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절판


나는 침묵할 때 충만감을 느낀다. 나는 입을 열자마자 공허감을 느낀다. 과거의 생명은 이미 죽었다. 나는 그 죽음이 참으로 기쁘다. 죽음으로 하여 그것이 예전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생명은 벌써 썩었다. 나는 그 썩음이 참으로 기쁘다. 썩음으로 하여 그것이 공허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흙을 대지에 뿌렸지만 큰나무는 자라지 않고 들풀뿐이다. 내 죄다. 들풀은 뿌리도 깊지 않고, 꽃과 잎도 예쁘지 않다. 하지만 들풀은 이슬을 먹고 물을 마시고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누린다. 들풀은 살아가면서 인간들에게 짓밟히고, 낫으로 베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죽는다.
썩는다.
그러나 나는 담담하다. 기쁘다. 나는 웃는다. 나는 노래한다.
나는 나의 들풀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들풀로 자신을 장식하는 대지를 증오한다.
대지의 불이 지하에서 오가며 돌진한다. 용암이 솟구치면 모든 들풀도, 큰나무도 다 불에 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썩을 것도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다. 기쁘다. 나는 크게 웃는다. 노래한다.
천지가 이렇게 적막하니 내가 크게 웃을수도, 노래할 수도 없다. 천지가 이렇게 적막하지 않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이 한 묶음의 들풀을 벗들과 원수들, 사람과 동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 나의 증거로써 바친다.
내 자신을 위해, 벗들과 원수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이 들풀이 하루발리 죽고 썩기를희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예전에 살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니 이는 죽음이나 썩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다.
가라, 들풀아! 나의 머리글과 더불어.-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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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5-09-0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실프댄 허멍 잘도 읽엄수다예...
이게 책 읽기 실픈 사람이믄 난 뭐라...

chika 2005-09-0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긴 머냐. 그냥 경헌가부다 해부러야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책 제목은 이게 뭔가...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루쉰 산문집'이라 되어 있어 또 '루쉰'은 누구야? 하는 생각.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게 뭔가.

나는 이 책을 엉뚱하게도 아침에 읽고 저녁에 되새기기를 하듯이 읽기 시작했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것은 정신이 맑은 때 루쉰의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머리속에 집어넣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에 그 뜻을 깊게 하라는 뜻이려니..하며 우연히 그리 읽게 된 것에 의미 부여를 해가면서 말이다.

처음 글을 읽어나갈 때, 뭔가 좀 불편했다. 분명 이 사람은... 그래, 1920년대. 맞구나. 또다시 책을 읽다가 이건 대체.. 그래, 1920년대. 나는 '세월을 넘어 되살아난 루쉰의 지성'이라는 광고를 허위광고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맘이 좀 불편한거였나?

아니,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거야.
루쉰은 지독하게 느껴질만큼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그 지독한 현실 안에 '절망'과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결국 다시 '길은 영원히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지독한 현실의 직시는 절망이 아니라, 절망을 넘어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라고 의지를 세우게 한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절망 앞에서 꺽이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에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덮으며 '우리의 현실이 미래의 세계를 이룬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나는 어설픈 이상향만을 갖고 어설픈 실천력으로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 마음이 불편했던거였나보다..

길이란 무엇이던가? 원래 길이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옛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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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9-0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서야 그동안 궁금했었던 인형의 집에 살던 '노라'가 집을 나선 후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의 진원을 알게되었다. 나는 어쩌다 학교 다닐 때 이 물음을 머리속 깊이 담아두게 되었을까. 그때 내게 그 얘기를 해 줬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오로지 '노라는 어떻게 되었지?'라는 물음만 기억하는 내가.. 꼭 어설픈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네.

urblue 2005-09-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아침에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반갑네요, 같은 책도 아니면서. ^^

chika 2005-09-0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이나 연관된 책 읽는단 얘길 들으면 괜히 반가워요. ^^

잉크냄새 2005-09-09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쉰이 말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의 의미를 님과 비슷하게 느낀것 같네요.

