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열심히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제가아는 지식이 짧다보니,
그냥 읽을수만은 없었지요,
음 역사소솔은 아는것이 그리 많지 앟아서 그것도 일본,,
그래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도 만화책이라 아주 편안하게 읽을수 있었어요,,
재미있네요,,역사소설도 재미있을것 같아요,,
(네이버에서 퍼온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 1542.12.26~1616.4.17]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일본인으로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을 재통일한 인물이며 에도막부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 땅에 소개되고 있다.
이 덕천가강이 이루어 놓은 일본의 세계를 잘 가꾸어 나간 것은 그들의 후손들 즉 에도막부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다. 모두 이 선조가 남겨준 정치적 권력을 잘 이용하여 평화를 유지시켜 나감으로서 오늘날 일본이 남겨지도록 한 것은 모두 에도막부 권력자의 덕이라 할 수 있다.
일설이지만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란 직책은 덕천가강이 족보를 위조하여 받아낸 약간 오버한 느낌이 드는 작위였다.
즉 고대 왕족의 후손이었던 자가 아니면 이 작위를 얻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출신가문이 딸려서 관백(關佰)이란 명칭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덕천가강은 용케도 자신 가문의 족보위조를 통해 자손들에게 장군직을 세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장군직 세습을 위해 고도의 수법까지 동원해서 가문을 운용하도록 고안해 놓았다.
원래 도쿠가와(德川)가문의 성은 마쓰다이라(松平)로 가강의 조부인 청강(淸康)과 부친 광충(廣忠)이 이 성을 사용했다. 덕천가강은 죽을 때 아들 9명에게 성을 나누어 주었는데
아들들을 살펴보면 4명의 아들에게 도쿠가와로, 나머지 아들들은 그대로 마쓰다이라를 쓰도록 했다.
장남 신강(信康) 전쟁 중 사망(요절)
차남 수강(秀康) - 松平 越前家
삼남 수충(秀忠 : 2代 將軍) 正統(정통), 양자 8대 吉宗의 대에서 2개 分家
사남 충길(忠吉) - 松平
오남 신길(信吉) - 松平
육남 충휘(忠輝) - 松平
칠남 의직(義直) - 德川 尾張家(오와리)
팔남 뢰선(賴宣) - 德川 紀伊家(기슈)
구남 뢰방(賴房) - 德川 水戶家(미즈에)
도쿠가와 집안이 이렇게 분리된 것은 바로 장군직 세습 때문에 고려된 고도의 정치계산 때문이었다.
즉 정통인 삼남 수충의 가문이 아들이 없어 단절되면 바로 이들 보조적인 세 가문에서 양자(養子)를 들여 계속 세습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며 이들 칠남, 팔남, 구남의 가문, 세 가문을 御三家(고산케)라 부른다.
과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들이 하나 뿐이라 그가 죽자마자 단절되어버리는 그 선례를 보고는 자신은 자식을 많이 낳아 각 지역의 다이묘(大名)로 내보내 가문을 보존하게 한 후 중앙의 쇼군 대가 단절되면 이 정통을 보조하는 식으로 해서 자기 자손들이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복안을 가지고 가문을 쪼갠 것이었다.
물론 나머지 마쓰다이라를 쓰는 자손들은 그 쇼군 습작에 대한 권리를 얻지 못하지만 각 지역으로 다이묘로 내보내서 자기의 후손들이 여러 곳에서 단절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려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관서지방에 영지를 획득했다.
특히 삼남의 정통이 단절될 때 제1의 보조가문으로 지목한 것은 칠남 의직의 가문인데 쇼군만큼 영지를 내어주어 영지 크기 면에서 제2인자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문은 보조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머지 작은 보조가문 2곳에서 쇼군이 배출되었다.
아마 尾張家가 너무 강성하자 피해서 작은 가문에서 양자를 배출한 것이었다. 팔남 기슈家에서 8대와 14대 쇼군이, 구남 미즈에家에서 마지막 15대 쇼군이 배출되었다. 그 외에는 삼남인 정통 쇼군집안 출신이다.
에도막부의 쇼군은 왕정복고 이전에 모두 15명이 배출되었다.
15명의 이름을 들면
1대 家康(이에야쓰:1603~160)
2대 秀忠(히데타다:1605~1623) 이에야쓰의 삼남
3대 家光(이에미츠:1623~1651) 히데타다의 장남
4대 家綱(이에츠나:1651~1680) 이에미츠의 장남
5대 綱吉(츠나요시:1680~1709) 이에미츠의 아들, 이에츠나의 동생으로 양자가 됨
6대 家宣(이에노부:1709~1712) 츠나요시의 조카, 생부는 甲府大名 綱重, 양자
7대 家繼(이에츠구:1712~1716) 이에노부의 아들
8대 吉宗(요시무네:1716~1745) 기슈家 출신, 이에츠구의 양자가 됨, 中興의 쇼군
9대 家重(이에시게:1745~1760) 요시무네의 아들
10대 家治(이에하루:1760~1786) 이에시게의 장남
11대 家齊(이에나리:1786~1837) 이에하루의 양자, 원래 히토츠바시(一橋)출신, 生 28男27女로 자녀 대부분을 각 지역 다이묘의 양자로 보냄
12대 家慶(이에요시:1837~1853) 이에나리의 차남
13대 家定(이에사다:1853~1858) 이에요시의 사남
14대 家茂(이에모치:1858~1866) 방계 기슈家 출신, 이에사다의 양자
15대 慶喜(요시노부:1866~1867) 이에모치의 양자, 원래 히토츠바시(一橋)출신
※ 정통 8대 쇼군인 요시무네의 두 명의 아들인 宗武(田安家)와 宗尹(一橋家)가 다시 분가되어 나가는데 一橋家에서 11대와 15대 쇼군이 배출
1606년 막부가 열린 후 1867년 왕정복고로 권력을 내놓을 때까지 에도막부는 덕천가강이 의도했던 그대로 자신의 후손들이 260여 년간 지속적으로 쇼군으로서 일본을 통치를 해 나갈 수 있었다.
왕정복고 이후에도 최고의 명문귀족으로 공작(公爵)칭호를 받았고, 오늘날에도 왕실배우자 후보 1순위는 대부분 이 가문 여성을 대상으로 물색하곤 했다고 한다.
여전히 명문이긴 명문인가보다.
(백과 사전)
아명 다케치요[竹千代]. 미카와[三河]의 오카자키[岡崎]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廣忠]의 장남.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동맹을 맺고 그의 힘을 빌려 스루가[駿河] ·도토미[遠江] ·미카와를 영유함으로써 동해 지방에 일대세력을 구축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1600년 세키가하라[關ケ原]전투에서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같은 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되고 에도에 막부를 개설, 패자(覇者)로서의 지위를 합법화하였다. 1614∼1615년 두 차례에 걸쳐 오사카[大阪]전투를 일으켜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賴]를 중심으로 한 도요토미의 잔당을 완전히 멸망시켜 대망의 천하통일을 완성하였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여러 가지 정책을 수행하여 일본 근세 봉건제사회를 확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