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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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아름다운 ...... 정원.
책을 읽으면서는 아무렇지도 않던 나의 마음이, 동구가 자기만의 아름다운 정원에 안녕을 고할때 슬며시 슬퍼지던 마음이, 책을 덮고 먹먹하게 이 느낌을 어찌 정리해야하나 답답하던 마음이...
지금은 간사하게도 '동구는 어찌되었을까'에 머무르고 만다.
나는 잠시, 멋진 트럭기사가 되어 이 땅 곳곳을 다니는 동구를 떠올려본다. 정말... 동구는 트럭기사가 되었을까?

취업을 못해 빈둥거리던 어느 날, 나는 아는 분의 소개로 개인 피정을 하루 하고 근처에 있는 '공부방'이라는 곳을 찾아갔었다. 시장을 지나 고불고불 길을 올라가 방 두칸짜리 집 한채.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있었고, 때마침 공부방도 방학이라 아이들은 만나지를 못했다. 아니, 그 덕분에 나는 한 소년을 만났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글을 쓰기전까지 세명의 소년을 만났다고 했던가. 나는 한명의 소년을 만났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눈길을 눈치챈 소년은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으려 했고 그때 성당활동으로 공부방을 방문했던 아주머니는 천사같은 맘으로 그 소년의 손을 어루만지며 '손에 비누묻혀서 때수건으로 살살 밀면 때가 좀 잘 빠질꺼야. 담번에 와서 손이 깨끗해져 있으면 아줌마가 맛있는 간식 사줄께'라 하셨다. 아무생각없던 나의 눈길에는 일종의 비난과 거부가 담겨있었지만, 그 아주머니의 말씀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얗고 이쁜 손으로 때가 꼬질꼬질 묻은 소년의 손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그 소년은 자기 얘기를 많이 해줬다. 아빠와 엄마 얘기, 아빠가 공부방에 못가게 하지만 절대로 공부방 선생님이 나빠서가 아니라 폐를 끼치는거라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커서 아빠처럼 훌륭한 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내가 차마 잊을 수 없는 맑은 눈빛을 하고서.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말끝잇기를 하면서 공부가 아닌 놀이를 했고, 소년은 꽤 영리하게도 멋진 단어를 많이 말하곤 했다. 나는 그 소년의 그 맑은 눈빛을 십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잊지못한다.

그날 저녁 공부방 선생님께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년의 부모는 재혼을 하였고, 새엄마는 소년을 구박하는 듯 했고, 소년이 공부방을 좋아하니 공부방에 돈을 내지 않아도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에 아빠는 애 버릇 나빠진다며 일방적으로 공부방 출입을 금지했다는. 가끔 아빠의 폭력과 새엄마의 구박을 피해 몰래 공부방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내가 소년을 만난 그날, 마침 소년의 아빠가 일을 하청받아 집을 떠나있었기에 슬며시 공부방을 찾아온 것이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아빠처럼 훌륭한 목수가 되어 엄마에게 멋진 집을 지어주고 싶다며 맑은 눈빛을 보여줬던 그 소년은 지금 청년이 되었을텐데... 어찌 지내고 있을까.동구는... 그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맑은 눈빛을 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시대의 흐름과 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 그것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걸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는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영역과 역할은 다른 것이다.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문제를 해결하지만,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헤매고 이을 때, 어린 동구는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동구가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에 안녕, 이라는 작별인사를 남기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이미 동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니까. 

아주 오래 전, 내가 만난 그 소년의 맑은 눈빛은 지금 어떤 희망을 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소년의 맑은 모습과 내 어린시절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내 눈길이 저 너머 꿈을 꾸고 있는 모두에게 머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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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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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누군가의 눈에 띌새라 움크리고 앉아 혼자 놀던 아이였어. 그때의 내 놀이터는 세들어 살던 우리집의 커~다란 마당이었지. 부모님은 일 나가시고, 언니 오빠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시간, 쬐끄만 내게 우리집 마당은 엄청나게 커다란 놀이터였던것이야. 풀을 뜯어 소꼽놀이도 해 보고, 꽃피는 계절이 되면 화사하게 핀 꽃들을 모아 꾸며보기도 하고.... 혼자 뭔가 거창한 것을 해보지는 못했겠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혼자 놀아도 심심하지 않았고... 아니, 난 혼자라는 느낌조차 없었어!

