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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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처음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본 그림들 중에서 뚜렷이 기억에 남는 그림 3개가 있다. 하나는 물론 모나리자였고 - 대형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 소박한 크기에 놀랐고 인쇄물로 볼 때는 왜 그 그림이 유명한가를 못느끼겠던데 처음 마주했을 때, 지금은 정말 옛 이야기가 되겠지만 유리벽도 없이 밀려드는 인파도 없이 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볼 수 있었던 때였는데 그 오묘한 미소에 왜 굳이 먼 곳까지 와서 진품 그림을 봐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큰 캔버스에 그려진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식사. 사실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 소장이라고 나와서 내가 헛것을 봤었나 싶었지만 당시 루브르에서 특별전을 하며 잠시 전시되어 있었던 기간이라 운좋게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그림은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제'이다. 듣도 보도 못했던 그림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낯선 루브르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옆을 지나치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고 그들을 인솔하던 가이드가 바로 그 그림 앞에 멈춰서 한참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인데 그림의 예술적인 부분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그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설명해 주는데 역사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은 정말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그림을 볼 때 예술적인 부분의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나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되었다.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높아져있었다.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라고 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역사라기보다는 왕조사, 아니 왕가의 이야기를 그림과 곁들여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한스 홀바인의 그림이 보여 그림에 대한 기대도 컸고 그 그림들로 영국 역사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역사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달라 역사보다는 조금 가볍게 흥미있는 왕가 인물들의 삶과 사랑과 죽음 정도의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도 그림은 역시 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예술성이나 왕가의 초상이라는 것 등 전체 그림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띈 것은 제임스 길레이가 그린 조지 4세의 풍자화와 토머스 로런스가 그린 조지4세의 초상화이다. 비만인 조지4세의 풍자화가 오히려 더 실물에 가까울 것 같고 그보다 이십여년이 지난 후 그려진 토머스 로런스의 초상화는 거짓이다라고 해도 될만큼 전혀 다른 인물의 그림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그 유명한 런던탑에서 처형된 왕족들의 이야기나 이혼을 하기 위해 종교를 바꾸고 아내를 처형하고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고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처럼 여왕이 지배하면 번성한다는 징크스에 대한 이야기, 왕가를 유지하기 위한 혈족관계로 이어지는 근친혼의 결과 같은 이야기가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영국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흐름을 잡을수는 없어서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하다. 우리 역시 왕조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나가기도 하고 있으니 이 책 역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그러고보니 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기는 했으나 대부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것이고 영국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독립혁명에 대한 이야기, 청교도 혁명 등에 대한 굵직한 역사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왕조의 시작으로부터 이어져온 역사이야기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적 사실과 영국의 왕가를 이어보며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 다시 읽고 그림을 보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말임을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은 그런 깨달음을 갖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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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09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은 이분 책은 이제 살짝 패스하고 있어요. 약간 반복되는 느낌이랄까? 처음 봣을 때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니 모든 책이 다 비슷해보이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도 또 이런 리뷰를 보면 다시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참 신기하긴 해요. ^^

chika 2023-04-10 10:17   좋아요 1 | URL
ㅋㅋ 패스하고싶어도 자꾸만 미련이 생기는게 책인지라.
요거 증정도서로 받았는데 혹시 읽어보시것슴까?
소장용이 아니면 기증용으로 빼놓는 도서에 넣어놔서 읽으시겠다면 보내드릴수있습니다요

바람돌이 2023-04-10 10:34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이 책은 딱히 소장욕구가 있는건 아니니 도서관에서 빌려볼게요. 그래도 말씀 감사해요
^^

chika 2023-04-10 19:37   좋아요 0 | URL
넵.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면 좋죠.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은 없는 책도 많고... 그래도 도서관이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토요일이 휴무라 아쉬워요. 토요일이 운동삼아 도서관 근처까지 가기 딱 좋은 날인데 말이죠. ㅎㅎ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플로리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향신료 농장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기독교인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안 그래도 공급량이 부족하던 것마저 훔쳐갔다.
‘악명‘을 떨치는 소녀에게 더욱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건만…………

간혹 사내아이들이 도전해올 때도 있었는데, 힘도 몸집도 그들이 더유리했지만 살벌한 공세로 간단히 꺾어버렸다. 어느 조상으로부터 싸움의 재능을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상대가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유대인 암컷이라고 욕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다.
때로는 사내아이의 코를 말 그대로 땅바닥에 뭉개버렸다. 어떨 때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앙상한 팔로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꼈는데, 간담이 서늘해진 패배자들은 주춤주춤 달아나기 일쑤였다. "다음엔 몸집이 비슷한 상대를 골라." 일반적인 의미와는 정반대라 더욱더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나처럼 조그마한 유대인 계집애는 네놈들이 감당하기 버거우니까." 그렇게 사내아이들을 놀려대며 자신의 승리를 새삼 강조하고 약자, 소수자, 여자의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독화살‘ 플로리, ‘기차 화통‘ 플로리 같은 악명만 얻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 내내 이런저런 도랑이나 공터에 무서울 정도로 정밀하게금을 그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아무도 금을 넘어오지 않았다. 점점 우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린 그녀는 땅금 너머에 도사리고 앉아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쌓아올린 요새에 갇힌 형국이었다. 열여덟번째 생일 무렵에는 결국 싸움을 포기했다. 전투에는 승리해도 전쟁에는 패배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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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언제나 이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 86


