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정의 (양장본)
나카무라 히라쿠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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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곧 정의가 될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무시한 사적인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 역시 정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더욱더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정의로움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일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최근 성폭력 범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2차 피해를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는데 그 경계선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선택은 옳다고 할 수 있을지... 답을 내릴수가 없다. 


이 소설은 성폭행을 당할뻔한 카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른 아령에 가해남성이 죽어버린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카나의 아버지 료이치는 경찰로서 딸의 행위가 정당방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살인자라는 오명은 벗을 수 없으며 딸의 미래는 그로 인해 망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 지역에서는 범죄조직원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카나를 폭행하려고 한 남자 역시 블랙체리라는 조직의 일원이기에 료이치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위장한다. 

죽어 마땅한 자의 죽음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 죄를 저질렀고 미래에도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리라 예상되는 자의 죽음앞에서, 신고를 하고 정당방위로 감형을 받는 것이 옳은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망가져버릴 딸과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가혹한 운명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딜레마 앞에서 생각의 여유를 부릴 틈이 없는 료이치는 사건을 은폐시켜버리는데...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게 되는지 그 흐름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헷갈려버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그 결말에 이르러서는 더 참담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가 더 현실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있어서 더 비통한 마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는 이런 이 이야기의 끝이 이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삶의 딜레마에 빠져 괴로울 때 인간이기에 잘못된 길을 선택할수도 있음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 소설 속 이야기에서 료이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더 많은 거짓을 만들어내야하고, 그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래서 어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럴수밖에 없는 또 다른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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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하건대 가장 두려운 것은 때로 내부에 있다. 56

에일리언1 영화의 핵심 태그라인이라 설명하는 글을 읽는게 문득. 두 아아의 이름이 우연과 지연이라는 것이 떠올랐고.
너무 간결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아야기의 끝은 무엇인가 더 궁금해진다.


경고하건대 가장 두려운 것은 때로 내부에 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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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 모든 장소
채민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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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간지 건축분야 담당 기자인 저자가 어린 딸을 데리고 미국에서 1년간의 생활을 하며 딸과 함께 혹은 혼자 다녔던 공간,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 건축 전문 기자가 바라본 일상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한 저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축물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했더랬다. 그런데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바로 나의 성급함을 깨달았다. 저자의 글과 출판사의 홍보 문구는 명확함을 전달하고 있지만 자꾸만 내멋대로 판단하고 생각해버리고 있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나이 먹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라 한동안 책을 덮어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늦잠을 자도 괜찮은 주말 저녁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단숨에 다 읽어버릴만큼 책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적어도 내게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1년동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에스더와 함께 미국 생활을 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쉬워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그런 조건이었기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여러 공간을 찾아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내게 있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네의 각양각색의 놀이터 사진과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는 도서관 시설의 이용과 도서관 계단 옆에 설치된 미끄럼틀 사진이었다. 어린이 전용 도서관인가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더구나 궁금해하던 순간 사진 설명에 미끄럼틀 경사가 꽤 높고 길어서 간혹 어른들도 탄다고 한다. 도서관에서의 미끄럼틀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좋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공간활용이 쉬울수도 있지만 사실 뉴욕의 금싸라기 땅에도 공원을 만들고 생활하는 그들이니 땅이 남아돌아서 놀이터를 만든다 라고 하면 안될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을 설명하면서 그곳이 단지 학습의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배운다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또 인상깊다. 학교 수업을 줌으로 실행하면서 학습효과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안전한 공간을 최우선으로 만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선행학습이 이루어지면서 학교수업이 무용화되어버리는 우리의 현실에 생각할거리를 주고 있기도 하다.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생활자로서 일상에서 자주 가는 공간, 잠시 짬을 내어 여행을 떠나지만 일생생활자로서의 여행을 다니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생각의 차이와 문화의 차이를 느껴보게 되기도 한다. 그저 외국에서 여유로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단숨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시각의 차이와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던 내용들도 많아서 생각의 공유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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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사라졌다
미야노 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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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주말 오후, 내일이 사라진다면... 순간적으로 출근걱정이 없는 휴일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겠구나,라는 제멋대로 편하게 생각해본다. 분명 책을 읽을 때는 무한 루프가 시작된다면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변하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같은 시간이 반복된다면 뭔가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한 단련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내일이 사라졌다'는 말 그대로 내일이 오지 않는 오늘이 무한 반복되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서로 연결된 5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각각의 장은 개별 이야기로 읽어도 그리 큰 무리는 없다. 