''놀이터 옆 작업실''을 들여다보면 혼자 놀고 있었지만 절대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행복하게 지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이들은 모두 자신의 놀이터에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 처럼 보이거든. 아니, 분명 행복해하고 있는 걸거야. 작업이 힘들고 먹고 사는 것이 좀 걱정스럽다고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행복하지 않다, 는 뜻은 아니니까말야.
그럴게 아니라 책을 한번 쓰윽 훑어보면 될거야. 사진만 휭~ 봐도 알 수 있어.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열두명의 사진이 나왔는데 다들 웃고 있거든. 자기들이 즐겁다는 것을 숨길수가 없는거야. 웃지 않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슬며시 미소짓는 입을 보게 될꺼야.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구.

문화소외지역인 지방의 촌구석에 박혀있지만, 내가 누리지 못하는 문화에 대한 부러움을 느껴봤던적은 그리 많지 않은데 벼룩시장에서의 즐거운 작가들을 보니 부러움과 시샘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 같아. 그들의 작업과 작품들은 내가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것들이고, 유난히 창의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작품을 볼수만 있어도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것이지. 난 사실 그런 놀이터는 상상도 못해봤거든.
책을 꺼내 다시 그들의 모습만 찾아봤어. 다들 웃고 있어. 그리고... 꿈을 꾸는 듯한 그 맑은 눈동자도 보이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오늘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열정이 보이는 듯해.

그래서... 부럽냐고? 처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들의 즐거운 표정과 희망을 꿈꾸고 있는 눈빛을 봤을땐 부럽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초라해보여 책을 재밌게 읽는것과는 다르게 내 맘 한구석이 불편해지려고 했던건 사실이야. 그런데말야, 놀이터에 대한 기억이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었어.
놀이터에 가본 적 있지? 놀이터에는 여러가지 놀이기구가 있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놀지. 아이들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구. 그러니까 내 말은 말야, 나도 내 놀이터에서 내 나름대로 즐거움을 느끼며 놀았던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즐겁게 이힛~!거리며 웃고 있다는게지. 이젠 나도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을 향해 슬며시 미소짓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

놀이터 옆 작업실에서 보여준 것은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중에서도 열둘의 이야기가 실려있고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모습의 작품들이야. 디자인, 그러니까 넓게 표현하자면 예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셈이지. 그렇다고 나같은 책벌레는 이 책을 책으로만 읽고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로 끝내버린다고 생각하면 안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로 했다니까. 우선 지금은 볕좋은 자리에 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것으로 시작할래. 잠깐,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책이니까 나도 나만의 책을 만들어볼까...하구. 잘 못만들면 어때? 내가 즐거운데...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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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1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고 싶어서 벼루고 있는 책인데....
 
브뢰겔 - 이상한 천국의 풍경을 꿈꾸는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3
닐스 요켈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품절


네덜란드 속담.
1559년에 그린 그림.

브뢰겔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거울처럼 비추어보고 반성하게 하려고 했다.
옛 속담이나 격언을 곰곰이 음미해 보면 삶의 진득한 지혜가 녹아 있다. 한두마디 간단한 말을 가지고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배워서 손해날 게 없는 훌륭한 충고가 선인들의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이다.
네덜란드는 속담이 참 많은 나라였다. 브뢰겔도 속담을 무던히 좋아했다. 술집과 개울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속담풀이그림으로 그리곤했다. 브뢰겔의 속담 그림에는 등장인물이 백 명도 넘는데 다들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고 있다.

지붕위에 둥근 빵이 널려 있다.

- 너무 많아서 지붕 위까지 올려 둘 정도니 '남아서 철철 넘친다'는 뜻.

(그...그런데 난 빵 말고 저 창문에 보이는 두 사람에게 먼저 눈길이 갔다...아, 참,,,참말로..;;;;;)

밀가루 반죽을 한번 쏟으면 주워담기 어렵다. 한번 저지른 실수는 엎지른 물과 같아서'다시 돌이키기 어렵다'는 뜻

두 팔을 한껏 벌려 보지만 빵에 손이 닿지 않는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을 빵도 당하기 어려우니 '찢어지게 곤궁한 살림'이라는 뜻.

- 이건 도대체 뭔가, 했었는데 이런 뜻이 담겨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배고픔에 대한 속담.
맥없이 지팡이에 의지한 사람의 눈앞에서 곰 두마리가 다정하게 춤을 춘다. '너무 허기가 져서 헛것이 보인다'는 뜻.

- 책에는 열두장면이 실려있다. 그 밖에도 엄청 많겠지만.
그리고 솔직히 앞쪽의 칼 들고 벽에 머리박고 있는 사람은 뭐하는지 개인적으로 참 궁금하다. 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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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
조이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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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바른케라는 미술사가에 따르면 예술 작품에 대한 모든 비판적인 접근은 ''우상파괴''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우상 파괴자''들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양식이나 자기 시대의 지배적인 양식을 배웠으나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금, 바로 이곳''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변형하거나 비틀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그림은 당시에 스캔들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그림은 발칙한 도발이거나 사회 전복의 음흉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이 일으킨 스캔들을 보면 당시의 사회와 문화의 한 측면을 볼 수 있고 또 반대로 한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의 테두리에서 작품을 봐야 그 작품의 의미를 좀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이들의 작품이 일으킨 스캔들을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프롤로그에서.

