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
황민구.이도연 지음 / 부크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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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영상 분석가 황민구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홍보되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 이도연과의 공동작품이다. 이런 경우 시놉시스를 제공하고 작가가 그 스토리를 배경으로 문학작품을 완성하는 것인가,라는 이해를 하게 된다. 맞게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소설을 굳이 읽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티비라는 매체를 통해 영상분석을 하는 황민구님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분의 영상분석이 미확인비행물체라거나 신비한 현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분석을 했던 것도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보다 영상분석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쓴 증거나 범죄자의 범죄증거를 찾아낸다는 부분에서 더 큰 관심이 갔다. [선희]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영상 분석을 하는 대아는 몸의 이상을 느끼던 중 병원진료를 받고 실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일을 그만해야할까 하는 고민중에 선희의 동생 선영이 찾아온다. 3년전 실족사로 처리 된 언니 선희의 마지막 사진과 영상들을 통해 언니의 마지막 삶의 모습을 정리해보고 싶다며 분석을 의뢰한 것이다. 

친구도 별로 없는 대아에게 후배 선희의 존재감은 큰 것이었기에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선희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냈던 제주도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선희의 발자취를 찾아가다가 문득 이상한 부분을 발견한다. 선희가 올랐던 오름의 이름이 잘못되었다거나 숙소근처에서 마주친 동네 할머니와의 대화가 찍힌 영상에서 절룩거리며 영상을 찍은 듯한 모습이라거나 제주에 머무는 동안 자주 다녔던 까페 사장님의 이야기 등을 통해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생기고 그것은 곧 선희의 남편에게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선희'의 죽음 이후 그녀가 남긴 사진들을 통해 분석을 해 나가며 선희의 죽음에 담겨있는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소설의 주제라면 그에 곁들여 영상 분석관으로서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 피고인을 위해 영상분석을 한다거나 성추행범죄에 대한 서로 상반된 주장에 결정타를 보여주는 영상 분석의 내용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해서 소설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나가는듯한 흥미로움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영상을 분석한 내용을 듣다보면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소설 '선희'는 그런 분석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그 진실의 무거움으로 이순간에도 올바른 영상분석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물론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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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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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은 내가 남극과 일흔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탐사하며 보낸 오랜 세월을 자전적으로 돌아보는 책이다."

저자 배리 로페즈가 책의 서두에 밝힌 것처럼 자신의 탐사 여행에 대해 자전적으로 돌아본 책이라서 그런지 '탐사'에 대한 관점보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진다. 생태환경과 그 환경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 사람을 포함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고학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과학적 탐구를 위한 여행에서도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명체들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한 고찰이 빠지지않고 있어서 그런지 더 와 닿는 이야기였다.


이 방대한 이야기에 대해 뭐라고 해야할까. 사실 배리 로페즈의 글은 뭔가 급히 읽다보면 두서없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걸까, 싶어지지만 일단 이해되지 않는 글이라도 슬쩍 넘겨보고 전체적인 글을 훑어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진다. 아니, 내 경우에 그의 글은 그렇게 읽힌다는 뜻이다. 사실 나 자신이 제대로 읽지 않았을 뿐 그의 글이 어려운 것은 아닐것이다. 이전에 읽었던 배리 로페즈의 글들은 환경에 대한 고찰에 인간의 성찰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고 한다면 이 책에는 그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지구의 모습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보다는 그 속에 뛰어 들어 뭔가 훼방을 놓는 호모 사피엔스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뭔가 명확한 설명이 안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배리 로페즈의 다른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들도 언급되고 있어서 로페즈의 책을 읽고 싶다면 그의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난 후 그 모든 것에 대한 통합적인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많은 밑줄긋기를 하고 싶었지만 책을 한번 더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냥 쓱쓱 읽어나갔다. 

