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 - 결과만 얻으면 하수, 사람까지 얻어야 고수다!
김대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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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인맥 쌓기가 삶의 자산이 될 줄이야.나이가 들어갈수록 애경사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게다가 정기적 모임도 꽤 많아지게 되는데 순수했던 관계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보이지 않게 부,신분 등을 저울질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타인을 평가하려는 것이 내심 씁쓸하기만 하다.그래서 만남의 횟수보다는 만남의 질이 더 중요하고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사이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을 잘 끌어 당기면서 통솔력과 친화력을 갖춘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 그 자체로 자산이 될 수 있다.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애정과 배려의 마음이 담긴 성향의 소유자라면 남.녀 누구에게든 호감과 친근성을 띠어 삶의 질마저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인간은 누구나 개성과 성향이 있기 마련인데 고유의 기질,성향을 잘 다듬고 순화시켜 인간관계,인맥 쌓기에 기울인다면 삶은 더욱 윤기를 발할 것이다.사람을 많이 폭넓게 알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도 좋겠지만,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나를 제대로 알아 주고 나도 지인을 제대로 알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 즉 기브 앤 테이크적인 관계가 무난하지 않을까 한다.일방 통행식의 관계는 상호 상처와 후회,원한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격이 화끈하지 않는 뭉근 불과 같이 오래 가는 편이다.초.중.고.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거의 이런 식으로 엮어져 있는데,중년이 되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사적으로 만나던 친구들은 저절로 소식이 끊기게 되고,겨우 학창 시절 간판격인 00동창회,00모임과 같은 타이틀이 붙은 경우에만 참석하게 되고 말았다.학창 시절 관계든 직장에서 만난 관계,기타 사회에서 동호회격으로 만난 관계든 일정하게 꾸준하게 왕래를 하면서 좋은 인상,변치 않은 우정의 돈독함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이것을 더욱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애경사 필히 참석,소통과 대화의 지속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을 살리는 것이고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익 상충이 덜 한 순수한 관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계의 자산으로 생각하고,사회에서 만난 사람일지라도 인연이라는 관점에서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를 증강시키는 것이 인맥으로 연결될 것이다.인맥의 풍부함은 돈과 명예,권력의 창출까지 넘볼 수가 있겠지만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상대방은 이미 자신의 내면까지 읽으면서 얄팍한 소망은 물거품으로 변할 것이다.이웃간의 담벼락을 치고 사는 현대인에게 인간관계,인맥 쌓기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사회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개인의 사리사욕과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면서 마음과 마음으로의 관계 유지는 보통 쉬운 일이 아니기에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임,동창회 등에서 모나지 않으면서도 있어야 할 존재로 각인되도록 스스로 몸과 마음을 추스리려는 노력과 (겸양,겸허 등)자세가 사람의 마음을 살 것이다.덧붙이자면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적극적이되 난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존중과 배려의 자세가 몸에 배여야 한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조직의 상.하관계,거래처,단체 등 유관업체와의 관계 등 실로 두뇌싸움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많다.힘이 없는 하급직원은 상급직원의 지시.명령에 따라야 하는 등 정신적,심리적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게다가 '갑'과 '을'의 관계로 떠들썩한 마당에 원만한 관계 형성이 될 것인가.현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기에 창과 방패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이 필요하지만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주위의 평판(Reputaiton)이다.평판이 좋지 않으면 인간관계,인맥 쌓기는 도로아무타불이 되고 말 것이다.그래서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챙기고 배려하고 상생하려는 마음 씀씀이가 몸에 배여야 한다.인간관계에서 기본은 겸손,약속,경청에 있다고 본다.나아가 인간관계를 깊게 해 나가기 위해 나름 최선을 기울였는데도 상대가 따라 주지 않을 경우에는 칼로 두부 자르듯 미련없이 자르는 것도 지혜로운 자세가 아닐까 한다. 

