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다른데로 빠지는 것에 인생의 묘미가 있단다. 책에 빠지고. 절로 눈물이 흐르도록 감미로운 교향곡에 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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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게 될 게다. 에밀리아. 삶이 항상 동그란 원은 아님을 그보다는 우회로와 막다른 길, 거짓된 시작과 가슴 아픈 이별이 있는 뒤얽힌 매듭일 때가 더 많단다. 길을 찾을 수 없고 지도가 있어봐야 소용없는 부아가 치밀고 어찔어찔한 미로지." 포피가 내 손을 꽉 쥔다. "하지만 모퉁이 하나도, 커브 길 하나도 절대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된단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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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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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서라 할 수 있는 여행가이드북이 아닌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이 책에서 저자가 직관적인 제목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세상 대부분의 여행은 '아주 사적인 여행'이라는 것이다.

어린시절 잠 좀 편히 자겠다고 부모님따라 새벽기도를 따라가며 칭찬받으며 자란 저자는 별다른 생각없이 개신교회의 목사가 되려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자전거여행자의 이야기를 듣기전까지는.


여행기를 쓰고 친구가 던진 '그래서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말에 아주 사적인 여행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위대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 기하학적인 정교함에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건축물의 아름다움 같은 이야기는 굳이 내가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행에세이는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저 단순히 만난 사람들, 마주친 풍경들에 대한 사적인 기록만을 담고 있다면 또한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록을 읽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뭔가 자꾸 걷도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매일 아침 스페인의 공원에서 마주친 허름한 남자가 영어를 너무 잘해 칭찬을 했더니 당연하다며 자신이 영국인이라는 것을 밝힌 이야기를 할때까지만 해도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에세이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글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를 보러 갔을 때 저절로 메시에게 향하는 카메라 앞에서 그 옆에서 경기를 운영하는 패스메이커 차비를 눈여겨보라는 이야기에 차비 에르난데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자신의 존재감을 모두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의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에피소드는 지극히 사적인 여행의 느낌이 또한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바라보는 것에서 약간의 시선을 바꾼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애초에 여행에세이는 풍경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 체험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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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튼 애비 애프터눈 티 쿡북
다운튼 애비 지음, 윤현정 옮김 / 아르누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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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차맛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기본적으로 커피보다는 홍차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 그중에서도 달달한 일본식 밀크티를 제일 좋아했는데 언젠가 정말 맛있는 홍차를 마신 후 홍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진한 영국식 홍차는 씁쓸한 맛이 강해 물을 많이 넣고 마셨었는데 품질이 좋은 홍차는 진한맛이어도 좋았다. 그래서 '다운튼 애비 애프터눈 티 쿡북'이라는 책 제목을 읽으며 다운튼 애비라는 드라마는 모르지만 오후의 영국식 홍차 쿡북은 너무 궁금했고 이 책이 무척 기대되었더랬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 실려있는 내용이 홍차를 다양하게 마실 수 있는 티 레시피 북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주 내용은 애프터눈 티, 그러니까 영국식으로 조금 진한 홍차를 마시면서 그에 어울리는 빵의 레시피 북이었다. 예상치못하게 빵의 비주얼 공격에 하루빨리 오븐을 구입해 파티셰가 되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 것은 덤이다. 


홍차와 같이 즐길 수 있는 빵이라고 하면 식사대용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스콘이나 단맛이 강한 케이크나 타르트, 푸딩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크게 네개로 나눠 페이스트리, 번과 비스킷 그리고 케이크, 타르트 푸딩의 단 맛이 강한 디저트, 샌드위치와 핑거푸드의 브런치 느낌이 나는 음식, 마지막으로 빵에 어울리는 쨈과 스프레드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애프터눈 티와 어울리는 브레드 레시피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앞부분에는 차에 대한 소개글과 다운튼 애비에서의 차 한잔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내게는 가장 유용하게 와 닿았던 영국 차의 특징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다. 

은빛 향이 덮인 어린 찻잎으로 만든 백차와 차나무의 거친 잎을 건고하고 비비고 산화한 후 소나무 장작위에서 살짝 그을려 특유의 훈제향을 낸다는 랍상 소우총은 들어본 기억도 없는 차인데 실제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블랜드 티인 얼그레이가 베르가모트를 추가한 시트러스 향으로 만들어졌는데 우유와 더 잘 어울리도록 차 회사에서 실론, 아프맄, 인디아 홍차로 바꾸었다는 설명은 처음이다. 실론티가 스리랑카에서 재배된 홍차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와 아이리시 브랙퍼스트는 상표이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역시 다른 맛이 나며 붉은 빛이 돌고 우유를 더하면 진한 맥아의 풍미가 난다는 아이리시 브랙퍼스트는 제대로 알고 마셔본 기억은 없지만 붉은 빛이 도는 색다른 홍차라고 마셔본 기억은 있다. 


