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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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은 말그대로 고전 음악의 범주에 들어간다.모차르트,베토벤을 비롯한 고전 음악의 거장과 슈베르트 등의 낭만파 거장들이 탄생하는데 음악의 장르는 1450년 르네상스 시대를 분기점으로 1600년 경에는 바로크 음악,1750년 이전은 고전 음악,1750년 이후를 넘어 1900년 이전까지는 낭만파 음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1900년대를 넘어 비로소 현대음악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마니아는 아니다.심난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한줄기 영적 위안을 안겨줄 고요하고 웅장하고 경쾌하게 흐르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시하여 경음악이 흘러가기도 하고 '또르륵'똑똑 굴러가는 구슬과 같은 피아노곡도 일미다.베토벤의 영웅,운명,전원,합창을 비롯하여 현대의 빈,베를린,뉴욕 필하오니오케스트라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건강한 마음을 부여해준다.음악이라는 장르가 언제 어디서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클래식만큼은 격조와 분위기,고매함과 사색의 씨앗을 뿌려주고 있기에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또한 대형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도 애호가들의 격찬과 사랑을 받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오페라의 유령','캐츠','레미제라블','미스 사이공'이다.이 작품들은 흥행과 관련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전자 두 작품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했고 후자 두 작품은 미셀 쉔베르크가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현대의 뮤지컬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이러한 작품들이 흥행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나라와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과 교훈을 주는 깊이 있고 탄탄한 이야기가 흡인력을 끌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음악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에는 1990년대초 사라예보 전쟁 당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총탄이 퍼붇는 거리 한복판에서 연주를 하는 첼리스트의 사연에서 비롯되는데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에 의해 사라예보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고,첼리스트는 저격병들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개념치 않고 가방에서 첼로를 꺼내 알비니오의 '아다지오'를 연주했다고 한다.고막을 찢는 총성은 찬물을 끼얹은듯 잠잠해지고 그는 거리 한복판에서 유유하게 22일간 사라예보 시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평화를 위해 음악으로 표현했던 용기 가득찬 악사라고 생각이 들었고 감동마저 든다.

 

 클래식을 들으러 카페를 찾기도 하고 길을 걷다 잔잔하게 흘러 들어오는 그 음율의 살가움은 소란한 일상을 벗어나 청아하고 그늘진 심산의 계곡에 찾은 느낌이리라.

 

 스타카토처럼 경쾌하고 활기차게,안타데처럼 느리고 여유롭게,비바체처럼 열정적으로 칸타빌레처럼 흘러가듯이 - 목차에서 -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애조를 띤 클래식도 좋을 것이고 밝고 경쾌하며 비상(飛翔)하는 음악도 좋을 것이며 물이 졸졸 흐르는 듯한 태교음악도 좋을 것이며 신혼부부가 새출발을 밝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음악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빠른 템포와 가사 자체가 외래어로 가득찬 국적 불명의 노래들이 범람하고 있다.또한 그 노래들의 생명력이 오래가지를 않는다.속칭 철새와 같은 시간을 때우고 어디론가 다시 이동하는거 같다.불후한 명곡인 클래식은 시공간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늘 사랑과 애정을 변치 않고 받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의 내면의 영혼을 깊게 울리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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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2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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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까오마와 진쥐가 부모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이 어디든 가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틀고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로 그들은 티엔탕을 떠나 이웃 창마(苍马)현으로 도망을 치려다 결국 진쥐 오빠에게 붙잡히고 까오마는 죽을만큼의 몽둥이 찜질과 진흙탕 속으로 그의 머리를 쳐박는 등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너무나도 무색하고 지위와 신분에 따라 부모님의 의사가 첫번째 조건이라는 봉건주의 연애관을 다시 보는듯 했고 진쥐는 아버지의 암묵적인 지시에 따라 오빠에 의해 처참한 죽임을 당하고 까오마는 기세등등하게 현 정부건물에 방화를 저질러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넷째 숙부는 현 정부의 자동차에 의해 암소와 수레,마을,그리고 숙부의 몸이 어둠이 삼켜 버렸으며 그의 시신은 마치 죽은 개 같고 바닥에 대(大)자로 뻗은 형상이었다.그리고 유족들의 뜻은 저리가라 하듯 현 정부의 규정에 따라 죽은 시체는 화장을 해야 하고 쇠고기를 팔게 되면 시 위원회에 십 위안(한화 1,700원정도)의 관리비를 납부해야 하는 등 중국 사회가 인민들에게 거둬들이고 행패를 부리는 제반규정은 셀 수도 없다.