 

 사람과의 만남,관계의 질을 보다 다 좋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일적인 결과에만 급급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 잡는 것이 삶에 있어 커다란 자산이요 유산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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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후유코 사계 시리즈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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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 시리즈 가운데 겨울과 관련 있는 후유코 편을 접하게 되었다.흔히 하는 말로 자식이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했는데,고미네가(家)의 딸 넷은 모두 기질과 성향,하는 일이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이것은 부모 가운데 누구의 유전자를 더 많이 받았는가,성장 과정,사회 생활이라는 환경 속에서 성격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도 한 몫하리라.후유코,그녀는 정신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제는 완치과 되었다.후유코는 입원했던 같은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입주 근무하면서 식재료 구입,면회 가족 거들기,거동이 불편한 환자 산책 및 드라이브 하기가 그녀의 임무이다.

 

 그런데 후유코는 심야 방송을 들으면서 방송 진행자인 나카가와씨에게 호감을 보이게 되는데,그 뜻을 편지로 보내곤 한다.편지 소인과 발신인은 일정치가 않고 익명성으로 보내게 되니 나카가와씨의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듯 나카가와씨는 결국 '불타오르는 토끼'라는 필명의 장본인을 방송국으로 초청하게 된다.후유코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심야 방송 녹화장에서 진행자,PD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후유코의 엔터테인먼트적 기질의 유무를 탐색해 나간다.후유코는 일단 나카가와의 마음에 드는데...나아가 광고 대행업을 하는 후지사와가 후유코의 잠재력을 인정 받으면서 후유코는 잠깐의 외유가 긴 시간 도쿄에 주저 앉을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사고무친인 후유코,그러나 그녀는 20대 초반으로 뭇남자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는데 그게 바로 나카가와의 어스트턴트 가와모토였다.농담으로 들렸던 가와모토의 데이트 신청이 진담이 되면서 후유코는 가와모토와 진한 스킨십,섹스 경험을 맛보게 된다.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남자를 알아가는 소중한 기회였으리라.

 

 내향적이어 남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할 줄 알았던 후유코는 방송 관계자,광고업계인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조금씩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말도 편안하게 하는 등 후유코느 인생에서 꽃이 피는 시기였으리라.특히 가와모토는 후유코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 같은데,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후유코는 카메라맨인 나카가와씨를  후쿠오카 탄광촌에서 만난 것을 기억하면서 언니 나쓰코와 잠시나마 함께 했던 것까지 기억을 되살려 간다.언니 나쓰코는 아마추어 누드 모델을 했던 경험을 살려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의 끼를 살리려 현재는 미국 LA에서 거부(巨富)인 노옹과 거주하는데...이야기는 물살을 타면서 급진전하게 된다.후유코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광고 모델로 출연 제의를 받고 이탈리아로 가게 된다.그 직전 큰언니 하루코와 형부될 사람 사외키 의사도 도쿄에서 해후하게 된다.이야기가 홈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후유코가 밀라노에 나카가와와 동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LA에 사는 나쓰코는 밀라노를에 먼저 와서 나카가와와의 극적인 만남과 농밀한 섹스를 치러낸다.

 

