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블레이드 러너를 1983년~2017년 것 까지 쭉 (중간중간 프리퀄 단편들까지 전부다)정주행했다. 미래를 다루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주얼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는 데다, 내용적으로도 생각할 것들이 많으니까. 대부분 영화들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넘치긴 하지. 리들리 스콧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83년판 블레이드 러너도 좋았지만(기억에 진하게 남는 것은 역쉬 룻거 하우어의 연기였다), 드니 빌뇌브가 감독한 2049가 던지는 질문들이 더 흥미로웠다. 영화에 대해서 쉼 없이 수다 떨고 싶지만, 오늘 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고...















1983년에 그리는 2019년의 모습, 2017년에 그리는 2049년의 모습.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것은 그대로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소재는 레플리칸트(안드로이드 인간)인데, 두 영화 모두 남성형 레플리칸트는 전쟁용, 노동용으로 쓰이고 여성형 레플리칸트는 전투용으로도 개발되지만 대부분 성판매용으로 생산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존재하고 우주의 식민지가 개척되는 된다하여도, 계급이 그대로고 차별(인간-레플리칸트)도 그대로인 미래의 인류는..... 당연히(!) 기어코(!) 성판매용 복제인간을 만들버린 것이다! 미래에서도 돈이 없는 인간들은 복제 인간을 살 여력이 없으므로, 대신 AI와 사랑을(아,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래 사랑이라고 넘어갑시다)나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엄청 많지만, 지금은 또 그걸 더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여튼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레플리칸트 안에서의 ‘재생산(출산)’문제였으니... 아, 재생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의 인류가 또 다른 인류인 레플리칸트를 박해하고 혐오하고 차별할 수 있는 근거이며, 레플리칸드들이 바라마지 않는 기적인 것이며, 현실에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논쟁한 그것이었고, 오늘날 저출생이라는 전사회적 문제인 것일 지니....


 “(92-9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들이 교육적·법적·정치적 평등을 얼마나 획득하든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공적 산업에 투입되든지 간에 자연 재생산이 규칙으로 남아있고 인공적인 또는 보조적인 재생산이 예외로 남는 한, 여성들에게 근본적인 것은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출산의 기쁨은 가부장적인 신화다... 더군다나 자연 재생산은 더 많은 악의 근원이고, 특히 인간들 사이에 적개심과 질투의 감정들을 야기하는 소유욕이라는 악덕의 근원이라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말했다... 그녀는 소유욕이라는 악덕, 즉 한 아이가 자신의 자궁 혹은 정자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선호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구분적 위계질서를 종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마지 피어시는 그녀의 공상과학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마지막 주장을 발전시켜 나갔다. 마지 피어시는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성이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면 인공 재생산이 여성과 사회에 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여성들이 출산의 힘에 대한 독점을 포기한 결과로 본래의 힘과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파괴되었고, 마타포이셋 주민은 모두 자신들이 선악, 고저, 강약, 그리고 특히 지배-종속의 위계질서적 개념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재구성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유토피아가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보다 더 급진적인 이유는,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정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가정도 제거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유 재산도 사적인 자녀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렇다. 난 파이어스톤이 명쾌해서 좋다.
재생산이여, 소유욕이라는 악덕이여. 


2049에서 레플리칸트인 주인공 K(는 남성형이다)에게 돌봄과 보살핌, 애정을 제공하는 것은 홀로그램 AI인데, 이 인공지능 홀로그램은 대량생산 되고 판매되고 있다. 상품의 이름은 JOY인데, 고객님의 취향에 맞추어서 옷을 갈아입긴 하지만 광고는 헐벗은 채인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한다. K는 진심으로 조이를 좋아한다. 케이에게 접근하는 성판매 레플리칸트인 마리에트(꺅!! 이 역할은 우리의 맥켄지 데이비스다)도 당연 여성형이다. 그러타... 페미니즘이 없는 미래의 SF영화의 설정은 이러하였다. (복제인간과 AI마저도 여성의 성은 착취 당한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행하고 있는 현재의 반영일 수 밖에 없으니, 이렇게 그릴 수 밖에 없으리란 걸 안다. (난 그래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가 너무 좋다... 흑흑...!!!)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있는 미래는 어떨까.