chika 2005-09-0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녁엔 먹고 잠만 자요... ;;;
 
사람의 신화
손홍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기나긴 휴가를 끝내고, 쉼의 길이와 깊이가 컸던 만큼 그 휴가의 후유증이 컸던 때 나는 무식하게 이 책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소설'책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리고 더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놔 버리지도 못한채 조금씩 마음을 갉아먹듯 부여잡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지독한 세상살이의 모습속에서 내가 믿는 하느님을 죽여버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나를 목조르기 시작했고, 숨이 막혀 컥!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할 즈음에야 겨우 숨통을 조이는 '이야기'책을 옆으로 밀쳐놨다.

이/ 야/ 기/ 일뿐이야!

이건 '신화'야. 허무맹랑한 사람의 신화 이야기. 아니, 현실은 이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르게 될것이 두려워 외면하려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무섭다.

...

여전히 나는 하느님을 믿사옵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할 것이고, 여전히 나는 나의 현실에서 많은 이들을 잊고 살 것이고,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의 불행에서 슬픔을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나의 죄, 라는 것을 나는 고백해야 할 것이다. 내게서 얼굴을 돌리시는... 우리에게 버림받으신 하느님을 껴안기 위해 나의 마음을 찔러 하느님을 부활시켜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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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9-0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런 소설 읽는 것이 무섭다. 너무나 낯선 이야기들이지만 현실은 어쩌면 그보다 더 지독하게 나를 짓누르게 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에 내가 힘들다는 것이 나의 아이러니.
...
이 책을 알게 해 준 자명한 산책님, 감사합니다.

마냐 2005-09-0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치카님을 이렇게 불편하게 한 책이 대체 어떤 내용이랍니까.

chika 2005-09-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철저히 뭉개져버리는... 그들에 대해 내가 뭐라 한마디 하는 것조차 건방진 것이 되는.. ㅠ.ㅠ

chika 2005-09-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 156
나는 쉬운 길을 가려고 했던 거야. 바보같이, 널 사랑한다며, 네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네 곁을 지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야.

마냐 2005-09-0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느님들은 그런 사람들 옆에 있을거라 기대해야 할거 같은데...음음.

chika 2005-09-0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을 돌리시는 민중의 아버지... 라 불렀었어요. 혀 짤려 우리에게 응답이 없으시는 하느님을... 그래도 믿지만, 가끔은 죽여버리는것이 더 맘 편할 것 같은 때, 그런때가 있지요. - 그렇지만 끝까지 하느님을 버리지 못하는건, 마냐님 얘기대로 내 증오와 실망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일거예요. 그게 믿음이라는거고... '희망'이라는 거겠지요.
 

치카님 언제 오시나요,

그곳은 어떤가요,



돌아오시면 사진도 많이 올리시고 재미났던일도 많이 이야기 해주실거지요,

그럴려면 컴이 괜찮아야 할텐데,,

모두들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고들 있는데

우리의 치카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그냥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름에 ,,

빨리 가라고 비까지 내려주시는것 같아서

잠깐 졸다가 일어나니,,

님이 그리워서,,후후후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보고 싶은 치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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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뉴스에서 교황님이 나오셨지요. 교황님 계신곳에 있겠다더니 코빼기도 안보이더이다 ㅠ.ㅠ 그래도 거기 어딘가 있겠다 생각하니 기분 좋았어요^^

울보 2005-08-2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그렇군요,
건강하게 잘계시겠지요,
 

치카 잘 있는가?

만순이가 호주에 갔다 왔다네.

오페라 하우스 사진이여.

거기서는 일명 달력 사진이라고 부른다네.

만순이 호주 사진 보다 자기가 생각나서 또 쓰네.

올 날이 다가오는구먼.

올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다가 와야혀~

그리고 선물 빼먹음 주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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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8-1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티걱태걱하셔도 만두님이 제일 그리워하시는군요,,

비로그인 2005-08-1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치카님이 그립군요.... 만세, 빨리와~

물만두 2005-08-1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그게 아니라 심심해서리... 싸워야 맛인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