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요양 시설에 간 엄마는 내가 줄 수 없는 것들을찾아냈다. 또래 친구와 사회적 지지 그리고 공동체까지. 전화를걸자 엄마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빙고 게임 대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끔 엄마는 내가 말하는 걸 들으면서 마치 막 외출을하려는 대학생처럼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주방에 서서 냄비를 휘젓고 있는 내 모습이 왜 그렇게 절망스럽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은것들을 상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나자신을 불행한 운명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외로움이 지닌 가장 억압적인 특징이다. 상상력을 제한하고, 삶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속삭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스스로를 얽매는 것. 외로움은 그렇게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나는 온갖 걱정에 사로잡힌 채 불확실한 상황의 이면에도좋은 결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높이 도약하기 전엔 새로운 삶이 지닌 이점들을 볼 수 없는 법이다.
이런 도약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로 자기애다. 많은 이들이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기애를 통해 유익함을 얻는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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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목숨이 지닌 가치는 밭을 가는 말이나 늙은 당나귀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수세기에 걸쳐 새로운 피를 주입해 가며 키워 낸 믿음이다. 나는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흑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우린 우리가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될 때까지 이러한 현실과 홀로 싸워야 한다는 걸,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고 뼈가 썩어 문드러지고 묘비가 세상을 뚫고 무성하게 자라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세상은 우리의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여전히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곳이다. 그 세상은 여전히 흑인들이 올가미에 포획되고, 두 팔을 결박당하고,
굶주리고, 붉은 줄이 그어지고, 강간당하고, 노예가 되고, 살해당하고, 목이 졸린 채 ‘숨을 쉴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곳이다. 싸움을 이어 가는 내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나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장면을 볼 때마다 놀라움에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후드 티를 바짝 조이고, 주먹을 하늘 높이 들고, 행진하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직접 ‘목격‘한 것에 대한 증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매일, 그들은 같은 일을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불의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4백여 년이 넘는 이 빌어먹을 세월 동안 우리를 어떻게 가스라이팅해 왔는지 목격하고 있다.
목격하라, 내가 사는 미시시피주가 2013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 헌법 13조를 비준했다는 사실을.
목격하라, 미시시피주가 2020년까지도 주 깃발에서 남부연합기의 로고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목격하라, 흑인과 원주민, 많은 유색인종들이 차가운 병원침대에 누워,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폐로 힘겹게 마지막 호흡을 내쉬는 모습을. 그들은 오랫동안 부족한 음식, 스트레스,
가난 등에 시달린 탓에 진단명조차 확실치 않은 기저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 이미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는 것도, 그래서 혀끝으로 약간의 설탕을 음미하면서, 맛있는 음식 한 조각을 먹으면서, 그렇게 순간순간 달콤한 것들을 낚아채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오 주여, 삶은 종종 쓰디쓰니까 말이다.
그들은 우리가 맞서 싸우는 것 또한 목격하고, 우리가 발을 들썩이는 모습, 우리 심장이 예술과 음악, 일과 즐거움을 향해다시 한 번 격렬하게 요동치는 모습도 지켜본다. 우리의 싸움을 목격한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은 얼마나 인상적인가. 팬데믹이 한창인 가운데도 그들은 밖으로 나가 행진을 한다.
사람들의 물결이 거리 곳곳에 굽이치는 걸 보며 나는 흐느낀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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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책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린 내가 소유할 수 있는유일한 것들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문자 그대로 내가 그것들을 진짜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서로 일했던 아버지가 공유재산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부모님이 아이에게 책을 사 주는 일을 사치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보다 가진 것이 없던 시절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어린 시절 나는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책이 거의 없었다. 당시 내가 얼마나 갈망했었는지, 결국 어떻게 처음으로 내 책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두 기억이 난다.  - P39

작가가 되고 책상이 비로소 나의 집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속할 곳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영토이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점령당했다 버려진다. 나는 나의 작품과 내가 창조한 인물들에게 속해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선 낡은 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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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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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두번째권은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의 거침없는 북진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어쩌면 팩션의 시초가 아닐까.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가 의도하는대로 역사적 허구를 마구 집어 넣고 있어서 역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험한 것이 팩션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연의는 중화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중화 문화의 숨은 칼날이다. 역사와 소설, 사실과 허구로 무장된 카멜레온이 글로벌 시대 전 지구촌을 통째로 중화주의화하기 위한 콘텐츠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급한 민족을 상대로 하는 국지적 전략일 뿐이다. 단지 이야기책이라고 치부하며 등한시하기에는 너무나 깊게 우리 곁에 와 있다. 역사가 시기마다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삼국지연의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살펴보고 제대로 알려줄 때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돼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22)


