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행복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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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자식 간 사이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아들 입장에서 아버지는 친구와 같고 스승과 같기만 하다.먼듯 가까운 듯 부자(父子)사이가 좋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그렇다고 부자지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흔히 민주적이고 자상스러운 아버지를 멋진 아버지상으로 여기고 있는데,내 또래의 아버지들은 과연 얼마나 자식에게 애정과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을까.학창 시절의 나와 친구들,또래들의 아버지들이 태어난 시기가 대부분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으로 일제 강점기에 성장하였다.입에 풀칠할 수 있는 자체가 삶의 전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좀 깨우치고 재산이 많은 집안이 아닌 이상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어른들이 많았다.애정과 사랑 속에 아무 걱정없이 성장할 수 없었던 내 부모님 세대는 자식에게는 가난과 무학을 되물림하지 않으려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그리고 부모님 윗세대도 봉건주의,유교사상에 따른 사회적 교육과 인습이 대대로 이어져 왔기에 부모가 자식의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고 자식은 든든한 큰 나무를 의지하여 존경과 친밀감의 대상으로 부모를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지 않았나 싶다.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블로그 활동,서평 남기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개인사가 조금씩 흘러 나오기 마련이다.미주알 고주알 내뱉을 수는 없지만 (개괄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왜냐하면 아버지 젊은 시절 술버릇이 보통 나쁜게 아니었다.일을 마치고 지인과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하게 되면 면사무소에서 외길로 된 비포장 도로를 따라 비쩍비쩍 노래 부르면 걸어 온다.할머니께서 마주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몇 번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동네 초입까지 울려 퍼진다.동네 사람들은 겉으론 아버지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지만,아니 내가 보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귀가하여 곱게 주무시면 좋으련만 식구들을 괴롭히고 소리 고래고래 지르고 할머니는 자식이 무서워 친척집,고모집으로 피신하고...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아버지는 술이 깨면 선비와 같고 부처와 같았다.아버지가 술 드시고 귀가하는 날엔 방구석이 우린 감 냄새로 진동하고,티격태격하던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상하고 할아버지는 아들 술 버릇을 나무라느라 지치고...나를 비롯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말길 용기와 말주변이 서지를 않았다.아그 외 아버지를 평가하라고 한다면(제3자의 입장에서)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입담이 좋으셨던 장사꾼이셨다.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가업이 흥하고 재산이 늘어나 자식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외지에서 장사를 통해 돈을 벌다 나이가 드시니 힘드셨던 모양이다.그리고 친척 소개로 아파트 경비직을 서다 초겨울 밤 순찰을 돌다 그만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뇌졸증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을 서 너번 옮겨 다니시다 11년 만에 작고하셨다.말년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퇴원하여 4일 지난 직후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드신 듯 하다 돌아가셨다고 한다.아버지께서는 유난히 딸보다는 아들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가장 밉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좋은 부자지간을 형성하지 못해 내내 아쉽고 마음은 무겁기 짝이 없다.추석에 성묘하러 아버지를 뵈러갈 때엔 나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연습해 놓는다.그리고 묘 앞에 조촐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한 뒤 아버지께 말씀 드린다."아버지,지금은 술 끊으셨죠? 아버지께서 가족을 위해 몸이 닳도록 헌신하고 또 헌신하신 것 누가 모르겠어요,아버지께서 맏이인 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잘 압니다.제가 삶의 길을 어렵게 밟아 왔는지 모르겠습니다.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니 부디 굽어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아버지 혼을 두드리고 넋을 기리며 하산한다.

 

 아들러 심리학 시리즈가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이번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갖고 있는 원만하지 않은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글 속에는 치매로 고생하시는 어버지와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는 아들(나) 사이의 대화,관계 회복을 위한 조언 등을 서술하고 있다.11년 간 병석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의 지난 모습이 파노라마와 같이 스쳐 지나간다.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의식이 있는 동안 나를 보면 늘 못마땅한 표정,무언의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고작 병원비 지원과 가끔 전화로 안부 인사를 묻는 수준이었다.세상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고비와 난관이 너무 오래가다 보니 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내 인생은 내 인생인데도 아버지는 늘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춰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따지고 보면 그 바람과 소원은 삶에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결혼 이후 아내랑 함께 병문안을 갔을 때 나를 보더니 "뭐하러 왔냐? 네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보려고 내가 젊은 시절을 고생한 줄 아니? 당장 가 버려"라고 병석에서 한 쪽 팔로 나를 밀쳤을 때 내 마음은 상할 대로 상했지만 나는 돌부처가 된듯 고개 숙인채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아내가 아버지를 잘 설득하고 달래어서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바뀌었던 때가 있다.