페미니스트들이 쓴 미래(혹은 과거)와 관련된 소설들을 몇 편 읽긴 했었다. 시녀이야기, 허랜드, 읽다 말긴 했지만 이갈리아의 딸들 등등. 그와 궤가 조금 달랐던 페미니즘 소설에 책에 언급된 ‘시간의 경계에선 여자’가 있었다. 유토피아인데 조금 더 페미니즘적으로 구체화되었다고나 할까. 

1970년대 가난한 이혼녀인 코니는 정신병동안 갇혀서 2137년에서 신호를 보내는 루시엔테(미래의 인류)와 접속한다. 코니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미래인인 루시엔테가 되묻는 현재에 대한 질문들도 되게 재밌다. 이를테면

“(1권 95) 루시엔테는 극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 ‘음 당신들이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사람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게 일반적이었나요? 아니면 혹시 그게 노예제도예요? 당신 시대쯤엔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루시엔테는 성매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노예제냐고 물어본다...
흑....

“(95) 아. 섹스와 관련된 것이군요. 성매매? 책에서도 봤고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몸을 파는 사람에 대한 드라마도 본 적 있어요!”

아, 성매매를 역사 책으로 배운 미래인이여...
미래인들의 사랑에 소유욕은 없다. 그 까닭은.

“(164) 그건 여성들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개혁의 결과였어요. 오랜 계급제도를 전부무너뜨릴 때였죠. 우리가 누렸던 유일한 권력이지만 마침내 역시나 포기해야 할 게 남아 있었어요. 그 대신 누구에게도 더 큰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죠. 그건 바로 생산의 원천인 출산의 권력이었어요. 생물학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동등해 질 수 없어요. 그리고 남성들도 결코 다정하게 사랑을 베푸는 인간으로 교화될 리 없고요. 그래서 우린 누구나 어머니가 될 수 있게 하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전부 어머니가 셋이예요. 지나치게 긴밀한 유대감을 깨뜨리기 위해서죠.”

미래의 여성들은 출산의 권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모성’을 정립했다.(참고로 미래세계에서 이 모성은 생물학적 남성들도 가지고 있다. 성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지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코니는 묻는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본 적 없고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고, 모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미래인들이 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코니는 자신이 때렸던 딸을 생각한다. 

“(165) 앤젤리나, 나같은 어머니가 셋이었다면, ... 너는 이미 죽었겠지.”

울컥!!
......
여러모로 할 말이 없어지는 장면이어서..
밑줄을 그어놨었다...


또 미래인들은 아래와 같이 지낸다.

“(2권 35) 우리는 자기방어 훈련을 받아요. 서로를 존중하는 훈련도 받고요. 기록을 읽은 적은 있지만 나는 실제 강간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건.... 우리가 보기에 특히나 끔찍한 일이에요. 역겨워요. 식인 습성처럼. 현재도 일어나고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믿기지 않아요.”

“(107) 우리의 존엄성은 일에서 나오죠. 누구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거 눈치 못챘어요? 로맨스, 섹스, 출산, 아이, 당신을 구속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여자들의 일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의 몫이죠.”


