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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그러니까, 나는.
데미안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십대시절의 어느 날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는(아, 데미안이야 말로 성장고전의 고전아닌가), 그시절 그토록 많은 만화책을 읽었음에도 최애 만화는 슬램덩크(천재 강백호는 매 경기마다 성장한다)와 필소굿(이 시리즈야 말로 모든 인물이 다 성장하는 사춘기시절에 가장 사랑한 이야기다)인 나는, 드라마 <학교>의 대본이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고 대놓고 ‘성장 드라마’였던 <반올림>을 보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세월이 흘러 마블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가 누구냐 묻는다면 언제나 진심을 다해 <스파이더 맨>이라 외치는(역시 피터파커가 철들어가는 모습이 좋달까) 나로 자라나 버렸고... 그 기이한 취향을 버리지 못해 아직도 ‘나이 어린’ 주인공이 여차저차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에 매우 깊게 치이는 편인데... 이게 영화 쪽으로 가면 편력이 더 심해져서 생각난 김에 비슷한 종류를 묶어서 적어보기로 한다.
🎞순서는 의식의 흐름대로..
* GO(스기하라가 성장하는 영화다) /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한 영화겠지만 여하튼 쿠노라도 성장한다고 생각하자) / 노다메 칸타빌레 (참 어릴 때 일본 영화ㆍ드라마 많이 봤다, 그치? 노다메쨩과 치아키 센빠이가 성장한다) / 굿윌 헌팅(맷데이먼이 성장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펑펑~) / 콜미바이유어네임 (티모시샬라메가 성장한다) / 완득이(유아인이 성장한다) / 동주(강하늘이 성장한다) / 빌리 엘리어트(이역시 성장분야의 고전 아니겠는가, 빌리가 성장한다) / 보이후드(는 정말로 레알로 주인공이 성장합니다) / 플립(남주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뼈아프게 성장해버리는 소녀 줄리...) / 위플래시(내 손이 다 아픈, 성장이 얼마나 개같은지 보여주는 반성장서사 같지만 그래서 더 제대로 찐인 성장서사다) / 레이디 버드(소녀의 성장서사에는 치명적인 남주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티모시라던지, 샬라메라던지ㅎㅎ) / 프란시스 하(내 프사이기도 하고 철부지 뉴요커 주인공이 뒤늦게 철드는 영화다) / 벌새(근래에 본 성장영화중 가장 좋았다)*
를 적고 보니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이란... 🤔
넷플릭스도 이것저것 많이 보긴 했지만 역시 최애를 꼽는다면 <빨강머리 앤><오티스의 비밀상담소(섹듀케이션)><빌어먹을 세상따위>입니다.... -_-; (번외로 킹덤)
조건이 있는 듯 하다 (조건 분석중) 🤖
1. 교복입고 등장한다 (안입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10대 중반~20대 초반이다)
2. 주로 주인공이 남자이고 세상과 대결 혹은 불화한다 (이건 지금까지 만들어진 대중매체 속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대부분 소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소위 하이틴물의 여주인공은 로맨틱 코미디로만 소비되는 듯.. 그런 의미에서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 벌새의 여주인공들은 확실히 다르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갑자기 또 빡치기 시작한다. 세상과 대결하는 소녀들 이야기가 판치길 바란다.)
3. 로맨스인 경우에도 성장이 중심, 로맨스는 양념이어야 하며 깨발랄 미국계 하이틴(cf. 내.사.모.남)보다는 살짝 다크한 영국계 하이틴(cf. 빌.세.따)을 선호한다.
..왜 때문인가. 대체 왜...? 나는 나이가 반칠십이 되어서도 교복입은 애들이 좌충우돌 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가. 좀 창피한 걸 알아도 어쩔 수가 없이 매료되어 버리는 겐가....이것은 일종의 피터팬 콤플렉스 뭐 그런건가?(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온 생을 걸고 노오력하여 교훈을 찾아내 성장하고 성공하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영향인가?(라고 말하기엔 읽은 자기계발서가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암튼 그런게 대세이던 시절을 살긴 살았다, 내가) 그냥 철이 덜들어서 인가?(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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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노멀피플> 읽다가 오랜만에 심장이 찌릿해서 혼쭐이 났습니다.
