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윌슨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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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은 동화작가로 알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당연히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라는 책도 떠올려볼 수 있다. 부끄럽게도 오래전에 한 번 읽었을뿐이라 내용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크 트웨인의 풍자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얼마나 날카롭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은 강하게 남아 있다.

 

"나는 13세기 후의 미국이 떠올랐다. 남부의 '가난한 백인들'은 노예주들에게 늘 무시를 당했으며 수시로 모욕을 당했다.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이 근본적으로는 노예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은 노예제를 지지하고 영속시키자는 모든 정치적인 운동에서 항상 무기력하게 노예주 편을 들었으며, 결국에는 자신들을 타락시키는 그 제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어깨에 총을 메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애처로운 역사와 관련해 위로가 될 만한 사실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가난한 백인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노예 소유주들을 증오했으며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런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적절한 상황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표출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아니,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비록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아서 왕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354)

사실 얼간이 윌슨을 읽기 전에 이미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크 트웨인을 느꼈기 때문에 어쩌면 얼간이 윌슨을 조금 더 깊이있게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간이 윌슨에서의 주인공은 제목에 나와있는 윌슨이 아니라 톰과 록시일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록시겠지. 책의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노예 하녀인 유모 록시가 겉모습으로는 주인집의 아기와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을 눈치채고 아무도 모르게 두 아기의 운명을 뒤바꿔버리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의 노예제가 시행되고 있던 때이다. 이미 다른 책을 통해서도 알고 있겠지만 재산으로 여겨지는 '깜둥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그 사람의 성품과 행위, 심지어 외모와도 전혀 상관없이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아가게 될 뿐이다.

백인과의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깜둥이가 대를 거치면서 겉모습으로는 깜둥이가 아닌 백인과 구별이 힘들 정도로 피부가 하얀 법적인 깜둥이의 이야기는 노예제의 실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모순되는 것들을 찾아보게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 종신형을 선고받지만 단지 노예라는 이유만으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 감옥에 가두지 않는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주인집의 아기와 노예하녀의 아기가 비슷하게 자라나고 있을 때 두 아기의 옷만 바꿔버린다면 겉모습으로는 뒤바뀐 아이의 운명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노예'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이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늘어놓으면서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얼간이 윌슨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끝을 낼때까지는 솔직히 그런 느낌없이 이야기자체에 빠져들었을 뿐이니까.

뒤바뀐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명문가의 자제로 유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협박하며 살아갈 궁리를 하는 록시의 삶은 어떻게 될지, '얼간이'로 조롱받는 윌슨의 지혜는 그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정직하게 복선처럼 깔려있는 것이 이 책을 탐정소설처럼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고, 이미 마크 트웨인의 결정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이야기 형식에는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결말에 이르를수록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용들을 다시 곱씹어 보면, 마크 트웨인이 인용하고 있는 '얼간이 윌슨의 책력'에 담겨있는 글들이 더욱 심오하게 느껴지게 된다. 물론 '당신이 굶주린 개를 구해서 잘 살게 해준다면, 그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다'같은 글처럼 읽는 즉시 동감하며 웃게 되는 그런 글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런 글조차도 한번 더 읽어보면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는가.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전에 씌여진 글이라 정말 재미있는 추리소설, 시대문학처럼 읽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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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테마 소설집 한밤의 산행 + 키스와 바나나 - 전2권 테마 소설집
박성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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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소설집의 '테마'가 무엇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이 책을 집어들었다. 나처럼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낯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테마 소설집에 작품을 실은 작가들의 이름은 무조건 이 책이 맘에 들 것이라는 확신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이 낯설어도 그 작가의 작품제목을 보고는 아, 그 작가! 라고 괜히 혼자 속으로 아는 척 반가운 작가들도 많았다. 이 책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무척 의미가 있었다. 지금 이 시대의 한 획을 긋기 시작하는 한국작가들의 테마 소설집 아닌가.