 그리고 밀라노에서의 출장 업무를 마치고 도쿄로 온 후유코는 가와모토가 사직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거주지를 알아 내어 차를 빌려 미쿠니(三國)라는 곳으로 출향한다.단지 일전에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 섹스를 통해 성의 다양성을 알아 갔던 인연으로 후유코는 가와모토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 가와모토의 마음은 후유코와 미래를 설계하려는 심산이 컸던 바,둘의 짧은 만남은 아니 만난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후유코는 아직 혼인을 염두에 두고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다양한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가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가와모토는 후유코와의 관계가 나무 막대기가 부러지듯 부러짐을 느끼면서 내 결혼 전의 쓰린 연애시절이 오버랩되었다.인생은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해 가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다음 셋째 딸 아키코 얘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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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마오로드 - 신이 된 마오쩌둥 나남신서 1795
서명수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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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현대사의 정치 거목 마오저뚱의 고향은 후난성 샤오산(韶山)이다.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마오저뚱이 태어날(1895년) 당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오지이었다고 한다.그러한 한촌(寒村)이 마오 탄생 120주년(2015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행사를 치를 예정인데,후난성 성도인 창사를 가로지르는 창장 쥐즈저우(橘子舟) 모래톱에 조성된 마오의 두상은 (인위적인)마오 신을 숭상하는 중국인의 집단 심리가 잘 반영된 것이라 할 수가 있다.마오의 두상은 높이 32m,길이 83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중국인에겐 신중국을 창립한 국부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는 셈이다.후난성 창사는 인천 공항에서 직항편이 있다고 하니 마오의 고거(故居) 및 주위의 풍광 이를테면 둥팅호를 비롯하여 장자졔,봉황고성,마오가 즐겨 먹었다고 하는 후난 요리(홍샤오러우 등) 등을 즐기고 음미해 보는 것도 삶의 의미를 더해 주리라 기대한다.

 

 

 

 마오저뚱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살아 있는 신(神)이 아닐까 한다.중국 베이징의 심장 톈안먼 광장에 걸려 있는 마오의 초상화부터 중국 인민의 각 가정 벽에 걸어 놓은 초상화 그리고 마오의 탄생 기념을 경축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주조한 특별 동전과 지폐(1위엔부터 100위엔까지)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 사회는 마오에 대한 숭배사상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중국 인민 모두가 그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산당원 및 농민,노동자 계층일수록 그를 기리는 마음은 신중국을 탄생시키면서 그가 제창한 현대 중국의 이념과 강령이 그들에게 맞아 떨어졌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그를 유일신 및 재물신으로 떠 받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오는 부패한 청말 태어나 창사 제1사범학교를 다니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심취하고 징강산,준이회의를 통해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흔히 국공합작이라고 하는 장졔스의 국민당과 마오의 공산당은 여러 차례 합작이 결렬되지만,마오가 이끄는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당으로서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는다.반면 국민당은 수장과 부하간의 마찰과 잡음으로 분열하면서 중국은 공산당에 의한 신중국이 1949년 탄생하면서 마오가 사망하던 1976년까지 굴곡과 얼룩으로 가득했던 양대사건(대약진 운동과 문혁)을 치르게 된다.마오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자연 대재해와 기근,수많은 아사자 발생을 빚은 대약진 운동과 하이루이바관(海瑞罷官)이 마오의 정치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대지주,자본가,지식인 등 반동분자들을 대거 숙청,하방운동에 내몰리게 했다.대약진 운동의 정치적 실패는 당시 정치 2인자 덩샤오핑과 류사오치에게 정치 권력이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10여 년의 대동란(大動亂)를 치르고 막을 내렸던 것이다.마오의 네 번째 부인 장칭느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문혁 당시 권력 실세였던 덩샤오핑,류사오치,영부인 양광메이를 숙청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모욕을 주면서 감옥에 갇히게 했다.덩샤오핑은 다행히 좌천되어 훗날 영광의 재기를 했지만 류샤오치는 옥사하고 부인 양광메이는 12년 간의 옥살이를 하게 된다.정치는 비정하다 못해 피를 볼 때까지 싸우는 것인가 보다.그래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마오 스스로 말했던가.

