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거미와

 

 

 

 

야밤 핸드폰에, 내 눈에 불을 켰다

모기는 환청 환각이었나 보이는 건

엉성한 거미줄 뿐 섬약한 거미들뿐 

얼룩덜룩 검푸른 곰팡이 품은 벽지

천정에 거하게도 쳐놨구나, 이놈들!

 

거미는 생김새와는 달리 곤충이 아니다

무릇, 본질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

머리-가슴-배가 아니라 머리가슴-배

두 부분, 다리도 무려 네쌍, 눈은 

아, 본질은 역시 외모로 판단해야 한다

거미의 생김새를 저 조화로운 곤충의

범주는 허용하지 않는다, 어디 감히!

 

거미를 빙의한 아라크네는 세상의 틀을 짜다

너무 잘 짜서 아테나한테 혼쭐났다, 알다시피 

누구나 계획 하나쯤은 있지, 요 잔망스러운 것,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 옛다, 천벌!

 

매미도 모기도, 곤충은 모두 잠든 거룩한 밤 

징그러운 팔발이 육눈이 이절 거미만

잠 못 이루네, 가엾어라! 야밤에 파리채로

거미 잡는 신세도 만만찮거니와 -

야밤은 차라리 모기와 함께

 

 

*

 

 

구스타브 도레, <아나크네>. 판화. (<신곡>의 프랑스판 삽화라고 함.) 인간의 상상력이 이런 것도 만들어내다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의 첫

 

 

 

 

2020년 5월 22일이었다

라는 자의식이 생겼다

 

음습한 강의실에서 막대기처럼 깡마른 노처녀 교수의 나보코프 강의를 들으며 

조만간 남자친구 만나러 갈 생각에 군침이 돌고 배속이 꼬르륵 신음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벌렁 입술이 달싹달싹 손가락발가락이 꼼지락  

수업종 치자마자 다리에 스프링 달린 산토끼처럼 휙 튕겨나가던 스물 셋 -

 

그 시절처럼 새 낱말, 새 사물, 새 얘기에 온 몸이 달떠   

그 시절처럼 살고, 먹고 자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싶다

 

2020년 5월 22일 대학 시절 이후 나의 첫

시는 - 직관적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심장에 경배

 

 

 

 

추측컨대,

1974년 경상남도 거창군 모처에서 어느 봄날 생겨났고

관찰과 측정 결과, 

45년 7개월 7일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뛰었고  

예상컨대,

평균 수명과 기대 여명에 따라 35년 이상은 계속 뛰어야 할

내 심장에 경배!

 

나는 이 세상에 없으면 안 되니까

내 염통은 너무나 소중해

허파에 바람 들면 큰일나듯

행여 털이라도 나면 큰일나

그러게, 분류와 의사소통이 중요해 

 

 

2020. 8. 12.

 

 

*

초3-1 과학: 1단원 <과학자는 어떻게 탐구할까요?> 관찰, 측정, 예상 / 분류, 추리, 의사소통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08-11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1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음 생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제 자랑 같아 조금 겸연쩍지만요

 

전깃불도 없는 산골, 술 좋아하는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났어요

갖은 구박 멸시 산전수전 끝에 늦깎이 초등교사가 됐어요

오래 사귄 애인과 결혼했는데 그 집이 제대로 알부자더라고요

어쩜, 미친 척 인생 너무 잘 풀리는 거 있죠?

서른 넘어 아들딸 두 살 터울로 잘 낳고

후줄근한 동네에 대궐 같은 집 짓고 살며  

벤츠 몰고 40km 특수학교로 출퇴근해요

 

보다시피

 

저, 이번 생은 완전히 흥했답니다

 

그렇기에 

 

다음 생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생이란 한 번이면 족하니까, 저는

다음 생이라면 극구 사양하겠어요

 

 

 

*

 

그나마 방학이라 문자 정도는 주고받을 여유가 있는, 두 아이 키우는 워킹맘 동생과의 대화 중.

 

나: "언니는 이번 생은 망했다 / 애 건강 말고는 암것도 바라면 안 된다"

(여)동생: "나는 다음 생애는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ㅋ / 모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사는 게 버겁다"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캡쳐해서 소설에 쓰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참고로, 내 동생은 집안 얘기 쓰는 걸 싫어하지만, 나는 그게 밑천이라...)

그러고서 동생이 추천한 사람-책.

 

 

 

 

 

 

 

 

 

 

 

 

 

 

그러고 보니 불교 관련 책을 (이런 식의 에세이 포함) 안 읽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 언제는 읽었던가? 이럴 때 쓰라고 우리에겐 법정의 <무소유>가 있는데, 아시다시피 저자의 유언에 따라 모조리 절판되었다. 최근에 띄엄띄엄 다시 읽으면서 이성복 시의 좋음^^;을 새삼 느끼는데, 청년 이성복이 기독교적 '악-고통'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중년(노년) 이성복은 불교적 '고통-고해'에 천착한 듯싶다. 결국 그게 그거인 듯. 퇴직하신 다음에는 경기도 어딘가에 작업실 같은 것 얻어놓고 사시는 듯하다. 뜬금없지만, 건강하시길!^^;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으며자는사람 2020-08-1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막 썼는데 시처럼 되어버린 건가...ㅎ

푸른괭이 2020-08-1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주 있는 시인이라면 그럴 테고요^^; 저는 무척 애쓰는 중입니다. 뭔가 너무 쓰고 싶은데 새 소설이 써질 기미가 안 보인달까 엄두가 안 난달까 그래서요

걸으며자는사람 2020-08-10 23:44   좋아요 0 | URL
응원합니다!
 

