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크메르루주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 집착한 덕에 이들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기는 수월하다. 온갖 사진, 죄수들의 머리를 처박은 물탱크, 교수대 같은 것들로 크메르루주는 스스로를 효율적으로 화형에 처한 셈이다. 

나는 이곳의 상처를 전혀 모른 채 이 땅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 상처를 눈으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스리랑카를 찾기 1년쯤 전에 나는 보조강사로 일해 모은 돈으로 캄보디아에 사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 프놈펜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옛 크메르루주 감옥인 투올슬렝이었다. 세 채의 콘크리트 건물 속 상자식 감방들에는 아직도 녹슨금속제 침대 프레임, 오래된 쇠고랑, 전기고문에 사용한 전압상자가 남아있었다. 감옥, 아니면 1만4000명이 들어왔다가 단 일곱 명이 살아서 나간,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는 장소가 되기 전에는 학교였던 건물이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 피를 흘린 몸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꼬리표는 없었다.
위층 발코니에 달린 가시철조망이 번들거렸다. 툭툭 기사들은 이곳에 유령이 들끓는다고, 밤에는 근처에 오기를 꺼렸다.
가이드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투올슬렝에 다녀오지 않고는 프놈펜 여행을 마쳤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마쳤다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시아누크빌의 파라솔 가득한 해변, 나무동이에 담긴 럼을 들이켜거나, 앙코르와트에서 세피아 톤으로 물든 인스타그램 사진을 남길 자격을 얻기 전에 이곳 역사에 이땅에 남은 상처에 관하여 응당 치러야 하는 몫이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내가 투올슬렝에 갔을 때는 많은 이들이 야자수와 철조망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다들 땀범벅이었다. 뜨거운 날씨여서 탄산음료 노점이 성황을 이뤘다. 나도 목이 말랐지만 다이어트 콜라를 들고 죽음의 전당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탄산음료를 샀든 사지 않았든 당연한 모독을 피할 길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크메르루주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집착한 덕에 이들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기는 수월하다. 온갖 사진, 죄수들의 머리를 처박은 물탱크, 교수대 같은 것들로 크메르루주는 스스로를 효율적으로 화형에 처한 셈이다. 나는 이곳의 상처를 전혀 모른 채 이 땅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 상처를 눈으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족쇄가 박힌 기울어진 널빤지와 그 옆에 놓인 물뿌리개를 보는 게, 크리스티안아만푸어가 물고문이 고문에 포함되느냐를 놓고 조지 W. 부시의연설원고 작성자와 벌이던 언쟁을 떠올리는 게 낫다고 말이다.
A 건물 1층 벽보판에 일렬로 붙은 사진들 속, 이곳에 갓 도착한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죽거나 떠나기 직전의 여위고 삭막하고눈이 퀭한 얼굴을 보는 것이 낫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떠난다는것은 대체로 킬링필드로 이송된다는 것, 그저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투올슬렝 주변 묘지들이 꽉 차자 죄수들은한밤중 버스에 실려 외곽지역의 쯔응아익을 향했다. 이곳이 킬링필드다.

쯔응아익은 그저 발전기 하나와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도구들로 가득한 오두막 하나가 있는 벌판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사람 뼈가 가득했다. 이 표현은 서정적인 진실이 아니라 문자그대로의 사실이다. 나는 내 신발이 뼈 사이를, 뼈 위를 밟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은 이들과 우리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아니었다. 크메르식의 장례 기념비인, 두개골과 대퇴골과 늑골로가득 찬 유리 탑인 스투파로 다가가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내 몸이, 저쪽에는 뼈가 있는 채로 신발을 벗고 머리를 숙이는 경험은 인지 가능한 경건함을 불러왔다. 그것은 내가 규칙을알 수 있는 의식이니까. 그러나 죽은 사람의 늑골 파편, 낡은 옷가지와 신발 고무창 조각 사이로 걸음을 디디며 뼈 사이를 걷는 것은 그와는 달랐다. 죽은 이들 위를 걷는 것은 불경하지만 정직한 일로 느껴졌다. 어차피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걷고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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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포스와 헉슬리가 주고 받았다는 언쟁은 지금도 구전된다. "당신 조상 중에 원숭이가 있다는 것인데 할아버지 쪽이냐, 할머니 쪽이냐?"라며 비아냥거리는 윌버포스에게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한심한 유인원을 할아버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고상한 인격과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으되 그 자질과 능력을 엄숙한 과학 토론의 장에서 조롱이나 일삼는 데 허비하는 사람을 할아버지로 둘 것인가를 묻는다면, 나는주저 없이 유인원을 택하겠다." 이런 헉슬리를 다윈은 "복음, 그것도 악마의 복음을 전하는 나의 선하고 친절한 대리인"이라 불렀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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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평점 :
절판


'냉정과 열정 사이'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장편소설,이라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가장 큰 호기심을 갖게 하는 문장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은 적도 그 유명한 영화를 본적도 없다.