성역할이 해체되고, 빈부의 격차도 해소되고, 육아와 출산을 모든 공동체가 함께하며, 가장 사적인 문제가 가장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곳.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미래의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도 반전은 있고(반전은 누군가 이 소설을 읽을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기로), 무엇보다 미래인들은 이미 우리가 망쳐놓은 지구의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더란다. 헐.. 너무 그럴듯한 설정이다..... 미래의 인류여, 미안해.. ㅜㅜ 우리가 만들 유토피아는 아무리 그게 유토피아라도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 일거라고 뭔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02) ‘더 갖고 싶다고 바란 적은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좀 더 생산성이 좋아져서 과거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에너지를 덜 쏟아붓게 되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즐겁고 기쁨을 주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더 투입할 거예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여기까지는 마지 피어시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페미니즘 유토피아이고, (미래인들이 그리는 재생산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예술, 사랑, 연애, 노동과 죽음에 대한 태도도 즐겁게 읽었다. 절판된 책이긴 하지만, 구해서 읽어보면 좋을 듯.) 책을 읽는 나는 오오- 하면서 신났더랬다. 아, 그렇구나. 페미니즘이 그리는 미래는 이러하구나! 그 미래 왔으면 참 좋겠다!! 하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급진주의 문화페미니스들은 이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96)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의존하는 유일한 자원을 여성이 포기한다면 여성의 억압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지자 알 히브리는... 인공재생산은 남성들이 번식하기 위해 여성에게 ‘굴욕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게’ 한다. 즉 재생산 기술은 여성을 해방하기는커녕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재생산 기술은 남성들에게 여성의 참여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이부분 읽는 데........ 급 소름 돋았다.    
아, 그러네? 성적억압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재생산마저 여성의 일이 아니라면, 정말 여성은 대상화된 섹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아, 그것 마저도 성노동에 최적화된 레플리칸트가 대신할테니까.... 여성 쓸모가 없고, 그냥 사라지겠구나... 안녕, 여성이여. 우리는 이렇게 멸종할 종족이었구나, ... 굿빠이.... .... 
.......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감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지금에 빗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역시나 디스토피아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뭐 주절 주절 썼는데,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에 관해 아직 말해지지 않은 담론들 너무나 많고, 미래를 다 꿰뚫고 있는 것 같은 SF대작 영화들도 페미니즘을 흡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요즘 계속 나오는 것 같긴 한데, 부족해!! 그리고 납작해!!!!)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미 치열하게 논쟁하셨던 페미니스트들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읽고 있자니.
너무... 굉장해!! 대단해!!!

요지는,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많아서 어떡한담.
행복한 데.......
글쓰는 동안 월요일이 돼서 안행복해졌다.. 금새...


오지않은 미래는 다음에 걱정하고, 일단은 월요일의 노동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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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09-21 07:56   좋아요 1 | URL
리들리 스콧, 니가 임신에 대해 뭘알아!! 빼액!! 마지피어시의 소설은 도서관에서 교차대출로 겨우 구해 읽었어요. 소설속 미래인들이 상당히 목가적이고 평온해섴ㅋㅋㅋㅋ 좋았는 데, 그걸 현실 문법에 옮겨 놓으니 살벌한 주장이 되더라고요 ㅋㅋ (출산을 기계로 대체하자) 그것이 선택 가능하려면 ... 먼저 콘돔부터 잘쓰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멀리갈 필요 없다, 예, 뭐 그거죠. ㅋㅋ

2020-09-21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9-21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 너머의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네요. 맙소사, 2020년이라니...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이나 현재나 미래가, 내가 보기엔 서로 너무 비슷한거 같아요. 어차피 여자는 주인공이 아니고... ㅠㅠ
블레이드 러너부터 마지 피어시 소설까지 새롭게 읽고 갑니다. 읽는 맛의 대가 공쟝쟝님 출근 잘해요!!!!

공쟝쟝 2020-09-21 07:44   좋아요 0 | URL
83년의 인류는 2019년의 인류가 마스크쓰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며 sns를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듯해요 ㅋㅋㅋㅋㅋ 소유에 기반한 사랑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은 텍스트가 필요해졌어요. 단발님 추천해주세요~~~ 안토니아스라인 부터 봐야하나요??ㅋㅋㅋ

수이 2020-09-21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_ 읽어야지 했는데 쟝쟝님은 주말 쓩쓩 읽고 계셨군요. 오늘은 월요일, 그대는 이미 출근을 하고 있을지도...... 일교차 심한데 따뜻하게 잘 껴입고 나갔을까?! 감기 조심!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하면 되는데!! 걱정하지 말자요!

공쟝쟝 2020-09-21 08:00   좋아요 0 | URL
책은 작년 여름에 읽었는 데... 페교관에서 언급되길래.. 주말의 나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중국무협영화 두편을 보고ㅋㅋㅋ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열심히 읽다가 ㅋㅋㅋ 장강명 신간 에세이를 읽다가 ㅋㅋㅋ 급 비숲을 보고 밀린 문명특급을 보고ㅋㅋㅋㅋ 아침에 출근하려고 거울보니 눈알에 핏줄이 터져있었다..? ㅠㅠ (tmi 대방출ㅋㅋㅋ) 아 오늘부터 추석까지... 손꼽아..기다립니다...

