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읽었던 책은 위근우 작가의 책. 뭐 구태여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만큼 선명하고 때로는 사이다 같은 문장들로 맞는 말 대잔치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이었다. 정확한 언어들에 신나서 열심히 플래그 붙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 책 페미니즘인데 왜 이렇게 시원하기만 하지? 이물감이 없지?

그러면서 들었던 질문 또 하나.
시스젠더 남자 사람이 여성주의를 읽거나 공부하는 기분은 뭘까. 
자책? 죄책감? 서늘함? 
혹은 지적 호기심? 자기부정? 답답함?

무튼, 위근우씨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즐거웠는 데, 즐겁기만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굳이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남자가 쓴 페미니즘적 비평은 달랐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술술 읽히고, 말이 착착 붙고, 아오, 누가 저 개소리 하면 나중에는 저 문장으로 패줘야지!! 하게 되었다능..

*


“(미투의 정치학) p.31
언어는 언제나 현실이 한참 지난 후에 당도한다. 그 간격은 몇 년일 수도 몇백 년 일수도 있다. 언어가 늦을수록 우리는 고통 받는다. 적어도 여성주의, 여성운동에는 조롱의 대상으로서 ‘강단 페미’가 있을 수 없다. 여성주의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 지배 언어와의 불일치가 몸의 통증과 폭력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에게 말과 실천이 어떻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읽었던 여성주의 텍스트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쓰고 한 말들이었다. 
내가 여성주의 텍스트를 읽을 때 느끼는 기분이란,,,
대환장, 열불, 딥빡🔥🔥
본질 적으로는 아픔. 통증...?

솔직히 말하자면 읽기 겁내 힘들다. 아오, 속시원해!!! 하는 느낌도 조금 있지만 대부분 마음이 먹구름 낀듯 꾸물꾸물 해진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처럼 머리가 먼저 반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깊은 한숨, 입술을 깨물거나, 갑상선 쪽이 당기거나, 소름이 쫙 끼칠 때도 있고, 눈물(콧물)이 먼저 쏟아질 때도 있고... 가슴이 먹먹해서 실제로 두드릴 때도 있고...... 때때로 너무 텍스트에 몰입하지 않기 위해 애써서 거리두기를 노력해야할 만큼, 정말 ‘몸으로 읽는다’는 표현이 맞다. 정확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평생 문맹이었던 사람이 수년간 읽지 못해 밀쳐둔 헤어진 연인의 긴 연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페미니즘 독서는 여타의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알았다!!!’ 지적 쾌감과는 조금 다르다.... 
아픈지 몰랐는 데, 거길 누르니 내가 아프단 걸 알겠어.. 하는 뭉친 근육 안마 쾌감..ㅋㅋ

*

아픈거 이제 알겠어 증상(?)은 페미니즘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더욱더 심각해져서 요즘은 여성이 쓰거나 만든 여성서사(영화 벌새, 프란시스하 등등)작품이나, 하다못해 그저 몸을 움직이는 그냥 체육(?) 에세이(아무튼 피트니스, 마녀체력)일 때도 눈물이 막 쏟아진다....


“(아무튼피트니스) p.126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p. 133~5
또 하나, 다른 세계를 알게된 기분이 묘하다. 나는 몸을 혐오했다.(...) 나는 이제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아쉽고 모자라도 내 몸이 나와 동행할 나의 일부라는 것,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활력이 있으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저 문장이 뭐라고. 뭐라고!!!
나는 눈물이 나느냔 말이다....진지하게 우울증 의심할 뻔했으나.... 
아주 건강한 감정의 반응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

“(일하는 마음) p. 35

그러니까 어떤 여성들은 불운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죽어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어 소비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너네 넷이서 여사 하나를 못 당하느냐’는 말을 상무에게 들었다며 그 넷 중 하나가 내게 칭찬이랍시고 전하고선 머쓱히 웃던 장면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아무렇지 않음’상자에 처박아 놓았던 무수한 장면들이 있었다. 화가 나고 불쾌해질 때면 왜 난 ‘쿨하지 못하게’이런 일에 마음이 상할까 자책했던 순간들이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지 알 수 가 없어서 ‘아무렇지 않음’상자에 처박아 뒀던 순간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제 언어를 갖고 해석되면서 상처인 줄도 몰랐던 상처들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상처에 걸맞는 몸의 반응들이 뒤늦게야 오는 가보다. 

어쩌면 내가 나를 다독이는 눈물 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시 바라봐달라는...... ?

