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페이스 오프,라는 제목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영화였다. 서로의 얼굴을 뒤바꾸어 신분을 바꾸고 위장하여 사건의 중심에서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달려나가던 영화. 이 책은 그 영화와는 연관이 없지만, 이 책의 기획 자체로는 그 대단함을 부인할 수 없는, 정말 누군가의 말대로 두번다시 탄생하기 쉽지 않은 그런 엄청난 책이다.

영미 추리 스릴러를 대표하는 22인의 스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인 형사(탐정)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단독작품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콜라보처럼 구성하여 두명의 작가가 한 작품을 완성시켜나가는 방식이다. 스타 작가들의 작품 속 스타들이, 혼자서도 충분히 사건 해결을 해 나갈 수 있는데 콜라보를 이룬다니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싶어진다.

그러니까 처음 생각했을 때는 솔직히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를 떠올렸는데, 그들은 하나의 팀을 이뤄 한가지 이야기를 끌어나가지만 [페이스 오프]에는 전혀 연결이 될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교차점을 찾아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스릴러, 추리 소설을 많이 읽어봤다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려있는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게는 각각의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두명의 작가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접점을 찾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제프리 디버와 존 샌드포드의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제프가 범죄 현장과 과학 수사에 기반을 둔 부분을 쓰고, 존이 위장 근무와 거리에서 하는 수사를 맡아 썼다고 하는 '라임과 프레이'의 이야기는 순서대로 - 그러니까 한명이 이야기를 쓰면 뒤를 이어 다른 한명이 쓰고 하는 교차방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위화감 없이 하나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탄생하였고 복선과 반전이 교묘하게 숨어 있어 글을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런 스릴러 추리 소설의 향연을 그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싶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어야만 진짜 작품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홈즈와 왓슨같은 콤비의 활약이 아니라 홈즈와 뤼팽의 콤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그 둘 모두를 데리고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듯 하다. 한명으로도 충분한데 넘쳐나는 위인이 있다면 그 역할도 줄어들수밖에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보이기도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래서 몇 이야기는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신의 능력으로는 더 많은 것을, 더한 놀라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요? 라는 마음이 드는.

나는 개인저으로 '지옥의 밤' 같은 본격 스릴러나 '정차'같은 액션이 넘쳐나는 작품보다는 '야간비행'같은 작품이 더 좋다. 물론 '웃는 부처'나 '팬더를 찾아서' 그리고... 다른 작품들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페이스 오프에 참여한 작가들이나 그들의 작품들을 모른다고 해서 이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들을 안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어쩌면 그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페이스 오프]에 담겨있는 단편들의 의미와 그 상징성을 생각해본다면 그 아쉬움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여름에 스릴러를 읽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페이스 오프]이기도 하고,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와도 같은 스릴러의 드림팀을 만나고 싶은 마니아들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사실 약간의 아쉬움은 어쩌면 이후에 더 기나긴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되기도 하니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 열여섯 마리 고양이와 다섯 인간의 유쾌한 동거
이용한 글.사진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고양이책을 보는 것은 이제 어느듯 습관적인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어느날 우연히 툭 내게 주어진 책을 읽어봤는데, 무섭고 이상하기만 하던 고양이가 조금씩 애완동물처럼 보이더니 이제는 어느덧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길을 걷다가 저 앞에서 졸고 있는 녀석을 보면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쳐다보게 되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찾아보는듯한 호기심 어린 고양이를 만나면 저 멀리서부터 열심히 눈을 깜박이면서 고양이 인사를 해 보기도 한다. 물론 고양이녀석들의 인사를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적어도 가까이 다가갈때 잽싸게 도망가버리곤 하던 고양이들의 뒷꽁무니만 쳐다봤던 내가 이제는 고양이 옆을 지나가는 행인이 되기는 했다.