 

 

 

 마오의 정치 인생은 숱한 굴곡이 있었지만 가장 하류층인 농민과 노동자를 업고 정치를 행사했기에 그나마 오랜 견뎌냈을지도 모른다.국.공합작을 이뤄내기 위해 대장정에 나섰던 마오는 다섯 차례 회의를 갖게 되면서 5대 성지로 꼽히고 있다.대장정의 주역들이 후난 출신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마오를 비롯하여 펑더화이(한국 전쟁시 북한군 지원),주더,류샤오치,화궈펑 등이 후난성 출신이다 한때는 한솥밥을 먹던 의기투합의 정객이었지만 이념,사상이 어긋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돌아서는 것이 정치의 속성인가 보다.특히 류샤오치는 아내 양광메이와 함께 대약진 운동의 피폐를 딛고 자본주의 길을 몇 십년 앞당길 수도 있었지만 마오의 권력욕과 퍼스트 레이디였던 양광메이에 대한 장칭의 날서린 질투심이 문혁의 동란을 걷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장칭은 문혁의 4인방으로서 반동분자들을 일소하여 마오 사후의 권력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였지만 말로는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장칭은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제 후난 창사를 비롯하여 마오의 고향 샤오산 그리고 류사오치의 고향 화밍러우의 거리는 관광객들로 들썩 거리고 있다.그곳 주위는 홍색성지로 지정되면서 마오를 그리워하고 숭배하는 이들에겐 명소이다.마오가 생전 좋아했던 갖가지 음식도 군침을 돌게 한다.바로 홍샤오러우이다.돼지 삽겹살 및 비계살을 걸쭉하게 만든 요리이다.중국 출장 시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부드럽고 쫄깃하며 단백한 맛이 그만이다.게다가 후난성 위쪽은 쓰촨성 아래는 구이저우성이 붙어 있는데 그 지역의 요리가 매운 고추로 만든 요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마오의 고추사랑은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한다.대장정 시절 고추요리를 먹어야 건강과 활력을 찾았던 것 같다.

 

 

 

 그외 후난성에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크고 넓은 둥팅호와 장쟈졔라는 명산,시간이 멈춰 버린 펑황고성이 예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둥팅호는 마오 생전 넓은 강을 횡으로 유영을 했을 정도로 수영을 좋아했다고 하며,장쟈졔는 금강산 1만2천봉과 같이 기암괴석의 연속일 정도로 관객들의 찬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둥팅호 부근에는 위엔양러우가 있다.시인 묵객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시(詩)성지가 아닐까 한다.이태백,두보,굴원 등의 에피소드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게다가 산,물,노래,사람이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펑황고성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기에 족한 멋진 곳이다.높게 굽이치는 창랑과 태풍이 지나간 뒤의 모습과 같이 정치적 동지이면서 숙적이었던 마오와 류는 사후 미망인 양광메이에 의해 마오가와 류가가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상생의 길을 마련했다고 한다.양광메이는 부군 류샤오치와 마오저둥 간의 파란 많았던 정치 역정을 내려 놓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중국 정치 현대사의 1세대 주역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2,3세들이 지탱해 나가고 있다.놀라운 경제 성장과 높은 소득 수준을 보이면서 중국인의 삶도 풍요로워졌다.이러한 삶을 살게 된 연유를 마오저뚱에게 돌리려 하는게 중국인의 집단 심리가 아닐까 한다.마오를 유일신이고 재물신으로 여기는 데에는 마오가 현대 중국사에 끼친 정치적,정신적 파워와 영향력이 중국인의 내면에 깊게 각인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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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낯
신동윤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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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치 체제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있다.일종의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셈인데,정치적 민주주의만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가 대외적으로 개방이 되었을 정도로 과거 시장경제 이전의 모습과는 상전벽해일 정도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사조가 개개인에게 깊게 자리 잡고 있다.특히 덩샤오핑은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의미로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떠나 인민을 위한 것이라면 모두 수용하겠다는 취지)론은 풍부한 노동력과 외자 유치,기술이전이 맞아 떨어지면서 중국 경제는 경이로울 정도의 결과치를 보여 주고 있다.19세기 이전 중국이 세계를 리드하던 시절로 되돌아 가는 듯한 역사의 순환(?)을 목도하게 된다.

