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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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이를 먹어가니 쓸데없는 아집만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닌 책표지와 내가 선호하지 않는 책 제목은 이 책을 괜히 싫어하게 했는데, 아뿔싸. 이 책은 역사학자 이덕일의 역사특강이었구나.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덕일이라는 역사가에 대해 뭔가 대단한 것을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나는 그분의 역사책을 읽어본 것이 다였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대한 심각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우리의 식민사관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견고하게 해 주었기에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안그래도 얼마전에 조선의 역사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 책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조선의 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고려말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고려말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없다.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희미한 위화도 회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조선 왕조사의 역사를 배우느라 위대한 구국의 결단처럼 기억된 것이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주입식 사고에서 벗어나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보고 있는 처지인지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먼저 해야할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니며 국사를 배워 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는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시조하나는 잊어버리지도 않고 심심하면 종종 읊고는 하시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하여가'와 '단심가'이다. 정몽주의 정치적인 역량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고려에 대한 충정심을 지키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우직한 충신이라는 생각인지 그의 인품에 대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래서 간혹 나는 얄밉게도 정몽주 역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의 편에 서지 않았을뿐이라고 말을 하면 어머니는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단심가만 열심히 읊조리신다.

 

사실 나 역시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역사의 이야기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정치적 야욕, 그 뒤를 이어 아들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거쳐 왕권을 쟁탈한 권력욕에 대한 주입식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역사는 단순히 하나의 현상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특히 이덕일 선생은 "역사를 해석할 때는 많은 사료를 읽어야 하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그 시대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며 때로는 한두 구절에서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직관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있는 우리의 식민사관과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식민사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새겨들어야할 것이다.

이 책에는 '조선'이라는 국호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고려라는 국호에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왕건의 의지가 들어가 있었다면,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단군 조선을 잇겠다는 정도전의 의지가 들어가 있었"음을(165)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언젠가 중국어를 부전공으로 하고 있다는 언론학부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국어 원어민 교수가 내 준 과제물을 하는데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중국의 역사에 대한 문헌을 해석 요약하고 자신의 관점에 대해 적어야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자조선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문헌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중국어 전공자에게 그 의미를 물어보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다보니 고조선이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중국의 속국처럼 말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중국어 전공자는 중국인 교수의 역사인식에 대해 의심스러워했지만 과제물을 해야하는 학생은 무척 난감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중국은 동북아공정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헛소리정도로만 여기고 넘겨버렸다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부자지간이면서도 최고의 권력을 갖기 위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 전혀 다른 이성계와 이방원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만을 늘어놓아도 한편의 소설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이덕일 선생이 펼쳐놓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수많은 변수와 역사의 흐름에 대해 온갖 가능성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가 없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자꾸만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도 하고 편협한 사고를 넓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계와 이방원뿐만 아니라 정도전과 최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왕조사 중심의 역사인식을 새로운 시각에서, 말하자면 백성의 입장에서 체감하는 정치와 제도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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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람들은 왜 피곤하지 않을까 - 피로 없이 맑게 사는 스웨덴 건강법
박민선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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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쯤 전부터 오른쪽 눈밑이 이상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뿐인데 근육이 지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움직여보려해도 잘 안움직이는 곳인데 말이다. 언젠가 이런 증상은 마그네슘 부족인가 뭐 그렇다고 하던데 아마 피로가 겹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인 듯 하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요즘 만성피로라는 것이 이런건가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무의식중에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는데 스트레스와 피곤이 천근만근 쌓여있구나 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다녀 온 이후로 많은 것을 조심하며 지내는데, 그런 상황이 내게는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는 결과를 만들었고 어머니를 돌보느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아홉시, 열시가 되어버리고 어느새 열시에 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잠들어버리곤 했는데 책을 읽고 싶은 욕심에 열두시쯤 잠에서 깨면 두시까지 책을 읽다 자는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몸이 견뎌내지 못한 것 같다. 수면 부족뿐만 아니라 깊이 잠들지도 못하고 간혹 어머니 숨소리가 이상하면 불안증세가 나타나 숙면하지 못하고.