새끼 고양이를 보면 너무 귀여워서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아직 나는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이처럼 고양이 책이 나오면 사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특히 이용한의 고양이책은 읽어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니 이것도 참 묘한 일이다.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는 산책길에 마주친 고양이 세마리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여행을 하던 라이더들이 찻길에서 구조한 녀석들을 역장에게 맡기려고 한다는 이야기에 망설이던 저자는 결국 새로 부임한 역장이 어떻게 하게 될지 몰라 일단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고양이 세 마리 오디, 앵두, 살구는 저자의 집이 아닌 저자의 시골 처가에서 살게 된다. - 첫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오디와 앵두, 살구의 아기고양이시절 사진이 보이는데 어쩌면 이리도 귀여운 포즈를 잡고 있는지 이런 녀석들을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도저히 그냥 발길을 돌릴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세 녀석이 등장하고, 앵두의 새끼고양이 세마리가 태어나고 이웃마을 방앗간에서 버림받은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들도 들어오게 되고 다시 또 앵두가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낳고... 그렇게 고양이들이 늘어나지만 시골 농가에서의 복작거리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행복하게만 보인다. 아, 그리고 저자의 표현대로 "냥이가 '낭줍'한 고양이 삼순이"도 있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데려오고,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란 녀석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지만 그런 고양이에게서 태어난 고양이 2세대들은 집안에서 살면서 사람에게서 먹이를 받아먹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다는 습성은 쥐사냥을 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떠올리게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로 생각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고양이 책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도시의 길고양이들이 아닌 집고양이, 그것도 시골집에서 자라고 태어나고 자연을 벗삼아 뛰어노는 고양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담겨있어 좋았고, 저자가 말한것처럼 장독대를 배경으로 노니는 모습이 더욱 멋있고 아름다운 고양이들이 있어서 좋았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개를 보면 숲을 산책하고 싶지만, 고양이를 보면 빈둥거리고 싶어진다. 개가 1차적 동물이라면 고양이는 2차적 동물이다"(미셀 투르니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쓰든 월 쓰든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고 살라고. 모든 것의 시작은 지독하게 사적인 거라고.(88)

 

어쩌면 이 문구를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더 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든지, 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늘어서 있다고 한들 이 글들이 모두 내게 무의미할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그 모든것을 내가 다 꿰뚫어 읽을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데 굳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내가 지금 느끼고 얻게 된 딱 그만큼을 남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 독서의 시작과 (끝도 포함해서) 모든것은 지독하게 사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할테니까.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놈의 생각이란 걸 해야 하니까"라고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글을 옮겨놓은(239)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사적인 체험과 생각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뤄 탄생한 소설가의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 글을 읽을즈음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처음엔 어쩌다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사적인 도시]를 계속 읽어나가려고 펼친 순간 저자가 메모해 놓은 글의 출처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책이 있어 꺼내어 펼쳐봤더니 자신이 밑줄 그어 놓은 부분이 나오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던 문장 하나의 정체도 밝혀졌다는 부분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그럴때가 있는데... 그리 생각을 하니 신경숙 작가가 불쌍해졌다. 모두 알고 있는데, 어쩌면 자기 자신마저도 알고 있는데 끝까지 모르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굳이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미 글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깨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생각과 글이 나의 생각과 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을 거쳐 형상화되는 것이기때문에 다르게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의 사적인 도시'에 대한 박상미라는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글이 - 때로는 알 수 없는 이름들과 이야기들로 가득할때도 있지만 - 내게 흥미로움을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나의 생각을 끌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인 듯 하기도 하다.

 

