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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평점 :
시 읽어주는 예수,라는 제목에서부터 나는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 읽어주는 예수가 서로 상충하는 다른 느낌이라면 어쩌나 싶은 괜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차를 훑어보는 순간, 아주 단순하게 말 그대로 '시 읽어주는' 예수라고 생각하고 그런 단순함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내가 얼마나 부끄러워지던지.
이 책에는 내가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성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에서부터 윤동주의 십자가도 실려있고 작년 처음 읽고 손으로 옮겨적기까지 했던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도 실려있다. 아니, 이 책은 단지 그 시를 옮겨 적은 것뿐만이 아니라 그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게 하는 에세이다.
시를 읽고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인식해야 하고... 그런 평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시적 감성으로 시를 읽은 감상과 세상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털어놓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전투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인간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느끼게 된다. 신앙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자가 읽어주는 시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다가선다는 것의 의미가 또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제주강정마을에는 군사기지가 한참 공사중이고 지금 75%정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신부님께서 강정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가 단지 군사기지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영성적인 접근을 하고 그 마을 주민들을 이해하며 도와줘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괸당문화'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대문도 없이 서로 한 형제처럼 지내던 마을 주민들이 서로 의견이 갈라져 싸우고 생활의 터전이었던 곳이 군시설로 수용되며 내쫓기게 되고 몇세기를 이어온 구럼비가 파괴되고 산호군락지가 파괴되면서 자연생태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제도종교가 잃어버린 영성의 깊이를 회복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 성소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당신이 곧 우주의한 송이 꽃'임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시 읽어주는 예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더 깊이있게 다가오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퍽퍽해지고 세상이 왜 이러는가 싶을 때,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싶을 때, 아니 그 어떤 아무런 이유가 없다하더라도 날마다 한 편씩 시 읽어주는 예수를 가까이 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너무 거창한가? 내가 달라지고 영성의 깊이로 세상을 대한다면 분명 세상은 변하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