 

 간호를 하는 아들인 나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하는 이 글을 읽다 보니 느끼는 점은 동양권 특히 한.중.일 부모와 자식 간엔 대화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일본인의 의식 구조가 어느 정도 배인 이 글 역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나의 사이는 그리 밝지가 않다.아버지는 꽤 가부장적인 체질이 강하고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성격에 눌려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대신 집안 일을 하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면서 병 간호도 두루 하고 있다.마음 속에는 늘 아버지와의 잘못된 관계,응어리가 남아 있어 아버지께 이런 저런 불만을 털어 놓고 싶지만 아버지는 치매 환자이면서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어떻게 하면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벌어졌던 관계에서 좁혀진 관계로 만들 수 있을까를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나는 아버지께 얻어 터지고 했던 적은 없는데 이 글 속의 아버지는 난폭한 분이었나 보다.이유가 어찌되었든 나는 아버지께 맞으면서 정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부자지간의 천륜이기도 하지만 병 간호만큼은 씻기도 관장하는 내밀한 부분은 간호사에게 맡기되 자신이 아버지와의 좋지 않은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에 대한 것을 간호사에게 전달하여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아들의 속마음을 읽고 조금씩 벌어졌던 균열을 봉합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치매에 걸린 사람에겐 기억장애,의식장애가 있어 따지고 가르치고 흉폭하게 굴려고 하면 관계 회복은 커녕 집안이 풍지박산이 될 수도 있다.그래서 수시로 바뀌는 감정,호불호의 부정확함,망령에 가까운 언동 등을 잘 살피면서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뇌의 해마가 쭈그러져 생기는 치매 현상은 원인을 잘 살펴 대처해 나가야 함은 물론 간호를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치매에 걸린 분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이 불만인가를 살펴 간호사 및 주치의와 의사 소통을 하면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인간은 생로병사를 거치게 마련이다.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길에서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에게 충고와 불만보다는 위로와 격려,관심과 애정이 관계회복을 위한 밑바탕이라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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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타이완 - Season 3, '16-'17 프렌즈 Friends 6
조현숙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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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에는 타이완 중국어를 내내 배웠다.발음기호는 주음부호(注音符號)이고 한자는 번체자(간체자의 상대적인 글자)를 썼다.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배웠던 타이완 중국어는 대학에 들어가 회화,강독에 도움이 되었다.그런데 대학 졸업 후 곧이어 한.중수교를 이루면서 타이완 중국어보다는 베이징 푸퉁화에 익숙해져야만 했다.발음부호는 로마자 병음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 언어 규칙상 읽는 법이 독특하고 성조 읽기도 약간의 규칙이 정해져 있어 새롭게 배우는 기분으로 중국어를 접하게 되었다.아무튼 타이완 중국어,베이징 중국어는 큰 차이는 없지만 타이완 중국어는 간결하면서 된소리(ㄲ,ㄸ,ㅃ,ㅆ,ㅉ)에 가깝다.타이완 면적이 한국 경상도 면적과 맞먹지만 인구는 2,300만 명 정도로 인구 밀도는 세계 1,2위를 달리고 있다.

 

 