 

 그 단적인 세금 명목이 일 무(畝)의 마늘 농사를 지으려면 농업세로 구 위안 팔 자오,향(鄕) 정부에 제류세(提留稅:국가나 기업에서 일정액을 떼어서 적립해두는 세금) 이십 위안,마을 위원회에 삼십 위안,현 정부의 도시 건설세로 1인당 오 위안을 내야 하고,마늘종을 판매하려면 시장 관리세,계량기 검사세,교통 관리세,환경 보호세,그리고 각종 명목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가렴주구의 세금 투성이 들이다. - 본문에서 -

 

 

 현 정부의 안일하고 무사태평한 마늘종 수매정책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 농민들은 정부를 비방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관료주의를 몰아내고,탐관오리를 쫓아내자'는 것이다.어느 나라든 중간에서 공무원과 짜고 치는 식으로 농민의 알토란 같은 세금을 착복하고 공무원은 뇌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권세를 누리는 나쁜 습성이 절절히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것이다.

 

 우루구아이 라운드 정책으로 한국 농촌도 피폐해져 가고 미국이 이끄는 FTA정책 역시 농민들에게 삶의 질을 떨어뜨리며 농촌을 떠나게 하는 커다란 요인이 된다.살아가는 살맛이 나야 힘이 생기고 사회 분위기도 좋아질텐데 한국 역시 약소국이라 그런지 경제강대국들의 눈치나 보고 하는 주떼없는 순종을 하고 있다.결국 나라의 정책을 잘 하라고 뽑아 준 사람이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닌 국민이 정권을 잡은 사람에게 눈치보고 따라가야만 하는 천민(賤民)의식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마늘종 문제가 시사하는 것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부서와 책임자는 생산과 판매,재고 등을 시시각각 확인하고 힘없는 농민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생산성 있는 일상과 수익성을 보장해 주어야 비로소 농민들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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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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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전후세대로 어린 시절 칠흑같은 문화대혁명의 하방(下放)운동을 몸소 보고 겪고 이제는 60을 내다보는 저자 뭐옌(莫言)은 차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그가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은 생래적으로 고향인 농촌과 농민들의 도탄과 같은 힘겨운 삶을 묘사하고 간접적으로는 부조리하고 부패한 관료들의 무능력과 무사안일주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보다 나은 농촌의 삶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농촌문학을 일군 작가 이무영씨의 작품들이 머리 속에 교차가 되고 시대와 사회,농촌의 피폐하고 황무지로 변해 버린 이농현상 등이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닌 한국 사회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함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마늘 종은 그리 값비싼 음식이 아니지만 중국 농민들에겐 벼와 옥수수와 같이 곡물을 수확하고 수매를 하면서 목돈을 마련하여 그간 빌렸던 돈도 갚고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생계비로 사용하게 되는데 떵샤오핑의 개방.개혁 정책이 물살을 타면서 중국 산동성 티옌탕(天堂) 마을은 현 정부의 사기성 수매정책에 분노를 터뜨리고 기물을 파손하고 방화(放火)행위를 하는 등 현(县)정부와 농민간의 갈등과 분노,폭압이 이어지면서 마늘 종 수매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 번지게 된다.

 

 이 글의 주인공 까오마와 진쥐는 서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이로 부모가 결정하고 맺어 주는 상대와 결혼하지 않으려는 진쥐와의 갈등은 급기야 아버지와 오빠가 진쥐를 나무에 매달아 죽음으로 몰게 하고 진쥐를 일편단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까오마는 넋이 나간 상태에서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또한 그는 마늘 종 문제를 현 정부가 계획대로 원만하게 수매를 해주지 않아 현 정부건물에 방화를 하고 옥살이를 하게 되며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결코 후회나 현 정부의 회유에 대해 굴복하지 않는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작가는 티옌탕 마을과 관련한 마늘 종 문제가 신문에 기사화되고 그도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티옌탕 마을의 일원으로 돌아가 현 정부의 무능함과 무사 안일주의라는 관료의 정체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락해가는 농촌을 어떻게 해야 살리고 농촌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방향으로 바꿀지를 사회저항 형식으로 마늘 종 문제를 전개해 나간다.

 

 진주의 넷째 숙부가 마늘 종을 싣고 현 정부에 가던 길에 현 정부의 차량이 그의 수레를 들이 받고 그는 희생이 되고 넷째 숙모는 기물파손죄로 옥살이를 하게 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진쥐의 애인 까오마 역시 정해진 형(刑)을 살아간다.성난 농부들이 현 정부의 기물을 파손하고 현장(县长)과의 면담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현청 건물에 사건.사고가 발생하던 날 현 정부의 책임자는 낮술을 마시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참이고 농부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개선책을 마련할 의지가 없었던 썩고 낡은 사상을 갖은 중국 관료의 표본을 보는거 같았다.