언어의 소멸, 문화 교류, 각 지역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어른'의 지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해 더 깊이있게 파고들어가면서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글들은 자꾸 누군가를 붙잡고 이 글 좀 읽어보라고 하고 싶어지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생명체와 지구 환경에 대한 존중과 경외감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것을 망쳐놓고 있는 환경에서도 배리 로페즈는 경각심을 깨우기 위한 경고를 하거나 비관을 늘어놓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글을 쓰고 그 안에서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연적 요인과 인공적 요인 둘 다에 의한 환경 문제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위협한다면, 만약 인간이 만든 환경의 복잡함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협력의 필요성이 커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국수주의의 목소리를 또는 이윤 추구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또는 종교적 광신, 인종적 우월, 문화적 예외주의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할 수 있을까? 만약 통치 체제가 사람의 건강보다 경제적 생존력을 우선시하고, 모든 경우에 공동체에 대한 의무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한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잃어버리게 될까?"(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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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연적 요인과 인공적 요인 둘 다에 의한 환경 문제가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위협한다면, 만약 인간이 만든 환경의 복잡함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협력의 필요성이 커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국수주의의목소리를, 또는 이윤 추구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또는 종교적광신, 인종적 우월, 문화적 예외주의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할수 있을까? 만약 통치 체제가 사람의 건강보다 경제적 생존력을 우선시하고, 모든 경우에 공동체에 대한 의무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한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잃어버리게 될까? 530

코끼리, 아프리카들개, 스프링복, 아프리카큰느시, 혹멧돼지, 임팔라, 사자, 타조, 기린 등 여러 동물을 만났던 경험은 내게 항상 두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경이와 감사다. 폐장시간도 없고, 울타리도, 농경지도, 인간이 건설한 어떤 구조물도 없는 풍경에서 내 눈으로 직접 그런 존재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생물학적으로도 은유적으로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풍성한 만남이었다. 이 첫 아프리카 여행의 경험은 내가 델마스의 법정에서 목격한 일에 대한 해독제를 제공해주지도 않았고, 나미비아의 카프리비스트립에서 본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 경험들은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절망이 덮쳐오지 못하게 막아주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들과 남아공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남자들.
내게 그 동물들은 그 남자들의 권위를, 남자들은 동물들의 권위를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인 아프리카로다시 오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 P478

현재 모든 민족, 모든 문화, 모든 국가가 똑같이 문제 있는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재고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질적 부에 관한 섣부른 꿈과, 이미 너무 많은 국가가 정책방향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더 큰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한 열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호모 사피엔스를 제약하고 있는 생물학적 현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생태적 현실에서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재설정해야 한다. 또한 인류가 자랑하는 기술의 상당 부분이 무익하다는 점과, 인류를 떠받치기 위해생태계가 치르는 생물학적 비용의 문제를 인지하고 풀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 우리 후손들에게 나쁜 세상은 아닐지,
이 세상의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낸 묵시록 기사들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취해야 할지 판단하려면 아주 비범한 종류의 담론이 필요하다.
이 담론은 전 세계적 규모의 대화여야 하며, 여기서는 정부들과어떤 일에든 경제적 이권으로 얽혀 있는 이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들을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 대화에서는 아무 두려움 없이솔직해야 하고,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삼아야 하며, 용감하고정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시대에 뒤처지고 위험해 보이는 관념들- 예컨대 국민국가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관념, 거대 자본주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 한 가지 종교적 관점의 일방적 권위, 모든 신비를 하나의 의미로, 하나의 성문화로, 하나의 운명으로 몰아넣으려는 충동-이 대화를 이끌게 두어서는 안된다. 532 - P532

내가 어려운 문제에 시달리는 전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그지역에서-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2004년 12월 26일쓰나미 이후 수마트라 북부 반다아체에서, (중국이 댄 자금으로) 끊임없이 철광석을 캐내며 들떠 있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조언을 구했을 때,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재난에 대처하는 동일한 패턴이었다. 그건 바로 서로 존중하는 지역적 협력이었다. 이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중앙의 권위로부터, 특히 그 문제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특정 유형의 경제 발전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관되게 목격한 것은, 그문화가 지닌 유능함의 관념을 구현한 개인들이 권위를 갖는 위치로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에서 침착함을 뿜어내는 샘물이었다. 그들은 패배하거나 후퇴하여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정의나 공경 같은 추상적인 것들에 헌신할때는 다른 누구의 인준도 필요치 않았다. 전통적 마을에서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일이 해결되는지 아는 사람, 혼란에서 의미를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 회복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갈 줄 아는 사람이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생명을 확실히 지속시키는 일에서는 이 어른들의 존재가 기술 발전이나 물질적 편의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532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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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의 레시피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모모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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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의 뜻이지만 처방전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49일의 레시피는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사망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아쓰타는 그녀의 유언대로 49제 대신 그날 그녀를 아는 모두가 모여 축제처럼 기쁘게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가족의 의미를 담고 가족의 죽음 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이 애도의 시간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아낸 소설,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뻔해 보이는 전개일 것 같았지만 한 해를 보내는 시간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내 오토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부탁으로 찾아왔다며 갑작스럽게 집안에 들이닥친 이모토를 통해 아쓰타는 아내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아내와의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첫번째 아내의 딸인 유리코는 결혼하고 도쿄에 살고 있는데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어 이혼을 결심하고 고향집으로 내려오고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는데...