 타이완 여행기,에세이 관련 도서는 어느덧 네 권째 읽는 셈이다.이미 알고 있는 타이완의 사정을 더 깊고 알차게 다지면서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갖고자 이번 《프렌즈 타이완》을 접하게 되었다.타이완에 대한 최신 정보,알짜 정보가 곳곳에 수록되어 있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타이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다.이런 저런 사정으로 해외 여행을 접은지가 오래 된 나는 새로이 여권 발급부터 해야 한다.여권 발급을 하고 가고자 하는 외국 여행지에 대한 정보,사정,풍물,문화 등을 예비지식으로 쌓아 놓고 기회를 만들어 가족 내지 홀로 여행을 꿈꾸고 있다.타이완은 조그마한 섬나라이지만 탄탄한 경제 인프라 구축,문화 대국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외국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 그리고 맛과 멋을 아는 나라이다.그 가운데 장졔스가 중국 공산당에게 밀리면서 명.청의 국보급 보물들을 몇 년에 걸쳐 타이완으로 도항(渡航)하여 현재는 국립고궁박물원에 안치되어 있다.보물이 셀 수 없이 많아 이를 다 관람하는 데에 10여 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프렌즈 타이완》 저자 조현숙은 타이완 전 구역을 이 잡듯 샅샅이 현지 사정,여행 경험담 등을 통합.수록하면서 미진하고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는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한다(2015년 5월 기준).타이완은 수도 타이뻬이를 중심으로 타이완 북부,타이완 중서부,타이완 남부,타이완 동부,타이완 도서(島嶼)지역으로 나뉘어 안내하고 있다.타이완은 국토의 척추 부분이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동부 해안가와 서부 지역이 평야 지대를 이루면서 타이완의 산업과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타이완에 가려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두 곳에서 티켓팅을 하게 된다.인천공항에선 타오위엔 공항 도착이고 김포공항에선 쑹산 공항에 도착한다.주말을 이용하든 연월차를 이용하든 개인의 여건에 맞춰 타이완 여행 계획을 짜면 좋을 듯하다.개인적으로는 타이뻬이 북부 지역을 먼저 여행해 본 뒤 여력과 기회가 닿으면 여행지를 확대하여 타이완 동부 해안 도시인 화롄과 타이루거(太魯閣)를 횡단하여 타이완 중심인 타이쭝에 들른 뒤 르위에탄(日月潭),아리산(阿里山)과 같이 자연의 신비와 미를 감상하고 싶다.

 

 

 