아주. (네, 이 글은 노멀피플 리뷰입니다.)
일단 1. 주인공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2. 코넬과 메리앤이 주인공인데, 내가 감정이입한 사람은 이번에도 여주인 메리앤이 아니라 남주인 코넬이었다. 3. 그러고 보니 영국계 소설이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워떻게 써도 나의 취향저격 일 수 밖에 없는 장르로..
다 읽은 이 시점에서는 ⭐️별 다섯개가⭐️결코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드라마로 나왔다고 해서 볼까 했는데... 돌아다니는 짤의 남주가 너무 번듯하게 생겨서 안보기로 꽝꽝! 이미 다 커버린 느낌이랄까. 자고로 성장영화의 소년은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처럼 생겨야 한다. <빨간머리 앤>의 길버트가 최근의 좋은 예이다. 건강한 미래로 가기 위해 부단히 자라나야할 과제가 느껴지는 작지만 똘람똘람한 얼굴이랄까. 근데 노멀피플 주인공은 똘람하기에는 너무 떡대가 좋았다.. 적어도 섹듀케의 오티스나 빌세따의 제임스처럼 유약하게(!!) 생겼거나, 얼굴에 기스가 났거나... 하다 못해 메리야스라도 입고 있었어야 했다.
빌리 - 스기하라 - 치아키센빠
오티스 - 제임스 - 길버트 - 티모시
모아놓고 보니, 새삼 취향의 일관성 대단하다.
한국계에는 (생긴걸로만)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
가난한 김수현, 조신하게 밥짓는 현빈, 짠내나게 우는 강하늘, 쳐맞은 이제훈, 죽을날 받아놓은 강동원...
와씨, 내가 써놓고도 웃겨죽겠네 ㅋㅋ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ㅋㅋㅋ (너무 열심히 사진 찾다가 급 현타옴)
또 까먹을 뻔 했는데, 난 노멀피플 독후감을 쓰려고 오랜만에 글쓰기 앱을 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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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아싸 소녀 메리앤(은 부자다)과 어디서든 사랑받는 것만 같은 학교의 인싸소년 코넬(은 가난한 편). 둘은 썸을 타다 눈이 맞아 섹스파트너가 된다. 암요, 밀레니얼 세대는 먼저 자야지 사랑도 된다는 것이 중론(인 거?). 선잠후럽...
“(83) 결국에는 그녀를 가엾게 여겼지만, 그녀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그녀와 섹스를 했고, 그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녀에 대해서보다는, 아마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일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평범한 인싸 소년은 학교의 어두운 아싸 소녀와 섹스 파트너가 되었는가. “(61)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알았지?” 불과 20페이지 전에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것도! 침대에서!!!), 왜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잤다는 걸 숨기는가. (그렇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건 또 아니지만;) 어쨌든 소설의 초반에 코넬은 둘의 사이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그런 태도는 당연히 메리앤에게 상처를 주지만, 어쩌겠는가? 그 나이 때는 또래 사이에서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 나는 코넬을 십분 이해했다. 작가가 친절하게도 설명해주는 이부분의 포인트는 번듯해보이는 코넬이 어딘가 불안하고 뒤틀린 메리앤에게 대책없이 끌린다는 것이다.
평범한 세계에 속한 코넬이 비슷한 결은 아닌 게 분명한 메리앤에게 홀랑 투항해버리는 순간을 다시 읽어본다.
“(60-61) 너는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겠지? 그녀가 묻는다.맙소사, 당연히 아니지. 왜 그런 걸 물어봐?
그냥.
내가 여자들이나 때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 같아?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더욱 깊이 파묻는다. 우리 아빠는 엄마를 때렸어. 코넬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이내 그가 입을 연다. 세상에. 미안해. 몰랐어. 괜찮아.
아버지가 너를 때린 적도 있어?
가끔.