 

한밤의 산행과 키스와 바나나는 각 13명의 작가가 참여해 전체적으로 26개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테마'가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두 권의 책을 한 권은 사무실에서, 한 권은 집에서 읽기 시작해서 밤낮으로 이야기속에 파묻혀지냈다. 그렇게 읽어나가기 시작하다보니 이건 혹시 '역사'에 관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너무나 잘 아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혹시나 하고 찾아 본 이름은 역시 검색으로 단번에 찾아 낼 수 있는 실존 인물이었고, 때로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과거 고대의 인물부터 근대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무작정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새삼 작가들의 상상력이란, 문학작품이 품고 있는 상상 속 세계의 표현이란 얼마나 위대한가,를 느끼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끄집어 내어 이야기하자면 너무 숨이 찰 것 같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작가들이 자신의 개성대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장르도 다르고 서체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너무나 다르다. 어떤 글은 직설적으로 너무 빤하게 읽히지만 재미있고 어떤 글은 이 비유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눈치채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젤다와 폴록에 관한 글을 먼저 읽기 시작하면서 이건 혹시 예술가와 작가 들, 실존 인물에 대한 테마 소설집인 것일까 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어쩌면 정말 '실존'에만 한정지어서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면 스물여섯편의 작품은 그 무게로 나를 짓눌렀을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연히 TV를 통해 전쟁이 끝나고도 삼십여년간 필리핀의 숲속에서 혼자만의 전투를 벌였던 일본인에 관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는데 정용준의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가 바로 그 이야기를 작품으로 쓴 것이다. 몰랐다면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일까, 생각했을 에피소드였을것이다. 그러니 작품 하나하나가 다시 진중하게 읽히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의 이야기는 단지 하나의 이야기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는 것.

반어적으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같은 경우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 이야기속에 실제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으면서 조롱과 날카로운 풍자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 나는 내 이야기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말의 중심이 자꾸만 흔들거려서 불안해지곤 한다. 그러니 하나둘 끄집어 내기 시작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겠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작품을 먼저 읽고 그 느낌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하였고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맘껏 느낀 후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하면서 역사적 사실속으로 들어가보니 또 색다른 문학 작품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정말 훌륭한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이 너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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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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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치겠다. 머리속으로는 책등에 베이다,를 생각하면서 글로는 자꾸만 '칼등'에 베이다 라고 쓰고 있다. 글을 쓸 때마다 그러고 있으니 생각없이 나오는 습관이려니 하다가 문득 '칼등에 베이는' 느낌이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가끔 책장이나 책표지의 날카로움에 손가락을 베일때가 있다. 종이에 베인 상처는 짧고 강렬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는 그냥 잊게 된다. 그런데 책등에 베인다,라거나 칼등에 베인다, 라는 것을 떠올리면 왠지 뭉툭하게 와서 박히는 묵직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책등에 베여본 적이 있던가?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일수도 있고 오래전에 책 안에 갇혀있는 먹글로만 봤던 이야기들이 나의 생활 이야기로 느껴지는 그런 순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책등에 베이다,라는 것은.

나는 가끔 멍때리며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때가 있다.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책을 구분해내고, 책등을 보면서 저 책의 표지가 어떤 것이었더라 떠올려보다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땐 책을 끄집어내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내용이 가물거리는 책을 꺼내어 다시 훑어보기도 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하지만 시간에 쫓기거나 생각보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책등을 보면서 독서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가끔은 책등을 쳐다보고 있다가 책의 표지까지 살펴보고 그러다가 결국은 책을 펼쳐들기도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책등'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해 파생되는 생각들의 파편을 끌어모아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말 '책등에 베이다'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책은 다 읽었는데, 내가 읽은 내용에 대해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니 무엇을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한데 정확히 책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를 꺼내들게 된 책등의 사진들은 한가득인데 그래서 그 책이 어떻다고? 라는 말은 할수가없다. 책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생각과 느낌의 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것에서 시작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절대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문장들의 인용도 없고, 확연하게 드러나는 감동이나 심지어 독특함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자꾸 이 책을 들춰보게 되는거지?

 

"다시 읽는다. "혀가 수초처럼 흔들렸다. 이빨은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문장이 마음에 걸리면 반복해서 읽는다. "이빨은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이빨을 발음해내는 나의 입과 이빨. 특정한 구절을 여러 차례 읽는 행동은 작가의 호흡을 베끼는 일이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같은 문장을 포갠다. 글이 아주 잠시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글이 되어 귀로 들어온다. 세심한 단어 하나 하나 쌓아 만든 이야기의 집에 들어가 무엇이 되었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떠올려본다"(46)