 타이완은 원주민인 고산족,아메이족,뻬이난족 등이 대륙에서 넘어 온 한족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원주민 고유의 생활 모습,풍습 등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타이완 중서부 짜이(嘉義)를 중심으로 위쪽은 아열대성 그 아래는 열대성 기후를 띠고 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타이완은 열대 과일이 일년 내내 풍성하기만 하다.먹을거리는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기만 하다.1인분 가격도 착한 가격일 정도로 부담이 가지 않는다.나는 더위를 잘 타는 편이어서 11월 내지 12월 정도 타이완으로 여행을 떠나면 날씨,기온이 맞아 기분 좋은 여행을 보낼 것이다.숙박은 도미토리부터 일반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길게 여행을 하게 된다면 도미토리와 같은 숙박지를 찾는 것이 좋을 것이고,타이뻬이,타이완 북부 지역을 돌게 된다면 비즈니스 호텔급을 생각하고 있다.타이완의 지반이 약해 지하철 건설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수도 타이뻬이와 제2의 도시 까오슝은 지하철(捷運站)을 운영하고 있다.특히 타이뻬이 중심으로 여행하려면 굳이 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유유자적하게 타이뻬이의 속살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야시장,쇼핑,중국식 차 마시기 등은 멋진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청.일 전쟁으로 일본에 패배한 청은 타이완을 내주면서 일본의 통치하에 들어간다.타이뻬이에는 일제 잔재가 역사물로 잘 보존되어 있다.이 점은 한국과 크게 대조가 되는 듯하다.백문불여일견! 타이완 여행을 꼭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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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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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의 핵심 권력층은 정.경.사.언(정치,경제,사법,언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들 계층은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그래서 이 계층에 들어가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쳐 희생을 감수한다.일단 이 계층에 진입하게 되고 소속 단체,기관에 큰 물의를 빚지 않고 처신만 잘 해 나간다면 누리고 싶은 달콤한 권력은 오래도록 향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왜 이러한 얘기를 서두부터 하느냐 하면 세상이 참 불공평,몰상식한 방향으로 자꾸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은 명실공히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소수 계층이 다수 계층을 짓밟고 유린하면서 권력 신수설(神受說)을 누리려 하는 점에서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힘깨나 있는 자들은 교과서적인 얘기는 알고 있되 현장에서는 압력과 매수,사행을 조장하고 사실과 진실을 은폐,축소하려는 볼썽 사나운 집단심리가 소수 계층들끼리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그렇다고 물리적인 힘으로 제어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비록 미미한 분자에 지나지 않은 개인이지만 어떠한 사고.사건이 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사건.사고에 관한 기본적인 법률 지식 및 인맥을 활용하여 내가 겪을 수 있는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감경화해야 마땅하고 현명한 처사이다.모두에서도 말했듯 권력의 향방이 질기고 탄탄한 유착(癒着)관계가 지속되어 있어 정의와 진실이라는 것은 한낱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그래서 힘없는 대다수 계층은 강력하고 신뢰받는 사회 형성을 위해 반드시 진실과 정의를 정치 신념과 철학으로 삼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법이다.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란 말이 있듯 힘있는 계층 아래에 있으면 그 영향을 받아 재물과 권력이 생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사회 현상은 소수의 승자 독식으로 부와 권력을 분배하지 않고 그들만의 부와 권력만을 쌓아 나가기만 한다.그래서 기득권층,소수 계층이 독선적,획일적,업압적,비민주적 행태를 일삼고 있는 것에 비분강개할 것이 아니라 대다수 계층들이 연대(連帶)해 나가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그렇게해서 선출된 사회 지도자는 민주국가의 주체인 국민들의 뜻과 생각을 존중하여 정책에 반영하며 부와 권력도 분배해 나가려할 것이다.작금 사회 지도층이라고 일컫는 소수 계층은 그들만의 카르텔 속에서 부와 권력을 기브 앤 테이크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전문제로 인하여 현재 민사소송을 걸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원고는 제 어머니 피고는 박모씨인데,박모씨는 여동생과 동거하다 소유권이전 등기 문제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변호사비등 부대비용이 급하여 여동생이 내게 숨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몇 일만 빌려 달라고 하는데 처음엔 강력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어머니께서 다시 전화를 걸어와 "형제간 좋은 것이 뭐냐,어려울 때 돕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길래 아내와 상의 없이 빌려 주고 말았다.그런데 빌려 간 돈은 언제 수중에 들어올지 알 수가 없고 속은 타들어 가는데,어느날 여동생이돈 문제로 박모씨와 대판 언쟁을 하다 새벽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박모씨는 어머니 앞으로 차용증을 써주면서 변제기일을 못박았고 우리측은 이것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렸다.그런데 이 사람은 소유권이전 등기 재판이 끝나면 해주겠다고 하면서 몇 년을 질질 끈 것이다.변제기일을 어긴 것도 억울하지만 이 사람으로 인해 여동생까지 잃어서 형사고발도 고려했지만 당사자가 없어 형사소송은 성립이 안되고 민사소송만 가능하다고 하여,작년 가을 민사소송을 걸어 놓고 박모씨의 재산명시 절차,재산조회 절차를 밟고 있다.지금은 박모씨에게 전화를 하지 않지만 통화가 될 때는 늘 "재판이 끝나면 해 줄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입버릇처럼 읊어댔다.몸과 마음이 타 들어가면서 혈관질환도 생기지 않았을까.세월만 낚을 수가 없는 법이다.그 사람의 재산조회가 끝나고 압류절차를 밟아 원금과 이자 모두를 받아내고자 한다.

 

 소송 18번에 18패를 당한 안천식 변호사의 소송 대리인으로 겪었던 얘기를 가감없이 들려 주고 있다.역시 소유권이전 등기 문제로 오랜 시간 원고가 겪었을 심적,물적 피해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이다.사람의 진을 쏙 빼놓는 것과 같다.안천수 변호사가 소송 대리인으로 기을호 원고 및 피고인 증인 5명이 헌법과 법률 사이를 오고 간다.김포시 고촌면 향산리 마을에 대형 건설업체가 토지를 수용하여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던 1990년대 후반 D 건설업체는 자금위기에 몰리면서 H 건설업체에 승계계약을 하게 된다.기노걸은 시가 40억 가까운 토지대를 9억3천여만원에 매각되는 서러움을 겪다 끝내 뇌졸증으로 숨을 거두고,아들 기을호는 H건설을 상대로 부동산매매계약서를 두고 소송 공방을 벌여 나간다.건설업체가 매수한 증인에게 계약 해지된 통장의 계좌번호를 불러 주고 막도장까지 찍어 H사와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법정에서 증언한다.H건설사는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가 아니던가.증인들은 대부분 매수된 자들로서 건설업체 업무 책임자와 입을 맞추어 그것을 증거로 내세운다.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경험칙,정황상 기노걸과 H사가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사,판사는 건설업체에 손을 들어 준다.이에 안천식 저자는 검사를 직접 찾아가 해당 사건에 대한 취지와 부당함을 호소하지만 발 뒷꿈치 때만큼의 가치도 없는냥 반말,무안,수치심을 안겨 준다.안천식 저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도록 증거 자료,탐문,조례 등을 수집하고 익혀 재판정에서 흔들림없이 기을호 원고측을 변호한다.기을호 원고는 군 출신으로 탄탄한 체력을 갖었지만 소송 18번에 패소 18번을 당하면서 기민증까지 오게 되었다.

