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장바구니담기


뭔가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고, 행동하는 것보다 관조하는 게 낫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의 문턱에 있는 자신의 천체물리학이 악취와 폭발,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비밀들이 뒤섞인 내 화학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세속적이고 구체적인 또 하나의 도덕률을 생각했는데, 전투를 좋아하는 화학자라면 누구나 그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거의 같은 것(나트륨과 칼륨은 거의 같다. 하지만 나트륨을 썼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같은 것, 유사한 것, '혹은' 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 대용품, 미봉책은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아주 작을지 몰라도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마치 철로의 선로변환기처럼 말이다. 화학자 일의 상당 부분은 바로 그러한 차이에 주의하고, 그것을 제대로 알고서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화학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고 믿곤 하지.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곳에 내가 태어났노라!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인간의 삶은 그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가족이란 마치 거미줄과 같은 것이지. 어느 한 곳을 만져도 다른 곳에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어. 전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야....................
태어난 순간이 시작이 아니라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었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 뿐이지. -86-87쪽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끔찍한 고통에는 쉽게 익숙해지는 법이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종종 잊곤 하지.-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고독은 사람을 기분좋은 감상에 취하게 하고 막연한 불안은 꿈을 말하는 데 꼭 필요한 안주가 된다. 홀로 고독에 시달리며 불안을 달고 살아가는 때는 사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때이며 오히려 다부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때인 것이다. 쉼표도 없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나날, 보기도 지겨운 사계절의 방문. 그것들이 쉬는 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겠지, 하고 짜증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그저 천천히, 영원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작되어야 할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 첫발을 떼지 못하는데 대한 초조감.-238쪽

하지만 그런 괴로움도 일단 무언가가 시작된 다음에 뒤돌아 보면 그토록 낭만적인 것도 없다.
참된 고독은 그저 흔해빠진 생활 속에 존재한다. 진짜 불안은 평범하기만한 일상의 한 귀퉁이에 존재한다. 술집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도 한낱 푸념에 불과한 답답하고 특징 없는 것.
어디를 향해 날아올라야 할지 몰라 활주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비행기보다 착륙해야 할 곳을 알지 못해 허공에서 헤매는 비행기가 훨씬 더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239쪽

이 세계와 나 자신, 그 애매한 간격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한없이 느릿느릿 이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광대처럼 진한 화장을 한 검은 옷의 저승사자가 무표정하게 나타나 어딘가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순간부터 시간은 발소리를 내며 마라톤 주자처럼 달려간다.
그때까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에 마음을 기울이며 천천히 지나갔던 시간은 문득 역회전을 시작한다. 지금에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다. 종말로부터 지금을 향해 시간을 새기며 저벅저벅 다가온다.-239쪽

나 자신의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 거기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올라오는 인생의 카운트 다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현실을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다.그런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ㅌ어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는 이상, 나 자신의 손목시계만으로는 운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239-2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자신이 창피를 당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창피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게 엄니의 예의범절이었다.
...
예절이란 자신을 위한 체면치레가 아니다.
식탁에서라면 요리를 해준 사람에 대해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매너일것이다. 젓가락 쓰는 법 정도의 일로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딱딱거리는 사람은 으레 요리사에게 "나는 돈을 낸 손님이야!" 라는 태도로 거만하게 구는 예의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유독 그런 사람일수록 계산은 남에게 넘겨 버리는 일이 많으니, 그 예의없음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54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ika 2007-01-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전혀 예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장바구니담기


러시아 미술, 이라고 하니까 왠지 너무 낯설었는데
이렇게 이콘이 나오니 너무 친숙해져버렸다.
삼위일체 이콘도 있고, 예수얼굴 이콘도 있고,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도 있다. 아, 물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도 있다.
훗, 역시 러시아 미술이 낯선것만은 아냐;;;

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조형언어로 드리는 기도....;;

이주헌님의 책을 또 오랜만에 읽으려고 하니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괜히 딴지를 걸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학고재, 물론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다.
두툼한 책이 손으로 꾹꾹 눌러도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다. (책을 조심히 읽어도 갈라져버리는 책을 봐왔던 나로서는 얼마나 감동적인지!)

암튼 그보다, 이 그림은 피델리오 부르니의 '놋뱀'이라는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걸 읽기 전부터도 내 눈은 모세를 찾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모세는 어디에?) 광채가 난다는 모세를 찾아보려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바,,, 아핫~!

보이는가.
책이 접히는 부분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서 있는.
모세.

아, 책이 너무 좋아서 나는 이런것에 딴지를 걸 뿐이다. ㅡㅡ;;;

일랴 레핀의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커다란 도판이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운데가 접혀져서 싫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좋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책을 가득 메운 커다란 도판을 보면서 좀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표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결국 딴지를 걸어야지, 라고 했지만 마냥 좋다, 라는 거 아닌가! ;;;;;;;;

특히나 이주헌님의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마냥.. 뿌듯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