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깍두기 > 묘한 고양이 쿠로

 

 

 

 

 

저는 말이죠, 사람이 유치찬란해서 말이에요,

이렇게 빨주노초파남보로 세트가 구성되어 있으면 왜 이리 좋은지 모릅니다.

6권은 분홍색 ㅎㅎㅎ 아주 좋아요.

책꽂이에 주루루 꽂아놓으면 괜히 뿌듯한 기분입니다.

아, 물론 이 책은 아주 재미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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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nnerist > 매너, 19단 열풍에 광분하다.

"야, 이 씨뻐꾸야."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선배는 매너가 뻘짓을 할 때 마다 내 등짝을 아프지 않게 후려갈기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그 선배와 소원해진 지금까지도 저게 무슨 뜻인지 아직 매너는 잘 모른다. 그저 입에 적당히 달라붙는 밉지 않는 비속어 중 하나일 뿐이다.

사무실에서는 세종로 근처에서 대규모 호텔 관광업을 하며 부업으로 찌라시를 팔아쳐먹는 몰지각한 이익집단 - 이 표현도 매너 많이 자제한 거다 - 의 종이뭉치 두 부가 매일 배달되온다. 쳐다보지도 않는 그 종이뭉치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는 점심밥 먹을 때 사무실 탁자에 '어제의 정보'가 '오늘의 자원'으로 재활용될 때이다. 어제 점심삼아 돼지머리 국밥을 꾸역꾸역 밀어넣던 매너, 재수없게 눈을 잘못 깔아 지랄같은 굵은 글자와 눈이 마주쳤다. "인도 조기 수학교육이 랄지랄지... 19단을 줄줄줄..."

그러고보니 지난 달 아침을 먹다 흘러나온 아침방송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19단 외우기 열풍이 분다는 이야기를 호들갑스럽게 전하는 리포터들을 보고 입맛이 상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진도 남들보다 빨리 나가는 것을 지자식이 남들보다 공부 잘 하는 것으로 자주 헷갈리는 강남의 덜 떨어진 학부모들의 호들갑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맞장구치는것인갑다 했는데, 300만부나 종이자원을 낭비하는 찌라시에 저런 글자까지 찍혀나오는 걸 보니 이거 만만한 일은 아닌갑다. 생각난김에 웹 검색엔진에서 '19단'을 긁어보니 별의 별 호들갑스런 이야기들이 죽죽 흘러나온다. 민물매운탕 잘 밀어넣은 속이 쓰려올려고한다. 아 저 19단 타령 읆어대는 저 씨뻐꾸들을 어이한단 말인가.

 

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공돌이들의 썰렁한 농담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아보자. 미분나라 적분나라의 처절한 전쟁 이야기에 버금가는 공대 비전 유머, 공대 1학년과 공대 4학년의 차이점; 공대 새내기에게 두 자리수 곱셈을 물어보면 3초 안에 대답한다. 83 * 47이 뭐냐 물으면 머릿속 순두부 잠깐 데우는 것 만으로도 3901! 이라고 외치는 절정의 암산 능력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갈고 닦은 장하다! 공대 새내기! 버뜨 그러나. 공대 4학년에게  1 + 1을 물어보면? 숫자놀음에 찌들은 공돌이들, 계산기를 꺼내어 두드리고 자신있게 '2!'라고 외친 다음에 "아 씨바. 내 대XX병신됐구나" 좌절한다.

거짓말같다구? 멀리 갈 필요 없다. 작년 기사 시험 준비하던 매너, 64 +36 을 계산기로 두드리고 나타난 황당한 결과에, 잠시 3분간 매너 머릿속 순두부를 위해 묵념 올린 적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던 시절, 나름대로 수학 잘 한단 소리 듣고 살던 매너, 이게 사람 대XX가 하구 말이다. OTZ...

물어보자. 그렇다면 공대 4학년이 새내기만 못하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새내기만도 못한 공돌이들 대다수가 10조 순익을 낸 삼성전자, 기타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이런저런 곳에서 대접받고 멋지게 일하고 있단 것만 짚고 넘어가자.

