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타이완을 만났다 - 삶이 깊어지는 이지상의 인문여행기
이지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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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분들, 낯선 땅을 헤쳐가는 여행이 두렵거나 귀찮아진 분들이라면 타이완에 한번 가 보세요. 거창한 것 기대하지 말고 이웃집 마실 가듯 가 보세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 보면 문득 '이게 행복이구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단, 겸손하고 느긋한 여행자가 되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첫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 설레이던 마음을 잊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작가가 되어 떠돌던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찾은 타이완, 그것도 함께 살며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음을 잡지 못하던 저자가 다시 찾은 타이완의 모습은 정말 그의 말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타이완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특별함없이 그저 드라마 속 풍경이 센과치히로에서 봤던 그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서 그곳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그랬을뿐,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을 찾는다고 했지만 솔직히 타이완에 대한 여러 책을 읽어봐도 딱히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은근슬쩍 가까운 여행지니 홍콩이나 타이완에 가보자 라는 말을 꺼내면 다들 그곳에 가면 뭐 볼거리가 있다고 라는 말로 일축해버린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곳은 그저 우리와 비슷한 대도시의 풍경뿐이라는 인식이 강한가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 대도시 서울, 그곳에는 우리가 볼거리가 전혀 없는가? 나는 먼 지방 섬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서울구경도 무지 재미있게 느껴지고 먹을거리도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타이완은 구석구석을 찾아가며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특히 그저 감성여행에세이를 쓰지 않는 작가의 필력을 믿으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아무런 인식이 없었던 타이완에 대해, 그들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중국의 일부라는 생각을 벗어나게 해 준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고, 비슷한 거리 풍경을 바라보고 뭔가 특별한 것이 없어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멋진 문화가 있고 풍성한 먹을거리와 자신들의 찬란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 타이완 원주민들의 언어와 그들의 혈통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겨울내내 바쁘게 지내다가 이제 조금 여유롭게 일상업무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친구가 오사카에 살고 있어서 어머니 모시고 한번 다녀오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를 모시고는 여행도 관광도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뭐하러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음달에 오사카로 떠날 결심이 굳혀졌다.

"거창한 것 기대하지 말고 이웃집 마실 가듯 가 보세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 보면 문득 '이게 행복이구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함께 잘 먹고 잘 쉬다 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기회가 된다면 그때는 어머니와 함께 이 책을 들고 타이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슬며시 미소를 짓게되니 좋다하지 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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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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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징비록이 대세이긴 한가보다. 책을 찾아보니 수없이 많은 책들이 검색된다. 징비록의 저자는 유성룡 한 사람이겠지만 그가 쓴 글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해설을 넣고 엮었는지에 따라 수많은 책이 나오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징비록의 원문을 볼 능력은 되지 않고 그렇다고 수많은 책을 살펴보고 어떤 책이 잘 씌였는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이 책이 그 많은 징비록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라는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별다른 군더더기 없이 유성룡 개인의 기록을 풀어놓고 있다는 느낌과 글이 어렵지 않게 잘 읽히고 있어서 나는 알마출판사의 징비록이 마음에 든다. 처음엔 책에 삽입된 그림이 좀 맘에 안들었지만 내용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가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과하지 않게 딱 그만큼의 적절함을 유지하고 있구나 싶어져 책의 편집도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 책을 읽은 겉보기의 느낌이라면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해야하는 불편함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징비록은 유성룡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라는 역사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그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그러니까 지난 과거를 돌이켜 되새기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똑같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승전이라거나 전쟁에 임한 광해군의 역사적인 재평가 같은 이야기로 임진왜란의 역사적인 사건만을 인식한다거나 우연히 알게 된 일본에 있다는 조선인들의 코무덤을 통해 임진왜란의 참혹함을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길게,얼마나 막대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징비록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이 참혹한 전쟁이 대체 몇년간이나 지속된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7년동안 황폐해지고 무참히 유린된 우리의 국토와 백성의 삶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장군이면서도 전쟁터를 피해가고, 타인의 공을 가로채는 욕심을 부리며 시기 질투를 일삼고, 백성의 안전을 지켜야 할 장수가 오히려 먼저 목숨을 구하며 도망을 가버리고 백성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농사를 지을 씨앗조차 풀어놓지 않고 창고에 쌓아두는 관료주의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싶다.

