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지금의 현실 인식
명확한 내 무능력에 대한 인식
그럼에도 세상에 훼절당하지 않고
나만의 내면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 중
나의 삶이니까.
온전히 내 것은 그것 밖에 없으므로.
_
오늘도 어제처럼 세상이 뿜어내는 악독한 말들을 들은 귀를 씻으면서, 읊조린다.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너는 나를 절대 망칠 수 없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의미심장하게는 자신의 무능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히 환경 제약과 자신의 한계에 구속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오로지 이전에 구획된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직접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바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법을 알게 된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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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매일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욕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나만의 글쓰기 어플을 켠다. (PEN이라는 앱이다) 정갈한 명조체 글씨로 그즈음에 읽는 책들에 대한 단상이나, 복잡한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음들을 적을 때, 조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언젠가 써봐야지!하는 글감 목록만 빼곡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대부분은 출퇴근 길에 쓰고, 주말에는 노트에 쓴다. 이 영화 주인공 패터슨 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어젯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가 글쓰는 사람인게 정말 좋아졌다. “저기요! 저도요!” 손이라도 들고 나도 글쓰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시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써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과 작가도 있고요, 저만 아는 비밀 노트와 앱도 있답니다. 
당신처럼... 저녁도 있으면 좋겠는 데... 저녁이 없네요(시무룩).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산책을 안시켜도 되니 그건 내가 당신보다 좋군요!



주인공 패터슨은 도시의 버스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시를 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틈틈히 글을 쓴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주는 회복의 시간을 알기에 휴식을 취하듯 쓸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내가 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서운함 그게 다 일 것 같다.
그러고 또 쓰겠지, 뭐.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아무럴 것 없는 이야기. 그게 다인 이야기. 그것 밖에는 없는 이야기. 
그래서 꽉 찬 이야기. 나도 그처럼 아무럴 것 없는 일상을 더 본격적으로 살고 싶다. (저녁, 저녁이 필요해..)


오늘 아침의 지하철은 책은 커녕 손도 꺼낼 수 없을 지경이라서 패터슨을 흉내내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써보았더란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늦은 퇴근길. 아침에 머리로 썼던 글을 폰으로 적어보고 있다. 분명 아까 썼던 건 좀 더 근사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집에 다 와버렸네. 이 영화 너무 추천해! 두 번 봐야지! 세 번 봐야지! 네 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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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

이런 식으로 글감을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부르더라구요.
쟝쟝님 작가 맞아요. 작가입니다. 쟝쟝님 작가님~~~

공쟝쟝 2020-05-21 08:10   좋아요 1 | URL
누가봐도 시인인데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이 영화속 주인공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 였어요. 뭔가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 고맙습니다 단발님! 헤헤

감은빛 2020-05-2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버티는 건 바로 글쓰는 상상이죠. 비록 신춘문예 응모했다가 떨어졌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일지라도 상상 속에서 내 글은 너무나도 멋진 글이더러구요. 비록 얼마 못 가서 그 현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공쟝쟝 2020-05-21 08:14   좋아요 1 | URL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바로 상상속의 내가 쓴 글...!! 공감하셨군요 ㅋㅋ
그래도 글쓰는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는 조금 근사하지 않나요? ㅎㅎㅎ
 
다소 곤란한 감정 -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어느덧 그 이야기의 이면이 제시되어 살짝 놀라고, 그러는 도중에 이면의 이면을 질문하며 결론조차 내지 않는(봉준호영화인가요?)글이라니.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섬세한 사회학책이라니. 너무 좋아서 다소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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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치일까? - 여유 없는 일상에서 자꾸만 감정이 생기는 당신에게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수연님의 페이퍼에서 ‘사랑은 사치일까’ 리커버 판을 발견하고,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책장을 뒤졌다. 앗! 찾았다. 가만있어봐, 서른 다섯. 이었던가 스물 일곱 이었던가.

“(231) 내가 남자에 관해 글을 쓰고 여자인 친구들과 이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을 때, 짝이 있든 없든 여성들이 종종 물어온 질문은 ‘좋은 남자가 존재하기는 하나요?’였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물론이죠’다.”
“(232) 많은 남성이 구식 성차별주의를 고수한다는 점은 우리를 낙담시키지만 예외적으로 여느 페미니스트 여성처럼 진보적인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헌데 이런 남성들은 게이 아니면 양성애자인 경우가 많으며 이성애자라면 나이가 서른다섯 이하인 경우가 많다.”


앍ㅋㅋ 서른 다섯이었구나... 벨훅스 대모님! 기준을 정해주시다!!!
아.. 그르니까, 서른 여섯살 이상인 남자에겐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인 거죠? ㅋㅋㅋㅋ

“(232) 나는 최근에 질의 응답 시간에 ‘당신이 어린 남자들을 좋아한다는 게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고 상대를 선택할 때 내가 가장 끌리는 남자는 진심으로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종종 이런 남자들은 나이가 어리다.”

