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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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여름에 어울리는 스릴러 소설 같은데 이 소설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옛날 옛적에 이탈리아 트레스피아노 마을에 얼굴도 심성도 별로인 필로미나 폰타나라는 소녀가 살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필로미나가 자신의 애인을 동생이 뺏어간다면 모든 둘째딸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바람기 가득한 그녀의 애인 코시모가 동생 마리아가 싫어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키스를 하는 것을 오해해 마리아를 다치게 한다. 그 후 정말 필로미나의 저주가 계속되는 것인지 2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폰타나 가문의 둘째딸들은 영원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에밀리아는 그런 폰타나 가문의 둘째딸이다. 브루클린의 가족빵집에서 제빵사로 일을 하는 에밀리아는 갑작스러운 포피 이모할머니의 초대를 받게 된다. 에밀리아처럼 역시 둘째딸인 사촌동생 루시와 동행을 제의받고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 기회를 찾기 위해 가족과 교류없이, 아니 오히려 에밀리아의 엄마를 유괴하려 했던 포피 이모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에밀리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새로운 삶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 세상을 암울한 흑백의 연필 스케치에서 진정 아름다운 유화로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460)


스릴러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해버리면 재미가 없으니 둘째딸의 저주를 온몸으로 받고 저주스러운 삶을 살아가던 에밀리아가 어떻게 그 저주를 풀어나가고 행복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에 알게 되는 '사랑'은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시작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들을 만나게 되고 전쟁과 분단 - 우리나라의 휴전선 이전에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있었음을 떠올려보시라 - 의 아픔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 역사속에서도 역시 사람의 삶은 사랑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저주를 푸는 것은 사랑이다, 라고 말한다면 영원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저주를 받은 폰타나 둘째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사랑이 무엇일지 궁금해질까? 스포일러라고 할수도 없는 스포일러를 언급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사랑. 세상을 암울한 흑백의 연필 스케치에서 진정 아름다운 유화로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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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정당할까요? 그걸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제가 모두가 자신을 불타오르게 하는 그런 사랑이 올때까지 버텨야 할까요?"
포피가 빙그레 웃는다. "아가, 그건 자기 스스로가 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란다.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80년을 살고나니 사랑이 많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뿐이구나. 연인 위안을 주는 사람 보호자 친구. 물론 리코는 내 마음이 진정한 열정을 느끼는 오직 한 사람이지만, 때로 혹독하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깊은 우정 혹은 단순한 동료애를 제공하는 사랑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단다."
어둠 속에서 포피의 눈이 반짝인다. "결국 삶은 간단한 방정식이란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마다 그 대상이 남자든 아이든, 고양이든 말이든 이 세상에 색채를 더하게 되지.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면 색을 지우게 되고." 포피가 씩 웃는다. "암울한 흑백의 연필 스케치에서 진정 아름다운 유화로 가는 이 여정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란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 P444

포피가 내 볼을 어루만진다. "사랑은 들판을 채색하고 우리 감각을 깨우는 달콤한 열매란다. 네가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해야한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사랑이 너에게 오면, 사랑이 네 손이닿는 곳에 있으면, 부디 포도나무에서 그 사랑의 열매를 따서 잘살펴보렴, 그래줄래?"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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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다른데로 빠지는 것에 인생의 묘미가 있단다. 책에 빠지고. 절로 눈물이 흐르도록 감미로운 교향곡에 빠지고.
252

"언젠가 알게 될 게다. 에밀리아. 삶이 항상 동그란 원은 아님을 그보다는 우회로와 막다른 길, 거짓된 시작과 가슴 아픈 이별이 있는 뒤얽힌 매듭일 때가 더 많단다. 길을 찾을 수 없고 지도가 있어봐야 소용없는 부아가 치밀고 어찔어찔한 미로지." 포피가 내 손을 꽉 쥔다. "하지만 모퉁이 하나도, 커브 길 하나도 절대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된단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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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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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서라 할 수 있는 여행가이드북이 아닌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이 책에서 저자가 직관적인 제목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세상 대부분의 여행은 '아주 사적인 여행'이라는 것이다.

어린시절 잠 좀 편히 자겠다고 부모님따라 새벽기도를 따라가며 칭찬받으며 자란 저자는 별다른 생각없이 개신교회의 목사가 되려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자전거여행자의 이야기를 듣기전까지는.


