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복잡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적요의 깊은 맛을 알까. 그 가을, 갈증 때문에 석류가깨어졌듯이 말이다

젊음을 다 보내버릴 때까지도 나는 네 귀가 꼭 들어맞는 도형처럼 살았다. 그러기에 젊음은 내게 아무런 거름도 남기지 않았다. 내
- P389

가 성긴 투망으로 인생이라는 푸른 물을 건져올리려고 밤새워 헛손질을 하던 가혹한 기억은 더이상 젊지도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외로움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낡은 흰 벽에 등을 기대고 밤늦도록 텔레비전 화면 속의 ‘드라마게임‘을 보면서 세상 모든 남자들의 귀향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베란다로 비쳐드는 달빛 아래에서 발톱을 깎으며. 그 시절 나는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종일 맛있는 반찬을 만들면서 경쾌한 허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힘이 나. 그 안간힘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 P3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이 지나가고 있나.. 싶더니. 다시 덥다. 아니 더 더운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은 춥고, 선풍기 바람은 덥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래도 무더위에 지쳐 넋놓고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면 이제 여름이 가고 있기는 한가보다.

집에서 쉬는 동안 최대한 많은 책을 읽어야지, 했지만 더위에 지쳐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적어도 책탑 세개정도는 허물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겨우 하나를 허물까말까. 방출한 책이 책탑 두어개는 되는 것 같지만 새로 들어온 책들이 또 그만큼이니 이제 더하기 빼기는 큰 의미가 없고.  그래도 열심히 읽고 내쳐야겠다.

책 기부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사무실 창고에 쌓아뒀는데 몇달이 지나도록 그상태 그대로여서 계속 갖고 가야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책의 반이 사라졌다. 두어박스 정도 되는 분량인데... 장르불문,이라고 해서 만화책도 갖다놨었는데 그것도 가져간 걸 보면 그냥 방출할 수 있는 책들은 모두 갖다둬야겠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갖고가야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8-24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 온전히 나답게 사는 행복을 찾다
이시하라 사치코 지음, 신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크게 끌리는 제목은 아니다. 그런데 패션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인 저자의 이력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나만의 멋을 찾아내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너무 잘 갖춰진듯한 인테리어를 보면 괜히 나와는 상관없어 보여 괜한 자괴감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역시 저자 이시하라 사치코는 소소한 자신의 일상과 그 일상을 특별하게 해 주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고, 타인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일상의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꽃을 꽃병에 꽂지않고 컵에다 꽂는 것이 왜 이상한 것이고 생각을 유연하게 하는 것인지 좀 당황스러움으로 프롤로그를 읽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일본인들은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것만 안다고 들었었는데, 실제로 여행갔을 때 햄버거를 주문하고 받으면서 케첩을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알바생이 멈칫하면서 뒤쪽의 매니저에게 문의하고서야 하나를 더 내어주는 것을 보고 정말 메뉴얼대로 생활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일관되고 정직함일 수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고 융통성없는 고지식함일 것이다. 그런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컵에 꽃을 꽂는것을 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책의 첫머리부터 좀 당황스러웠지만.

 

글의 하나하나를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흐름대로, 사치코씨가 말하듯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일 것 같다.

화장을 하지 않고 염색도 하지 않고 굽이 없는 플랫슈즈만을 신고... 이 책이 이미 인생의 중반을 지난 시점에서 자기자신만의 멋을 찾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임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실제로 반백이 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고 진정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하고 삶의 방향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자신만의 돋보이는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게도 도움이 되는 글들이다. 나의 스타일을 잡는것은 힘들겠지만 내 경제적 여건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나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고르는 것이라거나 때로는 골동품같은 멋진 식기에 음식을 플레이팅하는 것, 똑같은 식탁과 침구류지만 이색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천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가장 크게 와 닿는 이야기는 내가 생을 마감할 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내게는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지만 내가 죽고난 후 타인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같은 경우 더욱 그럴 수 있을텐데, 추억할 수 있는 잘 나온 사진 몇장을 빼고 과감히 지워버릴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치코씨의 경우 사진을 정리하고, 집에 찾아오는 지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는데, 나 역시 무조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조금씩 미니멀라이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가볍게 글을 읽어서 좋았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다시 되짚어보니 이제 확실히 와 닿는 느낌이다. 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이제 정말 좋은 습관을 들여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에드워드 데니슨.이언 스튜어트 지음, 박지웅 옮김 / 보누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때 동네 하천에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천으로 나뉜 이웃동네를 연결하기 위해 평소 마른천인 곳에 시멘트로 연결선을 만든 것 뿐인 다리인 것 같다. 그렇게 실용성만을 갖춘 다리를 보다가 바닷가에 짧게 놓여있기는 하지만 흔들거리는 구름다리를 보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배고픈 다리의 고급버전인 잠수교를 보게 되고 2년전에는 유럽에서 아름답다고 알려진 카를교도 걸어보게 되었다.