코넬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한다.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알았지? 절대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는 너 때문에 정말 행복해.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이야. 그녀는 다시 눈물이 가득 차올라 두 눈을 감는다. 그녀는 심지어 훗날 기억 속에서도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든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처음으로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
나쁜 코넬새끼. 이래 놓고, 나중에 메리앤을 생까??라고 썼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을 남자 주인공인 코넬의 시점으로 읽었다(그가 넉넉한 집안이 아니라는 지점 때문이지 싶다).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여자 주인공에게 이입할 법도 한데, 여기서도 나는 코넬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다음에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라고 까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받는 사랑에는 연연하지 않는 편),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개 연민의 순간이었으므로(이부분은 나 자신에게 가장 짜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코넬을 이해한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 아껴주고 싶은 마음, 누군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내보일 때 어쩐지 무장해제 당해 버리는 마음, 구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식으로 한 사람에게 정말로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정도인 것이고, 대상에게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이 보이면 어쩐지 입을 다물게 되거나 뒷걸음질 치게 되는 비겁한 마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소년의 뒷걸음질이 보호본능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따위’였던 것에 대해서는 살짝 비난하고 싶지만 그게 용서가 되는 나이였기도 하고, 20페이지 뒤에서 코넬은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 후 20페이지 뒤에서는 진심으로 메리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느꼈다). 코넬이 사과할줄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용서해준 메리앤이 더 훌륭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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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그녀가 옆에와서 앉자 그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는 불현듯 그가 그녀의 얼굴을 때릴 수도 있고, 그것도 아주 세게 때릴 수도 있고, 그러면 그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거라는 소름끼치는 느낌이 든다. 그 생각에 그는 몹시 놀라서 의자를 홱 밀치며 일어선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는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에 그는 토할 것 같다.
왜그래? 그녀가 묻는다.
그는 손가락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미안해.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그런거 아니야. 미안, 그냥 기분이 좀 이상했어…… 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일어서라고 하면 그녀는 일어설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때때로 상대방이 가진 취약함을 파고들어 힐난하는 형태로 상처줄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 지금 이 순간, 관계에서의 권력이 나에게 있구나를 미세하게 인식할 때.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내가 얼마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지 퍼뜩 깨달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생겨버리는 죄의식에 대해 표현된 저 구절에서 - 나 역시 코넬처럼 약간의 공황을 느끼면서 아득해졌다.
정말 모처럼 저작근이 뻐근해져버렸다고! 살짝 턱이 떨리는 이 느낌, 너무 오랫만이어서 지금 내가 이 장면에서 엄청시리 슬프구나 싶었다. 이 공감, 무엇. 샐리루니 천재. 이게 말로만 듣던, 프레카리아트의 샐린저이며, 더블린의 제인 오스틴의 문장력인 것입니까? 작가에게 따라붙는 유난스러운 상찬에 수긍하게 되던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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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코넬은 느닷없이 궁지에 몰렸음을 느끼고, 방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침묵에 잠겼다. 헬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녀의 가치관이 얼마나 구식인지 이따금 잊어버리곤 했다. 잠시 후 그는 거북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메리앤은 내 친구야, 알겠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마. 헬렌은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팔짱을 낀 팔을 가슴팍 위로 더 높이 치켜들었다. (...) 코넬은 자신의 여러 측면 중 헬렌과 잘 맞는 면들이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실성,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관점, 좋은 남자로 여겨지고 싶은 욕망 등등이다. 헬렌과 함께 있으면, 그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고, 섹스를 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도 없으며,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결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끈질기게 따라붙지도 않는다. 메리앤은 한동안 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던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그녀와 비슷하고, 그들에게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똑같은 정신적 상처가 있으며, 둘 다 결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녀처럼 망가져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뿐이었다.”
이 부분은 사적인 경험으로 인해서 더 공감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있고, 나 역시 그가 속한 세계에서 번듯하게 웃으며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더 옹호하고 싶고 - 결국 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인 대화를 하면서 - 동시에 나는 내가 옹호하는 친구들과도 완벽히 같지는 않다는 것, 마치 그와 나의 간격만큼, 벌어진. 그 틈을 알게 되었을 때, 양 쪽 모두에 대해 느끼는 외로움과 마치 양자택일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관계의 난해함.
