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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 ㅣ 문학인 산문선 4
메도루마 슌 지음, 박지영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8월
평점 :
메도루마 슌의 '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어떤 내용의 '소설'일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메도루마 슌이라는 이름은 그가 오키나와 출신의 작가이며 오키나와의 문화를 작품에 녹여낸 작가로 알고 있고 '물방울'이라는 소설을 읽고난 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제주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있었을 때 포럼에 참석한 오키나와의 주교님이 기조발언을 하셨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제주와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에 대한 공감대를 가졌었기에 오키나와의 문학이라고 하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 책은 오키나와의 작가 메도루마 슌이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한 글을 묶어놓은 것이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헤노코지역에 미군신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정치적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꽤 오래전의 글인데 지금 이 글을 읽는것이 너무 과거의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첫장을 펼치면서부터 이 책은 내 추천도서 목록에 들어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쓱쓱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얄궂게도 한꼭지한꼭지마다 수많은 곁가지 생각들이 흘러나와 책읽기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얀바루는 오키나와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있으며 희귀동식물이 존재하는 곳을 지칭한다고 한다. 얀바루의 숲을 알든 모르든 책 제목만 듣는다면 책의 실제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책을 읽다보면 왜 책 제목을 이렇게 끌어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키나와에는 류큐왕국이 존재하고 있었고 한때 중국의 속국이었기도 했지만 완전히 일본의 속국이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직전 오키나와 지역 전체를 병참기지화하였고 패색이 짙어지자 섬주민들은 전쟁과 삶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집단자결을 강요당했으며 전쟁 이후에는 오키나와에 세워진 미군기지로 인한 문제가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미군기지에 대한 온갖 페해가 있음에도 헤노코 지역에 신기지가 세워진다는 것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책의 내용과는 조금 멀리 돌아가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로 인한 오키나와 주민들이 받는 피해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 보다 이십여년전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나 꺼내고 싶다.
2002년은 우리에게 월드컵4강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해라고 기억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보다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바로 그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필리핀도 미군기지 대여료를 받는데 우리나라는 무상대여를 하고 있으며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살인범을 잡을 수 없다는 불평등한 한미협정도 충격이었다. 일본도 비슷하게 군사기지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배려예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는데.
몇년 전 제주강정마을의 해군기지에 미국의 핵잠수함이 기항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사기밀아닌 군사기밀이었을까. 핵무기가 지나간다는데도 뉴스에서는 기사 한 줄 접할 수 없었다. 구럼비가 파괴되었고, 청정바다 속 산호초 역시 군사기지로 인해 사라져갔다. 오키나와의 현재 상황이 그저 그곳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일일수만은 없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메도루마 슌의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정치에세이인 정론,이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고 읽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그냥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사람이 있을까? 혹은 이건 이미 옛날 이야기야,라며 낡은 생각을 버리라고 할 사람도 있을까? 나는 사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이며 이것은 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말을 하고 싶고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 많은 이들이 연대의식을 가지면 좋겠고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