 

 검사,판사 모두 정의와 양심의 중심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 아니던가.현실은 힘있는 쪽으로 저울이 넘어가고 만다.이 글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사법을 다루는 검사,판사들은 사건의 경중을 떠나 균형감 있게 기소하고 재판,판결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그런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저촉한 경제사범만 사건으로 보고,부동산매매계약서와 같은 물건(物件)은 안일하게 판단하고 판결해도 된다는 말인가.물론 법관의 재량에 따라 양형(量刑)을 때릴 수도 있지만...허위 부동산매매계약서,일관성 없는 증인들의 증언,사법 양심에 따라 움직였던 저자 그리고 저자를 믿고 끝까지 사건에 매달려 온 기을호 원고를 보면서 한국 사법계의 깊은 성찰과 변모를 요구하는 바이다.어두운 사법계의 현 주소를 고백하고 고발했던 저자의 양심과 용기에 한없이 격려와 위로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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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를 만들고 약이 병을 키운다
박명희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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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관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돌이 될 때까지 잔병치레로 소아과에 돈을 마구 쏟아부었다고 어머니께서 생각날 때마다 말씀하신다.당연 기억은 없지만 그 때는 시내버스도 없어 나를 들처 업고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서 시외버스를 타고 도회지 단골 소아과를 갔을 것이다.주사,약의 효험과 부모님의 애지중지로 40대 후반까지도 잔병치레가 없었다.몸이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과 탄탄한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건강하게 지내왔다고 자부했다.그런데 소위 디지털 기기를 장시간 대하고 활용하다 보니 시력 감퇴,뱃살 나옴,혈관성 장애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후회가 된다.컴퓨터를 정해진 시간만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충분히 걸으면서 복잡한 머리를 내려 놓고 비워 놓으려는 노력과 의지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인다.두 발을 땅에 딛고 걷게 되면 머리가 저절로 맑아져 오고,몸은 땀으로 배이고 귀가하면 샤워를 한다.피곤함이 밀려 오게 되면 아무 생각없이 푹 수면을 취하고 다시 기상하여 책을 읽고 업무 준비를 하게 되면 새로운 정보,지식이 뻥 뚫린 혈관마냥 쉼없이 들어 온다.그럴때엔 신체 리듬.지성 리듬,감성 리듬 3박자가 딱 떨어지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십대 중반 찾아 온 노안(老眼),즉 안구건조증은 눈에 가시에 박힌 것과 같고,모래알이 날아들어 온 것과 같은 통증으로 안과를 찾게 되었다.안과 의사는 사십대에 이르면 당연 안구건조증이 찾아 온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면서 인공 눈물약과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그 후로 인공 눈물약이 떨어지면 안과를 찾아 가는데 눈에 이상 증후가 없어 다행이지만 동공을 혹사시키는 행위는 자제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책에 매달리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30∼40분 차분하게 책읽기에 집중하고 15분 정도는 유산소 운동(청소하기,팔 굽혀 펴기,산책 등)을 하면서 시력 감퇴를 예방하고 있다.또한 식재료 및 음식에 비타민A가 많은 것들을 선택하여 날 것,익힌 것,건강 보조식품을 복용하기도 한다.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이 나이대에는 당연 건강에 신경을 써야 일과 가족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건강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한의약과 서양의학 두 개로 대별되는데,한의사는 한방이 최고라고 하고,서양의는 화학성분이 많은 처방약이 최고라고 한다.한약과 양약의 장점과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기네 것이 최고하고 말한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고통과 통증을 느낄 때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을 자랑한다.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 병 자랑을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감기 기운이 있다 하면 콩나물에 고추가루를 듬뿍 넣어 몸에 온기를 축적하고 푹 수면을 취하면 감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질 때가 많다.또한 위생과 청결은 건강을 위한 기본 자세이다.내가 사는 아파트는 40평이 좀 안되지만 거실만큼은 내가 쓸고 닦고 한다.쓸기는 매일 한다.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고 빗자루로 쓸고 쓰레받기로 담아 낸다.닦는 것은 3∼4일에 한 번 꼴로 걸레를 따뜻하게 하여 거실 바닥을 싹싹 닦아 내면 기분이 개운해진다.요즘과 같이 고온,다습한 날씨에는 가끔은 보일러를 틀어서 습기제거를 하면서 쾌적한 실내 유지에 힘쓴다.이렇게 유산소 운동,머리 비우기를 통해 예전보다 훨씬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잡념이 사라져 참 좋다.