몇백년전에 만들어진 카를교는 수많은 관광객이 건너다니면서 붕괴의 위험이 커졌다는 뉴스를 본것도 같은데, 지금은 과학적인 공법으로 다리를 건축하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보와 무게하중과 미적인 감각까지 갖추면서 긴 다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하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덤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다리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다리는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솔직히 공학적인 건축 설계 도감과 설명은 이해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공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만 확인을 했지만 그래도 베네치아의 코스티투치오네 다리로 인해 베네치아 교량 발전이 가속화되었다고 하는 설명이라거나 기술과 설계의 발전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다는 것들은 이동하중이나 교량 같은 것을 몰라도 그저 다리를 만드는 재질만 이해하면서 봐도 좋았다.

한강다리에 대해서도 특별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도시발달의 한 축으로 이해하는 것도 색달랐고, 보석상과 강변의 건축물의 조화로 명성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베키오 다리를 다시 보는 것도 좋았고, 아주 오래전 사진배경으로만 인식했던 타워브리지가 새삼 건축물이 아닌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좋았다.

 

스페인에 가본적이 없는데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톨레도에도 꼭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트라야누스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알칸타라 다리도 보고 싶어진다. 알칸타라 다리는 이천년이 넘었는데 트리야누스 황제가 영원히 남을 다리를 건설했다, 고 하는데 실제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석조로 다리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 톨레도에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석조아치교라고 하면 정말 세밀한 설계로 견고하게 만들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 이 다리의 유선형 교각은 하류와 달리 상류쪽이 강이 범람할 때 받는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홍예석과 벽돌의 조화로 건설된 알칸타라 다리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알칸타라를 포함해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다리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 되기를 기다려보며 지금은 그저 책장을 넘겨볼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는

국어시간이 아닌 국사시간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선생님께서 또박또박 읽어 주셨던 박노해시인의 '지문을 부른다' 였습니다. 밑줄을 그어가며 광야에서 백마타고 오는 초인의 의미는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들으면서 바로 내 마음대로 공감하게 되는 시.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었다. 맨 앞이란 자각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고 감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이 아니고 세계감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이다.

 

세계감과 세계감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놀랍도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아놓은 조금은 낯선 낯익은 이야기가, 오래된 기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면 한다." - 시인의 말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지금 여기가 맨 앞 전문

 

 

 

스물다섯 번의 행운과 스물일곱 살의 불행. 행운이었을까?

 불행이긴 할까.

 신체를 잘라내고 타낸 보험금.

 천만다행을 믿어?

 날개도 다리도 믿지 않아, 시간을 공평하게 자르지 못하는 것처럼, 삐뚤빼뚤하게 잘린 신체 절단 마술처럼, 어느순간부터 실험이고 시험인지. 칭찬과 비난과.

 비가 오고 개는 순간이 나뉘고 있어. 표구사가 입술을 찢으며 웃을 때, 박수가 태어나네. 변태해 날아가는 비둘기? 종과 종 사이. 몸이 잘리는 기쁨과 멀쩡히 살아날 거라는 실망 사이.

 잘리기 전과 후, 다시는 같아질 수 없어.