 

 중국의 사회 현상을 매체(TV,인터넷.책자 등)를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늘 반복되는 내용들이 많아 식상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이것은 내가 접했던 내용들이 시대에 뒤지고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은 내용들을 접한 소이도 있을 것이다.돈과 물질,욕망을 향해 달려 가는 중국 사회의 표피를 걷어내어 중국 사회의 신경망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가를 바르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한국정부 및 개인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가 아닐 수가 없다.한국 제1의 수출 대국 중국,중국 역시 제3의 수출 대국이 한국으로서 명실 공히 경제적 파트너십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시기이다.게다가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중 FTA까지 발효되었으니 보다 밝고 상생의 단계를 끌어 올리기 위해 한.중 양국은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잘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오저뚱 사후 덩샤오핑의 시장 개방의 가속화는 연안 도시(1군 도시)를 비롯하여 중.서부 2,3군 도시에 이르기까지 산업화,도시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신중국이 탄생하면서 마오저둥의 치세 기간에는 사장되었던 즉 마오의 사상과 체제에 반하는 것들이 시장 경제로 되돌아 서면서 부활을 하고 있다.문혁 당시 구시대물로 치부되었던 것(사상,문화,풍습,습관 등)들이 복고 열풍과 함께 중국 인민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중국은 1가구 1자녀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에 낳은 자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소황제,소공주식으로 부모의 관심과 격려,지원을 받는다.더욱이 대외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중국 사회에 서구 문화,문명도 침투하면서 중국 사회 전반이 자본주의 일색으로 바뀌었다.내가 20여 년 전에 중국 산동성 연안 도시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당시 도시의 거리,중국 인민의 복장,언행,사고는 공산주의 색깔에서 완전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중국 인민들의 개인의 생각과 경제적 관념,국가관 역시 획일적인 집단체제에서 사리사욕과 입신출세 등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시장 개방을 하면서 동부 연안 도시(14개)의 개인당 GDP는 어느 서방 국가 못지 않은 높은 소득을 보이고 있다.마오에 의해 단절되고 사장되었던 것들이 되살아 나면서 개인의 욕망은 어느때보다도 분출하고 있다.1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교육비 지원은 교육왕국인 한국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이하는 아닐 것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돈과 물질이라는 자본주의로 인해 인민들의 사고 관념이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죽었던 공자의 사상이 부활하고,입신출세,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또한 산업화,도시화가 덜 된 중국 중.서부 지역 사람들이 시장 개방이 잘 된 도회지로 밀려와 노동자(농민공)로 살아가지만 기존 사람들과의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있다.농민공들은 이중 신분을 유지하지만 도시인 신분으로 살아가기는 제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흥미로운 점은 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개방적이라는 것이다.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슈퍼모델 선발대회,성형 수술,거리낌 없는 성생활 등이다.

 

 이렇게 시장 개방 정책에 따라 중국 현대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서구식 시장 개방이 광풍과 같이 밀여 오면서 중국인이 오랜 세월 지녔던 보수적이고 체제.이념적인 것들이 서구식 개인주의 사상과 혼돈을 빚으면서 근래에는 홍색 열풍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지역 경제 활성화,일당 지배의 정통성 강화,내부 불만 완충 등이 마오 시대의 체제를 다시 보여 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중국이 시장 개방,높은 경제률 이면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꽤 많이 있다.빈부 격차,환경,생태계,기후 온난화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모두에서 말했듯 현대 중국은 정치 민주화만 빼고 모든 분야가 서구식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그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잘 순치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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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과 세바스찬
니콜라 바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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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참상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인류 역사상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을 치른 가운데 인적.물적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세상의 현실은 결과가 중요하듯 전쟁에 패배한 나라들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함은 물론 국가의 위상,정치 역학 관계도 뒤바뀌게 된다.처참한 이미지의 전쟁 속에 푸근하고 따스한 화롯불과 같은 인간미가 넘치는 글은 무척 대조적이기에 오래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떨기 국화꽃과 같이 향기를 내뿜는 글을 오래간만에 접하게 되어 공허한 가슴이 벅찬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과 프랑스는 밀고 당기는 접전이 지속되었다.양국 국경이 맞닿은 알자스,로렌,프랑스콩테 지역의 주민들은 총격전,양민 학살 등으로 하루 하루가 쥐죽은 듯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이념과 사상에 대치되면 연행,학살은 기본이었을 것인데,이것은 한국 전쟁에서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이야기가 다른데로 흘러 버렸는데,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생마르텡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운이 감도는 전쟁의 와중에 한떨기 국화꽃이 피어나듯 그 향기는 멀리 멀리 퍼져가는 것 같았다.