이 책을 읽기 전 삼국지기행이라고 했을 때 그저 삼국징에 대한 맹목적인 열의만 가득한 책이라면 설렁거리며 글을 읽고 실사 사진과 삼국지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인물동상과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공간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삼국지연의 내용을 실제와 허구, 그리고 왜 그런 허구를 넣었을까 하는 저자의 역사적 배경 분석까지 담겨있어서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린시절부터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유비,관우,장비는 신의를 지키는 의인으로 조조는 천하제패를 위해 자신에게 도움을 준 가족도 후한을 없애기 위해 죽이는 것을 서슴지않는 매정한 인간이하의 모진 성격으로 표사하고 있는 삼국지를 읽다보면 왠지 도원결의 삼형제가 우리편이고 조조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이문열평전으로 삼국지를 읽었을때의 느낌이 딱 그랬었다. 분명 삼국지연의가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설을 읽는 동안 한치의 의심없이 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버리기도 하니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되새기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할 것 같다. 물론 '사실'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관우가 유비의 두 부인을 데리고 적진을 뚫고 나오는 그 유명한 일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그걸 뒤집어 유비가 자기만 살겠다고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다,라는 표현들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한번 더 새겨볼 이야기인 것 같다. 관우의 신성화와 그 위격을 더 높이기 위해 그와 접점이 없는 신의 화타가 관우를 치료했다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그나마 귀엽게(?) 봐줄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삼국지연의의 실질적인 주인공을 꼽으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유비,라고 하지만 사실 그 자신의 돋보임보다는 그를 추대하는 참모들의 지혜와 용기가 더 많이 알려져있기도 하고 그 최고봉에는 제갈량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소설은 유비와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 정통론에 근거한다. 촉한 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충성, 믿음, 의리, 덕양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더러, 중국 대륙을 차지한 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 논리로도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은 한족의 기질과 역사적 소망 그리고 대륙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466)


역사에 정답이 없고 현시대를 투영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결과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 삼국지연의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 거대한 중국대륙을 지배하기 위한 그들의 권력 유지 비법을 알고 싶지는 않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을 통해 권력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중국이 한족지배의 정통성의 당위성을 멈추고 소수민족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허황된 꿈일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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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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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티비를 돌려보다가 중국의 무석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친구의 새로운 발령지가 무석이라고 해서 듣도보도 못하던 동네라고 했었는데 무석의 우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낯익은 지역명에 괜히 반가워 보고 있으려니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륙의 스케일이라는 것이 어마무지하게 커다란 공간을 세트장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 거대한 공간을 그리도 허술하게 만들어놓은 것 역시 좀 놀랍기는 했다. 


삼국지기행은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에 맞게 삼국지의 이야기를 따라 배경이 되는 지역의 풍경과 삼국지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삼국지가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소설임을 알 것이다. 청소년용으로 짧게 요약된 삼국지만 읽었다가 처음으로 전체 이야기를 읽은 것이 또 이문열의 평역 버전이어서 그런지 알고 있던 삼국지의 이야기 - 그러니까 도원결의부터 시작해 품성좋은 유비와 관우, 장비의 영웅호걸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이 유약하고 우유부단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비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조가 천하의 주인공인 이야기가 낯설었지만 또 그 이야기를 읽었기에 허우범 작가의 삼국지기행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들이라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에 없기는 한데 왜 대부분이 유비를 조조보다 더 우위에 놓고 삼국지를 이야기하는지 정확하게는 몰랐었는데 이 책에서는 왕족의 후예, 한족의 정통성을 말하고 싶어서라고 하고 있다. 소설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을 읽다보면 왠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이 떠오를수밖에 없다.


삼국지기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실재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고향에 가서 역사적인 고증을 살펴보기도 하고 동상이나 비석을 찾아 사진을 찍고 동네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사당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중국의 동북아공정으로 우리나라의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느껴서인지 삼국지와 관련한 유적지를 찾지 못하면 그냥 그 상태로 과정을 보여주면 좋은데 가짜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는 것이 역시 중국이네, 하게 된다. 저자가 삼국지 기행을 다녀오고 십년만에 다시 증보판을 내며 다녀왔으니 이런 내용도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관우의 고향, 생가에서 시작해 시간의 흐름대로 삼국지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져 있어 금세 2부까지 읽을 수 있다. 조금은 익숙한 내용들이라 그런지 길안내를 자처한 할아버지가 당당히 담배한갑을 요청했다는 소소한 내용들이 더 기억에 남아서 중국의 현재를 보는 듯 하기도 한 느낌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저자가 이야기하는 삼국지 등장인물들에 대한 여러 관점들을 읽는 재미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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