 매초 다른 사람으로 분리되고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강렬한 긍정 속에서 다시

 태어나. 언니의 냉담에 동참하며. 엄마의 믿음에 부응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세례의 끝. 미개한 신앙인 타고난 모으로

 입술을 찌으며 웃을 수 있어. 

 

- 권민경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플라나리아 순간 일부

 

 

세계관,이라거나 세계감이라거나... 뭔가 마음속에서 훅 치고 올라오는 그런 비장함이 있었던 그때의 기억이 사라져갈 즈음 뜻하지 않게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시,라는 것은 비장함만이 아니라 그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공감을 하게 되고 말로는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왠지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공감하고, 내가 위로받고, 내가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시,가 내게는 시,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시를 읽는 것이겠구나...같은.

 

 

 

 

 

 

 

 

 

 

 

 

 

 

 

 

 

 

 

처방전

 

짐승은 몸이 아프면 먹이 활동을 멈춘답니다. 우리들 측면에선 단식인 셈입니다. 몸을 비우고 기다리는 일, 내면의 번다함이 가라앉도록 말미를 주는 일입니다 스스로르 들볶는 일도 멈춰야겠죠

 

 몸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무어라 보탤 것은 없고 마음만 앞선 탓입니다 나름의 처방을 내렸고 탕약도 지었습니다 달여서 인편에 전하겠습니다

 

 처방 하나 : 하루치 연료를 보충하는 아침은 꼭 챙겨야 합니다 체에 거른 햇살이니 미온수에 섞어 마시면 몸도 마음도 더워지고 체온을 유지할 겁니다 꼭꼭 씹을 때마다 간밤의 악몽이 바스러지도록 신경계를 조절했습니다 싱거운 농담도 넣었으니 계란찜이 짤 때 곁들이면 좋겠습니다

 

 처방 둘 : 악력을 첨가했으니 어깨 결리는 저녁에 효과가 있을 겁니다 엄지손가락은 소화불량으로 명치끝이 뻐근할 때 요긴할 겁니다 과용하다가 의탁하는 습관이 생기면 후일 더 큰 상실감에 시달리게 되니까 유의해야 합니다

 

 처방 셋 : 점심은 황제처럼 먹어야 한답니다 식욕보다 평온함이 비만도 예방하고 효과적입니다 아침에 마신 약이 정오무렵 발현됩니다 누구와 무엇을 먹더라도 만끽할 수 있도록 일상에 휘둘린 마음을 다스려줄 겁니다 현재에만 만족한다는 고양이의 하품을 넣었습니다

 

 처방 넷 : 봄바람을 채집해 결이 고운 쪽으로 넣었고 붉은 구름을 잘게 썰어 섞었습니다 고운 빛 덕분에 마시이에 수월할 겁니다 이 약은 서서히 마음을 제어해 산책을 자주하게 됩니다 저절로 운동하게 하니까 소화도 돕고 숙면에도 효과적입니다

 

 처방 다섯 : 베갯모 오른쪽엔 종달새를, 왼쪽엔 뜸부기를 새겼습니다 오른쪽으로 눕는 습관을 예상했으니 아침마다 종달새 지저귐을 들으며 깨어날 겁니다 오랜 불면은 탕약으로도 다스리기 힘들 것 같아 비방을 사용했습니다 후유증만 아니라면 팔베개가 특효이긴 합니다

 

 처방이라면서 염려만 언급했습니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으니 섭생에는 끼니가 으뜸입니다

 

- 전영관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 처방전 전문

 

 

 

 

병원에 있다 퇴원을 하고 받은 첫 선물 시집이 [슬픔도 태도가 된다] 였습니다.

세번째 수술이었고 이번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또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곤 했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바꾸게 되는 시집이었지요.

 

"슬픔은 짐작할수록 사나워지는 짐승이라서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다 아물었다 싶으면 단풍 먼저 기별을 넣고

내린천만큼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시를 읽다말고 시인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희망은 절망을 외면하는 기술이었다"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으며 오늘도 처방전을 받아들고 섭생의 끼니를 챙깁니다.

오늘도 시는 내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아가는 희망의 기술을 깨우치게 하고...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