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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치일까? - 여유 없는 일상에서 자꾸만 감정이 생기는 당신에게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수연님의 페이퍼에서 ‘사랑은 사치일까’ 리커버 판을 발견하고,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책장을 뒤졌다. 앗! 찾았다. 가만있어봐, 서른 다섯. 이었던가 스물 일곱 이었던가.
“(231) 내가 남자에 관해 글을 쓰고 여자인 친구들과 이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을 때, 짝이 있든 없든 여성들이 종종 물어온 질문은 ‘좋은 남자가 존재하기는 하나요?’였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물론이죠’다.”
“(232) 많은 남성이 구식 성차별주의를 고수한다는 점은 우리를 낙담시키지만 예외적으로 여느 페미니스트 여성처럼 진보적인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헌데 이런 남성들은 게이 아니면 양성애자인 경우가 많으며 이성애자라면 나이가 서른다섯 이하인 경우가 많다.”
앍ㅋㅋ 서른 다섯이었구나... 벨훅스 대모님! 기준을 정해주시다!!!
아.. 그르니까, 서른 여섯살 이상인 남자에겐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인 거죠? ㅋㅋㅋㅋ
“(232) 나는 최근에 질의 응답 시간에 ‘당신이 어린 남자들을 좋아한다는 게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고 상대를 선택할 때 내가 가장 끌리는 남자는 진심으로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종종 이런 남자들은 나이가 어리다.”
넹? ㅋㅋㅋ
이건...ㅋㅋㅋ ...
확인..사살...이 잖아요, 대모님ㅋㅋㅋㅋㅋㅋ
여하튼 당시 이 책을 일말의(?) 기대를 하면서 읽을 때의 난 연애중이었고, 결혼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칫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그가 누구보다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고 해줘요. 벨훅스님. 내가 잘하면, 내가 더 그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랑’ 가능한거죠?🥺 이러면서 아주우 열심히 12장까지 읽었는 데, 당시 그의 나이 만 서른 여섯이었으니.. “에이 텄네, 텄어.” ㅋㅋㅋㅋㅋ
그 역시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닐테지만 다음 문장에도 뽝, 형광펜 줄이 가 있었던 것을 보면 나는 결국 믿지 못했다.
“(232) 성 문제와 평등에 대한 문제로 싸우며 10년을 넘게 보낸 후 그 관계를 끝내고 나서 나는 내가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남자를 고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남자의 변화가 내적 확신에서 비롯되지 않고 상대 여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상적인 변화에 그치기 쉽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성애자 여성은 남자의 부정적 행동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다가도 시간이 지나 갈등이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그 행동이 다시 떠오르는 걸 발견한다.”
앗, 그러고 보니 페미니스트 남성도 만나기 어렵지만, 대충 페미니즘을 거들떠라도 보려는 마음을 먹는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다섯살 이하였던 것 같아.... ‘남페미가 되기에는 적정한 나이가 있다’라고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겠지만, 어렴풋이 벨훅스가 그 나이를 서른 다섯 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35인지 책에서 자세하게 부연하지는 않았다.)
어떤 세계에서 사회화되기 35년. 즉, ‘중년’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 구조의 공모자/가담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뜻 인듯. 그래서 “(238)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시 양육”하는 것 만큼 변화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말한게 아닐까.
서른 다섯.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막연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매우 실감하게 되는 나이. 스스로 구조의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다.
정말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안했다 하더라도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35년이 지났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을 테니까. 남이 버린 쓰레기도 그렇지만, 자기가 남긴 쓰레기를 자기가 치우는 것도 실은 어려운 법이다. (꼭 가부장제라는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치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다면, 어느날 불현듯 회심이 와서 뽝! 하고 쓰레기를 치우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서른 다섯이전이어야 되는 거지 이후에는 앞으로 계속 치운다해도 생산하게 될 쓰레기 딱 그만큼만 치우는 셈이라 그냥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을 택한다...... 뭐.......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불현듯 나이의 무게를 실감.
누군가가 서른 다섯 이후에도 계속 바뀌어가고 있다면, 그는 서른 다섯이전에 계속 바뀌기 위해 노력해왔던 사람이리라. 그러므로 서른 다섯이 되기전에 내 쓰레기는 내가 치우는 것을 습관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점심에 먹은 설거지를 하려고 엉덩이를 떼려 하는 일요일 저녁 열시 삼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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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들에게 온전한 인간성을 되찾고 자신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간과하는 사실은 페미니즘 운동의 진정한 원동력이 여성 개개인의 남성일반에 대한 실망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과 생식권의 문제가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여성의 가장 큰 분노는 남녀관계에서 비롯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든 연인이든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운동의 초기부터 선견지명을 지닌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삶도 개선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나이든 강경파 가부장주의자들은 성차별주의를 고수했지만, 많은 남성이 남성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놀랄것 없이, 페미니스트 여성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들이 첫 개종자였다. 의미 있는 관계를 잃을까봐 두려워한 그들은 자발적이지는 않더라도 기꺼이 과거의 관습을 재고했다. 그렇게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과 성 해방의 옹호자가 되었다. 많은 남성이 가부장제의 남성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거나 최소한 그러는 척 하는 것에 이득(가정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자유분방한 여성들과 섹스를 할 수 있다는)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자유를 옹호했던 내 파트너는 페니미즘에 대한 내 헌신을 지지하고 그 자신도 페미니스트가 되었지만, 새로운 남성성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상을 그리지 못했다.”
“(235) 나는 거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남자들이 바뀌기를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변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요구했던 자유를 받아들이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234) 대부분의 가부장적 남성은 여성과 솔직하게 대화하기를 어려워하며 남성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들은 들어주는 데 실패하고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통 대화하기보다 연설하거나 자기 이야기를 한다”
“(239) 우리는 화성에서 온 남자가 아니라 바로 이 지구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남자들이 쓴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