근데 이게........ 쉽지가 않다. 상자에 처박아뒀던 오래전의 낡은 기억과 마음들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 
무슨 고구마 줄기처럼 마구마구 엮여 올라온다... 헤롱🤪🤪

이를테면
“(미투의 정치학) p.23
사회가 여성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허락했는가 아닌가 혹은 여성이 그것을 쟁취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다.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행사하지 않았을 때 보다 더 큰 피해(해고나 사회적 ‘매장’)가 기다린 다면 누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겠는가.

누구는 그냥 머리로 이해할 이 문장을 읽으며 난,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든다. 
그 때 그 새끼가 나를 만졌을 때, 왜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 지/ 혹은 그 때 그 후배에게 폭로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겠어서 그 질문 한 것 자체를 미안하다고 지금도 백번 사과해보고 싶은거라든 지 / 그가 어떤 인간인 지 잘 알면서도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공론화하지 않았기에 계속 좋은 인간인 척 하는 모습을 역겨워하면서도 인간은 참 다면적이야.. 정도로 모든 인간을 퉁쳐서 범주화 했던 어떤 시간들이라든지. (거칠게 세가지 사건을 적었는 데 모두 다른 사건이며, 세가지 사건을 적으며 연쇄적으로 삼십가지 사건이 떠올라서......... 글쓰다가 짜증남)
.

.........

*


언어가 생겼다.
그리고 상처도 추가되었다.
여전히 빨간 그 상처는 아프다.
그런데 알아서 다행이다.
이제라도 약발라 주면 되니까.

그랬구나, 아 그랬었구나.
그 때 나의 마음은 그런 거였는 데,
왜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여튼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요즘에 태어난 여자라서 다행이다. 
여성서사를 몸으로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좀 힘들고 피곤하지만 사뭇 다른 독서/영화 체험. 
마니 읽고 보고 느끼고 울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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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8 0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글 참 좋으네요 쟝쟝님. 그리고 모든면에서 모든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공쟝쟝 2019-10-18 08:01   좋아요 0 | URL
글쓰고 잤는 데 꿈속에서 내내 누구한테 이제와서 옛날거까지 화내는 꿈 꿨어요:: ㅋㅋㅋ 에너지 소모 극심..zz!! 한주 마무리 잘하세용ㅋ 랑방님😍
 
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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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니 아주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안희정의 징역형을 진심으로 두팔벌려 환영하며, 다시한번 정독. 조만간 책이 싣지 못한 김지은씨의 글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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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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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석 이후부터 출근러가 되었다. 고작 8개월만에 나의 멘탈이 프리랜서 생활을 견디기엔 아직 나약하단 걸 깨달았다. 도저히 불안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없을 때는 굶어죽을까봐 걱정되었고, 일이 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이 밀려와서 해치울 걱정하느라 바빴다. 시간이 많기는 한데, 도저히 내 일상이 조절 안되더라...

사무실 그만두면 자유롭고 시간이 넘칠 줄 알았는 데, 복세편살 빈둥대고 게으르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불안해 하는 데에 다 쓴 듯.. 하아.. 내 멘탈무엇.. 😿

모르겠다, 모아둔 돈이 좀 있었으면 그 시간들이 덜 불안했으려나? 


*

어쨌든 일이 있는 날엔 일을 하면서 다음 일 수배하느라 불안하고, 그렇게 일 스케줄이 겹치면 무리하게 되니까 내 몸이 버텨줄까 불안하며, 일이 없을 때는 없으니까 또 불안했다. 한참 일없던 어느 날은 정말로 이대로 일이 없으면 나는 앞으로 어떡하나..... 걱정으로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 날을 샌 적도 있었다.😨

농노에서 노동자가 되는 것은 착취당할 자유라고... ㅋㅋㅋ 
그런데 imf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산물인 나는 사회가 착취를 안해주니ㅋㅋㅋ 
농노도 노동자도 아닌 상태가 외롭고 버거워 불안해하느라 심리적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있더란다. 

물론 여러가지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책을 읽으며 멘탈을 잡아보려 초반엔 노력했다. 그러나 뭔가 읽을 수록 내가 아무 대책이 없이 때려쳤구나ㅠ싶어서 (하긴 대책 보다는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역시 도망치기는 잘했다고 생각..후회는 없지만, 당장 월세가 넘나 걱정ㅠㅠㅠㅠ) 결국 열심히 잡코리아만 뒤지는 신세... 그걸 뒤질 수록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멈출수도 없었다. 그걸보며 불안해해야 뭐라도하는 것 같았으니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냥 나는 ‘불안’을 동력으로 인생을 굴리는 자였던 거다. 
막판에는 그냥 계속 이렇게 불안하기만 할까봐 그게 더 불안할 정도 였으니...