나의 이런 표현이 딱히 어울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 표현의 한계안에서 비유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수준에 맞지 않는 글일지라도 수준에 맞는만큼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다. 이야기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왠지 공감이 가는 그런 이야기들, 그러니까 친구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알 수는 없지만 함께 웃고 떠들며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수준'이라는 것은 결코 그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자신의 관심이 흘러가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그녀의 일상과 환경, 작업과 일,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것은 아니기때문에 그녀의 사적인 도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내게 그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글은 조금 많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녀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느낌이 끼어들 여지가 있어서 한꼭지씩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사적인 도시가 이제 내게는 조금 특별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것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다. 나는 왜 자꾸만 한창훈의 나는 '어떻게' 쓰는가,를 책의 제목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도서 검색을 해보다가 다시 또 어떻게,가 아니라 '왜'인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 책을 '글쓰기'에 관한 글이 실려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읽었다'라는 기억만 있을 뿐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 책을 '읽었다'라고 했을 때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책을 과연 읽었다,라고 할 수 있는지.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다 알고 있다면 그 책은 이미 읽은 것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읽었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봤던 '기억'이 난다. 뭐가 이리 장황해?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창훈의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얻었는지 생각해보려고 하니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지 않고서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에 더하여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글에는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다가 그녀의 사적인 일기같은 메모들이 왜 내게 유의미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할 때 그것을 자꾸만 뒤로 미루려고 한 이유는 '생각'이라는 걸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좋은 글이 내 안에 들어와 어떤 뜻으로든 유의미한 글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것으로 글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깊이를 따질 수 없는 얕은 것일지라도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조차 귀찮아하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하고 있다.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놈의 생각이란 걸 해야 하니까"라고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글을 옮겨놓은(239)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사적인 체험과 생각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뤄 탄생한 소설가의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와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를 연달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을 따로 떼어놓지 못하는 것은 두 작가의 글이 내게는 글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조금은 얄궂게도 새침한 듯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뉴요커의 이야기보다는 - 비린 것을 싫어하는 내가 뉴욕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릿한 내음이 가득한 거문도와 여수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어우러져 웃고 울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몇년 전, 한창훈의 향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을 읽으며 그저 허허거리고 낄낄거리며 읽었으면 됐지,라는 말을 써 놓았다. 아마도 나는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는거겠지,라며 한편의 드라마를 시청하듯 그렇게 글을 읽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고 그들의 체험이고 그들의 마음일뿐이라는 방관자와 같은 입장이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깨닫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한창훈의 산문을 읽어보니 '글을 쓴다는 것은 기교를 부리는 기술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솔함이 유머와 해학을 담고, 때로는 눈물이 쏙 빠지는 슬픔과 고통을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문자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글이란 정말 진심이 묻어나야 하는 것일거다.

한창훈이라는 작가가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미 내게는 큰 의미를 품고 있지 않게 되었다.

내가 글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글을 쓰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니엘 2015-06-2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정말 공감되고 솔직하게 적어주셔서 손으로 따라적으면서까지 다시깊게읽었어요^^
좋은 리뷰감사합니다

chika 2015-06-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 감사합니다 ^^
 
행복의 디자인 Design Culture Book
김지원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의 디자인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왠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친근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다. 우스개소리처럼 '드자~이너'가 고급지게 - 아, 이거 비문처럼 되는 말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안되겠다. 그러니까 미적 감각을 찾아보기 힘든 내게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하면 거리가 멀어보이고 특별하기만 할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 물론 '특별함'은 있겠지만 내가 근접못할 그런 특별함이 아니라 자꾸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쓰고 싶게 하는 그 무엇인가의 특별함을 담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는 뜻이다.

저자는 '행복의 디자인'을 세 잎 클로버가 무성한 오래된 기찻길에 비유했다.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에 따라 쓰임을 달리한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식으로 삶을 디자인하는 모든 사람들의 도구이기 때문이다"라며 "마치 철길과 사람 사이의 세 잎 클로버와 같이 디자인이 만들어 낸 해결책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그저 뽑아버려야 할 잡초로, 또 어떤 환경에서는 행복의 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는 행복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작품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또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저자의 비유처럼 흔하디 흔한 잡초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클로버가 넓은 들판에 꽃을 피워올리며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이쁘구나,라고 느꼈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익숙해있던 디자인의 느낌이 달라지기도 해서 좋았다.

독특하다,라는 느낌에서 확장되어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때는 그 디자인이 훨씬 더 좋아지기도 했다. 큰 관심이 없어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안삼열체는 글자 하나에도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담겨있고, 한 글자가 각자 한 사람의 인생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안삼열 디자이너의 말을 되새겨보게 된다. 그의 글자체를 보고 글자 디자인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저 이쁘게 보이기만 하는 것이 글씨디자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글자를 디자인하면서 나름의 철학이 생기고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려 하고, 가식없고 담백한 소통을 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

행복의 디자인을 읽다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는 디자인을 떠올리면 상상놀이, 소통, 편안함과 실용성, 공공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추억...이런 단어들이 같이 떠오를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은 디자인은 어설프기에 우리에게 보살핌의 시간을 허락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가르쳐 줍니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런 거예요.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기에 서로 의지해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더욱 빛나는 것 말이예요."(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