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그것은 文의 가족력이었다. 그의 친척들 가운데 백내장으로 시력을잃은 사람은 그가 아는 것만 해도 모두 열 명이 넘었다. 그것은 유전의법칙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올 불운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는 춘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단다. 내일 당장 소경이 되는 건 아니니까.
눈은 아주 조금씩 멀기 때문에 그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고,
그것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할 시간이 남아 있거든. 그러면 나중에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볼 수가 있지. 그러니까 그게 꼭 슬픈 것만은 아니란다.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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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호기심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기어코 몸뻬까지 모두벗고 커다란 기계 앞에 서고 말았다.
잠시 후, 금복의 몸 구석구석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 나오자 그녀는 마치 진기한 보물지도를 들여다보듯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풍만한 엉덩이, 뜨거운 눈빛과 발그레한 뺨은 모두 사라지고 죽은 나무 사정이 같은 앙상한 뼈만 하얗게 남아있었다. 금복은 사진을 집으로 가져와 전등불에 비춰보며 홀린 듯 며칠 동안 관찰하다,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다 껍데기뿐이란 말이군. 육신이란 게 결국은 이렇게 하얗게 뼈만 남는 거야.
그녀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 뒤에 남게 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죽어지면썩어질 몸‘ 이란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리고 곧 내키는 대로 아무 사내하고나 살을 섞는 자유분방한 바람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어쩌면평생을 죽음과 벗하며 살아온 그녀가 곧 스러질 육신의 한계와 죽음의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덧없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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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칼자국이죽어가면서 금복에게 한 말은 과연 진실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인간의 교활함은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있는 것일까? 여기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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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엉뚱한 미망이나 부조리한 집착에 사로잡힐 때가 있게 마련이다. 예컨데 사랑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일 텐데,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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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화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괵투 잔바바 지음, 제이훈 쉔 그림, 이난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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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하늘 곳곳에 구름을 갖다놓는 구름배달꾼이 있어요. 하늘 곳곳에 가져다 놓은 구름을 보며 꿈꾸는 아이들을 보며 구름배달꾼은 즐겁게 일을 한다네요. 

하늘에는 별 부인도 있답니다. 고리버들 바구니 가득 별을 담아 하나씩 하늘에 거는 일은 별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래요. 

하늘에는 하늘화가도 있어요. 하늘화가는 어둠속에서 붓질을 하며 행복하게 구름사이를 거닌다는군요. 그렇게 밤을 데려온대요. 그런데 즐겁게 밤을 그리다가 문득 외로워지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는데...


구름배달꾼처럼 구름을 날려보내며 아이들이 꿈꾸게 할 수 있다면, 별 부인처럼 밝은 별빛속에서 일을 한다면 모두가 알아볼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하늘화가는 마침 좋은 생각이떠올랐어요. 가까이 있는 별을 따서 자신의 몸에 달았더니 하늘화가는 태양처럼 빛이나기 시작했지요. 모두가 하늘화가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늘화가만 바라보던 모두가 하늘화가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요. 왜 그런걸까요? 


어른들이라면 이쯤에서 이 동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 굳이 이야기의 진행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겠지만 한번쯤 비틀어 생각해보자. 과연 하늘화가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간들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모두가 밝게 빛날 필요는 없어"라는 말을 누군가의 위로로 받아들일 것인지, 나 스스로의 위안으로 내뱉게 될지.

그림이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이야기책을 다 읽고 괜히 심술이 난 것인지, 빛나는 시간을 누려본적이 없어서 시샘을 하게 된 것인지 아무튼 모두가 밝게 빛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빛나는 자의 여유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내 마음을 툭 던져놓고나니 정말 흥칫뿡!하는 마음으로 삐딱하게 보는 것이 진짜 내 마음은 아닌 것 같아.


하늘화가는 '즐겁게' 밤을 그렸고,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빛을 지니고 있는 것보다 모두에게 필요한 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을 그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이 동화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하늘화가는 이제 더이상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으니 우리도 무엇을 하게 되든 즐겁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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