*

여튼 도저히 프리랜서 못하겠어!!!! 아무데나 받아주세요!!!회사에 뼈를 묻고 일하겠습니다!!! 모드로 구직. 요즘엔 새 직장,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다. 다크서클이 더욱더 진해지고 있음.. 그래도 따박따박 월급 들어올 생각하니 지난달 대비 불안의 총량이 50%는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실존적으로는 불안하며...(이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일이란 무엇이든 힘을 들여야 하는 거니깐(그래야 고용주가 돈을 주니깐..) 집에오면 녹초가 되어 잠든다... 
내 인생 너무 어려워...



출퇴근 오명가명 길바닥에 하루 두시간 반씩 버리기 아까워, 이북 읽기 중인데 (이전 사무실은 출퇴근 버스가 널럴했는 데, 요즘다니는 코스는 신도림역 거치는 마의 코스라... 도저히 종이책을 펼칠 수 없다..)ㅡ 하필 출근 첫주에 읽은 책이 IMF키즈의 생애였다. 


나 역시 아이엠에프 키드이고, 사는 게 참 생존 같고, 피곤하고, 나만 힘든가 다들 어찌 살고 있나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 데.... ㅠㅠㅠㅠㅠㅠ 고작 일곱명 인터뷰인데도 .. 그냥 토닥토닥.. 다들 힘드셨쥬... 10대때는 아엠에프땜에 힘들고, 20대 내내 이명박그네랑 함께 보내느라 힘들고, 30대 됐는데 이룬게 아무것도 없는 데 일은 하기 싫죠... 힝... 어쩜좋니..... .... 우리 존재 홧팅이어요....ㅠㅠㅠ 쥬륵...


*

제일 와닿는 인터뷰이는 홍스시씨였다. 그냥 다 내 얘기 같았다. 그녀의 불안에 대한 문장이 참, 너무 내 마음 같았다. 안불안해 본적이 없어서 만약 불안하지 않는 상태면 그 상태가 끝날까봐 불안해할거라는 말... 일이 잘되서 대박이 나도 내 몸이 안 받쳐줄 것이 걱정된다는 말.... ㅠㅠㅠㅠ .....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던 몇달동안 마음에 불안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나갈 생각을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항상 친구처럼 지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안재울 정도로 커진 모습을 보니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잡아먹힐지도 모르겠어. 아니 이미 잡아먹혀 살아왔나.. 일단은 내 안의 이 어마무시하게 큰 불안을 알아챈 것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많이 무서웠으니까, 해결을 좀 해봐야겠다... 앞으로는 요놈을 잘 탐구해볼 요량이다.

근데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핸드폰으로 막 쓰다 보니 벌써 한시반... ㅠㅠ 퀭... 😴😴😴😴😴






진짜 아무 걱정이나 불안 없이 편안 하루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날이 오면 아마 그게 끝나는 것 때문에 또 불안해 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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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9-10-14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되는 심리네요.
하던 일 그만두고 작은 일 하나 직접 시작했더니 그렇게 힘들지 몰랐다는..
새 직장생활 화이팅입니다

공쟝쟝 2019-10-14 07:45   좋아요 0 | URL
회사안은 전쟁터, 회사밖은 지옥이라는 말이생각나네요! 월요일 힘찬 하루 보내셔욥^.^

반유행열반인 2019-10-14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잠을 설치곤 합니다.
12년 a 공교육과정이 우리한테 체화한 게 뭐겠어요. 정해진 시간 요일에 특정 장소에 투신해야 보상 받고 아니면 박탈과 낙오라는 불안을 심어 그대로 이용하기 좋은 노동자로 만드는 것이었겠죠.
그래도 과감하게 프리랜서 도전도 해 보시고 다시 일자리도 구하셔서 자기 힘으로 사시는 일에 조금은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휴직 중이지만) 지금 일을 그만두면 대체 절 받아줄 일자리가 있기나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에겐 구원과 위안의 독서와 글쓰기가 있잖아요. 일터가 그 바탕(경제적으로든 스트레스의 반동으로 부추기든)이 되고 있는 부분도 있으니 건강 해치시지 않게, 받는 만큼만 쉬엄쉬엄(?)하셔요. 나중 걱정은 나중에. 화이팅.