그러니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마음도 비참했겠지만 그때의 참혹함을 떠올리고 과거의 역사가 답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는 나의 마음도 비참하지 않을수가 없다. 

임진왜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징비록을 읽는다면 훨씬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지금 직시하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아쉬움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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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 공부 - 서양화편 How to Study 2
야마다 고로 지음, 장윤정 옮김 / 컬처그라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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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 공부,라고 했는데 과연 이 책의 원제는 무엇일까가 궁금해졌다. 한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때가 있었는데 그것을 떠올리며 지은 번역서의 책 제목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더 궁금해지고 있다.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조금은 가볍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마음으로 읽으면 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알면 조금 더 그림을 요모조모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굳이 모른다고 해서 그림 감상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미 이 책에 실려있는 대부분의 그림을 다른 책을 통해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움 그 이상도 아닌 딱 그만큼의 관심을 끌고 있을 뿐인 듯 하다. 더구나 피카소의 추상화에 대해서는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피카소의 많은 여성관계를 그리며 그 여성들의 영향으로 시기별 그의 그림이 변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어서, 아무리 흥미를 끌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단편적인 설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림에 관한 한 일본인 저자의 책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굳히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이지만 그래도 눈에 익숙한 많은 그림들을 책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좋기는 했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의 초현실주의까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간략하게나마 훑어볼 수 있게 요약 설명을 해주고 각 시대별 대표적인 화가의 그림을 놓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그리 무겁지 않게 그림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편히 읽힐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화가의 이력서에 대한 설명은 연표로 된 참고 자료 정도로 생각하면 되고 가장 재미있는 내용은 어쩌면 저자의 '덧붙이는 한마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덧붙임은 화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그림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화가의 삶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을 풀어놓은 것인데 가끔은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일뿐이다. 예를 들자면 루벤스에 대해서는 그가 묘사하는 여성의 육체는 지나치게 풍만하게 그려 뱃살이 3단으로 접히고 피하지방으로 울퉁불퉁한 모습까지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덧붙이는 한마디에서는 "그림도 잘 그리는데다 인간관계까지 원만해서 인기를 몰고 다녔다. 너무 바쁜 나머지 건강이 염려될 정도였는데, 기름진 것은 부디 작품뿐이었기를'(75) 이라 말하고 있다. 이런 느낌을 감안해서 이 책을 펼친다면 그냥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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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5 - 공포의 학교, 개정판
레모니 스니켓 지음, 홍연미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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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섯번째의 위험한 대결까지 왔다.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아도 지금쯤은 당연하게 보들레어 삼남매에게 닥쳐 올 불행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질뿐이지 불행한 고아 삼남매에게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같은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늘 새롭게 느껴지는 보들레어 삼남매의 모험과 같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한가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번 이야기는 말만 들어도 경직되는 '장엄근엄 사립 기숙학교'에서 겪게되는 이야기이다. 여전히 삼남매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뿐이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지켜주고 악당 울라프 백작은 접근할수도 없게 하겠다는 말을 늘어놓지만 그들이 믿을 것은 삼남매 자신들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보들레어 삼남매는 친구를 만난다. 어떤 어려움과 불행이 닥쳐도 자신을 위로해주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하며 도움을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원래 세쌍둥이였지만 사고로 막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둘만 남게 된 쿼그마이어의 쌍둥이가 보들레어가의 삼남매와 친구가 되어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막중한 역할을 해 낸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쌍둥이는 위험에 처하게 되어버리는데...