한숨은 그냥 한숨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들이마시고 의미를 내쉰다. 그럴 수 있는 동안. 그럴 수 있는 동안만. 87


새 세상이 열릴 거야, 벨, 자유국가 말이야, 벨, 정교분리로 종교를 극복한나라, 사회주의로 계급을 극복한 나라, 계몽으로 카스트제도를 극복한 나라, 사랑으로 증오를 극복한 나라, 용서로 복수심을 극복한 나라, 단결력으로 분열을 극복한 나라, 언어가 많아 오히려 언어 차이를 극복한 나라, 다채로운 빛깔로 피부색을 극복한 나라, 가난을 물리쳐 극복한 나라, 글을 배워 무지를 극복한 나라, 슬기로 어리석음을 극복한 나라, 자유 말이야, 벨,
자유가 특급열차처럼 달려오는 중이니까, 머지않아, 머지않아 우리는 자유 특급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목격하며 환호성을 지를 거야.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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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카몽시 외할아버지의 이중성이 오히려 아름다워 보인다. 자신의 내면에 상반된 욕구들의 공존을 기꺼이 허락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고결하고 원만한 인품의 원천이다. 예컨대 누군가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평등사상과 현실 속 까마득히 높은 사회적 지위가 서로 모순되지 않느냐고 따졌다면 할아버지는 다 인정한다는 듯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외할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모두가 함께 잘살아야 해. 카브랄섬은 모두를 위한 곳이다. 그게 내 좌우명이지." 그는 영문학을 열렬히 사랑했고 코친의 수많은 영국인 가정과 깊은 우정을 나눴지만 영국의 식민 통치는 반드시 끝나야 하고 토후들의 전제정치도 함께 사라져야 한다는 믿음 또한 확고부동했는데, 그런 상반성에서 나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는 미덕을 발견한다. 그런 역사적 관용이야말로 인도의 진정한 불가사의로 손꼽을 만하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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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치코 멘데스 - 숲을 위해 싸우다
치코 멘데스.토니 그로스 지음, 이중근.이푸른 옮김 / 틈새의시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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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치코 멘데스 - 숲을 위헤 싸우다]는 브라질 아크리주 지역의 고무농장에서 태어난 치코 멘데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숲에서 고무를 채취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또 노동을 하면서도 숲을 지키고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중요한 것임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고 살해의 위협 속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간 치코 멘데스는 1988년 12월 결국 살해당했다. 


"처음에 나는, 고무나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마존 숲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깨달았다. 난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207)라고 치코 멘데스가 말하고 있듯 자신의 신성한 노동이 단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모두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여전히 그의 삶과 죽음이 현실이 아닌 드라마 같기만 하다. 


브라질 숲속의 고무농장에서 태어나 고무채취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치코 멘데스는 당시 고무채취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글을 읽을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유클리드에게 글을 배우고 그를 통해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되었다. '식물이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굴하지 않고 항상 다시 싹을 틔우는 것처럼 해방운동의 뿌리는 뽑아내지 못했다'(60)는 유클리드의 가르침은 치코 멘데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었고 이러한 활동이 환경운동에까지 이르게 되며 이 모든 것이 한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모두를 살리고 공존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코 멘데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브라질의 고무농장에 나타난 혁명가 유클리드와의 만남은 치코 멘데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는데, 치코 멘데스의 구술을 사회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그의 친구인 토니 그로스가 정리한 내용을 담은 것이어서 그런지 좀 세세한 내용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쉽기도 하다. 오히려 치코 멘데스의 구술을 바탕으로 평전의 형태로 그의 삶을 그려냈다면 그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브라질의 당시 정치, 사회, 환경 등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깊이 읽기'로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존의 미래를 지키려면 숲을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법 또한 강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는 아마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던가? 아마존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일종의 보호구역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마존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삼림 벌목을 막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숲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계획에 넣어야 했다. 채굴보존 지역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채굴 보존 지역이란 무슨 개념일까? 이것은 토지의 소유권은 공공에 있을지라도 그 땅에 사는 고무 채취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계속 살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이다"(103)


이 이야기는 당시 아마존 지역의 고무 채취 노동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깊이 새겨볼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숲을 보존하며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한 실천을 해 나가야 할 때임을 새삼 되새겨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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