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릴케인가. "릴케의 시에는 답이 없다. 인간의 언어로 제기된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어디엔가 이렇게 쓴적이 있는데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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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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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느낌과는 달리 이 책은 폐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작가가 쓴 애도 에세이이다. 평소의 마음이었다면 그리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터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나날이 지속된다는 것이 날마다의 기적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은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개의 죽음이 있다면 백가지의 슬픔이 있고 백가지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글을 읽으며, 타인의 고통과 슬픔은 똑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상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글을 읽으며 오히려 더 강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남편이 아프게 되면서 남편 대신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다 오열을 하게 되거나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라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도 컵라면을 먹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세상에는 죽은 척 숨어있으면서 집안에서만 몰래 살아가면 어떨까 라는 농담을 하던 남편을 떠올리며 죽은척이 아니라 진짜 죽음을 맞이해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거나......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무심히 읽어내려가다 순간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품 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의 발톱에 걸린 옷걸이가 넘어지면서 남편의 옷들이 무너져내리자 쉴틈도 없이 옷들을 정리해버렸다는 이야기 끝에 늘 옷들 위를 넘나들던 고양이가 사라져버린 옷들과 비어버린 옷걸이 위를 잠시 쳐다보는 그 모습을 보며 그것이 고양이 나름의 애도의 표현,이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 느껴지면서 새삼스럽게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게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죽음으로 인한 이별, 상실감에 대한 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크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나 상실감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어느새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은 잊어버리고 온전히 작가 고이케 마리코의 글에만 집중을 하게 되었다. 딱히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 실려있는 소소한 글들이 애도의 마음으로 다가오고 왠지 모를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암에 걸려 시한부를 통보받았을 때, 오히려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어 좋다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 역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또 부인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만이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말하지만 또 그렇지 않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시시각각 숲은 달라진다. 계절은 흐른다. 그냥 그 순간의 풍경과 내 마음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으로 붙잡고 싶었다.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 내는지 그 방법을 나는 모른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모르는 채로, '모른다는 것' 그 자체를 쓰고자 했고, 그렇게 써 왔다"(214)는 연재를 묶은 이 책은 고이케 마리코가 받은 위로 이상으로 내게도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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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13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마음이 뭉클해지는.....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콕 와닿네요.

chika 2023-01-14 15:01   좋아요 0 | URL
백 명의 사람에게 백가지의 슬픔이 있지만 정말 묘하게도 그 슬픔이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있어요. 전 이 책이 맘에(?) 드네요... ^^;;
 

삶과 죽음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보자면 아주 작은점일 뿐이다. 호들갑 떨지 말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커튼을 닫고, 외등을 켜고, 고양이와 나를 위한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67


짧지만 강한 에피소드들.
일기처럼 쓰인 작가의 에세이는 금세 읽히지만 여운이 길다.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을 달리며 읽는다는 것이 아쉬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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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1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우주를 비행하는 우주선
에서 찍은 먼지 같아 보이는 지
구별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나네요.

독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만나면
좋을 듯 싶은 책이네요.

chika 2023-01-13 17:02   좋아요 0 | URL
아, 네. 그 비스무레한 사진들이 많았었지요. 맨인블랙 에필로그가 생각나는... ㅎ

짧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인데 저는 좋더라고요 ^^
 
달 드링크 서점
서동원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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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책 한 권과 같다면... 마침표가 있는 것을 상상할 것인가 아니면 백지일 것이라 상상할 것인가.

사실 깊이 들어간다면 이것은 세계관과 관련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될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내 상태로는 그런 심오한 사유보다는 그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한 권의 책 읽기가 더 좋다. 그래서 그냥 이 판타지 소설은 이게 말이 되는거야? 라는 생각없이 그냥 그렇게 어느 날 달토끼가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양 그렇게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씁쓸한 맛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달달한 끝맛이 있다면 쌉싸름한 맛은 그 자체로 음미하기에 좋은 맛이라 생각해서인지 차가 아닌 주류인 것도 별 거부감이 없다. 내가 마실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달 드링크 서점의 무지개색 드링크 한 잔을 마실 생각을 하는 것처럼.


우연이 운명이 되는 곳, 달 드링크 서점은 바로 그런 곳이다. 달에서 왔다는 달토끼가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다. 보통의 음료가 아니라 '이야기'가 담겨있는 음료는 그것을 마신 사람에게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과거를 보기도 하고 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옴니버스 형식처럼 달 드링크에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처럼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줄기는 바텐더 문, 그와 함께 일하는 달토끼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다.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욕구를 누르며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을 견디는 것은 힘들지만 마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준다. 


이 소설속의 이야기들은 그저 우연처럼 만나는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에피소드들의 줄거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다. 우연이 운명이 된다,는 뜻을 떠올려본다면 딱 맞는 말이지 않겠는가. 

한가지 스포일러를 꺼내보자면 프롤로그처럼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달토끼의 이야기는 시작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며 바텐더 문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판타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운명인 것인데 527번 도서관 관리자인 문 앞에 힘센 달 토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냥 그것이 운명인 것으로 받아들이련다.

달을 떠난 달 토끼와 527번 도서관 관리직을 떠난 문의 새로운 음료, 아니 새로운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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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늙는다. 물론 청년도 늙는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사랑이 늙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사실이다. 이것이 진부한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청년도 내안에는 있다. 그러나 내가 나에게서 황폐한 성가대석과 저무는 해와 하얀 잿더미들을 보게 될 날이 그리 천천히 오지는 않을 것임을 알아차린 시인도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 셰익스피어가 옳다. 그가 언제 틀린 적이 있었던가.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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