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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아니, 한번쯤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어릴적에 내 방, 내 책상, 내 책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형제들이 학업으로 인해 집을 떠나있게 되면서 드디어 내 방을 갖게 되었고 물려받은 책꽂이 하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후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책에 대한 열망으로 월급지출의 반 이상을 책값으로 쓰기도 했던 것 같다. 책을 쌓아놓느라 엉망이 되어가는 내 방꼴을 못견딘 부모님이 책장 들여놓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그렇게 하나씩 늘어난 책장이 지금은 네개나 된다. 그리고 그것도 금세 채워져버리고 지금은 책장 앞 바닥에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렇게 쌓여있는 책만 헤아려도 이백여권은 쉽게 넘긴다.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문득 내가 쌓아놓기만 한 책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들이며 그것을 쌓아놓은 창고 하나를 마련해둔 것이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저자의 서재는 수경실 修綆室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이어 지인들에게 지어 준 서재의 이름을 언급하는데 어쩌면 그리도 탐나는 이름들인지. 그러니까 내가 마구 쌓아놓은 책들이 담겨있는 창고같은 방과는 달리 이들의 서재는 이름에서부터 그 안에 담겨있는 책과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한지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차이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책에 대한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덕무의 팔분당, 박지원의 연암산방, 정약용의 여유당, 김정희의 보담재와 완당...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물론 그 외에도 정조의 홍재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득공, 박제가, 초의, 홍대용, 황상...조선시대의 한 획을 긋는 지식인들의 서재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성향에 맞게 그들이 꾸미는 서재의 모습도 다양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서책들의 모양새도 다양하다. 지금 우리들이 각자의 성향과 취향에 맞게 책을 꽂아두거나 책장을 꾸며놓는 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남다른 것은 지금의 나처럼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서재안에 담겨있는 것이 곧 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재 이름에 담긴 의미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북학과 연행의 시대였던 19세기 문화를 엿보고자 했으며 변화의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듯이 이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지금 창고가 되어버린 공간에 담겨있는 사재기한 책들에 대해 미안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책을 빌려줬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웃기도 했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 책들이 읽히지 않고 저렇게 묵혀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책에게 못할짓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찌르고 있다. 내 삶이 담겨있지 않는다면,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없다면 수많은 책을 가지고 있을수록 부끄러움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집'이란 뜻이다. ... 그의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좌우로는 도서와 제자백가의 책들이 수북하고, 벽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즉, 그 조그만 방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집은 작지만 사실 그 작은 방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으므로 세상에서 제일 큰 집이라는 설명이었다"(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