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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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술서는 아니다,라고 쓰려고 보니 딱히 또 예술서와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세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일상적 삶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저 나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커다란 유리에 막혀있는 모나리자를 보기 전에 맘 편히 느긋하게 앉아서 모나리자를 볼 수 있었는데, 사실 그게 현실이었는지도 자신하지 못할만큼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느낌만큼은 잊을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의 미소를 이야기할 때 도무지 그 미소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칭송하나 싶었지만 책을 통해 보던 그 미소가 아닌 루브르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짜 모나리자의 미소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오묘한 미소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의 그 첫느낌은 잊을수가 없을 것 같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이처럼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중심을 두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간을 건너뛰고 저자가 말하는 "예술이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끄집어내게 되는데 나의 삶이라는 것과 예술이라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비유처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글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삶이 있고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봤을 때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지 날마다 특별한 날들의 연속인지는 그 삶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날마다 바라봤던 바다의 모습과 모네가 날마다 바라보던 정원의 수련의 모습은 그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둘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들은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을 하였다는 것일테고.


조금 뜻밖이었던 것은 고흐의 습작과 모작을 많이 접했었다고 생각했는데, 고흐 특유의 색선택이나 붓터치가 보이지 않는 모작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작가들의 애벌레 시절과 나비가 된 시절의 그림을 비교해보라고 했지만 단지 그림의 실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림 안에 자신만의 색채를 넣고 자신만의 느낌과 시선을 담으며 삶의 여정 또한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마음에 많이 남는다. 


여러 직업을 거치다 결국은 자신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지속했던 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신체적인 악조건을 이겨내고 세상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그림을 그려 낸 프리다 칼로나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 같은 것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화가들의 유명한 에피소드여서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화가들 각자의 화풍이나 작품, 평전 등 여러 책을 읽어 본 내게도 이 책의 이야기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는 제목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데, 예술 에세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라는 것은 예술이 곧 당신 자신이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처럼 우리들 각자 고유의 삶은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 이상의 의미를 담고 우리의 일상을 빛내주고 있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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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조공

삼국사기 장수왕 본기에는 북위에 고구려가 조공을 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지리적으로 더 인접한 북위이기에 고구려는 조공을 통해 더 북위를 달랠 필요가있었다. 장수왕의 북위 조공을 ‘국화‘로 오인하면 안 된다. 조공책봉관계는 자주권을 박탈당하는 속국화의 개념이 아닌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였다. 그리고 조선이 명·청에 조공하는 것과 고대의 고구려가 북위에 조공을 하는 것 역시 같은개념으로 볼 수 없다. 고구려의 북위 조공에 사대주의적 사고관은 전혀 없었다.
조공을 하지 않음은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기를 자처하는 짓이었으며 중국의 황제권 쟁탈전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고구려는 굳이 중국 황제 자리를 두고벌어지는 싸움판에 낄 이유가 없었다.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나 신라 모두 중국을 다른 문명권으로 인식했기에 조공을 했다. 북위와 유송이 서로 조공하지 않았던 것은 두 국가가 중국 문명의 유일한 황제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었기 때문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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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마다 작동하는 인식의 틀이 존재하는데 요즘은 자꾸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네요.

chika 2023-09-17 23:0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엔 식민사관학자들이 판을 치고 있고, 중국의 동북아공정은 수십년 이어져오고...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지요.

yamoo 2023-09-18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시 고구려 국력은 북위와 거의 비등하거나 더 강했는데 사대라는 건 말도 안되죠..

우리나라에 식민사학자들이 판을 치고 있죠. 동북공정 얘기 나오면 속 들어가고 잠잠해지면 에헴~ 하고 나와서 민족사학자인냥 젠체하고.. 중국 동북공정의 첨병이 노태준과 송호정이라면 말 다했죠.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북아역사재단의 실체는 중국사학자들의 주장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중국학자들의 논거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우리나라 고대사학계입니다. 알면알수록 기가차다는..

chika 2023-09-18 10:23   좋아요 0 | URL
헙. 정말 알면 알수록 기가 막혀 숨을 못쉴 지경입니다 ㅠㅠ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서 여러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알게 되는데... 여전히 잘 모르는 것이 많고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될 때마다 마음이 안좋습니다.