 

올 상반기에 (하기 싫은 숙제 하듯 휘리릭~) 쓴 논문은 그래도 무사 통과되어(즉, 작년에 쓴 논문은 '수정후재심'(사실상 게재불가)였다는ㅠ 정말 (개)고생하고 애쓴 논문이었는데ㅋ) 다음 논문을 고민해 보던 차, 메모를 남겨본다. SF의 고전, 그 다음은 생명창조(로봇, AI 등). 결국 두 개가 한 뿌리에 나온 것.

 

 

 

 

 

 

 

 

 

 

 

 

 

 

이 분야의 고전은, 몇 번 언급한 것 같은데, <프-인>. 나의 저 책에서는 말미에 불가코프의 소설과 같이 얘기한다. 메리 셸리 입장에서 저 소설의 가치는, 깜짝 놀랐는데, 현재에도 열심히 양산되는 어마어마한 레퍼런스가 말해준다. 한편, 불가코프의 입장에서는 <개의 심장>이 그가 20년대에 쓴 <운명의 알>(개구리? 파충류? 알 만드는 듯), <디아볼리아다>(악마의 서사시) 등과 함께 묶여서 연구되는 듯하다. 아직 공부가 부족함 -_-; 일단, <... 알>은 작품을 안/못 읽었는데, 불가코프 식 SF의 거친 시작인 듯하다. 번역도 없는데 작품은 길고, 흠, 원래 공부란 그런 걸 읽는 것이긴 하다. 아무튼 유럽의 SF 계보를 뒤지다 보니 이런 것이 있다.19세기. <프-인>은 아시다시피 대략 18세기 문학으로 엮는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읽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름조차 거의 금시초문.(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데도 내가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라니, 이런 부조리가!) 이 참에 읽으려고 사두었다. 허버트 조지 웰스. 뭔 내용일지? 혹시 AI, 그러니까 생명 창조 얘기가 나오는지? 아니면, (제목을 봐서는) 다른 소재를 다룬 SF일지? 어떻든 -  

 

 

 

 

 

 

 

 

 

 

 

 

 

 

 

SF쪽으로 더 뻗으면 장르문학과 만난다. 불가코프는 물론 엄연한 순문학이지만, 그나저나, 과연 이런 경계가 지금 유의미한지! 그렇다고 또한,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경계가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가령,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은 잘 썼지만, 훌륭하지만, 그래도 세계문학전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못한다.) 비슷하게,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를 떠올릴 수 있겠다. 지금 쓰이는, 써지는 문학에 대해서는 판단 유보, 판단 정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전제로 -

 

 

 

 

 

 

 

 

 

 

 

 

 

 

 

소비에트판 SF를 읽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학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요즘 많이 뜨는 우리 작가들을 읽어볼 수도 있겠다.

 

 

 

 

 

 

 

 

 

 

 

 

 

 

이 중 정세랑의 신작 장편은 학교 도서관 대출 목록의 엄청난(?) 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부럽...^^;; 오래 전 <고양이의 이중생활> 담당 편집자였는데, 정말 이렇게 뜰 줄이야! 맥락 없이(-어 보이게) 가져온 유현준의 책 역시 도서관 대출 목록 상위권. 역시나 부럽..^^; 건축자의 책이 이렇게 팔리다니, 대체 어떻게 썼기에!!!^^;

 

 

 

 

 

 

 

 

 

 

 

 

 

 

 

 

 

 

 

 

 

 

 

 

 

 

 

 

 수학책이 저렇게 팔리는 것, 정치학자의 (아마도) 칼럼집이 아직 출간도 안 됐는데 세일즈포인트가 - 할 말이 없다^^;; 다 좋은 일이다!

 

샛길로 새버렸는데, 핵심인즉, 가독성과 작품성은 어느 장르에서든(연구서, 인문서도 예외가 아니다!!!) 결코 이율배반적인, 상반되고 모순된 개념이 아니다. 어지간히 읽을 만하고  내용 있는 책, 즉 우리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킬 만한 재미있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신나는 책이 필요하다. 나도 앞으로 책을 쓸 시간이 별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슬프다, 쬐금은) 논문을 구상할 때도 책의 틀을 염두에 두게 된다.(그러다 보니, 논문 심사에서 항상(!!!) 문체와 형식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흑.) 한 편씩 쓰되 한 권을 그려본다. 자 그래서 -

 

1) 1920년대 불가코프 소설, NEP(신경제정책), 생명창조(회춘), SF, 종교와 과학 등

2) 제대로(?) 소련, 소비에트 소설, SF, 스트루가츠키, <노변의 피크닉>, <스토커>(타르-키), 비슷한 시기 혹은 앞선 시기 서방(+미국)의 SF 등   

 

이제는 공부를 해야지, 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