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게놈(Genome) 유전자(gene)에 염색체(chromosome)가 더해진 말로써 한 생물체가 갖고 있는 모든 유전정보를 지칭한다.

 

 고생물학,고고인류학,분자,세포생물학 등 생물체의 유전자 정보를 찾아나서는 작업은 일반인의 눈에는 신비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하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연구가들은 미라와 같은 화석에서 핵 게놈을 추출해내고 연대 측정까지 알아낸다.이것을 바탕으로 인류의 기원과 유사 생물과의 연계 가능성 등을 도출해 내면서 가깝게는 유전자 정보 넓게는 인류의 시작과 이동 등을  추적해 나간다.그 과정과 결과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인류의 시작은 동아프리카(에디오피아)에서 비롯되고 점차 전 세계 대륙으로 이동해 나간다.이것은 판게아(Pangaea)라는 대륙 이동설에서 유추할 수가 있다.기원전 수백 년 전에 절멸했든지 아니면 최초의 인류의 DNA가 공통 주거지에 살았던 타 인류가 혼혈하여 현생 인류가 되었든 먼지와 같이 바스락거리는 화석과 같은 뼈가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해 해당 생물체의 유전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가 있다.

 

 현대 인류의 유전물질인 DNA의 화학 구조는 이중 나선을 티고 있다.네 종류의 염기(鹽基)인 아덴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을 포함하는 뉴클레오티드 단위체가 이중나선에 연결되어 있는데,뉴클레오티드에 포함된 염기의 순서가 인체를 만들고 필요한 유전정보를 만든다.나아가 mtDNA는 실타래와 같은 사립체(絲粒體)모양을 한 미토콘드리아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 정보이다.이러한 고생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연구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은 1856년 독일의 네안더 계곡 채석장에서 인부들이 동굴을 치우던 중 머리덮개 뼈 한 점과 다른 뼈 몇 점을 발굴하면서부터이다.네안더 계곡에서 뼈 연구가 시작되었다해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의 저자 스반테 폐보 대학원생 시절부터 미라의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하면서 각종 연구 결과물을 『네이처』에 발표했다.이러한 분석,연구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에 집중하면서 2006년엔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2010년엔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에 성공하여 이를 『사이언스』에 발표하고,동년 시베리아 남부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뼈의 게놈을 해독하는 등 고생인류의 연구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미라와 같은 화석 뼈의 DNA를 추출한다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염기 서열이 현대인의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나고 정확성,신빙성도 떨어진다.그것은 다양한 변이가 있기 때문인데,박테리아,곰팡이,돌연변이,분자 및 세포 진화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DNA 추출은 밀도가 높은 치밀뼈에 주로 분포하는데 팔,다리뼈,치아의 뿌리가 성공 확률이 높다.저자는 인류의 시원으로 보는 네안데르탈인의 위치도와 관련한 독일 네안더 계곡 동굴,캅카스 메즈마이스카야 동굴,스페인 엘 시드론 동굴,크로아티아 빈디자 동굴의 추적 상황을 전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데니소바인의 mtDNA는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을까.네안데르탈인이 지구 각지를 유랑했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화석 뼈에서 추출한 DNA정보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남유럽,아프리카,중앙아시아,오세아니아 등지로 네안데르탈인의 DNA유전자가 어느 정도 유입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물이다.고생대 주요 뼈에 대한 DNA 정보 추출과 인류의 시작과 이동 등을 놓고 지적인 흥미와 자극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보자를 위한 논문 쓰기 교실
도다야마 가즈히사 지음, 홍병선.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기술(記術)하기,주어진 과제나 연구물 등 자신을 비롯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기술하면서 설득하는 과정 및 논거에 따라 논증을 펼치는 것을 논문이라고 생각한다.즉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주장을 이어나간다.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치,통계,인용,전거(典據)를 십분 활용하여 살아 있는 논문 작성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지금까지 논문다운 논문을 쓸 기회가 없었다.(부끄러운 얘기지만)논문을 쓸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원인이지만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아 있다.시험 대신 리포트 제출이 간간이 있었지만 주어진 과제물의 주제에 적합한 도서를 빌려 거의 베끼는 수준이었다.되돌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일종의 면피였다고나 할까.리포트를 잘 쓰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는 만족할 수준이 못되었다.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글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등 논문에 가까운 글을 쓸 기회가 줄곧 없었다.불행중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하고 서평을 올리면서 나름 글의 전개를 논문 형식에 맞추려고는 하지만 역시 논문 쓰기 기본이 부실(不實)한 탓에 '억지 춘향격'이 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문제 제기,주장,논증이라는 구성 형식을 기본으로 하되,주어진 과제물,연구물의 특성 및 논문 심사를 담당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파하여 논문 쓰기 흐름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주어지는 과제는 ∼을(를)요약하라,∼에 대해 기술하시오(또는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단선적이고 천편 일률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하면서도 참신한 논문 전개 및 주장.설득을 갖추어 누가 읽더라도 '괜찮다'라는 감응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논문 쓰기인 만큼 기존의 논문을 모방하는 것도 논문을 잘쓰기 위한 요령이라고 생각한다.잘쓴 논문을 필사하면서 '논문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체질화해야 할 것이다.논문도 일종의 창작 행위이므로 표절(剽竊)은 절대 금물! 자신의 위상과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행위이기에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논문 과제는 4종류로 나뉜다.