여름이 되면 트와이닝 홍차를 진하게 내려서 - 리처드 트와이닝의 세금감면 로비(!)로 대중화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진한 홍차에 우유를 넣고 꿀을 첨가해 차갑게 마시는 밀크티는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 준다. 정말 간단하지만 홍차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된 내용 중 하나는 홍차에 우유를 넣기 시작한 것부터가 아니라 내구열이 없는 찻잔이 뜨거운 홍차로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유를 먼저 넣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성의 코르셋과 관련해서는 더 깊은 뜻이 있으니 그냥 넘겨보기로 하고 이 책의 핵심인 쿡북으로 넘어가면 프랑스 빵처럼 화사한 데코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면서도 단아한 모양으로, 한두가지의 과일을 더해 밝은 색으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애프터눈티와 함께 하기 좋은 빵의 레시피가 펼쳐진다. 

빵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고, 누가 만들어준다면 책과 재료를 준비해 넘겨주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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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붉은 매화 향을 담다 (표지 2종 중 ‘빨강’ 버전)
서은경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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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쳐보기 전에는 조선의 명화를 만화로 읽는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선시대의 명화에 대한 해설을 만화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다. 별 생각없이 실물책을 받아들고 책을 펼쳤는데 그림에 대한 미학적인 해석과 설명이 아니라 작품과 그 그림을 그린 시기의 화가의 삶과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단, 그 설명이 짧게 요약되어 있기도 하지만 각 챕터의 구성은 저자 서은경의 창작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스토리속에 조선의 명화가 녹아들어가 있다.


책의 표제 '붉은 치마폭에 붉은 매화향을 담다'는 정약용의 '매화병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랜 유배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은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딸의 혼인도 보지 못한 미안함과 딸의 혼인을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붉은 치맛단 - 이것은 유배지에서 홀로 지내는 정약용에게 그리움을 담아 아내가 보낸 붉은 치마인데 그것을 잘라 그림을 그려 딸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내용을 언젠가 들어봤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 하나의 스토리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그 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혼인을 하고 남편과 함께 유배지의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어머니가 보내주신 귀한 치마를 조각조각내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했는데 아버지가 내민 그 치마 조각에 그려진 축복의 그림과 글을 보고 눈물짓는 모습은 이 이야기를 더 마음에 남게 하고 있다. 


정선, 안견, 김홍도, 강희언 등 화가의 이름과 그림의 제목을 들으면 어떤 그림인지 떠오르고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어지는데 그림에 얽혀있는 에피소드가 그림을 더 흥미롭게 해주고 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어제, 오늘 출근길에 하늘거리며 날아가는 하얀 나비를 봤는데 남계우의 화접도가 생각난다. 병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는 동생이 훨훨나는 나비가 보고 싶다고 말하다 숨진 후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듯 나비를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것이 아닐까.

지금 내 방에도 판본으로 본을 뜬 세한도 그림이 걸려있는데, 요즘말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처럼 추위에도 늘 푸르른 나무처럼 한결같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세한도를 역관 이상적에게 보내며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우선 이상적과 추사 김정희의 서로에 대한 우정이 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로 기댄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또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지는 조선시대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해주고 있어서 그림이 어렵다라고만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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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 상·하 세트 - 전2권 구미호뎐
한우리 지음 / 너와숲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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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 대본집은 상하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기대를 했던 드라마 속 명장면(!)이 댬겨있지는 않지만 주연 배우 이동욱과 조보아, 김범의 사인 인쇄본 엽서가 하권에도 들어있어서 좋았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말이다. 

상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또 드라마를 본 사람으로서 대본집을 읽기 전에 표지가 먼저 눈에 띈다. 장면삽화가 없는 아쉬움은 책표지로라도 만회가 되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드라마 화보집이 아니라 대본집이니 이야기에 충실히 따라가면 어느새 책표지와 화보사진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져버린다. 


어린시절 자세한 전래는 몰라도 우렁각시와 어둑시니, 이무기 등등의 이름은 다 들어봤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지금의 내게는 익숙한 이름이라고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도 익숙한 우리나라의 토종(!) 귀신들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구미호뎐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구미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구미호뎐이 오로지 그 이야기 하나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면 아주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지 않았을까.

왜 '구미호'였을까,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여우는 여자의 상징처럼 되었고 그런 인식에 대한 반전일 것이라고만 짐작을 했었는데 여우는 일부일처로 평생 한쌍의 부부로만 살아간다고 하며, 그래서 이중의 의미를 담고 여우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연출이 그 느낌을 살려내는 주요부분이라고 한다면 대본집을 읽을때는 한호흡으로 쓱쓱 넘어가는 간결한 대화체이 있는 것 같다. 긴장감 넘치고 위기를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곳에서 툭 터져나오는 반전의 매력에 더해 촌철살인같은 코믹한 대화 역시 매력적이다. 

이미지에 약한 나로서는 문자로 된 대본집만 읽었을 때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텐데 몇년전에 본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배우들이 배역에 맞는 말투로 감칠맛나게 연기하던 대사로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 우리의 토종 귀신들을 잊지 않고 불러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 반전의 쫄깃함 뒤에 찾아오는 해피엔딩과 농담처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좋아하는 명장면의 화보만 몇 장 더 있었다면 완벽(!!)했겠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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