 

 알프스산맥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생마르탱 마을은 깊은 산골에 있다.해뜨는 시간이 적은 겨울철에는 음산한 전쟁의 분위기 속에 생마르탱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안절부절했을 것이다.높은 고개를 넘어 생마르탱 마을로 먹을거리를 구하러 오는 독일 장교와 병사들,사냥을 업(業)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세자르 그리고 빵가게를 운영하는 앙젤리나와 주인공인 세바스찬이 등장하고 있다.세바스찬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세자르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사냥일에 동참하고,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 앙젤리나는 빵을 구우면서 살아간다.독일 병사들은 주식을 조달하기 위해 앙젤리나네 빵을 주문한다.이러한 공간적 장면을 연상하면 과연 총격전 속에 포연이 비상하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사건의 발단은 포악하게 야성을 띤 늑대와 같은 개인 베트가 앙베르라는 주민을 덮썩 달려 들어 할퀴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개를 처치하자고 한다.그런데 세바스찬은 베트에게 양치기 기회를 주는데 양치기인 세바스찬이 자리를 비우게 되자 베트는 수많은 양들을 상처를 안긴다.세바스찬은 평소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지 베트와 친구가 되려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주고 호흡을 함께 한다.지성이면 감천이듯 사나은 야성을 띠던 베트는 점점 세바스찬에게 다가온다.세바스찬은 베트를 미녀라는 의미의 '벨(Belle)이라고 이름 짓게 된다.

 

 한편 독일 장교인 브라운은 빵가게에 오고 가면서 앙젤리나 누나에게 호의를 표하고,의사인 기욤 역시 앙젤리나에게 마음이 가지만,앙젤리나는 현명하게 대처한다.세바스찬 개와 가까이 하는 일로 세자르 할아버지와 손자 세바스찬과 사이가 벌어졌지만 벨(개)이 사람의 말을 잘 따르면서 충성을 보이자 세자르 할아버지,앙젤리나 모두 벨을 좋아하게 된다.사냥꾼에게 먹잇감이 되지 않게 바스찬은 벨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둘은 지하 통로로 몸을 숨기며 대피하기도 했다.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독일군의 만행을 피하고자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가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이면서 생마르탱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국경을 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국경의 고개를 넘어 간다.또한 독일군에 맞서기 위한 레지스탕스 조직 문제도 불거지면서 어린 세바스찬에게는 전쟁의 속뜻을 깊게 인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오래 갈 것이다.자신의 생모가 그립고 보고 싶어 늘 마음 속에 엄마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던 세바스찬은 결국 만날 수 없게 된다.할아버지 세자르는 세바스찬의 생모가 죽었다는 말을 했다가는 어린 가슴에 상처를 안겨줄까봐 알프스 산을 넘어 엄마가 사는 곳이 아메리카라고 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세바스찬에게 더 이상 생모의 생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생사의 기로라는 전쟁의 와중에서 주인공 세바스찬이 전하는 동물과의 특별한 우정과 사랑이 담긴 이야기는 꽁꽁 얼어붙은 알프스 산자락을 녹여 가는 봄날의 따스함에 비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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