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크라우스의 소설은 10년전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2020년에 세 권의 소설이 동시에 새로운 표지를 입고 재출간되었다. 나란히 앉은 세 권의 소설 옆으로 2020년 그녀가 처음으로 선보인 단편집 『남자가 된다는 것』이 보인다. 니콜 크라우스는 이 책에서 부모의 이혼과 죽음, 성장 같은 누구나 겪는 삶에 미세한 렌즈를 들이댄다.
모든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실과 애도, 불화의 시간을 지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아버지를 잃은 후 마음의 짐이 만들어낸 상상 속타인의 방문을 그린 단편 「나는 잠들었지만 내 심장은 깨어 있다」에서 니콜 크라우스는 타인이 더 이상 짐이 되지않을 때까지 마주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 자체로완성된 세계를 빚어내는 그녀의 문장은 단편에서 더 반짝인다. 72,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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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뉴에서 비극적인 사건 하나가 터졌다. 남자하나가 살인 혐의로 사형 언도를 받았다. 대단히 유식하지도 않고 까막눈도 아니어서, 장터의 곡예사로서 그리고 대서인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 재판으로 도시 전체가 떠들썩하였다. 예정되었던사형 집행일 전날, 감옥의 부속 사제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최후의 순간에 사형수를 도와줄 사제 하나가 필요했다. 어느 교구의 주임사제를 부르러 갔다. 그 사제가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한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닐세. 그 잡역과 그따위 곡예사는 나와 아무상관이 없네. 나 또한 몸이 불편하다네. 게다가 그곳이 내가 갈 자리는 아니야.˝
주임사제의 그러한 대답을 전해 들은 주교가 말하였다.
˝주임사제님의 말씀이 옳아. 그곳이 그의 자리는 아니야. 나의 자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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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더디다. 용어도 그렇고 문장마다 박혀있는 의미가 또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오고 있어서.

이 인용만 하더라도.
미리엘 몬시뇰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이지만.좀 더 나아가. 현재에도. 자기 관할구역이 아니라면 병자방문을 허용하지않는 교회법이 있으니 이는 어찌 생각할 것인지.
역시 법,이라는것은.

˝제가 법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을 찬양합니다.˝ 29, 레미제라블1




★ 역주를보니.
천주교사제들이 입는 수단,을 소따나로 표기했는데 수단이라고 엉거주춤한 표현을 하기보다 원어에 가까운 표기를 한다고.
실제 천주교에서 수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건 역자가 한국천주교를 비웃었다,고 하면 확대해석인가?
급 오렌지가 생각나네.
책읽기가 너무 더디다. 몬시뇰을 예하,라고만 번역하고있어서 문자의 번역외에는.
슬램덩크를 정식으로 번역할때도 말이 않았다고하지만 나는 불꽃남자 정대만,이 좋던데.






"죽은 이들을 돌아보는 방법에 주의하시오. 썩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마시오. 뚫어지게 바라보시오. 당신이 사랑하던 고인의 살아 있는 빛이 하늘 깊숙한 곳에서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는 믿음이 이롭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그는 절망한 사람에게 체념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 주면서, 그에게 조언도 하고 마음을 다독거려 주려 하였고,
무덤을 응시하는 슬픔에게 별 하나를 응시하고 있는 슬픔을 보여주며, 그 슬픔을 변형시키려 노력하였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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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 년, 샤를르 프랑수와 비앵브뉘 미리엘 씨는 디뉴 지역 주교였다. 나이 일흔다섯가량의 노인으로, 그는 1806년부터 디뉴의 주교직을 맡고 있었다.

레 미제라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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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이 왜 특정한 날 특정한 책에 반응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날의 기분과 책방 분위기가 얼마간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 년째 바라보기만 할 뿐 들춰볼 생각도 안 하던 책을 펼쳐보게 만드는 건 ‘책의 신‘이 관장하는 영역이라 믿고 싶다. 물건에 깃든 그런 ‘작은 존재들의 신‘ 말이다. 그러니까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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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길을 가로막는 차가 너무 많다. 

좁은 골목길에 차가 한쪽으로 주차되어 있으면 그 좁은 곳으로 지나가야하는데 또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 대도로도 아니고 보행자 우선일것같은 골목인데도! - 피해야하고, 생각없는 운전자가 뒤에서 오면 빵빵 거리는 소리를 들어야할때도 있다. 

아니, 심지어 인도에서 자전거로 달리면서 지는 보호대, 헬맷 다 쓰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거나. 상가에서 내놓은 물건때문에 지나치지 못할 때는 뒤에서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며 비키라고 하는 정신나간- 사실 속으로 저런 미친놈을 봤나,하고 욕한다 - 자전거운전자도 만나곤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차 운전자들의 얼굴이 더 잘보인다.

사람이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는데도 운전자의 눈길은 앞에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지 저 멀리 차가 오는지만 살피고 있었다. 차를 타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기계가 되는것인지.

아무튼 그래서 이상한 버릇이 생기게 될 지경이다. 

횡단보도 무시하고 사람의 통행을 막아서는 차, 보행자 신호에서 길을 건너는데 앞질러 쌩 지나가는 차, 심지어 경적까지 울려대는 차...등등은 주인을 잘못만난것이고 그놈의 운전자들은 지들도 당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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