뭔 소리냐고? 일정 레벨 이상, 실제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영역의 수리 영역에서, 단순 계산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는 이야기다. 이해가 안가신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매너가 관심있게 공부하던 영역에서 6000 * 6000 크기의 행렬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셀 안을 채우는 숫자들은 보통 네자리. 이녀석들을 가지고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가 나온다. 중요한 건 저녀석들을 어이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내느냐 하는 논리적 사고와 오차에 대한 감각(이것 역시 수치해석이란 녀석으로 해결 가능하다)이 중요한 거지, 그 계산 과정을 사람 머리론 할 짓이 못 된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고등학교만 졸업해 봐라. 과연 암산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를 얼마나 접하게 되는지. 모든 공돌이들의 동반자 공수의 미방 예제부터가 소수점 이하 세네자리 반올림 미적 문제가 나오고, 아주 당연스럽게 옆에 "계산기"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 그럼 왜 인도에서 19단 외우게 시키냐고? 그건 저 이익집단의 찌라시 기사에도 대강 설명이 되어 있다. 그동네에선 아이들에게 계산의 여러 공식을 가르친단다. 이를테면 25 * 11 = 2 ( 5 + 2 ) 5 = 275, 즉 어떤 수에 11을 곱하면 십의 자리 수와 일의 자리 수를 서로 더해 십의 자리에 쓰고 앞 뒤로 그대로 그 숫자를 가져다 붙이면 계산이 된다는 식이다. 보라. 이 양반들에게 방점이 찍혀 있는 건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원리'이지, 25 * 11 = 275 가 된다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저 과정에서 '공식의 논리'를 배워나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다. 19단을 외워 계산이 빠르게 된다는 건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럼 도대체 왜 19단 열풍이 불고 있나? 간단하다. 시간제한이 있는 객관식 시험체계 있는 한, 계산능력이 좋다는 건 제한시간 내에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걸 이야기한다. 100분 시험 중 단순 계산에 쓰이는 시간이 30분인 애보다 10분인 아이가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거고, 그에 따라 '제한된 시간에' 답을 찾을 확률은 높아진다. 결국 저 19단 열풍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은 '제한시간 내에 수학 점수 잘 따기'에 그치는 거다. 자, 당연히 제한시간 있는 시험의 점수가 같다면 계산능력은 떨어지나 수학적 논리력이 좋은 아이와 계산능력이 좋지만 수학적 논리력이 부족한 아이는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개 무식한 논리가 발전하게 된다. '연산 능력 = 수학적 논리력' 자, 저 이익집단의 邪說, "'수학 강국'에서 국가 활로 찾은 인도 '를 보자.

다른 나라 어린이들이 계산기로 곱셈을 할 때, 인도 어린이들은 19단을 줄줄 외운다. 국민들의 수학적 논리력과 연산력이 뛰어난 나라가 지식 정보산업에서 앞서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http://news.empas.com/show.tsp/cp_ch/20050308n09860/?kw=

어린이들의 계산능력과 암기력에 대한 단순 비교는 그냥 무시하자. 정말 유치한 건 어린 시절의 계산능력을 '수학적 논리력과 연산력'과 동일시하는 단순무식함이다. 아 이러니까 글쟁이들이 욕 쳐먹는거다. 계산 잘하는 것과 수학 잘하는 걸 동일시하는 국민학생스러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있다. 고등학교 이과에서 미분방정식을, 문과에서도 banking/accounting을 놓고 가르치는 넓고도 깊은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수박 겉핣기 정도로 지나치고, 가장 자극적인 측면 19단 타령뿐이다. 글팔아 아구리에 밥 넣어 사는 포유류들이라면 제발 좀 알고 글 써야 할 거 아닌가?

이 개소리의 압권은 단연 마지막이다.

 

그러나 이 정부가 들어서서 내놓은 국가 생존처방이라곤 수도권에 있는 정부부처와 공기업들을 이곳저곳으로 흩어 놓겠다는 ‘균형발전전략’밖에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후손들이 “국가 장래를 위해 그때 무슨 준비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 인도의 수학교육을 끌고 와서 국가 장래를 걱정하더니 결국엔 일로 빠진다. 정말 경탄스런 능력이다.

 

제발 뻘짓들 말라. 오심 그림 박박 그려가며 외우게 시키지 말고 그 시간에 유클리드의 '원론'을 같이 읽어나가는 과정을 못 집어넣나? 수학 교과서 한가운데 뉴턴의 '프린키피아'원문을 집어넣는 멋진 교과서 없나? 0부터 무한까지에 나오는 즐거운 정수론 이야기하는 교과서 안되나? 무식하게 숫자 때려박은 머릿속 순두부 얼마나 갈 거 같나? 아니, 제한시간 주어진 시험 벗어나 얼마나 굴러갈 거 같나?