 

  ― 보고형 과제 : 읽고 보고하는 형태,조사해서 보고하는 형태

 

  ―  논증형 과제 : 주어진 문제 속에서 논하는 형태,질문을 자신이 세워서 논하는 형태

 

 보고형 과제는 직장 및 연구 발표회 등에서 자주 보면서 흐름을 간파하고 있다.대부분 PPT를 이용하여 보고 및 발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논증형 과제는 리포트,소논문(대학의 연습(演習),세미나),학위논문 등에서 자주 나타난다.잘된 서평을 보면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여 주장과 설득을 병행하면서 (나름대로)논거에 따른 논증이 매끄럽게 흘러간다.서평을 잘쓰는 사람,탁월한 서평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은 논문 쓰기에 대한 내공(內功)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소설 쓰듯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닌 논문 쓰기는 단어,어구,문장,문단,단락,완성 글에 이르기까지 강렬하면서 신뢰성 있는 글의 전개가 매우 중요하다.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도서,잡지,자료가 풍부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백과사전(관련 항목,색인,참고문헌)을 이용한다든지,인터넷상의 위키백과(Wikipedia)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논문의 구성요소는 5가지이다.

 

 (0) 제목,저자명,저자의 소속기관

 (1) 초록

 (2) 본론

 (3) 결론

 (4) 주(注.註).인용.참고문헌 일람

 

