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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 - 현대의학이 가로챈 행복하게 죽을 권리
브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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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을 굳이 일상에서 떠올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 어머니가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니 당신의 일을 치르게 된다면 수의는 어느곳에 있고 또 중요한 서류는... 하, 그러고보니 그런 말씀을 하실때마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제대로 새겨듣지를 않았구나. 이제는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다친 팔은 뼈가 붙지 않아서 아픈 것으로만 알았는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고 나서야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듣고 두어달쯤 전에 입원을 하셨었다. 총체적으로 나이도 많고, 장기의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다 심장과 신장의 기능은 특히 저하된 상태고 빈혈에 저혈압이라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입원 후 검사결과들을 보면서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외과로 입원했다가 한동안 내과로 전과하여 내과에서 전담을 했는데 담당 선생님들은 계속 가족들에게 수술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2년 전 수술 후 중환자실을 거치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식사를 못해 위험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말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통증이 지속되며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느니 수술실에서 죽는 것이 낫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팔의 골수염은 항생제 치료로 염증 수치가 많이 낮아졌고, 그것 하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위험의 수술을 강행하는 것은 누가 보나 이득이 없는데 어머니가 계속 고집을 부리신 이유는 오직 하나, 위험한 수술이라고 할수록 더 빨리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 전날 밤, 자신의 부모님이라면 수술을 말릴 것이라는 담당의가 결국은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수술의 위험성과 수술 후 중환자실로 가게 될 것이고, 수술도중이든 중환자실에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의학적으로 필요한 처치는 가족과 환자의 동의없이 시행할 것이라는 요지의 설명을 계속 해 나갔다. 그리고 예상되는 합병증과 징후들...
어머니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의사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고 어머니의 의식 여부와 상관없이 육체만을 살려놓기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수술을 말렸다.
우리는 누구나 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수술을 말려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쓸쓸하고 아픈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우리와 함께 집에서 생활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자식들의 만류에 결국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하셨고, 나름 '죽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준비하셨기에 그 공포와 긴장, 어쩌면 한편으로 느끼게 된 안도감과 앞으로 닥치게 될 고통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마구 뒤엉키며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며칠만에 깊은 수면을 취하고 항생제 치료를 끝내고 지난 주 퇴원하셨다.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좀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며 마음이 심란해졌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뿐 아니라 실수를 하기도 하는 의사들의 진단, 어쩌면 운이라는 것이 따르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누군가가 재수없게 죽음을 재촉하기도 하는 문제들....
사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근처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그곳에서 여러번의 수술을 했는데, 우리는 적어도 그 많은 수술을 다 했어야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담당의가 수술을 했는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 원장이 직접 재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하는것인데, 치료 도중에 병원을 옮기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기에 그대로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이 결국 상태를 악화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아프다고 하는데, 왜 수술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어머니가 재수술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저 환자가 원하면 해야한다는 식의 대답만 하던 병원을 떠나 다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했을 때 정밀검사를 해 보고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니 통증이 한결 완화된 결과를 보니 더욱더 의사의 능력과 병원의 시스템과 환자의 '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라일리 선생님과 같은 어머니의 전담 주치의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지난 몇년간의 진료기록을 살펴보고 정기적으로 내과 진료를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계시다. 그분은 어머니에게 되도록이면 약처방을 안받는 것이 좋다고 하시는데, 짠음식과 밀가루 음식이 안좋기는 하지만 어머니 연세에는 기력회복이 더 중요하다며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가리지말고 드시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다른 과의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오면 그것을 살펴봐주시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는 그것이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처방된 약이 어떤 약인지를 아는 의사선생님이 환자의 종합적인 상태를 알고 있다면 다른 과의 약처방을 보류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 더 확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어머니 귀에 딱지가 생기며 낫지를 않아 이비인후과에 들렸는데 귀를 한번 쓱 보더니 두세번 더 와야 된다며 약처방을 하길래, 어머니가 내과에 다니시며 드시는 약이 있는데 약처방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확인을 했고 이비인후과 의사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상관없다며 주사처방까지 내렸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몸이 이상하다며 계속 누워계셨는데, 저녁에는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고 떨리며 식은땀까지 흘려 정신없이 응급실로 갔다. 어머니가 드시는 약, 그전의 진료 내역, 검사결과를 다 살펴보고 필요한 검사를 다시 했는데 그곳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평소와 다른 것은 그날 이비인후과에서의 주사 처방 뿐이었다는 말에 그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는 대답뿐이었다. 물론 그것이 원인이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치명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점점 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인체의 장기를 따로 떼어놓고 각각의 기능에 대해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의학적인 진단과 처방을 단편적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더욱 더 어머니의 내과 선생님에게 감사하게 된다. 사실 그 전에도 내과는 정기적으로 다녔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약처방을 하고 말았던 의사와는 달리 지금의 내과 선생님은 처방된 약의 역할과 그에 따른 징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어머니가 자꾸 다른 곳이 아프다며 이야기를 늘어놔도 잘 들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보호자로 따라가는 내게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며 어머니 역시 언젠가는 그러하겠지만 그 시간이 오기까지 되도록이면 고통없이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니 더욱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자신의 체험은 표면적인 것일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쓴 라일리 선생님의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나의 노후를 의료시스템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누구나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있는 것임을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