비연 2020-09-2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조용히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오늘 출근도 홧팅..

공쟝쟝 2020-09-21 10:51   좋아요 0 | URL
출근해서 댓글 달기 시전중. 오늘부터 진짜 열심히 읽을거예욘.

다락방 2020-09-2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레이드 러너가 저런 거였어요? 뱀파이어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우리가 함께 읽은 책 [여자는 인질이다]에도 언급되잖아요. 저는 sf 잘 못읽어서 읽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미뤄뒀는데, 오늘 쟝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쟝님이 말한것처럼 정말 읽을 책이 많아요!! 언제 다 읽죠?

아무튼 남은 부분도 열심히 읽고 써요, 쟝님. 화이팅!

공쟝쟝 2020-09-21 10:58   좋아요 0 | URL
블레이드 러너..... 그러고 보니 이름만 봐서는 ㅋㅋㅋ 그런느낌이댜ㅋ 저는 공각기동대 이런거 좋아해서, 블레이드러너도 재밌었어요. 사실 2049를 제대로 보고 싶어 앞시리즈 부득불 보긴 했지만,,,, 의외로 재미써서 책도 읽어볼까 싶음...

맞아요, 시간의~는 여자는 인질이다 보면서 함께 읽었었어요. (아, 옛날이여. 왤케 까마득하게 느껴지죠?) 책을 읽다보면 점점 더 읽고 싶어져서 큰일이예요... ㅜㅜ 근데 또 너무 행복하고. 저 어제 깔깔거리면서(아는 부분 나올때마다 너무좋아서) 교차하는 페미니즘 읽다가.. 밤되서 놀랐잖아여..... 독서 행복해..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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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재료로 쓰는 유머는(아무리 자조라도) 이제 더는 웃기지 않다. 바라건대, 다음 책은 업데이트 해 주시길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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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졔졔 2020-09-1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살과 머리카락이야기가 또 나오나보군

공쟝쟝 2020-09-16 11:56   좋아요 0 | URL
대머리까지는 좋았어.. 엄청 웃었지ㅋㅋㅋㅋㅋㅋㅋㅋ 여전히 웃긴데 웃기려고 든 예시의 무리수가 점점...

비연 2020-09-16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역시 신문에서 가끔 보는 게 나은것인가요. 컬럼을 책으로 묶어 내면 늘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eBook]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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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좋다. 고단한 생계는 계속 따라붙겠지만,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그가 만들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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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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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읽고 생각해야지. 자존감이 핵 쪼그라 들었으니까. 폭풍을 뚫고, 10시 퇴근을 하면서 떠올린 것은 읽다만 김상욱의 물리책이었다. 우주를 생각하면 엄청 거대한 걸 생각하면, 비루한 하루가 아주아주 작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은 나를 양자 역학-작고작은 원자와 전자의 운동-으로 안내하였고...)

“(p.23) 138억년 전, 빛이 처음 생겨난 이후 우주는 팽창을 거듭했다. 빛은 점차 묽어지고 우주를 압도한 건 어둠이다. 어둠은 우주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으며, 어둠이 없는 비좁은 간극으로 가녀린 별빛이 달린다.”