부디, 알라딘에서만이라도, 19단 못 외워서 스트레스받는 아해들이 없길 바라마지않는다. 검은비님의 별소년이, 마냐님의 서영/준영 남매가, 너굴님의 유진이가, 진/우맘님의 예진/연우 남매가, 19단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 않길 바라마지않는다. 구구단만 잘 이해하고 적당히 뗀 다음, 숫자 자체에서 자유로운 숫자놀음의 세계에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단 어쩌구 하면서 나오는 책, 역시나 저 이익집단의 종이뭉치에 19단 외우면 좌뇌/우뇌 어쩌고 하면서 게거품 물어댄 재능교육 모 실장 - 매너가 주장하건데, 한국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수학 하면 진저리내게 만드는 50%의 원인이 눈높이/재능 등등의 문제 노가다 찌라시에 있다. 밀리면 엄마한테 두드려맞고 울면서 이갈면서 똑같은 숫자놀음 하는 게 도대체 뭔짓인가 - 기타 등등 19단 입에 물고 사는 인간들에게 매너 공식 반응 한마디 던진다. "씨뻐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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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놀자 > Hotel Africa



어째서 한번도 궁금하지 않았을까...

당신도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왠지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왜일까...

 

왜 이렇게 익숙할까...

마치... 옛날부터 죽...나는

여기 이렇게 서 있고

당신은 또 그렇게 그 곳에 서 있고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Hotel Africa> 중

 



좋아하니까 더욱 보내야해요....

떠나는 이들이야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이들은 그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거에요.

불 보듯 뻔한 상처를 안겨주고 싶진 않아요...

이해해 주세요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충분히 사랑해주고 보살펴 줄 시간이 있었는데

못했을때...

그리고 그 대상이 그대로 죽어 버렸을때...

 

어떤 상처가 더 클까요?....

사랑할 시간을 주세요.

아쉬움이 남지 않게...

 

<Hotel Africa>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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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어린이들이 처음 경험하기 좋은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 시공주니어 어린이 교양서 8
에드거 파린 돌레르.인그리 돌레르 글 그림, 최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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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신화와 관련된 책자들은 나름대로 꽤 된다. 그 가운데 원작자는 같지만 번역자가 다른 그리스로마신화가 몇 종되고, 같은 원작자와 같은 번역자이지만 기획 의도에서 차이가 나거나, 출판사가 다른 경우도 꽤 있다.

예를 들면

토마스 벌핀치, 이윤기 옮김(1996), 『그리스와 로마신화』, 대원사.
토마스 불핀치, 최혁순 옮김(1995), 『그리스․로마신화』, 범우사.
이윤기 편역(2001),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 창해.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1998), 『변신이야기1.2』, 민음사.
미하엘 쾰마이어, 유혜자 옮김(1999), 『신그리스 신화』, 현암사.
이경덕(2002), 『신화 읽어주는 남자』, 명진출판.

와 같은 책들이 그것이다(이외에도 더 있지만).

종종 그리스로마신화는 토마스 벌핀치의 작품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그리스로마신화의 대명사로 벌핀치판 그리스로마신화의 영향력은 대단한다. 서양에서도 거의 정본으로 인정받는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벌핀치는 이윤기 편역과 마찬가지로 산재해있는 그리스로마신화를 그가 모아들이고, 그의 관점에서 저술했을 뿐이다. 즉, 한 가지 신화에 한 가지 의미와 판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판본들, 다른 이야기들이 또 있다는 것이다.

신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뮈토스(mythos)' 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뮈토스는 문명화된 종교의 '로고스(logos)' 와 대립한다. 즉, 인간과 신, 성과 속, 이승과 저승, 선과 악을 이원화하는 것과 대립한다는 것이다. 신화(무속을 포함해서)는 뮈토스는 자연과 신, 사회, 인간 등을 분화시키지 않고 단일체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바라본다. 피에르 그리말은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신화가 열풍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신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출판계에서도 신화 바람이 거세다. 그런데 왜 신화를 읽고, 신화를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태부족인 상황이다. 우리는 어째서 신화, 신화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는 것일까?

신앙의 시작은 자연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사람들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연은 하늘과 땅, 해와 달, 별처럼 우주의 천체와 함께, 바람과 구름, 비 등 기상현상 및 산과 강, 바위, 나무 등 자연물들을 두루 포괄한다. 한정된 수명을 지닌 인간에 비해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나타나고 죽었는가 하면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해는 서쪽으로 지는가 하면 동쪽에서 다시 뜨고, 달은 그믐에 죽었는가 하면 초사흘에 초승달로 다시 살아나며, 너무들 또한 겨울이 닥쳐 잎을 떨어뜨리고 죽었는가 하면 봄을 맞아 싹을 틔우며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생생력(生生力)이자 순환적 생명력이다. 일생의 삶을 단 한 차례만 누리는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자연현상이 초월적 생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세상을 처음 볼 때 자연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커다란 경이이자 큰 공포였으며, 그것은 불가사의이자 영원한 신비였다.” 고대인들의 신화적 사고는 인지력이 결여된 미개 사고가 아니며, 신화적 사고는 근대의 과학적 사고 못지않게 지적이고 논리적이다.

