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우리 안으로 밀어넣거나 화에 이해 폭발하는 대신에, 그 화를 잘 활용하여 우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을 멀리하고 나의 내면으로부터 그를 몰아 내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법은 그리스도인이 취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용서는 화의 끝 부분에 있는 것이지 첫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는데도 벌써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나 자신을 스스로 다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그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나서야, 내가 그를 나로부터 밖으로 내던져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도 역시 상처입은 한 영혼에 지나지 않는 존재란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참으로 용서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내 안에서 밖으로 몰아내는 것은 내 안에 들어있는 고요한 공간을 인지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것은 이 공간 안으로 힘을 동원하여 억지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모든 것들을 상대로 방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어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나는 나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의 생각들과 계획들을 묵상을 통해서 나의 내면으로부터 몰아 내야 한다. 나는 내면의 참된 고요를 확보하여 내 안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 안에는 나를 넘어서는 신비가 들어있다. 내가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나는 나의 삶의 역사와 문제들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존재하는 층보다 더 깊은 곳에는 고요의 공간, 신비이신 하느님께서 내 안에 거주하시는 장소가 있다. 바로 이곳, 신비이신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장소에서 나는 참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내 안에 들어있는 그곳에서 나는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일상의 소동들과 내적인 무질서들 아래 놓여있는 그곳에는 고요의 공간이 있다.

- 안셀름 그륀, 참 소중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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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7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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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 옆에 서 있는 사람,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한 면들, 편안하지 않은 면들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다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항상 양극, 즉 두려움과 믿음, 이성과 감성, 사랑과 공격성, 규칙과 불규칙 사이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자기 확신에 찬 자세로 행동하는 사람은 양면중에 한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확신에 찬 사람은 자시의 입장은 논리 정연하게 말하지만 자신의 느낌은 잘 표현하지 못한다. 화제가 감정부분으로 옮겨지면 그는 당황해 하거나 입을 다문다. 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한쪽면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오직 한면만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면은 그림자 속으로 억압한다. 그림자 속으로 억압된 것은 그속에서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 억압된 감정들은 감상적 자세로 표출되어 나온다.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는 부분이 있는 사람은 다른 부분의 조절능력까지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그림자는 자기 안에 감춰진 약한 부분이 들춰지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에 대해 늘 강하게 학신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던 사람이 어는 날 갑자기 자신에 대한 조절능력을 완전히 잃고 마는 경우 바로 그래서이다. 늘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사람은 느닷없이 폭삭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인 사라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맹렬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있을 때에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반응한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말해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두 발을 발판 위에 단단히 올려놓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 안셀름 그륀, 참 소중한 나, 전헌호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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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피해 나갈수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무기력과 함께할수는 있다. 무기력에 대해 우리는 포기하는자세나 공격적인 자세로 대응할 수도 있고, 그것을 창조를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기력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무기력이 우리의 삶에 열매를 가져댜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도록 무기력이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무기력은 이 세상을 좀더 인간적인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는데에 좋은 생각들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무기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만 하면무기력은 극복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우리 삶의 주도권을 쥐고 최선을 다할 수 있기때문에 무력감은 더 이상 밀려오지 않는다.....

.............