 

 

 과학,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대 수명도 100세를 바라 보고 있다.예전 같으면 4,50이 되면 장년층이 되고 결혼을 일찍한 사람은 손주를 볼 나이이기도 하다.그런데 요즘엔 만혼이 대세이지만 은퇴는 4,50에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그렇다면 길어진 노후에 건강 챙기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아프면 무조건 병원을 찾아 가는 것이 최상일까.이 문제에 대해 박명희 저자 서양 의학과 약물에 적응.중독된 현대인에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치유력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살피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비결이라혹 전한다.설혹 암(癌)과 같이 고질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갖가지 최첨단 의료기술과 신약(新藥)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다.암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암 판정을 받게 되면 암 몇 기라는 식으로 의사는 말한다.수술,항암치료,방사선 치료를 통해 암세포 주위의 정상 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환자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암이 환자에게 주는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차피 사형 선고를 받게 되면) 병원에서 실시하는 치료보다는 차라리 양생을 하는 것이 생존 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인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편리해졌다.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한다.다만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키면서 먹이 사슬이 끊겨졌다는 것,농약,화약비 사용으로 토지의 형질이 바뀌었다.유전자 재조합식품(GMO),인스턴트,편의점 식품,고열량,고칼로리 식품의 과다 섭취는 없어야 질병을 자꾸 키우는 꼴이 되고 만다.염증성 질병,두뇌 기능 저하,성격의 난폭,인간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건강문제와 관련하여 메체에서 유기농,친환경 식재료를 선전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100% 유기농,친환경 식재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우선 토지의 형질부터 바뀌었는데 유기농,친환경 재료라고 말할 수 있을까.식재료를 자급자족하려는 일부 지각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익성과 상업성을 염두에 둔 나머지 성장 촉진 호르몬제,항생제 남용으로 소비자들의 몸은 서서히 질병을 쌓아 나가는 꼴이 아닐까.박명희 저자는 인공성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생육과 그 원형을 좇는 것이 건강을 위한 길이라고 조언한다.또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자연치유력이 최고라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데,한 예로 접붙이기한 과일이 몸에 위험하다는 이야기다.해당화(꽃 사과) 뿌리에 사과나무를 접붙이고 나음 나무에 또 접붙이는 방식이다.이런 방식의 과일은 몇 번이고 이식을 하여 농약,세포분열제를 쓰지 않으면 성장하여 결실(結實)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접붙이기는 결국 항상 농약,세포분열제가 따라 다니는 격으로 인체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수술하고 일반 병실에 있을 때 의사와 간호사가 회진하면서 하는 말이 "환자의 질병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의사에게 달려 있고 나머지는 환자 몫이다"라고 했다.지당한 말이다.병은 왜 생기는 것인지,병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생활 습관,식습관,운동 등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몸과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박명희 저자는 일반인이 자주 아픈 이유,잘못된 생활습관,식습관 바꾸기,올바른 운동법,병원과 약을 멀리하고 자연과 가까이 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저자의 꼼꼼한 필치와 다년간의 간호사 경험,건강 상식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건강에 신경 쓰이시는 분들은 꼭 이 도서를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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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120년 만에 밝혀지는 일본 군부 개입의 진상
이종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2015년은 구한말 명성황후 서거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교과서,매체,소문 등을 통해 명성황후가 누구의 손에 살해되었는가는 안개 속과 같다.게다가 이 문제를 파고 들려는 역사 연구가가 많지 않은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다행히 이종각 저자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하여 다방면의 사료를 수집하여 얻은 결과가 이 도서인데,읽어 가다 보니 당연 통한으로 남는 것은 강한 국가,강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명성황후가 시해되던 1895년 조선은 풍전등화와 같은 형국이었다.동학혁명,청.일전쟁은 강대국에게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국내에선 민란이 끊이질 않았고,대외적으로 개방의 압력을 받았던 조선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정책 실행보다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던 못난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1876년 운요호 사건으로 일본과 불평등 조약(강화도 조약)을 맺었던 조선은 을미사변,을사늑약,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불행의 연속이었다.동학혁명이 거세어지면서 조선 조정은 청국에게 군 요청을 하게 되고,일본은 이에 질세라 청과 일전을 불사른다.결국 이것이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은 승리를 거머쥐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는다.랴오뚱 반도를 할양 받으려 했던 일본은 독.프.러 3국 간섭으로 랴오뚱 반도를 할양 받지 않는 대신 청국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다.이 시기 조선 조정은 친일파와 친러파로 분류되는데 친러파의 핵심인 명성황후였다.일본 정부는 명성황후가 눈에 가시,미운 오리새끼였기에 폐제(廢除)하려 치밀한 음모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청.일전쟁의 공신으로 인정 받았던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는 조선에 러시아를 불러 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명성황후를 제거해야 조선에서 일본이 당당하게 세력을 팽창시키면셔 조선을 병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이노우에 가오루 공사 대신 후임으로 조선에 공사로 온 사람은 바로 미우라 고로였다.거사 전날 군부대신 안경수는 미우라 공사에게 훈련대 해산 예정을 통보하게 되니 미우라 공사 입장에서는 차질없이 거사 성공만 남은 셈이었다.그는 육군 보병 중장출신으로 명성황후 살해를 실행하기 위해 휘하 군부 요인들을 내세워 조선의 심장부를 난입했다.또한 일본은 흥선대원군을 앞세워 쿠데타로 위장했다.