넹? ㅋㅋㅋ
이건...ㅋㅋㅋ ...
확인..사살...이 잖아요, 대모님ㅋㅋㅋㅋㅋㅋ

여하튼 당시 이 책을 일말의(?) 기대를 하면서 읽을 때의 난 연애중이었고, 결혼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칫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그가 누구보다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고 해줘요. 벨훅스님. 내가 잘하면, 내가 더 그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랑’ 가능한거죠?🥺 이러면서 아주우 열심히 12장까지 읽었는 데, 당시 그의 나이 만 서른 여섯이었으니.. “에이 텄네, 텄어.” ㅋㅋㅋㅋㅋ

그 역시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닐테지만 다음 문장에도 뽝, 형광펜 줄이 가 있었던 것을 보면 나는 결국 믿지 못했다.

“(232) 성 문제와 평등에 대한 문제로 싸우며 10년을 넘게 보낸 후 그 관계를 끝내고 나서 나는 내가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남자를 고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남자의 변화가 내적 확신에서 비롯되지 않고 상대 여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상적인 변화에 그치기 쉽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성애자 여성은 남자의 부정적 행동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다가도 시간이 지나 갈등이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그 행동이 다시 떠오르는 걸 발견한다.”


앗, 그러고 보니 페미니스트 남성도 만나기 어렵지만, 대충 페미니즘을 거들떠라도 보려는 마음을 먹는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다섯살 이하였던 것 같아.... ‘남페미가 되기에는 적정한 나이가 있다’라고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겠지만, 어렴풋이 벨훅스가 그 나이를 서른 다섯 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35인지 책에서 자세하게 부연하지는 않았다.)

어떤 세계에서 사회화되기 35년. 즉, ‘중년’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 구조의 공모자/가담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뜻 인듯. 그래서 “(238)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시 양육”하는 것 만큼 변화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말한게 아닐까.

서른 다섯.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막연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매우 실감하게 되는 나이. 스스로 구조의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다.

정말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안했다 하더라도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35년이 지났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을 테니까. 남이 버린 쓰레기도 그렇지만, 자기가 남긴 쓰레기를 자기가 치우는 것도 실은 어려운 법이다. (꼭 가부장제라는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치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다면, 어느날 불현듯 회심이 와서 뽝! 하고 쓰레기를 치우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서른 다섯이전이어야 되는 거지 이후에는 앞으로 계속 치운다해도 생산하게 될 쓰레기 딱 그만큼만 치우는 셈이라 그냥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을 택한다...... 뭐.......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불현듯 나이의 무게를 실감.

누군가가 서른 다섯 이후에도 계속 바뀌어가고 있다면, 그는 서른 다섯이전에 계속 바뀌기 위해 노력해왔던 사람이리라. 그러므로 서른 다섯이 되기전에 내 쓰레기는 내가 치우는 것을 습관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점심에 먹은 설거지를 하려고 엉덩이를 떼려 하는 일요일 저녁 열시 삼십분.


***


“(227)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들에게 온전한 인간성을 되찾고 자신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간과하는 사실은 페미니즘 운동의 진정한 원동력이 여성 개개인의 남성일반에 대한 실망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과 생식권의 문제가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여성의 가장 큰 분노는 남녀관계에서 비롯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든 연인이든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운동의 초기부터 선견지명을 지닌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삶도 개선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나이든 강경파 가부장주의자들은 성차별주의를 고수했지만, 많은 남성이 남성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놀랄것 없이, 페미니스트 여성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들이 첫 개종자였다. 의미 있는 관계를 잃을까봐 두려워한 그들은 자발적이지는 않더라도 기꺼이 과거의 관습을 재고했다. 그렇게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과 성 해방의 옹호자가 되었다. 많은 남성이 가부장제의 남성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거나 최소한 그러는 척 하는 것에 이득(가정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자유분방한 여성들과 섹스를 할 수 있다는)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자유를 옹호했던 내 파트너는 페니미즘에 대한 내 헌신을 지지하고 그 자신도 페미니스트가 되었지만, 새로운 남성성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상을 그리지 못했다.”


“(235) 나는 거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남자들이 바뀌기를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변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요구했던 자유를 받아들이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234) 대부분의 가부장적 남성은 여성과 솔직하게 대화하기를 어려워하며 남성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들은 들어주는 데 실패하고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통 대화하기보다 연설하거나 자기 이야기를 한다”

“(239) 우리는 화성에서 온 남자가 아니라 바로 이 지구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남자들이 쓴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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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5-1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공쟝쟝 2020-05-11 22:31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알님이 점만찍으니 무섭자냐요! 😭

감은빛 2020-05-21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비록 스스로 페미니스트 남성이라고 자부하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서른 다섯을 훌쩍 넘긴 저는 가망이 없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주제가 약간 다르지만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아직 30대였던 시절에 왜 386 선배들이 나이를 먹고 보수화 되어가는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한편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제가 후배들 보기에 보수화 되어버린 사람으로 보이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공쟝쟝 2020-05-21 20:42   좋아요 0 | URL
하하ㅡ 서운하실 수 있겠지만, 가망없다고 포기는 마세요. 저는 왜 서른 다섯일까가 궁금했거든요. 서른 다섯 이후에는 반성이 습관이 된 사람도 낡아질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반성이란 걸 하게되는 건 점점 어려워질테니 미리 반성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뜻으로.. ^.^
 
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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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싫어서 읽었다ㅋㅋ.. 저자가 화두로 던지는 한국형 위계구조에 대한 장황한 해설줄이고 (무릎치는 지적이었지만 다소tmi) 5장부분을 좀 더 보충해서 써줬으면 좋았을듯 싶어 별하나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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