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좋았다. 비온 뒤 모처럼 깨끗한 공기를 낭비할 수 없어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제 일정이 바쁘고 남편은 출근이라 다시 혼자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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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에는 백로서식지라는데 검둥오리가 장악했다.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철새관찰이 가능하다. 작은 섬의 검은 꽃처럼 보이는 게 죄다 검둥오리다. 서호는 정조가 내탕금, 즉 왕실의 사비로 만든 축만제에 의한 농업용 인공저수지다. 누구는 세금으로 월 2천만원씩 올림머리를 하는데 썼는데, 정조대왕의 품격은 확실히 다르다. 덕분에 후손들은 국제 관개시설문 유산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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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천을 한참 따라가다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낫으로 풀을 베고 있다. 갸우뚱한 광경이라 뭐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의 토끼 먹일 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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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도 찍을 겸 화장실도 들릴 겸 해우재. 작은애 배변훈련할 무렵 놀러왔었는데 화징실 넓고 깨끗하기로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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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다리쉼을 하고 다시 걷자마자 지지대비가 나온다. 수원의 관문인데 조선시대에 정조가 이 고개에서 마지막으로 융건릉을 돌아보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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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도중 느닷없이 서호천길이 끝나고 모락산길이 시작했다. 이제 수원이 아니라 의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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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이야기를 누군가 고의로 파손했다. 이런 일은 처음 봐서 신고를 해놓자 싶어 사진을 찍고 돌아서보니 이유를 알겠다. 박근혜의 가장 큰 업적은 박정희 신화 깨부수기라는 우스개소리가 납득이 간다. 나도 신고할 생각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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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산길은 두 갈래이다. 의왕도서관 방향은 시내일 거 같고 한참을 돌아가는 길이길래 통미마을로 왔다. 오매기마을에 접어들어서야 지도를 보고 깨달은 건 사근행궁터 스탬프를 못 찍었다는 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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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의왕 산들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도로 삼남길을 만난다고 무턱대고 gps 좌표만 믿고 가다보니 등산로도 없는 산을 헤매게 되었다. 어찌어찌 우여곡절에 멀리 보이는 민가를 목표로 내려가보니 남의 집 마당에 내려가게 됐다. 내 맘대로 대문을 열고 나갈 수 없어 허락을 얻자 싶어 현관문으로 조심스레 다가가니 할머니 한 분이 먼저 문을 열고 나오셨다. 
길도 없는 뒷산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걸 수상스레 보고 계셨나 보다. 사정을 듣고는 친절히 대문도 열어주시고 모락산길을 도로 만날 수 있는 빙향도 일러주셨다. 
무사히 모락산을 내려와 보니 다리가 후들거려 코앞의 전통찻집에 들어갔다. 손수 만드셨다는 진한 대추차와 가래떡구이로 점심을 대신 했다. 다육식물 작품을 파는데 하나같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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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집 강아지가 자꾸 따라오며 길동무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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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기까지만 걸을 작정이었는데 컨디션도 괜찮고 아직 시간도 이른 듯해 조금만 더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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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천과 청계천이 합류하는 다리다. 왼쪽이 청계천. 오른쪽이 학의천. 졸졸거리는 시냇물 수준이지만 청계천이 여기까지 오는구나 싶어 괜히 감동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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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천을 따라오다가 나도 모르게 의왕에서 안양으로 들어섰나보다. 오후 4시 30분으로 걷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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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하필 노선이 사근행궁터를 지나간다. 이건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스탬프를 찍었다. 
지금은 시청 별관으로 쓰인다는데 행궁을 복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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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버스 내린 김에 골사그네까지만 더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 물마시러 들렀던 의왕도서관에서 김소월 시화전을 구경하며 살짝 지체하는 바람에 해가 뉘엇뉘엇이다. 산길이 아닌 게 다행이다 싶지만 으리으리한 묘지가 사방이다. 뭘까 싶었는데 전주 이씨 집성촌이란다. 그래서 유심히 명패를 보니 정말 죄다 이가다. 어쨌든 지금 필요힌 건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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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골사그네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아직 날이 밝다. 생각해보니 오늘 길 곳곳이 매화에 산수유에 진달래에 꽃잔디였다. 확실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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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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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난 또 한 살을 먹었고
올해도 승진은 물 먹었고
연봉은 동결이다.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들은 나보다 발이 살짝 커졌다.
어쨌든 목련이고
그렇게 봄이다.