 

 

 

 명성황후 시해 당일 경복궁 담을 넘어 명성황후 침전이 있는 건청궁까지 난입했던 자객(刺客)들은 명성황후의 거처를 수소문하면서 궁녀들을 시퍼런 칼날로 인정 사정없이 살육한다.이 자리에 궁내부대신을 먼저 발포하고 명성황후를 가장 먼저 칼로 찌른 장본인이 바로 미야모토 다케타로우 소위다.미야모토는 생경한 인물인데 명성황후 살해 직후 우치다 사다쓰치 일본 영사는 명성왕후 살해 사건에 대한 뒷처리를 했던 인물이다.그는 당시 살해 사건에 대한 객관성과 신빙성이 두드러지기도 한다.일등 신민국가인 일본제국이 이웃 나라 왕후를 살해하려 했던 음모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명성황후는 건청궁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시신은 옥호루 뒷쪽 녹산(鹿山)에서 통나무에 기름을 부어 화장하고 유해를 연못에 버렸지만 후환이 두려워 다시 수습하여 녹산에 묻었다고 한다.이후 청량리 홍릉에 이장하고 고종이 승하하면서 남양주 홍유릉(후비포함)에 합장했다.그렇다면 미야모토 소위는 누구일까?

 

 

 

 

 미야모토 소위는 일본 야마구치현 평민 출신으로 동학혁명 정토(征討)에 참여했고,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연루된 소위 네 명 가운데 미야모토가 끼여 있다.일본 정부,대본영은 미야모토와 같이 계급이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하수인으로 내세우고 거사가 끝나면 없었던 걸로 하려고 했던 흔적,심산이 강렬하게 다가온다.미야모토가 거사를 마치고 바로 퇴한(退韓)한 뒤 일본에 머물게 되면 그가 훗날 심경의 변화가 있어 을미사변에 관여했다고 이실직고할지도 모르기에 일본 정부는 미야모토를 타이완 헌병대로 차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크다.미야모토 중위(1858∼1897)는 짧은 삶을 살았다.명성황후 거사 직후 일본 정부에 보낸 제1타전에서 일본 군부가 살해했다는 내용,그리고 우치다 영사가 올린 정식보고서,비밀사신(私信)에서 '육군소위','육군사관'을 왕후 살해범으로 단정하고 있다.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명단에 미야모토 다케타로우라는 인물은 없다.일본 정부 최고위층,대본영 수뇌부가 조직적.계획적으로 명성황후 살해 사건을 은폐,왜곡,증거 인멸을 획책하고 있다.명성왕후 살해 사건의 주범이 이제야 밝혀져 다행이다.일본 정부는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발을 내밀 것이낙.역사를 은폐,왜곡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암울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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