'한밤중의 아이'라는 소설은 연애소설을 잘 쓸 것 같은 작가의 글이지만 내용은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에서 더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따뜻하게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을 읽었다. '따뜻하게'라고 했지만 사회제도의 헛점과 제도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 대한 현실적인 모습 역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밤중의 아이'라는 의미 자체가 유흥업소에서 부모가 일하는 동안 돌봐주는 사람없이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는 아이를 일컫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에 따른 부차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한밤중의 아이,인 렌지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부모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이다. 부모는 렌지의 생활과 교육에 무관심할뿐만 아니라 때로는 폭행까지 서슴지않고 행한다. 더구나 밤에 일을 나가면 어린 렌지는 돌봐주는 사람없이 길을 헤맬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히 유흥가 나카스에는 어린 렌지를 돌봐주는 다정한 어른들이 있다. 아이 한명을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쓸쓸해지는 기분이지만.

어린 렌지는 나카스를 자신만의 왕국이라 생각하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잘 지내려고 애쓰는 모습도 짠해지는 기분이지만, 사실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읽으며 비현실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느낌이지만 잠시 더 생각을 해 보면 비현실로 느껴질만큼 놀라운 일이지만 공상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더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집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아이와 집이 있지만 거리에 살고 있는 어른,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지만 아이에게 무심한 부모와 달리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맡겨야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고 삐끼를 하고 깡패로 사람들을 협박하고 폭행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한밤중의 아이에게만은 친절한 어른도 있다. 물론 또래 여자친구도 있고 전통 지역축제에 함께 한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한밤중의 아이는 극과 극의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렌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결국 터져나오는 렌지의 분노와 폭력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은 이제 비현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한밤중의 아이 렌지의 이야기,라고 조금은 가볍게 생각한다면 쉽게 읽히는 드라마같은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경찰 히비키를 통해 법제도의 헛점속에 희생되는 아이들, 학대와 폭력속에 방치되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어려운 현실에서 아이들을 구해주려는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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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세컨드라이프를 현실도피라 하고, 세컨드라이프 주민은 그 말에 더러 반발한다. 그러나 세컨드라이프가 도피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보편적이며 비난할 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어떤 삶을 산다 한들 우리는 그 삶을 저버리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한다. 몽상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예술과 음악, 중독성 마약, 불륜과 스마트폰 스크린이 가져다주는 엑스터시를 통해서. 이런 형태의 ‘떠남‘은 진정한 존재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저 존재 증상의 하나다. 사랑에 갈등이 따라오고,
친밀함에 거리감이 따라오고, 믿음에 의심이 따라오듯이.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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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란 도움을 기꺼이 준다는, 어쩌면 기껍지 않을 때마저도 어쨌든 도움을 준다는 의미일까? 자비의 정의는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비를 베풀기 위해 전날 밤 숙면을 취해야 할 필요가 없고, 자비를 얻기 위해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할 필요도 없다. 자비에는 특정한 뒷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 가방에 든 껍데기를 소라게 껍데기라고 하는 건 소라게가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소라게가 언젠가 쓸 거라는 뜻이에요?" "네." 남자가 대답한다. "그 말대롭니다."
그 말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무엇의 쓸모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한다.  - P81

자비란 도움을 기꺼이 준다는, 어쩌면 기껍지 않을 때마저도 어쨌든 도움을 준다는 의미일까? 자비의 정의는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비를 베풀기 위해 전날 밤 숙면을 취해야 할 필요가 없고, 자비를 얻기 위해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할 필요도 없다. 자비에는 특정한 뒷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자꾸 바뀌었다고 생각했겠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그 여자는 처음부터 그저당신 바로 앞에 앉아 고통을 호소하던 한 여자다. 때로는 아파서서 있기도 힘들다. 때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움이 필요하다. 그의 이야기가 도움을 얻기 충분할 만큼 설득력이있거나 고결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때로 당신은 그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당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은 당신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그저 당신이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그 사람이 되는 날을 상상해보는 아주 짧은 한순간 말고는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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