내게는 항상 많은 친구가 없어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결코 친구를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기도 했고 나 역시 그러한 친구가 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공포의 학교'에서 되새겨보게 된 내용은 나의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장엄근엄 사립기숙학교의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고 삼남매 각자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내는 모습은 어른인 나 역시 본받을만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불행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보들레어 아이들의 삶에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행복한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아이들은 알고 있다는 것. 나였다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닥쳐 올 불행과 더욱 악화되는 상황에 마음이 안좋았을텐데 보들레어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상 다른 이야기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보게 하는 위험한 대결은 그래서 더욱 더 기대된다.

 

"보들레어 아이들과 쿼그마이어 쌍둥이는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는 안도감으로 아늑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여기서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는 안도감'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데, 한마디로 모두 행복해했다는 뜻이다. 사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도 모르는 남자가 줄기차게 울려 대는, 오싹하리만큼 끔찍한 소나타를 들으면서 행복을 느끼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분명히 뭔가 흉측한 계략을 꾸미고있을 악당이 코앞에 앉아 있는 넌더리 나는 기숙 학교에서라면 더 그렇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보들레어 아이들의 삶에 좀처럼 찾아오기 힘들었고, 세 아이는 그 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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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 - 현대의학이 가로챈 행복하게 죽을 권리
브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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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을 굳이 일상에서 떠올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 어머니가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니 당신의 일을 치르게 된다면 수의는 어느곳에 있고 또 중요한 서류는... 하, 그러고보니 그런 말씀을 하실때마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제대로 새겨듣지를 않았구나. 이제는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다친 팔은 뼈가 붙지 않아서 아픈 것으로만 알았는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고 나서야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듣고 두어달쯤 전에 입원을 하셨었다. 총체적으로 나이도 많고, 장기의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다 심장과 신장의 기능은 특히 저하된 상태고 빈혈에 저혈압이라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입원 후 검사결과들을 보면서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외과로 입원했다가 한동안 내과로 전과하여 내과에서 전담을 했는데 담당 선생님들은 계속 가족들에게 수술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2년 전 수술 후 중환자실을 거치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식사를 못해 위험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말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통증이 지속되며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느니 수술실에서 죽는 것이 낫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팔의 골수염은 항생제 치료로 염증 수치가 많이 낮아졌고, 그것 하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위험의 수술을 강행하는 것은 누가 보나 이득이 없는데 어머니가 계속 고집을 부리신 이유는 오직 하나, 위험한 수술이라고 할수록 더 빨리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 전날 밤, 자신의 부모님이라면 수술을 말릴 것이라는 담당의가 결국은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수술의 위험성과 수술 후 중환자실로 가게 될 것이고, 수술도중이든 중환자실에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의학적으로 필요한 처치는 가족과 환자의 동의없이 시행할 것이라는 요지의 설명을 계속 해 나갔다. 그리고 예상되는 합병증과 징후들...

어머니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의사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고 어머니의 의식 여부와 상관없이 육체만을 살려놓기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수술을 말렸다.

우리는 누구나 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수술을 말려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쓸쓸하고 아픈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우리와 함께 집에서 생활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자식들의 만류에 결국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하셨고, 나름 '죽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준비하셨기에 그 공포와 긴장, 어쩌면 한편으로 느끼게 된 안도감과 앞으로 닥치게 될 고통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마구 뒤엉키며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며칠만에 깊은 수면을 취하고 항생제 치료를 끝내고 지난 주 퇴원하셨다.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좀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며 마음이 심란해졌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뿐 아니라 실수를 하기도 하는 의사들의 진단, 어쩌면 운이라는 것이 따르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누군가가 재수없게 죽음을 재촉하기도 하는 문제들....