어둠을 통과하고 있었다. 저저번주는 정말정말 극강 힘들었고 일주일에 두번 이틀 연속 눈물이 났고, 안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우울증이 돋을것 같아... 그래서 살짝 퇴사의 뜻을 내비쳤다가 잘해왔으니 좀더 버티라는 소리 듣고 ‘맞아 이시국에 답도 없지’ 급 철회했더란다. 그리고 저번주는 저저번주의 뜻을 내비친 댓가로 정말로 그럴거냐, 불편눈치가 보였고 (요즘은 모두가 퇴사를 원하므로 먼저하는 사람이 역적되는 암묵의 눈치게임 중이다...) 설상가상 월요일 부터 건물에 확진자가 생겨서 (한 층이 폐쇄되었지만 나는 정상 출근을 했다ㅠㅠ) 차라리 코로나에 걸리고 싶었다... (아프다는 구실로 회사를 그만둬도 후회없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7월 중순부터였다. 뭔가 100% 다쓰고, 20% 더짜내는 느낌.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잠을 설치자 업무하중이 더 심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은 ‘무한한 가능성(젊음의 특권...?)’이라고 곱게 포장되는 실은 무지 하염없는 삶의 선택지가 정리된다는 거다. 이제 중년을 향해가는 어엿한 어른으로서! 내가 하는 선택은 대체적으로 사지선다형도 아니고 O 아니면 X의 문제인데, 예를들면 출근을 할건가 말건가. O. 이미 하기로 했으면 버스인가 지하철인가. (자가용 없음. 택시비 없음. 전세기는 당연히 없음) 환승2번 버스-지하철. 과 같은 것들. 보통의 나는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만 고민한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으니까 안하고, 꼭 할 필요 없는 일이라면 해야만 하는 것들을 넘어서고 난 후에 한다.

이를테면 꼭 해야만 하는 출근 길에 그다지 내 인생에 필요는 없을 물리학 책을 읽는 달지. 현실과 밀접한 선택지에서 필요는 없지만 좋아하는 어떤 것을 끼워넣어 must를 변용하는 소소한 기쁨, 가능성 없는 으른의 삶, 나쁘지 않다. 책을 읽다 어떤 구절이 엄청 마음에 든다고 해서 뜬금없이 물리학자가 되겠어, 나사에 들어가겠어!! 가 아닌 응 그렇군 다음번에 해야하는 프로젝트는 루빅스 큐브를 이용해 보는 게 좋겠어, 김상욱 글이 좋은데 추석에는 알쓸신잡3를 봐볼까, 정도를 고민할 수 있는 건 정말 좋다. 만약 읽은 책에 압도되어 우주배경복사와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졌다면, 너무 힘들었을 거다. 암흑물질 너무 궁금한데 수포자가 이공계 대학 갈 수 있나요? 따위를 네이버에 묻고 있을 어린 나를 상상해본다. 다행이다, 증가하기만 한다는 엔트로피 덕에 내가 과거로 갈 수 없어서. 역시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 좋고, 선택지는 양자택일이 좋다.

“(p.112)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결국 형태를 이루는 경우의 수가 작은 상황에서 많은 상황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경우의 수’에 ‘엔트로피’라는 이상한 이름을 주면 열역한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라는 멋진 문장으로 바뀐다.”

OX의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나의 우울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더 버틸건지, 확 도망칠건지. 일상에 어떤 사고(accident)가 끼어들지 않고서 4지선다형의 상황에 도달하는 건 드물다. 그런데 지속적인 업무압박에 불안해서 잠을 설치는 사고가 생겼다. 안그래도 불안한데, 피곤하니까 더 불안해졌고, 드디어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는 순간 생각할 일이 사지선다가 되어 더 불안해져 버렸다. 도망친다면 그냥 막도망을 칠건지, 퇴로를 만들어 놓고 칠건지. 버틴다면 지금과 똑같이 버틸건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견디는 방법이 있기는 한지.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지니까-, 난 아무 생각없이 ‘3.똑같이 버티기’를 기꺼이 해 볼 요량이었다. 3번을 살면 벅찬 일상 중에 아주 포~도~시 물리학 책(정말 나와는 아-무-상관없는 데 그래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같은 걸 읽을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그 자유가 흔치 않아 더 달콤하게도 느껴졌더랬다. 그런데 정말 힘들다는 건, 읽을 시간이 생겨도 읽지 못한다는 것. 틈틈히 만들어놓은 일상의 숨쉴구멍들 틈으로 걱정과 불안들이 꽉 들어차서 숨쉬기가 더 어려워 진 다는 것.