그런데 헬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코넬-헬렌을 은근 지지하긴 했지만(그렇게 되면 코넬은 속편하게 살 것 같았다), 코넬은 절대 헬렌과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도 했다. 시작은 그가 메리앤의 조언에 따라 트리니티 대학에 지원한 지점 부터라고 생각한다. 메리앤이 코넬을 알아본 것이다.
그 때, 망가진 너는 나의 아픈 부분은 알아보았고, 나는 내 통증을 알아보는 너에게 몹시 끌리는 내가 무서웠고, 망가진 것과 아픈 것은 다르다는 것 역시도 분명히 알 수 있었지. 그러나 망가진 네가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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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지만 너무 스포일러 같아서 패스~ 책을 덮고 결말까지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이거.... 내가 딱 좋아하는 성장서사야.... 하앍... (허우적 허우적) 그러니까, 뒤틀리고(메리앤) 취약한(코넬) 주인공들이 만나 지지고 볶고 애를 쓰다가 서로의 약점이 막 시너지가 되어가지고 아주 아주 어렵게 어렵게~ 겨우~겨우~ 일인분의 몫을 습득하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성장서사 성애자인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아오, 그게 찐 성장이라고!!!
현실에서 믿고 따르고 존경할만한 어른 그딴거 없고(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래서 영화에 그런 어른 나올때 마다 주먹 씹어가며 막 퍼우는 데, 울면서 우는 내가 싫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뒤틀린 부분 하나 없이 밝고 명랑한 핵인싸로 좋은게 좋은거지 살고 있다는 거 그게 성장이 멈춘 인간이라는 증거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서 얻는게 성공이 아니라 겨우 한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은 굉장한 비극이긴 하지만, 어쩌겠니. 태어나버렸는 데... ㅜㅜ (삶이라는 지독한 형벌이여..)
그르니까... 애들아, (위에 적어둔 사랑했던 모든 성장서사의 주인공들에게💌)
알아서 잘 살겠지만 부디 훌륭한 어른까진 되려 하지말고 딱 1인분의 삶만 어찌어찌 잘살아가보자. 잘 크고 있는 거야, 니네. 토닥토닥. (p.s. 이건 비밀인데, 내가 나이 반 칠십에 겨우겨우 일인분을 살고 있거덩. 이게 아직까지도 성장서사를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이란다. 부디.. 이 비결을 내 나이 때의 너희는 모르고 살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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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밀레니얼의 연애 이야기라 들었다. 느슨하게 잡으면 나도 밀레니얼 세대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1도 힘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예전에는 김삼순 같은 씩씩한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는 데(최근에 만난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런온>의 오미주가 있다), 딱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니- 맑고, 또렷하고, 분명하고, 도덕적이고, 옹골찬 내면과 자아를 가진 주인공들에 예전처럼 매료되지 않는다. 물론 필요하고, 드라마로라도 보면서 박카스 마신 것 같은 피로회복을 느끼지만, 왜지? 요즘의 나는 개망나니 같은 주인공들에게만 홀딱 빠져버린다...
최근에는 그게 <빌.세.따>의 주인공들이었고(이 도라이들에 비하면 코넬과 메리앤은 세상 양반이다...), 특별히 넷플릭스 <앤>의 시즌 중 가장 좋아하는 편은 너무 말이 많아서 귀가 터져버릴 것 같은 시즌1의 앤 셜리 커스버트이며, <섹듀케이션>을 떠올리면 자위를 알아버린 에이미와 섹스로 머리가 가득찬 릴리만 떠오르는 것이다. (애들아 잘 지내니..? 행복한 성생활 하고 있지...?) 이런 내가 이상한거야? 그랬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뇌과학’으로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비밀 분석하는 매우 재밌는 책(‘이야기의 탄생’이다)이 말해주기를 “(84)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라고 한다.