사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근처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그곳에서 여러번의 수술을 했는데, 우리는 적어도 그 많은 수술을 다 했어야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담당의가 수술을 했는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 원장이 직접 재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하는것인데, 치료 도중에 병원을 옮기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기에 그대로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이 결국 상태를 악화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아프다고 하는데, 왜 수술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어머니가 재수술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저 환자가 원하면 해야한다는 식의 대답만 하던 병원을 떠나 다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했을 때 정밀검사를 해 보고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니 통증이 한결 완화된 결과를 보니 더욱더 의사의 능력과 병원의 시스템과 환자의 '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라일리 선생님과 같은 어머니의 전담 주치의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지난 몇년간의 진료기록을 살펴보고 정기적으로 내과 진료를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계시다. 그분은 어머니에게 되도록이면 약처방을 안받는 것이 좋다고 하시는데, 짠음식과 밀가루 음식이 안좋기는 하지만 어머니 연세에는 기력회복이 더 중요하다며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가리지말고 드시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다른 과의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오면 그것을 살펴봐주시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는 그것이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처방된 약이 어떤 약인지를 아는 의사선생님이 환자의 종합적인 상태를 알고 있다면 다른 과의 약처방을 보류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 더 확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어머니 귀에 딱지가 생기며 낫지를 않아 이비인후과에 들렸는데 귀를 한번 쓱 보더니 두세번 더 와야 된다며 약처방을 하길래, 어머니가 내과에 다니시며 드시는 약이 있는데 약처방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확인을 했고 이비인후과 의사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상관없다며 주사처방까지 내렸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몸이 이상하다며 계속 누워계셨는데, 저녁에는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고 떨리며 식은땀까지 흘려 정신없이 응급실로 갔다. 어머니가 드시는 약, 그전의 진료 내역, 검사결과를 다 살펴보고 필요한 검사를 다시 했는데 그곳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평소와 다른 것은 그날 이비인후과에서의 주사 처방 뿐이었다는 말에 그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는 대답뿐이었다. 물론 그것이 원인이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치명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점점 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인체의 장기를 따로 떼어놓고 각각의 기능에 대해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의학적인 진단과 처방을 단편적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더욱 더 어머니의 내과 선생님에게 감사하게 된다. 사실 그 전에도 내과는 정기적으로 다녔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약처방을 하고 말았던 의사와는 달리 지금의 내과 선생님은 처방된 약의 역할과 그에 따른 징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어머니가 자꾸 다른 곳이 아프다며 이야기를 늘어놔도 잘 들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보호자로 따라가는 내게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며 어머니 역시 언젠가는 그러하겠지만 그 시간이 오기까지 되도록이면 고통없이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니 더욱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자신의 체험은 표면적인 것일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쓴 라일리 선생님의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나의 노후를 의료시스템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누구나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있는 것임을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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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오소리 2015-02-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도마코토의 의사에게살해당하지않는47가지방법이란 책이 떠오르네요. 웰다잉이란 개념을거기서 처음접하고 굉장히 놀란기억이..

chika 2015-02-19 13:09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책은 제가 읽어보지 못했네요. 웰다잉이라는 것도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호스피스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의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분도 암이었는데 말기에 발견되어서... 제가 본 모습은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마지막 몇달은 호스피스에서 지내다 돌아가셨습니다.
현대의학을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무조건 수용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노환에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중환자실에서 더욱 악화되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다가 안되겠다 싶은 생각에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각서까지 쓰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는데 몇달 후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시고 몇년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하면서 기계와 수치에만 의존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제 어머니도 중환자실에서 섬망을 보고 며칠동안 헛소리를 하셔서 당황했었는데, 그런 환자를 중환자실에 붙잡아두는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다행히 어머니는 괜찮아지셨는데, 중환자실의 중압감을 이겨내려고 혼자 큰소리로 노래도 불렀다고 하고 여행갔던 자랑도 하고 그랬다더라고요. 간호사들이 할머니 참 대단하시더라며 얘기해줘서 알았지요.
아무튼 이 책은 우리뿐 아니라 의사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의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