그러고보면 도망치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하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 인생에 몇번의 도망침(그만 버티기)들이 있었는 데. 돌이켜보니 도망을 결단할 때의 나는 진짜 용감했고, 될대로 되라지 나는 나를 믿어(!) 자존감도 있었고, 어떤 말들을 튕겨낼 수 있는 기운도 있었던 것 같다. 이번의 도망에 대한 불타오르는 욕구.....를 봉쇄(?)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차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견딜만해서/견뎌야만해서’ 가 아니라 “그래도!!!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못.....해서 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 맞아. 생각해보니까. 난 그만한다는 말 되게 못하는 사람이었어. 그..그랬지. (되풀이 되는 버티기의 악몽이여)

왜 그만둔다는 말도 못하냐, 가슴을 치고 돌아와 도망의 선택지를 지웠다. OX의세계로 돌아 온 것이다. 주말에는 잠을 푹잤다. 움찔움찔 기미가 보이는 이내 찾아올 우울을 그냥 기다리기로했다. 모르지, 축 쳐져서 다니면 그냥 그만두라고 할지도? 도망의 권리마저 회사에게 넘겨버리자. 그렇게 맘을 먹었고 또 월요일이왔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업무압박도 야근도 가스라이팅도 여전한데, 그냥 정말로 괜찮아져 버린거다. 복잡한 생각을 안하게 되니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 빛과 물질. 가장 큰것과 가장 작은 것. 최소작용의 원리와 양자역학. 중력의 법칙 같은 것들. 그렇게 안 읽히던 것들이 잘도 읽혔다. 모르는 데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퇴근 후 제법 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집에와서 김상욱의 신간이 들어있는 책 택배상자를 뜯고, 고양이 발톱을 깎아주고, 355ml 맥주를 두캔 따라마셨다.

“(p.250)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 인 것은 우연이다.”

물리를 좋아하기로 했다.
해야할 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암 때고 도망가도 물리는 잡지 않을 거다.
못해도 상관없는 데, 의미마저 없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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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05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상평을 넘어선 진정한 과학에세이에 감동했어요! 힘내시구요, 즐건 주말되십시요!

공쟝쟝 2020-09-05 09:08   좋아요 1 | URL
진정한 과학을 1도 모르는 에세이지만, 일상을 잊는데 물리는 제격이었습니다! 즐거운 주발 보내세요~!

초딩 2020-09-05 0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데도 알 것 같다
떨림과 울림 만큼 마음에 드는 제목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0-09-05 09:11   좋아요 2 | URL
이 책의 제목이 제가 책을 집어드는 데 한몫했어요.. 역시 제목은 중요해~~~~~

2020-09-05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5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5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이 오랜만에 길고 길게 써줄 땐 늘 좋지만, 이렇게 힘들고 아프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ㅠㅠ 아침부터 넘넘 슬픔...떨리고 울림...이 책 나도 봤는데 역시나 기억이 안 나요 ㅋㅋ그런데도 김상욱님 과학공부책 이 책 보고 야심차게 양자공부책까지 샀어!!! 무용한 것에 비비대는 삶...도망치는 기준은 도망치고도 뒤도 안 돌아보고 침도 그쪽으로 안 뱉고 후회없다! 하면 당장 그곳을 나오시구... 빈 주머니와 비우지 못하는 장바구니 등등으로 결국 작은 후회라도 할 거 같으면 존버하는 겁니다...그래서 저는 존버,...존덴버...존버거...주말 푹 쉬고 조금조금 나아지길.

공쟝쟝 2020-09-05 09:16   좋아요 1 | URL
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어서 ㅠㅠㅠ 존저 존덴버 존버거.........
퇴로를 준비하고, 도망칠거야!!!!!!! 그땐 존버거도 읽을 겁니다.. 히히..

비연 2020-09-05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상욱님의 책을 또 사야 하나... 쟝쟝님이 물리에 관심을 가진다니 왜 이리 기쁜지.

공쟝쟝 2020-09-05 09:17   좋아요 1 | URL
독서 느무 좋아요. 과학책 애송이가 비연님께 의지하며, 아는 기쁨을 누려볼것입니다!

2020-09-05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3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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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읽지 않는 장식용 책들로 가득하다. 그냥, 너무 장식용 책들이라서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 날은 뭐라도 빼들고 가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무의미했다. 정확히는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툭 치거나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입자들처럼 남김없이 흩어지고 싶은 아주 늦은 저녁의 퇴근 길.