뭔가 동화같지만 잔잔하고 가벼운 이야기가 담겨있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조금 더 촘촘하게 그려지는 가족의 이야기와 평범하지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는 오토미가 이뤄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뜻깊은 것인지를 느끼게 될 때마다 울고 웃으며 감동에 빠져들었다. 특히 오토미가 리본공동체 아이들에게 각자의 발자국을 만들어주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의 기록이 역사의 기록과 맞물리면서 그 또한 그 자신과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유의미하고 가치있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뭔가 너무 좋았다,라는 말을 제대로 하고 싶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예상외로 튀어나오는 가족에 대한 개념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재미와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다. 가족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말의 '식구'가 더 맞는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강하게 떠오른다. 

죽음에 대한 애도의 과정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지만 그 이상의 위로를 받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오토미와 이모토, 카를로스와 하루미 그리고 터틀에 얽혀있는 이름의 발견과 딸 유리코가 가정을 지켜나가는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이 소설이야,라는 걸 뿜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있는 일상의 이야기 같은 감동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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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거대한 슬픔이 차올랐다. 깨어 있는 동안 나의 모든 시간의 질서와 내가 차지할 공간을 엄격히 정할 권위를 나에게 아무 관심도없는 냉담한 타인들이 쥐고 있다면, 그리고 매일 나의 자기 보호 본능을 부인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314




처벌을 위한 것이든 갱생하고 용서하기 위한 것이든, 올바른교정 제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악마의 섬에서버려진 감옥 안을 돌아다니고 몇몇 감방에 들어가 한동안 앉아있기도 하면서 당시 수감자들의 상황을 짐작하게 할 흔적들을주변에서 찾고 있을 때,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거대한 슬픔이 차올랐다. 깨어 있는 동안 나의 모든 시간의 질서와 내가 차지할 공간을 엄격히 정할 권위를 나에게 아무 관심도없는 냉담한 타인들이 쥐고 있다면, 그리고 매일 나의 자기 보호 본능을 부인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이 유형지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수리점에서 제대로작동하라고 둥근 머리 망치로 두들겨 맞다가 밤이면 다시 선반에 던져지는 고장 난 기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나는 툴레의 빈 집터 앞에 앉아 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악마의 섬 텅 빈 감방에 앉아, 우리 시대에 안전함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지, 불안으로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운명은 어떤 것일지 곰곰 생각했다. 지평선 위로 보이는, 점점가까이 다가오는 명백한 여러 위협을 고려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 사회의 무질서와 생태의 재앙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일지 아니면 첫 번째 계몽과는 아주 다른 두 번째 계몽이 펼쳐낼, 상상으로 온전히 구상해낸 풍경일지 궁금했다. - P314

나는 서로가 처한 곤경에 대한 감정이입이 우리 시대 모든 사법제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어느 수도원의 부수도원장이 내게 했던 말처럼 "전례 없는정의는 야만이며, 정의 없는 전례는 감상성"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윤리의 틀(성경, 쿠란, 미합중국헌법 등) 밖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자신들의 윤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으며, 악이 인간 사회의 조직에서 힘을 발휘하는 한 요소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무지몽매함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언젠가 나는 남아공의 데즈먼드 투투 명예 대주교에게 감옥에 관해, 그리고 그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분열 상황에서 감옥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관해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내게 그의대답은 기이하게도 그 부수도원장이 했던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남아프리카에서 살인적인 인종차별 정권이 종식된 후, 재건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평화를 희생시키며 정의를 추구하거나 정의를 희생시키며 평화를 추구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그는 말했다. 거기서 중간 타협점을 찾고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투투대주교와 동료들은 그런 타협점을 만들기 위한 답을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법적 절차에서 찾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청문회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묘사하도록 요청하고, 그 피해를 초래한 자들에게 자신이 행한 일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도록 요구한다. 양측은 같은 날 같은 법정에서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발언한다. 투투 대주교는 이런 청문회의 결과가 화해였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묘사하게 하고 가해자에게 자신이 행한 죄상을 낱낱이 인정하고그런 짓을 한 이유를 설명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정의와 어느 정도의 평화 둘 다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법정에서피고에게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서 감정이입의역량을 찾아내고 또 북돋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최악의 범죄자들만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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