조이한, 이라는 이름을 보고 한번 읽어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었다. 엊그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을 읽은 후,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제목을 보니 뭔가 연관되는 것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왜 <위험한>인지 그 느낌이 온다.
나는 사실 예술, 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위대하다고 하는 그림을 많이 봤지만(아니, ''많이''라는 것도 어느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딱히 정말 훌륭해! 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름대로 인상적인 그림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으면 ''좋은 그림이야''라는 말을 소심하게나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끄집어 내려는 노력도 살짝 내려놓았다. 그러니 그림을 보고 조각을 쳐다보는 것이 조금씩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게 있어 예술의 이해, 라는 것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니 나의 이런 생각이 미숙한것이긴 하지만 조금은 괜찮은 첫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자신감이 생겨나서 괜히 뿌듯해지는 것이다.

''우상의 파괴''라는 것은 자신의 관념에 빠져들어 상상의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정신적 혼돈과 충격의 의미도 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우상에 빠져들어 있다면 우상파괴자는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이단으로 몰려 처형되고 매장되어버리겠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다섯명, 카라바조, 프리드리히, 마네, 뭉크, 뒤샹은 영웅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에는 매장되어버렸다. 현실에서 그들이 너무 앞서 가버렸기 때문일까?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섯명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단지 ''파괴자''로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미술사에 있어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틀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도 ''우상''의 파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상의 ''파괴''만을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느낌과 상상과 감각들을 한정지으며 만들어 낸 ''예술''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내가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까지만 이해하자 라는 내 생각이 뿌듯함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틀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예술의 자유로움을 틀지워버리는 것, 조심스럽게 경계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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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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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료하게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때, 나는 가차없이 들고다니는 엠피를 꺼내 플레이시키고 이어폰을 꽂는다. 그리고 책을 꺼내들고 적당한 곳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다면 이 모습은 그러려니..하는 일반적인 모습이 되겠지. 그런데 나는 간혹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때도 그러한 작태를 연출할때가 있다. 특히 내가 어색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말을 쉽게 하기 힘든 어른들이거나 특별한 공통의 주제가 없는 사람들과 어정쩡하게 서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기다려야 할 때.
밖에서 책을 꺼내들고 읽는 나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감싸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책 읽는 나는 위험한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을 차단시킬 때, 상처받지 않고 쓸모없는 소모를 하지 않아서 안전하다, 라고 한다면 나는 정말 위험에 빠져버린 것이 될것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것은 ''소통''하기 위해서야, 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게 책읽기라는 것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닐것이다. 물론 책읽느라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팽개쳐버리는것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이 책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제목은 어딘가 모르게 선정적이야, 라는 느낌때문에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여자들의 책 읽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도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는데.... 뭐지? 라는 생각으로 책을 살펴보고나서야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이 역사"가 눈에 띈다. 맞어. 책의 첫머리에 분명 ''독서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 줬는데도 까먹고 ''뭐야~''하고 있었다니.
이건 어쩌면 책의 주제와 제목이 살짝 뒤바뀌어 있는거 아닌가, 라는 내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독서의 역사''는 까먹고 책읽는 여자들의 그림만 쳐다봤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는지 이 책은 기대한만큼 아주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만, 이건 또 뭔소린가. 이 책은 조이한이 쓴 책이 아니라 번역한 책이다. 나는 왜 자꾸 이렇게 엇나간 생각만 하면서 책을 읽었단 말인가?
여튼 이 책은 꽤 흥미롭기는 했다. 단순히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겨있는 뜻,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그 안에서 끄집어 낸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뀌게 된 여자들의 인식수준과 의식화, 생활의 변화였다. 경건함과 도덕의식에 얽매여 강요당하는 생각에서 상상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변화, 그것은 위험해 보이지만 진정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조이한의 또 다른 책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를 읽으려고 꺼내들었다. 어쩌면 두개의 책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일깨워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드는 책이다. 그 책 앞 부분을 읽고 이 책,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느낌이 다르다.

"위험한"이라는 말은 누가 어떻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말이니,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말은 정말 위험한 말인지.. 생각해볼수록 재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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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월중가인 2006-03-17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저도 괜히 이야기 하고싶지 않은날엔 일부러 책을 펴들고 읽는척 해요~~

chika 2006-03-1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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