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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다 지나가도
모든 건 다 잊혀져도
너와 나 마주침의 그 한 순간은
오늘도 이리 가슴을 갖느니
너는 혹 그 뒤에라도
그 세월에 가본 일이 있느냐?
사랑은 끝내 아릅답고
아름다운 눈빛은 오래 남아
너와 나 마주침의 그 한 순간이
결국은 나를 여기 오게 했구나
가만히 바람에 흔들려보면
아, 여태 내가 무엇이며
어딜로 흘러가는가
이제는 서로가 다른 또 마주침이 되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모든 건 다 지나가도
모든 건 다 잊혀져도
아름다운 눈빛은 오오래 남아
밤마다 밤마다 별을 보게 하느니

   너는 혹 그 뒤에라도
   그 세월에 가본 일이 있느냐?
   때때로 가만히 이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알던 사람들과, 사물들과,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뒤에
   혼자 되어 던지는 물음입니다.
    너는 혹 그 뒤에라도
   그 세월에 가본 일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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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집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닺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 어제 밤 시인의 시집을 보다 잠들었다.  5년여의 먼지가 쌓인 시집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릿하다. 내 마음 속의 집도 아직은 따뜻하다고 믿는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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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2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쓰셨네요. 아이들 없는 한갓진 여름을 보내신 듯한데 이제 여름도 다 떠났네요...
 

연애 통화

가을이면
금빛 동전을 짤랑거리는 노란 은행나무
둥치를 사이에 두고 만나기
만나서 손잡기
사랑하는 이여.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아아 끝없이 끝없이 눈이 내려서
집도 세상도 폭삭
눈에 파묻히게 되면
삽으로 눈 속에서 굴을 파기
너희 집에서 우리 집까지
굴을 뚫고 오가기.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죽으면
무덤을 나란히하고 누워
깜깜한 땅 속에서
드러누운 채로 팔을 뻗어
나무 뿌리처럼 팔을 뻗어
서로 간지럽히기

 - 시인의 시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보이는 애정시여서 마음이 끌리던 나날. 그리고 이를 전해 준 이여.
   단절과 소통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때의 나는
   사무실 대청소 중에 누렇게 바랜 나의 옛날 책들을 보관한 작은 박스 안. 책과 책사이에 찔러 넣었던 카피본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의 지나간 젊은 시간들과 함께 불/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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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7-1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불쑥 현재의 나를 깨우는 낡은 기억들이 간혹 있지요.
간혹 그때의 내가, 지금과는 먼 곳에 서 있는 내가 남긴 작은 메모라도
발견할 때면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잊은 나를 발견한 듯하여...

모래언덕 2004-07-1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마음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안타깝거나 쓸쓸하지는 않으니
이젠 제가 정말 늙었나봐요.
 

(이사하던 날도 그대의 편지를 버리지 못했음)

비가 와서인지
초상집 밤샘 때문인지
마음은 둘 데 없고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온 너의
조그맣던 입술과
파리한 입술만 어른거린다
너무 쓸쓸해서
오늘 저녁엔 명동엘 가려고 한다
중국 대사관 앞을 지나
적당히 어울리는 골목을 찾아
바람 한가운데
섬처러 서 있다가
지나는 자동차와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어 보이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엔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고
수첩을 뒤적거리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싱거운 취객이 되고 싶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늦은 지하철역에서
가슴 한쪽을 두드리려고 한다
그대의 전부가 아닌 나를
사는 일에 소홀한 나를
그곳에 남겨놓으려고 한다

시집 곳곳에 숨어있는 시인의 가난한 사랑이 슬펐다.
내게는 위악적이게만 느껴지는 거친 언어가 또 슬펐다.
마침내 장미와 안개를 섞은 그의 사랑은 꿈속에도 없고 천국도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이십대도 아닌 내가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었는지...
오늘 밤 난 또 왜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지...

내가 나비라는 생각

                                                                              허 연

   그대가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비를 맞았을 것 같은데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노을 앞에서 온갖 구멍 다 틀어막고 사는 일이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는데 흰 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는데 내가 그대에게 도적이었는지 나비였는지 철 지난 그놈의 병을 앓기는 한 것 같은데

   내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살지 않는 것  이 나리에 살지 않는 것 이 시대를 살지 않는 것. 내가 그대에게 빗물이었다면 당신은 살아 있을까 강물 속에 살아 있을까

   잊지 않고 흐르는 것들에게 고함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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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1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의 두 연이 특히 마음에 쏙 드네요.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는데 흰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는데...하는 대목도...
잘 읽고 갑니다.
 

내용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작년 말쯤 왜 불쑥 이 시가 떠올라 계속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책상정리를 하다가 설합속에 묵혀둔 때 지난 성탄카드를 본 때문일까?
교회당 지붕에 뿌려진 은물감이 번진 작 은 카 드.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서양의 것에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전쟁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나라 대한민국코리아의 남루한 젊은 시인을 느꼈던 어느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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