여행기를 쓰고 친구가 던진 '그래서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말에 아주 사적인 여행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위대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 기하학적인 정교함에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건축물의 아름다움 같은 이야기는 굳이 내가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행에세이는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저 단순히 만난 사람들, 마주친 풍경들에 대한 사적인 기록만을 담고 있다면 또한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록을 읽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뭔가 자꾸 걷도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매일 아침 스페인의 공원에서 마주친 허름한 남자가 영어를 너무 잘해 칭찬을 했더니 당연하다며 자신이 영국인이라는 것을 밝힌 이야기를 할때까지만 해도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에세이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글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를 보러 갔을 때 저절로 메시에게 향하는 카메라 앞에서 그 옆에서 경기를 운영하는 패스메이커 차비를 눈여겨보라는 이야기에 차비 에르난데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자신의 존재감을 모두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의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에피소드는 지극히 사적인 여행의 느낌이 또한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바라보는 것에서 약간의 시선을 바꾼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애초에 여행에세이는 풍경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 체험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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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튼 애비 애프터눈 티 쿡북
다운튼 애비 지음, 윤현정 옮김 / 아르누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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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맛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기본적으로 커피보다는 홍차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 그중에서도 달달한 일본식 밀크티를 제일 좋아했는데 언젠가 정말 맛있는 홍차를 마신 후 홍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진한 영국식 홍차는 씁쓸한 맛이 강해 물을 많이 넣고 마셨었는데 품질이 좋은 홍차는 진한맛이어도 좋았다. 그래서 '다운튼 애비 애프터눈 티 쿡북'이라는 책 제목을 읽으며 다운튼 애비라는 드라마는 모르지만 오후의 영국식 홍차 쿡북은 너무 궁금했고 이 책이 무척 기대되었더랬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 실려있는 내용이 홍차를 다양하게 마실 수 있는 티 레시피 북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주 내용은 애프터눈 티, 그러니까 영국식으로 조금 진한 홍차를 마시면서 그에 어울리는 빵의 레시피 북이었다. 예상치못하게 빵의 비주얼 공격에 하루빨리 오븐을 구입해 파티셰가 되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 것은 덤이다. 


홍차와 같이 즐길 수 있는 빵이라고 하면 식사대용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스콘이나 단맛이 강한 케이크나 타르트, 푸딩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크게 네개로 나눠 페이스트리, 번과 비스킷 그리고 케이크, 타르트 푸딩의 단 맛이 강한 디저트, 샌드위치와 핑거푸드의 브런치 느낌이 나는 음식, 마지막으로 빵에 어울리는 쨈과 스프레드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애프터눈 티와 어울리는 브레드 레시피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앞부분에는 차에 대한 소개글과 다운튼 애비에서의 차 한잔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내게는 가장 유용하게 와 닿았던 영국 차의 특징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다. 

은빛 향이 덮인 어린 찻잎으로 만든 백차와 차나무의 거친 잎을 건고하고 비비고 산화한 후 소나무 장작위에서 살짝 그을려 특유의 훈제향을 낸다는 랍상 소우총은 들어본 기억도 없는 차인데 실제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블랜드 티인 얼그레이가 베르가모트를 추가한 시트러스 향으로 만들어졌는데 우유와 더 잘 어울리도록 차 회사에서 실론, 아프맄, 인디아 홍차로 바꾸었다는 설명은 처음이다. 실론티가 스리랑카에서 재배된 홍차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와 아이리시 브랙퍼스트는 상표이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역시 다른 맛이 나며 붉은 빛이 돌고 우유를 더하면 진한 맥아의 풍미가 난다는 아이리시 브랙퍼스트는 제대로 알고 마셔본 기억은 없지만 붉은 빛이 도는 색다른 홍차라고 마셔본 기억은 있다. 


여름이 되면 트와이닝 홍차를 진하게 내려서 - 리처드 트와이닝의 세금감면 로비(!)로 대중화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진한 홍차에 우유를 넣고 꿀을 첨가해 차갑게 마시는 밀크티는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 준다. 정말 간단하지만 홍차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된 내용 중 하나는 홍차에 우유를 넣기 시작한 것부터가 아니라 내구열이 없는 찻잔이 뜨거운 홍차로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유를 먼저 넣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성의 코르셋과 관련해서는 더 깊은 뜻이 있으니 그냥 넘겨보기로 하고 이 책의 핵심인 쿡북으로 넘어가면 프랑스 빵처럼 화사한 데코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면서도 단아한 모양으로, 한두가지의 과일을 더해 밝은 색으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애프터눈티와 함께 하기 좋은 빵의 레시피가 펼쳐진다. 

빵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고, 누가 만들어준다면 책과 재료를 준비해 넘겨주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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