네, 제 뇌가 결함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제가 결함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원래 그렇다는 군요? 🧠🙄
특별히 아직 청소년인 개망나니들에게 더더 끌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 세상의 생겨먹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버려서 인 것도 같다. 냉턱없는 위악을 떨어도- 그게 다 발버둥 같아서- 걔들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진짜로는 하나도 밉지가 않으니까. (사실 정말 미운 것은 엉망인 세상에서 망나니 아닌 척 하며 점잔 뺄 수 있는 어른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어른이 되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그러나 결국은 그저 그런(normal) 어른이 되고마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서사를 사랑할 것 같다고.
그르게.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요 전날 밤 메리앤이 그에게 어른스럽게 잘 자란 것처럼 보인다고, 그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고 말한 뒤로, 그는 부지불식간에 종종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떠올리면 기분 좋은 말이었다. 너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너를 좋아해. 정말 그 말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확인해보려고,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다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가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 P65
내가 너한테 했던 모든 말에 죄책감이 들어. 코넬이 덧붙였다. 만일 누군가한테 들키면 상황이 안 좋을 거라고 한 것도.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강렬했어. 사실 애들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나 혼자 불안감에 시달렸어.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감을 너에게 투사했던 것 같아. 그게 말이 된다면 말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도 왜 내가 그렇게 정신이 나간 것 처럼 행동했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 그녀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가 너무 세게 맞잡아서 손이 아플지경이었지만, 그의 이런 필사적인 몸짓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용서해줄게. 고마워. 그 일로 깨달은 게 많아. 그리고 내 희망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변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변했다면, 그건 너로 인해서야. - P117
코넬은 사실 지금껏 자신이 특별하다고 확신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그에게 장학금은 난데없이 나타난 으리으리한 유람선처럼, 거대한 물질적 사실이다. 이제 그는 원하기만 하면 무료로 대학원 과정을 밟을수도 있고, 더블린에서 무료로 거주할 수도 있으며, 대학을 마칠 때까지 결코 다시는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갑작스럽게 빈에서 페르메이르의 회화 예술을 보며 오후를 보낼 수도 있고, 날씨가 더우면 값싸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사 마실 수도 있다. 마치 그가 지금껏 채색된 무대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온 것이 진짜 풍경이라고 밝혀진 기분이다. 외국의 도시들은 진짜고, 유명한 예술품, 지하철 시스템,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잔존물도 진짜다.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은 돈이다. 돈에는 무언가 너무나 부도덕하고 섹시한 데가 있다. - P199
그때쯤 코넬은 너무 기진맥진하고 비참해서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했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거나 공황 발작이 일어났지만, 그런 상황은 그의 내부 어딘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외부에서 불시에 그를 덮치는 것 같았다. 내적으로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겉은 너무 빨리 해동되어서 줄줄 녹고 있는 반면, 속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냉동식품 같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더 무뎌져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P264
그는 자신이 너무 빠르고 장황하게 말하고 있다고 느끼며 숨을 들이마시지만 중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캐릭클리를 떠났는데, 여기가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도 없고요. 그 우정이 다 사라지고 없으니까요. 롭은 가고 없어요. 나는 다시 롭을 볼 수 없고, 다시는 그 삶을 되찾지 못할 거예요. 이본이 테이블 위의 티슈 케이스를 그를 향해 밀어준다. 그는 야자나무 잎사귀 무늬가 찍힌 그 케이스를 바라본다음, 다시 이본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만져보고야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말없이 화장지를 뽑아 얼굴을 닦는다. 죄송해요. 그가 말한다. - P267
메리앤은 다시 한 번, 잔인한 짓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어쩌면 가해자에게도 더 깊고 더 영구적인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괴롭힘을 당할 때만 자신에 대해 통찰력 있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법이다. - P277
작년 여름에 그녀는 처음으로 코넬의 소설들 중 하나를 읽었다. …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가장 사적인 생각들을 목격한다는 기분에 이루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 자신만의 어떤 복잡한 일, 그러니까 그녀는 결코 동참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녀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물론, 세이디 역시 딱히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세이디는 자신만의 내밀한 상상 속 삶이 있는 작가다. 반면 메리앤의 삶은 순전히 실재하는 개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만 펼쳐진다. 그녀는 코넬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알기 쉬운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는 그녀에게 없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내면의 삶 말이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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