원시인이나 고대인들의 자연에 관한 지식과 근대인의 과학적 지식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후자처럼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질서와 오묘한 섭리에 귀 기울여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지혜인 것이다. 이렇듯 신화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은 인간이 마음껏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물질적 대상의 천연자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동일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고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사고는 또한 생태적 사고와도 연결 고리를 갖는다.

그 힘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계몽, 이성, 합리)의 시대가 저무는 현대가 신화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어린이들에게 신화에 대한 읽을 거리를 제공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책을 찾기가 어렵다. 얼마전 대히트를 친 만화 그리스로마신화가 있긴 하지만, 어쩐지 선뜻 권하고 싶지 않은 찜찜함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에드거 파린 돌레르, 인그리 돌레르의 글과 그림, 시인 최영미의 번역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는 꽤 괜찮은 대안일 수 있다.

우선 이 책의 첫장을 넘기면 속표지가 시작되는 우측에 그리스 신들의 계보도가 살짝 드러나고 있다(물론 전원은 아니고, 주로 주신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가이아로부터 크로노스, 제우스, 아폴론에 이르는 계보도가 보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속표지를 넘기면 그리스 신화의 진정한 고향이라 할 그리스 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지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들 모두는 새롭게 그려진 것들이라 유아들도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돌레르 부부는 컬러와 흑백 그림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아이들도 쉽게 신화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아마 밤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하루에 한 장씩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빨리 그리스 신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고에 익숙한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신화적 사고에 좀더 근접해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신화의 세계, 신화적 사고를 손쉽게 익히게 해주고 싶다면 그 시작을 이 책으로 하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수록된 삽화의 완성도, 판형과 지질, 인쇄 등을 고려할 때도 12,000원이란 가격은 그리 비싸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그리스로마신화는 결국 서양의 신화이다. 물론, 신화의 세계에서 동서양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현재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신화의 원형이 아니라 후세인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맡게 다소 각색되고 깍여나가며 정의되었다는 점에서 서구적이란 점을 먼저 기억해두자는 것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에 의해 신화적 세계의 다원,다층성이 억압되었다면, 동양에서는 유교적 세계관에 의해 신화의 세계가 오랫동안 부정되어 왔다. 그런 까닭에 동양의 신화는 아직까지 그리스로마신화처럼 정제된 것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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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이헌재는 나쁜 놈인가?

 

 

 

 

* 제가 40위네요. 주말에 열심히 안하면 3주 연속 달인의 꿈은 물건너 갑니다. 화이팅.

테니스를 치다가 잠깐 쉬는데, TV에서 이헌재가 나오자 다들 입을 모아 욕을 한다.

“저 xx 진짜 나쁜 놈이야!”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헌재는 원래 나쁜 놈이다. 난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이제사 알았단 말인가?


스타PD 출신으로 EBS 사장이 된 고석만 씨는 사장이 된 후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EBS 사장을 비롯해서 '장'자 붙어 있는 자리는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 ‘장’이 붙은 자리는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만 하는 거다. 우리와 동떨어진, 저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한 분들이. 세상이 바뀌어서 아래 계층 사람들에게 몇자리가 돌아갈지 몰라도, 대부분의 ‘장’은 여전히 저 높은 분들 차지고, 이헌재 역시 그 세계의 도덕률로 보아 하등 문제가 없는 ‘청렴한’ 분이다. 장상과 장대환이 연거푸 총리 인준을 거부당했을 때, 우리는 돈없는 총리감이 이렇게 없는가 한탄하기도 했지 않는가. 여론에 못이겨 미안하다고 하긴 했지만, 이헌재로서는 땅 투기로 70억원을 번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거다. 혹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액수가 너무 미미해 부끄럽다고 한 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중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으니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고 일갈한 한겨레 칼럼은 핵심을 찌른 분석이다.


난 이헌재가 원래 싫었다. 그가 경제부총리에 기용되었을 때, “아, 노무현은 내 기대와 참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구나”고 탄식했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그의 출현을 반겼다. 그가 노무현의-무늬만이긴 하지만-좌파적인 경제정책을 바로잡아 줄 것을 기대했으니까. 그랬던 사람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이헌재를 욕하는 건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헌재가 경제정책의 수장이 된 것은 도탄에 빠진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이지, 그가 청렴해서는 아니다. “재산을 아무리 많이 해먹어도 좋으니 경제만 살려달라” 국민들이 그에게 바랐던 건 바로 이게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 이헌재를 비난한다. 가만히 보니까 가장 소리높여 이헌재를 욕하는 사람은 얼마 전 과거사법 논란이 불거질 때, “경제가 중요하지 과거 일을 들춰서 뭐해?”라고 했던 사람이다. 이헌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요즘 경제는 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그럼 됐지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물을 비난해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헌재를 욕하지 말자. 더 욕하면, 속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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