오래전에 중국어에 관심이 있어서 학원을 다녔었는데, 그때 언론정보과 학생인데 부전공으로 중국어를 택한 대학생이 학교과제라며 들고 온 유인물 해석을 부탁했었어요. 근데 그 내용이 고구려가 중국요동지역의 한 속주일뿐이다는 내용인데 학원강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상식과 다른 내용이라 본인이 잘못해석하고 있나 하고 있었고 학생은 내용이 이상한데 그에 대한 리포트를 중국인 교수에게 제출해야하는거라 난감해하고 있고..

사실 국립대에서 채용한 중국인 교수의 역사관 자체에 대해 알수는 없겠지만 학생들에게 동북공정을 정사인것처럼 강요하는 커리큘럼에 대해서는....

역사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사실왜곡은 하지 말아야하는데 정말 .... 답답합니다 ㅠㅠ
 

낯설게 보기. ‘위대한 화가‘라 불리는 모네에게만 필요한 능력일까? 사회적으로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만 쓸모 있는마음가짐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는 평범한 이가 바다를 매 순간 낯설게 보고자 노력하며 그것의 숨겨진 미를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하는 일상. 그 낯설게 보는 눈으로미술관에 가 작품의 숨겨진 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미적, 지적 쾌감을 느끼는 일상. 그 눈으로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새로운미를 새록새록 발견하는 기쁨, 그 눈으로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고 항상 감사히 여기는 풍요. 그 눈으로 세상에 놓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놀라운 마법, 나는 아무리생각해봐도 이런 마법 같은 일상과 삶이먼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낯설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에서 그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샘솟아 나는 마법이, 예술이 펼쳐지니 말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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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번데기 과정을 미술가라 불리는 사람들만 경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이 과정 속에 있다.
운동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발명을 하든, 사업을 하든, 장사를하든, 요리를 하든, 글을 쓰는, 춤을 추든, 말을 하든,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이 과정은 진행 중이다.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무지한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누군가는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영영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누구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번데기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번데기 속에서 누군가는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해 껍질을 찢고 나와나비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하기도 한다. 물론, 거듭된실패에도 굴하지 않는다면 끝내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애벌레가번데기 껍질을 까고 나와 나비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는 온전히 애벌레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어디쯤에 있을까?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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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반복은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공교롭게도 우리의 삶도 매일 반복된다. ‘오늘‘ 연작 작업을 평생 반복한 화가의 삶처럼, 더 나아가 연월일만 반복하는 ‘오늘‘
연작처럼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반복한다. 매일 자고 또 일어난다. 매일 씻고 밥을 먹는다. 이런 생리적인 행위만 있을까? 매일반복하는 일과가 있다. 학교에 가거나 일터에 가거나 혹은 어떤일을 하거나, 그 일과를 한동안 매일매일 반복한다. 수년간 모종의 일과를 반복해 마치고 나면, 또 새로운 일과를 만들고 그것을매일 반복한다. 일상의 생리적 행위부터 사회적 일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생을 걸고 무언가를 반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삶은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관성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어떤 일을 처음 경험할 당시에는 분명 아주 새롭고, 너무 소중하고, 정말 감사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하루 이틀, 한 달,
1년, 3년, 10년이 반복되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처음 느꼈던새롭고, 소중하고, 감사했던 그 모든 감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무감각해져 그 어떤 것도 음미할 수 없게 된다. 분명 내 삶속에, 내 곁에 있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내가 보고 있는 것도, 만나고 있는 것도, 하고 있는 행위도, 하고 있는 일도,
모두 다. 그렇게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시들어간다. 어찌보면, 온카와라의 ‘오늘‘ 연작은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이면에 숨겨져 있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혹시 온 카와라의 ‘오늘‘ 연작에서 우리 자신의 일상이 거울처럼 비쳐 보이지는 않는가?


화가 이우환은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소년 시절 그는 쌀을 씻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매일 똑같은 쌀 씻기를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즐거우실 수 있냐고.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같은 쌀 씻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일을 할 때마다 매일 다르게 느낀다고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생기를 주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홍이 오르기도 한다고. 쌀과 물과 손이 하나가 되어 잘 움직일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 매일 쌀 씻는 것이 항상 새롭다고, 어린우환의 눈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어머니의 쌀 씻기는 지루하기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쌀 씻기는 매일,
매 순간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행위였다. 이를 우리는예술적 행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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