아마 이렇지 않았다면 이 책을 보면서 그저 그렇게 여유로운 생활방식,이라고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피로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피로를 풀고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의학박사이며 스웨덴에서 생활하며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식습관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며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첫장에서는 스웨덴의 복지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그냥 제도적인 이야기일뿐인가 싶었는데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그들의 생활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번째장에서는 진료를 통한 실제사례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피로가 어떻게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과로나 과식뿐만 아니라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방식 역시 피로를 축적시킬 수 있으며 나이에 따라서도 피로증상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가지 증상과 원인으로 피로가 나타날 수 있어서 만성피로증후군은 더 위험하다고 할수도 있다. 일반적인 피로나 만성 질환에 의한 피로와는 전혀 다른 만성피로증후군은 여러가지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원인이 없고, 증상이 6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 진단을 내리게 되고 아직까지는 완치할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딱히 어느 곳이 어떻게 아프다고 할수는 없지만 늘 피로하다면 몸이 병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나 역시 이 책에 언급되고 있는 여러 증상들을 체크해보면서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건강한 일상을 우리의 일상에 적용시켜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저염식과 자연식뿐만 아니라 자연속에서 햇빛을 받고 운동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행하며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은 그리 특별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기는 한다.

이제는 장수하는 것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나의 일상을 한번 점검해봐야겠다. 건강한 삶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피로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되는 일을 줄이고 운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삶을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건강한 삶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스스로의 노력이고 그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제도의 개선을 위해 실천한다면 우리도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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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롭지만 좋은 날 1
영춘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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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래알처럼 빛나는 나날들 그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20대의 그날들"

이처럼 이 책에는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풋풋한 짝사랑에서부터 치열한 취업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학교 생활과 사회 초년생들이 동감하며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각각의 이야기로 담겨있고 전체적으로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접점이 있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 제목때문이었다. [사사롭지만 좋은 날]

왠지 이 책을 읽으면 별다를 것 없는 주말의 오후, 만나는 친구도 없고 밀린 빨래를 하면서 이제 점심은 뭘 먹나 고민하는 쳇바퀴같은 나의 일상이 즐거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사소하게 행복하다는 마음을 느낄수는 있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두번째 에피소드인 '신발'을 읽은 순간 한참을 책을 덮고 그냥 드러누워버렸다. 많은 생각들이 스치는데 과연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는 학비를 버는 것을 넘어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미친듯이 알바를 해야 하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사치품을 위해 거금의 용돈을 단숨에 써버리기도 한다. 한정판 신발을 구입하는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그런 행동이 친구들에게 부당한 것이 아닌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신발'의 내용이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철없는 자신이 못나보이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가, 고민하는 그에게 선배는 '제일 행복해지는 거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을 해준다.

 

그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에 맞게 자신의 소소한 행복에 가치를 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대학생이었던 옛날에 신문배달을 해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신문보급소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보급소를 찾아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 중 한 명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데 신문 배달은 뭐하러 한대'라는 물음에 왠지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신문 배달은 결국 며칠만에 관두게 되었고,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우리집이라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학비때문에 고민을 해보지는 않았던 것도 떠올랐다. 초등학교때 김이 없어서 소풍날 김밥을 못 싸주고, 생일에 그렇게 받고 싶어했다던 책 한권을 사주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말씀과는 달리 나는 내가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살아본 기억도 없는데, 누군가에게는 나조차도 불편함없이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철없는 학생일 뿐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은 한참 시간이 흘러 지금, 이십대 청춘의 고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거에 집중하는 것'이 분명 가치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나는 그러한 생각에 빠져들어 조금 많이 불편해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할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사사롭지만 좋은 날'에 대한 소소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나의 오늘은 '조용히 차곡차곡, 좋아하고 미워하던 하루하루가 모여서 사사롭지만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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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3 1 - 참이슬처럼 여린 서른한 살의 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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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또 '낢'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은 다른 때보다 더 기대가 되었다. 그것은 '참이슬처럼 여린 서른한 살의 나'라는 부제가 딸려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언제부터 낢의 이야기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었지? 라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냥 후다닥 책을 펼쳤다. 만화가,라고 통으로 쳐서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지만 그래도 카툰작가의 연애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충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오류를 범할 새도 없이 그냥 낢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남의 연애사에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려고 하다가 그냥 낢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진다. 남의 연애이야기만 놀리듯 보려고 했다가 새삼 깨닫는다. 이건 정말 말 그대로 '낢이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참이슬'처럼 여린 서른한 살의 낢은 연애가 시작된 이야기인 달콤 쌉싸름한 어른의 맛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른의 취향, 어른의 기술이라는 장에서 그녀의 생활이야기와 추억을 통해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어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버리게 되는데 낢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어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오래전에 지나쳐 온 서른한 살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왠지 아직도 그만큼의 품격을 지닌 어른이 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 우연찮게 신부님 한 분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제 은퇴를 생각하며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시는 말씀에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신부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안에 신자들에게 말로만 일을 시키는 신부가 아니라 직접 먼저 몸으로 실천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시골 본당에 계시는 그 신부님은 어느 신자분이 장애우들을 위해 써달라는 헌금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시다가 땅을 구입하셨다고 했다. 금세 써버리게 되는 돈으로 후원하는 게 아니라 땅을 구입하여 나무 묘목을 심어 그 나무가 자라게 될 즈음 또 다른 후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자연치유 캠프를 꿈꾸고 계셨다. 이런 계힉은 일이년이 아니라 일이십년의 계획이 세워져있어야 하는 것인데 은퇴를 앞두신 신부님께서는 본인이 묘목을 심는 것으로 시작을 하면 후배 신부님들이 그 성과를 거두어주리라 믿고 계셨다.