이런 일상을 얘기할 수 있게
박근혜가 탄핵된 게 기쁘고
검찰조사중인 게 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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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2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로가 고등학생이 되고 해람이 발이 엄마보다 커졌다니, 군산에서 본 꼬마로만 기억하는 내겐 놀랍네요.@@
그 사이 조선인님 시인이 되었고요~^^

조선인 2017-03-2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해람이의 키는 아직 저보다 작은데 남자애라 그런지 발은 더 크네요. ㅎㅎ
 

송탄역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경기도 삼남길 9코스 진위고을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딸 아들도 함께 걷기로 했다.
2017년 02월 25일위치보기 〉
삼남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하필 발견한 마로카페.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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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는데 진위고을길은 유독 산이 많다. 지금은 부락산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흰치고개로 불렸단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많아 등산객이 제법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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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한산해진다 싶었더니 어느새 새로운 산으로 이어져 있다. 슬쩍 스마트폰으로 피아노곡을 들으며 조용하고 맑은 공기를 즐겼다. 아들은 다람쥐마냥 산길을 저만치 앞서가고 나는 딸과 헛짓놀이를 해가며 슬금슬금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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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최고의 험로 흰치고개길을 마침내 내려오면 원균사당이 나와 다리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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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옆에 묘가 있어 풍광이 이채롭다. 이 곳이 명당인건지 주변 집들이 으리으리하다. 
여기서 진위고을길이 끝나고 소사원길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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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묘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헉. 딱 하나 있는 음식점이 문은 열려 있는데 사람이 없다. 그 후로는 온통 물류단지라 한참만에야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정말 숨돌릴 새 없이 싹싹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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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종합물류단지를 지나느라 점심을 늦게 먹은 것도 짜증났는데, 그 다음은 대형트럭이 질주하는 평택칠괴산업단지였고, 그 다음 옥관자정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기념비였고, 그 다음은 신촌택지개발예정지구로 온통 공사장. 한 마디로 갈수록 가관이다. 우회로 안내지도는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어 그냥 버스 타고 평택역으로 향했다. 한참 개발이 진행중인 평택은 유독 삼남길이 끊긴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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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는 굿스테이가 없어 그나마 믿을만한 게 관광호텔이다. 온돌방이 뜨끈뜨끈해 지친 다리를 쉬기 괜찮다. 덕분에 애들이 방바닥에 늘러붙어 저녁도 치킨배달로 떼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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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는 미리 사놓은 컵라면과 누릉지와 군계란을 숙소에서 먹었다. 공사구간 투성이인 삼남길을 다시 만나는 대신 아예 안성천에서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한가로이 농로를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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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참 뜬금없는 위치의 기념비다 싶었는데 삼남가는 길목이라 세웠단다. 여행의 주제와 맞닿은 거 같아 뭔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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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도로 평택역으로 돌아왔다. 점심은 우족탕과 꼬리곰탕. 첨가물이나 기름기 없는 국물맛에 잡내가 없어 45년 전통을 인정하게 된다. 
원래는 오후시간을 이용해 평택호에 놀러갈까 했는데 엄마 사정상 생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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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각오도 다지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자 싶었는데 막상 진지할 기회는 없었으나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수원에서 인덕원까지 서울 가는 삼남길을 마저 같이 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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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3-1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따님 예쁘기도 하여라.
마로가 숙녀가 되었네요^^

조선인 2017-03-1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하는 짓은 아직 애기지만요

Joule 2017-03-1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도 이런 올레길 찾아서 걷는 거 디게 좋아하거든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강릉에는 바우길이 있어요. 그런데 공무원들이 일을 너무 허투루하는지 도무지 걷기 적당하지 않은 구간이 자주 끼여 있어서 걷다 보면 투덜투덜 하고 막 그래요 저도 ㅋㅋㅋ.

착하네요 마로도 해람도. 아이들이랑 같이 걸어서 그래도 재미있었겠어요. (조선인 님이랑은 좀 많이 다른데) 저희 언니는 애들 안 끼면 눈에 띄게 무료한 표정 짓고 무의미한 내색을 하도 팍팍 해서 나중에는 제가 같이 안 다니고 싶어지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시간이라고 저는 언제나 생각해요.

토토랑 2017-03-1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는 완전히 아가씨네요. 이쁘기도 하여라..조선인님 글만 봐도 반가와요. 저두 저희 동네 근처 둘레길에 한번 도전해 볼까 봐요

bookJourney 2017-03-22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마로~~ 언니 같은 조선인님!! ^^

조선인 2017-03-2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 삼남길 끝나면 님을 만나기 위해 바우길 걸으러 갈까요
토토랑님 걷는 건 돈은 적게 마음릉 부유한 최고의 여행이에요.
책세상님 히히 고맙습니다
 

회사 화장실에 붙은 문구가 영 신경쓰인다. 바다가 물을 나누어주어 구름이 생긴 거 아닌가. 나누어주면서 스스로 낮추는 것이 가장 존경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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