 논문은 기승전결이라는 전개방식을 비롯하여 앞서 얘기한 문제제기,주장,논증과 같은 형태를 취하면서 문장 이어나가기를 해야 한다.논문을 심사하고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작성해야 하기에 '문제+답변+논거'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논문을 5가지 구성요소와 같이 논문 쓰기에 앞서 구조(Structure)를 잘짜야 한다.일종의 아우트라인이다.아우트라인이 잘짜인 논문은 심사위원에게 후한 점수를 얻을 것이다.게다가 논문쓰기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그리고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해 보는 것이다.육하원칙에 따라서 말이다.문장을 써 내려가면서 불필요한 연용형(......으로서,......하고,......으로서 등),......지만,......'의' 등은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논문 제출 직전 체크리스트(구성,문장의 질,논문 형식,서식 설정,제출의 매너),논문 완성 흐름표,논문의 평가 기준,피해야 하는 표현 등이 논문 쓰기 초심자를 위해 잘 배려 되어 있다.이러한 논문 쓰기는 초심자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에게도 필요하다.프린젠테이션,각종 보고서,논문 작성 등 상대방(불특정 다수 포함)을 설득하는 글쓰기이다.자기계발,업무 수행을 위해 논문 쓰기는 필수이다.논문 쓰기의 기본과 실력을 배양하면서 자신의 위상과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해 꾸준이 연습하고 또 연습해 나가야 한다.나 또한 논문 쓰기의 중요성을 체감하면서 기본과 실력 배양에 힘쓰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의 메아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삶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게 마련이다.타고난 기질과 성향도 살아가는 방식과 (외부적)환경에 의해 조금씩 변해 간다.그런데 숨길려도 해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은 심리적 내면의 의식과 양심이 아닐까 한다.좋은 일이야 쉽게 나타나고 쉽게 사라지지만 마음의 상처,양심의 거리낌과 같은 일은 긴 후유증을 남긴다.인간이 신(神)이 아닌 이상 상처와 고통,비양심적 행위를 초월하여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부류는 과연 얼마나 될까.우리네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상처와 고통을 씻기고 죄를 사(謝)할 때까지 스스로 고백하고 추스르며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꽤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강심장의 소유자,후안무치와 같은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는 색다른 세계를 사는 존재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독일의 인기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죄의 메아리》 를 접하면서 시종일관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죄에 따른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장장 535쪽의 분량이지만 쉽게 읽히는 스릴성 이야기이다.인간이 저지르는 비양심적,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것들이 주위에서 흔히 접할 법한 소재들이지만 인간의 행위에는 반드시 인과응보가 따른다는 진리를 새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은 주인공 버지니아의 과거사(두 남자와 유종의 미가 개운치 않은 점)과 현재(외간 남자를 자신의 별장에 끌여 들여 밑도 끝도 없이 새 삶을 살아가려는 발상과 어리디 어린 유아들을 대상으로 유괴 및 살인 사건을 교차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은행 지점장에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버지니아는 남편 프레데릭과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요트가 대형선박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 바로 리비아와 나탄이다.둘은 버지니아 별장에서 가사 도우미를 했던 인연으로 버지니아는 남편 프레데릭과 상의도 없이 리비아 부부를 별장으로 끌어 들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어두운 분위기로 치닫게 된다.한편 사라를 비롯한 유아들이 누군가에게 유괴되어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드는데,범인에 대한 단서는 오리무중이다.유괴 살인사건은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범인은 동일범임에 틀림없다.

 

 버지니아 별장에 들어온 리비아,나탄 부부는 요트가 산산조각 나면서 겨우 알몸으로 살아난 셈이다.리비아는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나탄은 (돈이 탐이 나서) 버지니아에게 접근한다.한편 프레데릭은 정치권에 입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신의 딸 킴이 실종되고 나탄은 버지니아에 대한 행실의 진정성이 의문시되면서 유아의 유괴,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부상한다.비록 나탄은 유아 실종,살인 사건에 대한 진범은 아니었지만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행세하면서 감언이설로 버지니아를 꾀임에 빠트린 행위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등잔 밑이 어둡다'고 유아 유괴 살인의 진범은 별장관리인이면서 킴을 보살펴 주던 잭이었다.그는 소아성애자,변태성욕자로서 인면수심의 소유자였다.세상에는 별별일이 다 있듯 믿을 사람도 없을 정도로 삭막하기만 하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 살고 있는 버지니아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고,순진하고 힘없는 어린아이만을 골라 변태 성욕을 저지르는 소아성애자들의 행태를 고발한 이 작품은 빗나간 윤리의식과 금전에 대한 탐욕이 빚은 사회적 사건 시리즈물로 인식된다.진부한 얘기지만 개인의 재산,생명은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유수의 도시를 순회하며 펼쳤던 법륜 스님의 인생 행복론은 과연 무엇일까.해탈의 경지에 서서 세상을 관조하며 터득한 삶의 지혜가 오롯이 녹아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삶의 궁극은 행복한 인생을 꿈꾸고 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조와 사도 - 위대한 군주와 잔혹한 아버지 사이, 탕평의 역설을 말한다
김수지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상적으로 정치권력은 부자(父子) 사이에도 나누지 않는,넘겨 주지 않는 법인가 보다.그만큼 권력이라는 속성이 매우 편협한 울타리와 같은 장치일 것이다.권력을 장악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확고한 영역 유지를 기도(企圖)하는 것이다.또한 정치 권력은 갖은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가운데 누가 힘의 역학에서 밀리지 않고 오래도록 버텨 나가느냐도 관건이다.나는 정치 권력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종의 '도박(睹博)'과 같이 요행수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특히 정치 권력이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세태 속에서는 정치 권력을 쥐기 위해 건곤일척을 하는 정치생들이 꽤 많다.