처음의 시작은 - 물론 이것 역시 처음이 아닐 것이라는 증명이 되었다고 하지만 - 무참히 폭행당하고 살해된 딸의 복수를 위해 살인범을 찾아가 죽이는 하루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죄없는 여고생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놓고도 반성은 커녕 좨의식조차 없는 살인범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금세 풀려나 활보한다는 것에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한 날, 루퍼가 되어 같은 날을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살인범 역시 루퍼가 되면서 복수의 반복은 또 다른 형태로 흘러가고...


루퍼가 점점 많아지면서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가기 시작하고 그 무법자들로부터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나이트 워치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격투기 선수로 재활을 하며 루퍼가 된 상태에서 몸은 변하지 않아도 기술은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제럴드의 이야기,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오늘'과 '내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무한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루퍼와 그 사실을 모르고 하루를 살아가는 스테이어들의 이야기에서 이 '세계관'은 어떻게 파악해야하나 생각하고 있다가 이건 굳이 소설에 대한 분석을 해야하기보다 그냥 그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어차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될텐데 뭐하러 애쓰지? 라는 말에는 일관되게 언제 이 루프가 끝날지 모른다는 답이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똑같은 하루의 반복인 것 같지만 하루하루는 다르고 그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잠시 스쳐가듯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의 무한 재생되는 하루는 건강을 위한 운동과 지혜를 쌓기 위한 공부와 독서가 필수겠다,고 떠올렸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만약'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가 실행해야하는 나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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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특별보급판) - 사유와 열정의 오선지에 우주를 그리다 문화 평전 심포지엄 3
마르틴 게크 지음, 마성일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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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베토벤에 대해 떠올리려 하니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환희의 송가, 교향곡, 불멸의 연인, 엘리제를 위하여... 흔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이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 이외에는 없어서 베토벤 평전을 접하면 그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고 베토벤의 음악도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생각한 그런 평전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접해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목차에 언급된 수많은 인물들이 그려낸 베토벤의 일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베토벤의 일생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번 교향곡,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은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황제로 권력을 잡은 그에게 실망해 헌정을 취소하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헌정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애초에 나폴레옹을 위해 만든 곡이 아니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각 챕터별로 주제에 따라 나뉘어 있는 글을 차례로 읽어나가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관심이 있는 주제와 내가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챕터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문학가와 연주자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작가의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쓴 소설을 직접 읽어본 것이 아니기에 이것 역시 간접적일수밖에 없었다. 


원래 클래식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엘리 나이라는 이름은 정말 처음 들어보는 연주자인데, 그녀의 이력을 보니 어쩌면 정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라는 위안을 가져본다. 본에서는 전후 1952년까지 엘리 나이의 연주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엘리 나이는 재능이 있지만 멍청한 예술가의 표본이다. 그녀의 히틀러주의는 (약간 히스테리가 뒤섞인)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멍청함이고, 굳이 용서해야 한다면 그 멍청함을 봐서 부분적으로 용서할 만하다"(508)라는 하우젠슈타인의 말에서 예술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재능이 있지만 그걸 올바르지 못한 것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재능이 아니라 죄악이 될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베토벤의 일생을 알 수 있는 평전과는 다르지만 베토벤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담긴 글의 인용을 통해,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베토벤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고 베토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은 대부분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베토벤에 대한 나의 현실이고, 어쩌면 조금 시간이 지난 미래에는 그래도 한뼘 정도는 베토벤에 가까이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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