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영 오지 않았다.
통로쪽 자리에 겨우 엉덩이를 디밀고 고개를 들자
앞 유리창 위의 동그란 시계가
넌 영락없이 지각이야 이렇게 알려줬다.

교정을 가로 질러갈 배짱이 없어서
택시로 갈아타고 후문에서 내렸다.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한산한 횡단보도를
이미 지난 출근시간이라
뛰어 건너기도 멋적어서
천천히 걸었다.

하늘이 보였다.
무수한 플랭카드 위로 하늘이 보였다.

공인회계사 합격축하
JOB 아라. 취업영어특강
ㅁㅁ회사 취업 설명회

파란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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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설레임을 그냥 담고 있을 수는 없음이야.
어젯밤 EBS를 통하여 Queen을 만났거든.
그것도 80인치 대형 화면을 통해서 생생한 모습으로 말이야.
좁디 좁은 우리 집에 웬 80인치 대형 화면이냐고? 그건  이따가 맨 끝에 알려줄께.

Queen!
198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공연이야. 그러니까 아주 젊은 퀸을 만난거야.
그때, 그래 우리가 대학 1학년때.. 아주 아주 옛날 옛적이지..후후후

Save me.
Love of my Life.
이 곡들을 신청곡으로 적어내며 후문가 다방에서 가슴저린 그 목소리에 황홀해 하던 때
그 때는 24년 후에 이렇게 우리집 거실에서 그들을 만날 줄은 몰랐었지.
약간 뻐드렁니가 분명한 그래서 착해 보이는 프레디 머큐리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말이야.

Sombody to Love
검은 콧수염이, 쭉 벋은 다리가, 벗은 웃통이, 쇼킹한 핫 팬츠의 프레디 머큐리는 경이롭기까지 했어.
그렇게 봐서 그런지 그의 성 정체성이 엿보이는 몸짓도 말이야.
쓰러질 것 같이 갸날퍼 보이는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그래 이제는 무딜대로 무디어진  아줌마의 맘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오더군...
요즘 대형 공연은 음향기술로 가수의 목소리를 살린다지만  피아노와 드럼과 2대의 기타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휘어잡는 그들..
생각같아서는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싶었지만
밤 12시가 넘은 아파트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야?

Under Pressure!!
로저 테일러의 드럼과 보컬... 곱상한 그 얼굴과 달리 연주는 박력 그 자체지...
손바닥으로 장단을 맞추고  몸을 흔들었지.
저렇게 무대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프레디가 고작 10년 후에는 저 하늘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 말이야. 그들 공연의 항상 마지막 곡이라는  "We are the Champion'을 들으며 차디찬 맥주 한잔으로 그의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건배...
그랬었어.
어젯 밤에 아니 오늘 새벽에 말이야.


대형스크린  이야기해줄께
방학 중간쯤 됬을 때야.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우리 프로젝터 하나 설치할까? 하길래 TV가 없는 우리집이니까 내가 '그러지 뭐' 그랬거든. 내가 말 한 그러지 뭐는 한 3개월 쯤 생각해보고 한 3개월 쯤 고르다가 한 3개월쯤 후에 사러가 볼까 그런거였거든...
근데 다음 날 퇴근해 돌아와 보니까 남편이 웃으며 뭐 달라진 것 없어 이러더라구.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거야.. 뭔데... 당신 사고 쳤어???요 했더니... 숨겨진 커텐 걸이 위에서 뭘 쑥 잡아 내리는 거야. 앗 대형 스크린... 고개를 후딱 돌리니까 반대편 천장에 떡하니 자그마한 프로젝터가 매달려 큰 렌즈 자랑하며 웃고 있더라는 말씀...

그래도 프레디 머큐리를 그렇게 실감나게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카드 값 나갈때는 마음이 아프겠지만 이제 면박은 그만 주어야 할 것 같아.  우리 남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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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를 떠나있던 아이들이 돌와오자 나의 해방구(?)는 닫혀졌다.ㅋㅋ
몸은 자유로워도 정신적으로는 공허하였던가?
적막하던 집안이 아이들 활기로 채워지고 나는 비로소 몸을 움직인다.
그렇다.
두 입 먹자고  밥하기는 귀찮아도
네 입 먹는 밥하기는 뚝딱 해치우는게로군
남편의 가벼운 투정은 한 귀로 넘기면서
방학 마지막 날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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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8-2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 아이들이 어디 가 있었나요? 한달여씩이나... 맛있는 된장찌개로 온가족이 저녁 맛있게 드녔는지 모르겠어요.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집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닺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 어제 밤 시인의 시집을 보다 잠들었다.  5년여의 먼지가 쌓인 시집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릿하다. 내 마음 속의 집도 아직은 따뜻하다고 믿는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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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2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쓰셨네요. 아이들 없는 한갓진 여름을 보내신 듯한데 이제 여름도 다 떠났네요...
 

일전에 신문을 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사를 보고  한달에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을 하리라 결심을 하고 굿네이버스에 회원 등록을 하였다.
후원금 입금 방법을 지로로 할까 자동인출로 할까 고민하다가 매월 받는 고지서(?)들이 무심한 나를 일깨우는 시간이 되기에 지로로 선택하였다.
며칠 후인 오늘 한통의 전화가 왔다. ‘굿네이버스’ 사무국인데 이번 달에 신규 가입한 회원들 대상으로 추첨을 하여 열 사람에게 책 한권씩을 선물한다고 하였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연금술사’ 이 중에 한권을 택하라 하는데 책이라는 말에 귀가 쏠깃하여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칭찬은..’을 택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른 책을 택하여서 옆 사람에게 선물을 할 껄 하는 생각이 든다.  팜플렛을 나누어 본  당신도 후원하시오 하는 압박용으로... ^-^
사무국에서 책도 후원을 받는지 그것도 돈일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괜찮아요’  그럴껄 후회도 들고 공짜라니 기분도 괜찮고... 무더운 여름 오후 졸음을 잠깐 깨운 전화 한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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