 

 부자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정치 권력의 속성을 단적으로 잘 보여 주는 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비정하기 그지 없는 부 영조와 아들 사도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나 다름 없었다.그것은 영조의 태생 과정과 당대 사회적 배경(당파 싸움 등),이복 형이면서 선대왕인 경종의 죽음의 배후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심리적으로 평탄하지 않았을리라.영조는 보기 드물게 83세라는 장수(長壽)에 52년간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왕이었다.영조는 탕평책이라는 포용 정책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위장전술이었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그는 기본적으로 노론(老論)의 지지를 등에 업고 소론(少論) 포용 탕평책까지 수용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실현해 갔다.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와 숙종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영조는 항설에는 친부가 다른 사람이고 선대왕이며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경종의 짧은 치세,죽음을 맞이하고 노론의 두터운 지지에 의해 임금이 된 영조는 맏아들 효장세자를 재위 4년(효장세자 10세)만에 잃고 빈자리를 영조가 이어받은 셈이다.(연잉군으로) 숙종부터 영조,정조에 이르는 사회적 당파 싸움과 관련한 일련의 주요 사건(환국,처분,독대,옥사,난(亂),옥사,화변)은 조선 사회를 이끌어 가던 위정자들의 일대 도박과도 같은 암투가 끊이지를 않았다.특히 척신(戚臣)들에 의한 정치 연출은 예나 지금이나 해소해야 할 중대 사안이 아닐 수가 없다.

 

 사도세자는 15세에 영조의 대리청정 임무를 받고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정치적 역량이 없는 사도세자는 내외적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정치 환경에 놓여 있었다.특히 사도에 대한 중상모략과 깎아 내리기 등은 그에겐 커다란 시련이고 굴욕이었다.부왕 영조는 무신난,균역법 등의 각종 정치 실패에 따라 탕평(湯平)을 내걸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대파인 소론(少論)을 의식한 정치적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사도세자는 정치적 실험대에 놓여 있었던 유약한 존재였다.영조의 눈과 귀에는 그를 모함하고 허위 고자질이 끊이지를 않았다.나주 벽서 사건,처가인 홍씨 집안의 권력잡기,나경언의 고변 등으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차기 왕으로 옹립하는데 만족을 하지 못했다.문제는 영조의 뇌신경계에 있었다.일종의 정신분열증에 의한 왕세자 죽이기였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집어 넣어 죽이고자 했다.절박한 심정으로 살고 싶고,살려 달라는 세손(정조)의 울부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여야 속이 풀였던 것 같다.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조가 택한 세자의 죽음은 억울하기만 하다.가혹한 영조,끈질긴 신하,무력한 세자로 이어지면서 세자는 불여귀가 되었다.세손 정조는 친부를 죽인 세력들에겐 복수로 응하지 않고 스스로 자백을 얻어내면서 정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영조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희생양이 되어 버린 사도세자의 진혼곡을 듣는다.권불십년처럼 정치 권력은 비정하고 무상하기 짝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