낢의 이야기와 신부님의 이야기는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른'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는 내게는 점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자세와 더불어 영혼이 없는 빈말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가 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상대방에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 부모님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들...

내가 이미 오래전에 지나온 서른 한살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낢의 이야기는 심각하고 어렵지 않다.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어 킬킬 거리고 웃다가 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중학생 시절 어른의 세계를 엿보고자 친구들끼리 술까지 사들고 집에 모여들어 '원초적 본능'을 보던 '어른의 세계'에 대한 시도는 시시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문득 낢이 나중에 엄마가 되어 외출 후 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의 아이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야한 영화를 보고 있다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 문득, 이런 것이 진정한 '어른의 세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낢의 이야기가 아직도 긴 사색의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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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음, 안상임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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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었을 때 제목이 왜 파이브일까가 궁금했었다. 그저 단순히 독일 작가의 독일어로 출판된 책인데 설마 파이브가 영어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정말 그 뜻이었다. 아마 독일어로 5가 뭔지는 모르지만, 파이브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의미여서 그냥 단순히 영어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은 제목대로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듯 해보이지만 의외로 깔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지오캐싱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좌표 보는 것은 커녕 동서남북을 구분하고 지도를 살펴보는 것도 잘 하지 못해서 책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는데 지오캐싱을 전혀 모르더라도 책을 읽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오캐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흥미를 끌고 있는 지오캐싱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GPS를 이용한 보물찾기 같은 게임이다. 그리고 이 책 파이브는 그 지오캐싱을 소재로 잘 구성된 소설인 것이다.

 

어느 방목장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뒤로 손이 묶인 채 절벽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듯 보이는 사체의 발바닥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문자가 문신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베아트리체와 플로린 형사는 그 문신이 의미있는 것인지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좌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것이 지오캐싱이라는 게임이며 범인이 남긴 하나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첫번째 좌표에서 캐시를 찾은 두 형사는 캐시에 넣어진 범인의 메모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좌표를 얻기 위해 범인의 수수께끼같은 메시지를 풀기 시작한다. 수십개의 성가대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특정한 이름을 가진 성가단원을 찾고 또 그 가운데에서도 손에 점이 있다는 특징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좌표를 얻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캐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캐시통 안에는 잘린 신체의 부위가 담겨져 있고.....

더구나 범인을 추적하는 와중에 형사 베아트리체에게 범인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는데, 그 (혹은 그녀)는 베아트리체만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것인가? 그리고 왜 그런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사건의 개연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끔찍한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하고, 베아트리체는 자꾸만 '만약에'라는 가정이 떠오르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지우려 노력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죄책감이 그 '만약에'라는 것 아닌가. 요즘의 현실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파이브]가 단지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뿐만 아니라 좀 더 심리적인 사건으로 접근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베아트리체와 범인의 두뇌싸움은 지오캐싱이라는 게임을 통해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긴장과 마침내 보물을 찾게 되는 희열이 맞물리는 느낌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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