무기력을 극복하는 개인적인 길들 중의 하나는 자기 스스로 자신 안에서 작업하는 데에서 성립할 수 잇다. 교회전통은 자기 스스로 자신 안에서 작업하는 것을 자기수련 Askese이라고 불러왔다. 전통은 이 단어로 우리 스스로 절제하면서 좋은 습관과 건강한 질서를 통해 자신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기수련은 본질적으로 수련 또는 훈련을 의미한다. 나는 새로운 능력을 갖추기 위해 반복해서 훈련하고 내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수련한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는 대로만 형성될 뿐 달리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위험 속에 있다. 자기수련은 본질적으로 어떤 것을 형성해 나가는 데에 즐거움을 갖는 것,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되고 내가 타인에 의해 살아가징 낳고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감각을 갖는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외부세계에 의해, 그리고 나 자신의 열망들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시에 대한 힘을 스스로 소유하여 나 자신을 조절해 나가게 된다. 나는나의 잘못들과 약점들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대로 내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있고, 어떤 것들은 변화시킬수도 있으며, 나를 압박하는ㄱ ㅓㅅ들 중의일부를 제거해 나갈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내가 자기수련을 통해서 할수있는 것의 한계상황에 도달하기도 할 것이고, 새로운 종류의 무기력을 체험하기도 할 것이며, 자기수련을 통해서는 나 자신을 완전히 제어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할 경우 이 무기력은 체념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 안셀름 그륀, 참소중한 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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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대략 4백여명이 식량을 타러 모트가로 온다. 라디오 소리는 경쾌하게 울려퍼지고 커피냄새는 향기롭고 아침 공기는 신선하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나다니는 내 마음은 결코 편치가 않다.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서 일일이 줄을 세워야 할 형편이다. 이젠 줄 세우는 거라면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로 부드러운 코티지 치즈와 호밀빵과 커피를 나눠준다. 공동체에서는 안 어울리는 광경이다. 대도시 안에 있는 모트가나 헤스터가와 같은 작은 이탈리아인들의 마을은 바워리 거리가 옆에 있는 데다가 실업자들로 우글거린다. 물론 그들이 부랑인들은 아니다. 단지 영육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거리를 찾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미사 참여를 가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명랑하게 인사나누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가장 고역스러웠던 건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을 지니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한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일이다.
그런 인사를 하느니 차라리 손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용서하세요, 우리 서로를 용서합시다! 우리 모두 좀 더 평안해지고, 잠자리도 생기고, 하루 세끼 식사는 물론 원하던 일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당신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우리 모두 서로에게 죄인인 셈이죠. 서로의 멍에를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면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용서하실 겁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성요셉의 손에 맡겨버렸다. 어제 아침에는 성요셉 성상앞에 촛불을 켜놓고 노동자들의 주보이신 그분의 멋진 얼굴을 알아보았다. 건장한 두 팔로 아드님을 안으시고 미사에 참석한 노동자들을 굽어보시는 얼굴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우리는 요셉 성인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성부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말씀하시쟎아요.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하기 전까지는 주님을 알아뵙지 못했어요. '주님께서 빵을 떼어 주시자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않았습니까?'(루가 24,30-31). 우리가 요즈음 굶주린 친구들과 함께 쪼개는 빵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지난 달만 해도 무려 1만3천5백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일을 도와주셔야 해요. 빵을 데는 가운데 서로를 알게 되쟎아요! 서로를 알수록 이렇게 보잘것 없는 사람들도 주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그러면 주님도 알아뵙게 되니까요"

어젯밤에는 만약 우리가 지난 두달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이 일을 시작할 엄두조차 못 냈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를 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나누었다.

- 1937년 2월, 도로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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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책을 쓰는 일도 '내 자신을 모두 내어놓는' 일이기에 힘들긴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인간사의 갖가지 문제들, 하느님과의 관계,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써봐야겠다. 멀리 내다보면, 인간사란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 내 자신에 대해 써보자... ... 나는 전기 작가도 아니요, 저술가도 아닌 저널리스트일 뿐이다. 주위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병고와 굶주림과 비애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 중 수많은 시간을 펜을 놀려 글을 쓰는 일이란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다고 썩 잘 된 글을 썼다는 생각도 안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 - 기나긴 고독에서, 도로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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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의 고통에 직면했을 때, 도로시는 우리가 삶의 기쁨과 아름다우에도 귀기울여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양과 달과 별, 우리가 사는 이 섬을 에워싸고 흐르는 강, 만에서 부는 시원한 미풍 등에서 아무런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비참함의 극치에 덩달아 한몫 거드는 셈이다" 칼럼을 쓸때 도로시는 자주 도스토예프스키의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구원받으리라"는 말을 인용했다.

비록 여러 주교들과 수도원들의 야심만만한 건축 계획에 분개하기는 했어도 도로시는 저들의 아름다운 교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분명히 이들 가난한 교회로 가야 할 많은 돈들이 엉뚱한 곳에 쓰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로시는 교회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고요와 평화와 휴식뿐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까지 찾았던 휴식처를 보았다. 이것들은 빈민가에서도 무시되어서는 안 될 가치들이다. 전임 신문 편집장이었던 톰 코넨은 이같은 도로시의 생각을 다으의 이야기와 연관지었다.

어느날 한 여인이 '가톨릭 노동자'에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를 기증했다. 우리는 도로시가 그것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보석상에 가 돈으로 바꿔올 수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반지 한 개 값이면 한달치 콩을 사고도 남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도로시는 가끔 우리에게 끼니를 얻어 먹으러 오던 혼자 된 어느 노파에게 그 반지를 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 반지를 팔면 1년치 집세를 치르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항의했다. 도로시는 그런 항의를 예상했다는 듯 그 노파에게도 존엄성이 있다고 하면서 노파가 원한다면 그것을 팔아서 집세도 낼 수 있고 바하마로 여행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그저 감탄을 연발하며 갖고만 있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부자들만 위해 다이아몬드를 만드셨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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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08-0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저생계비 체험단 중 한사람이 '헤어 젤'을 샀다고 비난할 때, 먹을 밥도 모자라는 사람들이 웬 과일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안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 그러한 생각을 했었으면서도 왜 여전히 나는....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