공쟝쟝 2019-10-14 19: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에겐 위안의 독서와 글쓰기와 다정한 알라딘 서재 마을이 있네요! 이번생이 아예 망하지 않은 포인트 ^^ 나중걱정은 나중에할게요,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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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잘하는 것 한 가지만 있으면 대학간다’던 시절을 살았었다. 대학은 다들 잘가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세상은 변해서 ‘n잡러’ 라는 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하나가지고 먹고 살기는 어려워진 그런 오늘이 되었다.

어떤 간판도, 전문성도, 자격증도 원천적으로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뚝뚝 잘려나가는 경력(단절)처럼, 삶도 툭툭 끊어져 버리는 것만 같다. 일은 어렵고, 잘해봤자 사장만 좋을 일 같고, 잠깐 정신 줄을 놓으면 내가 일인지 일이 난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삶의 고삐를 일이 채어가게 내버려 두지 않으면서도, 막상 하는 일에서 무능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읽었다. 

“(10)경쟁이나 승자독식같은 말이 당연한 규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나의 치열함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 저자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일에 대해 여러 조언들을 해주었다. 대체로 끄덕끄덕 끄덕끄끄덕덕 하면서 읽었다. 

“(162)...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직종의 이름으로 전문성을 쌓는 방식은 하나의 자격 획득으로 경력 전체를 보장받을 수 있던 시대에나 유효한 것이다. ...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보다는 자신만의 탁월성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 크고 작은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우연히다음 단계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는 것,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찾아가는 것. 전통적인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파편적 경험들을 관통하는 이름을 붙이고말하는 것. 어쩌면 이런 조언들은 유동성이 불가피한 현실에 맞춰 진화한 자기계발의 복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이 이틀에 걸쳐 논의되는 가운데, 기본소득을 주제로다루는 세션을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몇가지 관통하는 단어가 있었는 데 이를테면 #디딤돌 이라거나 #탁월성 의외로 (짧게)등장하는 #기본소득 그리고 #이야기 (서사성)등등 이었다. 일하기 싫어~~~만 너무 생각하지 말고 (하지만 싫다고 해놓고 소처럼 일하는 나의 모순..) 나의 언어로 나의 ‘일’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갖춰야겠다는 나름 교훈(?)을 얻었다.


2.

자꾸자꾸 흩어지기만 하는 세상 속에서, 악착 같이 삶의 조각을 끌어 모아 ‘나의 서사’를 구축해 나갈 것. 
요즘 내가 관심있게 생각해보고 있는 부분이어서 인지, 책이 다루고 있는 많은 분야들 중에서 그쪽 조언이 가장 눈길이 많이 갔다. 세상은 자꾸 짧아지고 분절되고 잘려나가니까, 거기서 어떻게든 끊어지지 않아보려 하는 안간힘. 내 딴에는 그 안간힘이 나름의 투쟁(?)방식이다.

“(81)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데, 이 때의 이야기는 미래를 담는 그릇을 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스스로 바라는 남은 삶의 방식을 지시한다.”

인생이란거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생충의 송강호..), 일이 일어난 후에라도 더듬어 이야기의 형태로 이어붙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려면 오늘을 잘 기록해야하는 데... 일못러인 본인은 맨날 일에 치여 겨우 살기 바쁨...답답쓰.... (일 잘하고 싶다.. 엉엉)


3.

요즘 인생이 힘든 건지(아니다. 나는 원래 그랬던 것 같다... 울보..) 끄덕만 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데, 이 책 읽다가 진짜 코끝 갑자기 와사비 먹은 사람처럼 방심했으면 울뻔 했던 부분 적어둔다. 196페이지 용달기사님 일화. 거칠게 줄이면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뭐 그런 미담(?)이었는 데. 갑자기 삶의 고단한 무게감이 확 끼쳐옴.

힘든 상황에서도 저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미련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좋아한다. 난 왜 이렇게 호구 같을까. 왜 오지랖을 부려서 손해보고 후회할까. 남 걱정하기 전에 나부터 걱정하자, 나부터 지키자 수시로 되뇌이는 데 잘안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열심히 자라서 나‘만’ 아는 으른이 될거다!!! 탕탕!) 천성인가 싶었는 데, 이번 명절에 확실이 알게 되었다. 이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다. 오로지 착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방식. 꼼수나 머리 따위 굴리지 않고, 누가 손해봐야하는 상황에 닥치면 그저 본인들이 그냥 손해보고 마는 태도!!! (그게 본인 딸들한테는 폐가 되기도 한다.. 흐어..아부지...어무이..) 난 대체로 선량한 나의 부모님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약지 못함이 지금도 마음이 쓰리다.

