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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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시절부터 쥘 씨의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해 오던 루이즈는 어느 날 단골손님인 의사에게서 '당신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의 끝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데,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라는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악마 같은 플롯을 지닌 책"이라는 르 파리지앵의 평은 인정할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소설은 1940년 4월 6일에서부터 6월 13일까지, 초등학교 교사인 루이즈와 군인인 가브리엘과 라울, 페르낭 그리고 내게는 사기꾼(?)으로 여겨졌던 테지레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도 아닌데 소설의 줄거리를 풀어놓는 것이 쉽지 않다. 등장인물들 각자에게 숨겨져있는 이야기를 독자인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파리가 독일군에게 습격당하며 점령되는 그 짧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등장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루이즈의 가정사에 얽힌 이야기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현재를 떠올리게 하지만 라울과 가브리엘의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과거에 얽매이던 것이 어떻게 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페르낭의 이야기는 부인 알리스와 꿈꾸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현재의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지며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미래의 세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테지레, 엉터리 라틴어 미사를 하는 우리들의 신부님 이야기는 정말 절대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이다. 비겁한 야바위꾼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아이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걸인이 되기도 하고 도둑이 되기도 하며 당당하게 협박을 하여 생존을 이어나가기도 하는 모습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슬픔의 거울'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것 아닐까. 더구나 등장인물들의 뒷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주는 친절한 피에르씨의 에필로그 역시 얼마나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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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윤상인 지음 / 트래블코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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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언젠가 한번 영국박물관에 갔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기억이 과거의 기억이 맞는지 가고 싶은 내 마음으로 인한 기억의 왜곡인지 불확실해지고 있었는데, 우연인지... 며칠 후 6년여만에 여행이라는 것을 가게 되어 동전박스를 뒤지다보니 파운드가 담겨있는 비닐봉투에 떠억하니 영국박물관이라 적혀있다. - 사실 영국박물관을 기억하는 이유는 로제타석 때문인데 직접 본 감흥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에 없지만 로제타석이 영국박물관에 있다는 것만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것도 좀 웃긴 일인 것 같다. 어쨌든 저자는 대영박물관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지만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영국박물관이라 적고 있는데 내가 보관하고 있는 비닐봉투(!)에도 영국박물관이라 적혀있어서 이 작은 연결고리들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런던에 있는 11곳의 뮤지엄에 대한 소개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런던의 뮤지엄들이 모두 무료,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건 정말 꽤 놀라운 것이었다. 실물크기의 모조품들을 모아놓은 V&A(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은 예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무척 지루해하던 조카가 모조품 전시실에 가서 맘껏 만지고 장난치면서 재미있어하던 걸 떠올리게 했는데 왠지 이곳은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을 비롯해 사유재산을 기부해 공적인 뮤지엄을 만들어놓은 곳이 꽤 많은데 특히 인상주의 그림을 전시해 놓은 - 거기에 고흐 자화상과 우키요에, 마네의 폴리 벨리제르의 술집 등이 있는 코톨드 갤러리가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그림이 영국에 있단말인가, 하며 새삼스럽게 놀라며 본 작품들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그림에만 집중했었지 정작 그 작품이 어느 곳에 상시전시되어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들어있지만 뮤지엄, 갤러리들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고 그림에 담겨있는 시대와 사회상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쉬우면서 또 깊이있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런던의 뮤지엄 플러스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아, 그리고 괜히 한가지 덧붙이자면 런던의 뮤지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스트릿 아트 쇼디치를 소개하고 있어서 더 좋았다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바로 뱅크시의 작품과 다른 많은 그래피티를 볼 수 있는 쇼디치를 알려주고 있다. 새삼 언젠가 꼭 뱅크시의 작품을 직접 보러 런던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것이 떠오르는데...

스트릿 아트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작품과 인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조각품들을 볼 수 있는 뮤지엄을 보기 위해 언젠가 런던에는 꼭 가봐야 할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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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뚱뚱한 사내가 잔해만 남은푸조 옆에 실내화 바람으로 서서, 전투기들이 도로에 기총 소사를 하며 맹렬한 속도로 덮쳐 오는데도 불구하고 빨리 가라고,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는 광경이었다.
겁에 질린 루이즈는 목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파란 원피스 여자의 시신을 성큼 넘어 갓길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은 울부짖고, 전투기들은 다가왔다.
벌써 루이즈는 손수레를 밀며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463


#############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예상치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뭔가 참혹하면서도 슬픈. 아니. 아름다운 본질을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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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는 자신의 어머니가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생각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했다. 임신한 처녀와 비밀 중절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나 돌아다녔다. 누군가가 사망했거나 상속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이런 사실들이 비로소 밝혀지는 집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인데, 꼭 벨몽 집안만 그러지 말라는법은 없었다. 아니,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기를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묵직한 돌덩이 같은 것이 아이를 갖고싶은 갈망과 연결되며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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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잔 - 경남 스토리 공모전 대상 토마토문학팩토리
박희 지음 / 토마토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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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일본 최고의 보물로 전해져오는 이도다완은 조선의 막사발이다!"

이 문장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몇년 전 도자기여행에 관한 책을 읽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자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임진왜란때 조선의 수많은 사기장을 납치해가고 - 그중에는 자신들을 천하게 여기는 조선을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들도 분명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분청사기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내기 힘든 시대적 상황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왕의 잔은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의 보물로 전해져오게 된 사건(!)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소설이다. 단지 그 한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조선의 사기장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조선의 가마가 일본에서도 조선식으로 발달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자료를 조사하여 사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솔직히 조선의 자기와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사기장들의 자기 제작과 후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제왕의 잔은 '막사발'에 중점을 두고 실존인물들과 접접을 이루는 가상인물들의 사랑과 욕망, 성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문가의 자손이지만 천한 사기장의 길을 택한 도경이 몰락한 양반가의 딸 연주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함께 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연주가 돈많은 양반가의 후실로 가게 된 것을 알게 된 도경은 연주와의 도주를 계획하게 되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듯 그의 계획은 발각되고 도경은 명나라로 떠나게 되는데...


일본에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황제가 원하는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경의 발자취가 그려지는 것은 한중일 세 나라의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도경이라는 사기장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도자기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이 소설은 연주에 대한 도경의 사랑이 더 크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고 관계 형성을 하고 있어서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도자기보다는 도자기를 굽는 사기장의 일생에 더 몰입하게 하고 있어서 조금은 기대와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수집과 역사적 사건 속 개인의 삶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훨씬 더 많은 생각할거리를 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꿈이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무참히 깨지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는 한 개인의 일생이 끝내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아이에게서 끝을 맞이하게 된다는 비극적 사실 역시 소설의 여운을 남기고 있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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