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김중혁 작가의 표현대로 '이로의 미로 같은 책'에 빠져들고 싶다면,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의 느낌을 공유해보고 싶다면, 물론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이 책에 눈길이 갈뿐이다 하더라도 책을 읽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웅의 뒷면. 멋진 사랑의 뒷면. 환상의 뒷면. 아름다움의 뒷면. 자수의 뒷면. 예쁜 표지의 뒷면. 나는 모든 것의 뒷면에 산다. 뒤엉킨 뒷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실수가 반복되는 생활과 드라마답지 않아서 삶다운 삶에 대해 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싶다."(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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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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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읽는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난다, 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 그냥 그 느낌을 간직하고 나중에라도 선물할 기회가 생기면 기억해 뒀다가 선물하고 싶은 책 목록에 올리곤 하는데 왠지 이 책만큼은 지금 바로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 줬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는데 참 좋더라,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은 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그저 간단히 서평을 올리는 것으로 한 권의 책을 정리해버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는데 '마술 라디오'를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책을 통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 느낌을 전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책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 좋은 이야기들을 내가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나만의 생각에 빠져 왜곡된 세상을 보여줘버리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더구나 읽은 내용들 하나하나가 다 좋았는데, 나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받은 감동에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아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충분히 감동적이고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은 전해주고 있다는 믿음도 갖고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편협한 세상에 빠져있으면서 나 혼자만 살아아고 있는 나뿐인 세상, 나뿐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실제 방송에서는 1,2분정도만 나가게 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너시간을 이야기 나눈다고 했다. 인터뷰는 했지만 방송을 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고, 방송 후에 알게 된 뒷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모아 편집하여 방송이 아닌 책으로 탄생한 것이 마술라디오이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기울이다보면 너무나도 특별하고 배우고 본받을 것이 많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 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 모두가 왜 내게 이런 고통의 시간, 힘겨운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고, 강인하게 견디어내면서 지낸다는 것이다. 시장의 야채장수 아줌마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엄마의 일을 이어서 하게 되었고 시장안에서 계산적이고 억척같은 모습이 부정적으로 인식된 엄마의 이미지가 너무 속이 상해 그 이미지를 바꿔놓기 위해 더 열심히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이 내게는 참 많은 반성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양철지붕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다.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이라는 표현처럼 세상 모두가 수많은 실밥을 담은 삶을 살고 있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불행만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굳건히 견디어 낸 자신을 대견해하며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마술라디오는 정말 마술라디오처럼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고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해 주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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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오키나와 여행 - 오키나와에서 꼭 가보고 싶은 특별한 공간 45곳 새로운 여행 시리즈
세소코 마사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꿈의지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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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자마자 곧바로 제주도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아니, 평소에도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많은 부분에서 닮은 꼴이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제주이민이라는 우리의 현실과도 묘하게 맞물리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사실 여유있는 삶을 영유하고 싶다면 굳이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가능할텐데 왜 유독 제주도인 것일까?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육지의 시골에는 농촌생활이라는 이미지가 큰 반면 제주도는 농촌이라기보다는 휴양과 여유로움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진다. 제주에 살다보면 산을 넘어 가는 것이 한시간 거리일 뿐인데도 엄청난 시간과 거리를 가는 것 처럼 느껴질만큼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고 빡빡하게 출퇴근하며 힘들게 지낸다는 것은 잊고 살게 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을 보면서 또 하나의 이유가 생각났다. 일상이면서도 여행처럼 지낼 수 있는 곳, 새로운 곳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친근함을 가질 수 있는 곳,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은 오키나와의 특별한 공간 45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여행 안내서이다. 관광여행지나 풍경이 좋은 곳, 역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방이나 잡화점, 까페, 빵집 등 오키나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꾸려가고 있는 작은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제주의 여행 책자들도 언젠가부터 조금씩 자연풍광과 역사 이야기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중에 이 곳에 가서 꼭 먹어봐야겠다거나 구경삼아 지나가는 길에 꼭 들어가보고 싶은 곳들이 생겨나는데 언젠가 오키나와에 가게 된다면 이 가게에는 꼭 들려서 이 맛있는 빵을 먹고 싶어, 이 곳에서 파는 친환경 채소와 과일을 사서 현지인처럼 일상을 지내다 오고 싶어 라는 미래의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워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소개하고 있는 작은 가게들의 아기자기함과 이쁜 모습이 찍힌 사진에만 눈길이 가면서 오키나와의 자연 풍경, 특히 언뜻보이는 바다의 풍경과 파란 하늘이 한데 어우려져 밝고 이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니 뭔가 인상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뭘까, 하다가 자신의 가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의 사진을 보니 그때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은 가게들의 주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환한 미소를 띈 표정이었다. 아, 이 책은 정말 오키나와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비밀의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구나 라는 말에 새삼 동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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