작가는 그 책임감 강한 용달아저씨 때문에 결국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내 와사비 포인트도 거기에 있다. 
아니까. 아저씨의 방식으로 잘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이 세계는 착실한 사람들이 착실해서 손해 보는 구조라는 걸. 물론 그 분들의 행복과 삶에서 느끼는 충만함은 매우 주관적이고 본인들만이 아는 것 일테다. 쉽게 안타까워하기도 무안한 부분이다. 결국 그들을 통해 나를 보는 거니까, 이 울고 싶은 마음은 그냥 내 마음인 거겠지. 난 아직 '손해 보면서도 착실하게 행복한 삶의 기술'은 터득하지 못했다. 조금은 약삭빠르게 나를 먼저 챙겨서 덜 억울하고 싶다.

그러니까.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한다.
용달아저씨 같은 분들을 앞에 세우지는 않더라도 뒤에 놓고 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나도 마음 놓고 두다리 뻗고 이리저리 재지 않고 착해질 수 있을 텐데... 아아 착하고 싶어..
뭔가 방법이 없을까. 답답쓰...


그리하여 다르게 살려면 유능해져야 한다.
- P10

-기본소득청소년 네트워크 BIYN, Basic Income Youth Network-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기특하거나 불쌍한 청년이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기특’이나 ‘불쌍’같은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요."
- P98

회사 밖이 지옥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때만 회사 안도 전쟁터가 아닌 것이 된다. 그때야 비로소 모두가 불안을 무릅쓰지 않고도 ‘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P144

우리는 서로 달라도 이해할 수 있다. 관계의 밑바탕에 동질감이 있을 때보다 가치 판단 없는 지적 이해가 있을 때, 나는 훨씬 더 안정감을 느낀다. 동질감은 대체로 착각이거나, 진실이라 해도 쉬이 흩어질 수 있는 것인 반면, 지적인 이해는 시간과 함께 축적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당신이 나와 같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보일러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나는 시간을 들여 공부함으로써 당신을 이해한다. 그런 이해를 통해 나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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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모른다. 

그 시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모든 일들을 아직 해석할 능력이 없던 나날들. 이미 벌어지고 있는 데도 현실감이 없었던 남의 기억같은 기억들. 아팠는 데 이게 아픈게 맞는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던.

*

또렷한 기억은 없는데, 몸에는 그 시절의 감정들이 안 빠진채로 남아 있었나보다.
이 섬세한 영화가 가져다주는 어떤 분위기로 인해, 깊은 수영장에 멋도 모르게 빠져 텀벙대며 코로 귀로 물을 먹는 사람처럼 엄청 다양한 감정들이 마구마구 밀려들어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이론이, 경험이, 언어가, 관계가, 그러니까 이게 무슨일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꽤나 쌓였는 데도 여전히 나는 삶에 당한다. 나는 이렇게나 자랐는 데도, 세상 똑똑한 척은 다하는 데도,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현실은 불가해하다. 이해하려 하면 할 수록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어떤 일은 청맹과니처럼 멍하게 지나가게 두다가 잠깐 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아, 왜 이러지? 돌아보고 겨우 수습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석해 보거나. 이것도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어찌어찌 생겨난 삶의 기술일 뿐, 대체적으로는 해석이 되지도 않거니와 이해해낸 것 같다 하더라도 후련한 건 아니다. 

그래도 사건에 말과 글을 입히고 나면, 그 순간 만큼은 견딜만해진다.

*

은희를 보면서 20년 전, 소녀시절의 무력감이 많이 생각났다. 
함께 영화를 본 동생은 그때 너무 힘들었다고 지금이 더 낫긴 한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은 지금 대로 또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 역시, 실감한다. 내가 커진 만큼 세상도 무거워졌다는 걸.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억할 때도 오늘 처럼 슬퍼서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아 인생은 원래 이렇게 슬픈건가요, 
아니면 내가 우울증인가요...쿨쩍😿왤케 만날 눈물이...



매일 관계가 무너지고, 어느 날은 다리가 무너지고,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그럼에도 계속 견디고 사랑하려는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고, 영지샘 손도 꼭 잡아주고 싶었다. 적고보니 내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거란걸 알겠다. 무기력한 소녀였던 나를 안아 일으켜주고 싶고, 잃어가면서도 남은게 많아 방향몰라하는 지금 나의 무력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다. 위로와 안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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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0-10 21:06   좋아요 0 | URL
좋아용❤️ 가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