“(p.38) 먼지. ... 작고 쓸모없는 물질, 청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덧없이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형태. ... 한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날리며 지금껏 나는 살아왔으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할 때 마다 세상 곳곳을 누비는 먼지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으니까.”

단순한 제목의 단순한 표지. 소설의 시작은 무심하고 물끄러미 흘러갔다. 나 역시 무감각하게 읽기 시작했다. 더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기 싫을 때는 역시 누군가가 안내하는 이야기가 최고지 하면서.

“(p.43) 파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데도 노파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그러고 보면 나는 시시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왔다. ‘꽤나’라는 부사는 나 자신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애써왔으니까. 이따금 견딜수 없어지는 것은, 계속 애써야 하니까. 너무 바빠 혹은 너무 힘에 부쳐 정신 줄을 놓고 싶은 순간에,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그래도’를 꼭 마음 한켠에 품고 사니까. 숨막혀 하면서도 숨쉴 구멍 하나를 머릿속에 만들고 있을 때 나의 표정은 살아있기 보다는 정물같은 모습일 것이다. 매일 아침의 지하철에서 나는 그런 정물에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을 곰곰이 뜯어보기도 했었더랬지. 요즘은 꽉 낀 마스크 때문에 그 조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정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까. 아무리 표정이 없어도, 내가 알아챌 수 없다고 해도. 그러니까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내 고통이 아주아주 크다고 해서 쉽게 단정짓지는 말아야할. 누군가의 삶. 곡진한. (아직은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p.176) 이제 내게 추연희 라는 이름은 복희 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 생, 백복희의 두 번째 엄마.....”

사람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온기를 지닌 존재라는 건. 너무도 구체적이고 복잡한 궤적의 총체라 쉽게 알려하거나 품으려 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아직 나 자신도 모르잖아, 나 하나로도 이렇게 벅차잖아. 하면서. 여전히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퇴근길 꼬박, 늦은 밤 꼬박. 길지 않은 소설을 몰입해서 읽고 “사느라 살아내느라 너무 고생한” 한(혹은 여럿) 여성의 삶과 이별하며 정말 많이 울었다. (울고 싶어서 소설을 이용한 것인가.... ) 이 눈물의 의미는 뭔가, 생각하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여적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가 아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그냥 나도 덜 힘들고, 너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끝에 매달리는 나약한 나에 대한 불신의 마음. 완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기는 힘들겠다는 마음까지도.

내가 이렇게 치사해 엉엉.

그렇게 울고 나니까 그래도 쪼금은 더 잘 살고 싶어지더라. 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방법은 생각안나지만 누군가를 사랑은 못해도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그랬다. 그래, 나는 먼지가 될 것이고 언제고 암흑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고생이고, 이,그,저 고생하다 헤집어진 마음의 상처에 단정하지도 않은 짧은 댓글을 다는 것 말고는 맞서는 방법을 모르는 나이긴 하지만. 얼른 단단해져서, 조금은 더 강해져서, 스스로 믿는 구석이 손톱만큼이라도 생겼을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허락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 한 조각은 내어주자고.
그냥, 계산 없이, 단순하게.
가능한 만큼만, 진심으로.

시시 때때로 비릿한 냉소가 올라오긴 하지만, 난 역시 착하고 따뜻한 게 좋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위선보다는 진짜로 선한게.
그리고 기왕 선할거면 너무 무르기보단 적당히 단단했으면 좋겠어.
물론 단단함이 선함을 압도하면 안되지.
적당히 무른 단단함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 으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너무 쉽게 살지는 말자.

그러다 사는 게 너무 어렵고 아파지면,
어렵지 않고 착한 소설 한편 읽고 울다 자야지.
그런 날 읽기 맞춤했던 좋은 소설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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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ex 2020-09-0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심 / 조해진 지음˝ 읽으란 얘기인지, 말란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독후감‘과 ‘외로움‘이 겹쳐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서 읽어도 될까요?

공쟝쟝 2020-09-07 18:21   좋아요 0 | URL
사서 읽으셔도 되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