그 배가 정말로 이전과 같은 배인지 논쟁하기 시작했어요. 만일 같은 배라면 모든 게 교체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같은 배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된 시점은 정확히 언제냐는 거지요. 첫 번째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 100번째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 혹시 마지막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는 아닐까요? 무언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뭡니까?


당신도 알겠지만,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의 배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바뀌지요. 단지 속도가 느릴 뿐입니다. 물건도, 장소도, 사람도, 성격이라는 구조적 판들이 행동이라는 대륙덩어리 아래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모두가 분명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세상은 변화하고 반응하며 인과의 법칙에 응답하고 있어요. 배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 배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우리는 우리가 고정된 채로 남아 있다고 확신하지요. 오히려 다른 모든 것이 우리 주변을 항해하며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어요.
바로 우리가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널빤지로 오래된 널빤지를 교체합니다. 사소한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노출된 결과 지속적으로 변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건가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는 것처럼, 같은 사람을 두 번 만나는 일은 불가능할까요?
당신은 당신이 정말로 어제의 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전의 그 벤과 말입니다.
어쨌건, 최소한 당신 안의 널빤지 하나는 그때 이후로 교체되었는걸요.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의 ‘나‘가 무엇인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의 변화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우리가 인식하는 자신과 달라질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 우리가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히 믿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정체성 내면의 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쨌거나 변화를 무척 바라고 있지요.
9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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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이 여성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에 의해 집행되었다는 사실(두 여성에 의한 살해는 실질적으로 이 그림이 유일하다)은 정치적 행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하나라면 개인적인 원한이나 임무일 수 있지만, 살인자가 두 사람이라면 공동체를 대변할 수있다. 폭정으로부터 아테네를 구원하고 고대 그리스 폭군을 살해했던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톤처럼, 플리니와 알베르티는 이들을 시민 정신의 모범이라 칭했다˝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처단한 것은 자신의 민족 공동체를 대신한 정치 행위이지만, 아르테미시아 그림에서의 공동체는 여성이다. 행위의 주체가 남성을 제압하는 강인한 육체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남성 권력에 맞선 여성 저항을 상징하는 은유 단계로 올라선다. 케이트 밀릿이 ‘성 정치학‘(요즘 용어로는 젠더의 정치학)이라 명명했던 것이 전쟁이나 선거만큼 심각하고 근본적인 일종의 정치 갈등임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국정과 마찬가지로 젠더에서도 정치적 싸움은 근본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관점 때문에 생겨나며, 젠더에 대한 태도 역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분화되었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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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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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는 에세이,라고 짐작만 하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만큼만 사유를 해 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고고학자이며 역사가, 작가, 교양프로그램의 진행도 맡고 있는 다방면의 활동이 많다는 저자의 글이 그렇게 어렵게 쓰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깔려있기는 했지만 이 책은 기대이상이었다.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해석하는데도 수많은 의견이 있는데 하물며 선사시대의 인류의 역사라는 것은 여러 정황들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수밖에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분석으로 보편타당한 고고학적 사실에 접근을 하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 닐 올리버는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에 더 집중을 한다.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우연으로 고대 인류의 발자국이 바닷물에 쓸려 사라지지 않고 남아 화석처럼 굳어 남겨졌다가 또다시 흐름이 바뀐 조류에 퇴적물이 휩쓸리며 발견되어 지금의 우리에게 그 의미를 남겨주고 있는데 그것이 그저 두 발로 걸어다니며 집단생활을 이룬 인류의 진화과정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아이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어가는 부모의 모습, 갑작스러운 외부의 위험이 느껴졌을 때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급박한 발걸음에 대한 저자의 상상은 그냥 떠올려보는 그저그런 상상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티비뉴스에 죽은 아내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집안에 그대로 두고 살아있을 때처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는 엽기적인 행동이지만 고대에는 죽음을 애도하며 시신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과 멀찍이 떨어지려 한다'(324)는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추모공원조차 가까이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제는 정말 죽음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부패되는 시신을 가까이 둘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죽음이 삶과 별개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네안데르탈인 낸디의 이야기이다. 동굴에 남아있는 뼈를 분석한 결과 그는 선천적인 신체장애를 가졌을 것이며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고 한쪽 눈마저 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네안데르탈인으로서는 꽤 장수를 한 40대까지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무리의 다른 이들에게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며 그의 시신 역시 방치되지 않고 매장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기적이고 차별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현대의 인류가 고대의 인류에서 '진화'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인지...


"땅속에서 찾아낸 화석들은 우리에게 여러 역사적 사실과 지식을 들려주지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왜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곁에 있는 서로를 배려하고 보살피자. 우리 옆의 누군가가 사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말이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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