 

 거의 20여년전 중국에 업무차 산동성 웨이하이(威海)와 칭따오(青岛)간을 자동차 내지 고속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회지는 크고 작은 건물과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나고 시골은 아직도 포플라 나무가 2차선 좌.우로 즐비하며 광활하게 펼쳐지는 시골의 논밭은 땅콩과 옥수수,마늘들로 농부들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장면이 선연하다.마늘 종이 그들의 양식이고 삶의 기초가 되며 중앙 정부가 농촌에 대한 계획서와 지침,방향을 전달하지만 꼼꼼하게 확인하고 검토하는 선진 시스템이 낙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무사안일하고 월급날만 되면 월급을 착착 받아가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행태도 저자는 신랄하게 지적하고 비틀고 있다.이러한 유사문제가 발생했을시 한국 공무원들도 농부들의 불만과 저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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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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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현재 살아계신다면 팔십이 넘으셨고 살아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지주,지탱이 되어 주고도 남을 것이다.아버지께서 오랜 노동과 제대로 되지 않은 몸관리,음식 섭취가 기나긴 당뇨와 폐렴으로 이어져 생전 몇 마지기의 논과 집을 장만하고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는 몇 년간의 생활비를 병원비로 충당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이 글을 읽어 가면서 안타깝고 애틋하며 잘 해 드리지 못한 점만 자꾸 마음을 후빈다.

 

 누구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존재할 것이다.대개가 부모의 욕심과 기대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인간사일 것이다.내 자신을 추켜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초.중.대학시절의 성적은 꽤 괜찮았다.늦게 찾아온 사춘기가 고교시절이었는지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공부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가 뇌리에 들어 오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버지 역시 갈팡질팡하는 내게 거의 자율적으로 맡기다시피 해서 내 자신의 몫은 내가 챙겨야 했던 고교시절이었지만 결코 아버지에게 불만은 없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에 늑장부리는 것을 못본 채하고 넘어가질 못하는 아버지는 공부와 가사일을 반반으로 나누어 해주기를 바랬고 나는 나대로 공부가 최고이고 공부 잘 하는 급우가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은 '개인 과외'를 받고서라도 성적을 올리고 내가 원하는 대학,과에 들어가기를 바랬지만 그 희망은 성적에 따라 대학과를 지망해야 했으며 지방국립대학을 원하셨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서울의 주요대학에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가 관철은 되었지만 당장 먹고 잘만한 곳이 마뜩치 않아 대학초년 시절은(2개월 정도) 인천에서 총각으로 살고 있던 이종형 집에서 먹고 자고(쌀은 시골에서 올려보냄) 했다.형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세탁과 취사는 내 몫이 되어 가고 몸에 익숙치 않은 대학생활이 따분하고 낭만적이질 못했다.부모님이 해주시는 밥과 사랑을 받으며 본가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좋았을테고 당시 할머니가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도와 주시는 바람에 몸은 편했지만 생활비는 나름대로 신문배달을 통해 악착같이 생활을 이어나갔다.

 

 1958년생인 작가 옌롄커(阎連科)는 누나 둘과 남동생을 두면서 둘째 누나가 공부를 잘하는 것을 시샘으로 여기고 자신도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지만 대학진학에 대해 중국 정부가 개방의 문을 열자 그는 벼락치기 공부로 중학과정을 섭렵하고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데 작문 시험의 제목이 "내 마음은 마오주석기념당으로 날아가네"였다고 한다.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모범 농촌마을로 평가되는 자신의 고향 산시성 시양(昔陽)현에서 멀리 떨어진 톈안먼을 바라보면서 마오주석의 위대함과 영광을 생각하며 작문을 했다고 한다.

 

 마오쩌뚱의 '대약진 운동'과 '3년 자연재해'는 농촌을 피폐화 하고 촌부들의 삶의 도탄지고에 빠뜨리는 등 힘들고 험악한 생활이 이어지지만 삶과 생계를 위해 학생신분인 작가도 풀을 베고 소를 먹이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등 본업과 부업의 구분이 없는 어수선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내 아버지 역시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어머니와 함께 객지에 나가셔서 그릇장사,건채물 장사,과수재배를 하시면서 두다리 쭉 뻗고 편안하게 생활을 못하셨다.오로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묵묵히 일만 하셨던 분이기에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던 것도 이 자리에서는 인정해야겠다.작가의 아버지도 죽도록 일만 하고 자식들에게 토담으로 된 기와집을 한 채씩 장만해 주시는 등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던거 같다.

 

 작가의 큰아버지,아버지,넷째삼촌,아버지의 세대의 삼형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될 비와 햇빛도 중요하지만 뜻하지 않는 비바람 앞에서도 꿋꿋히 견뎌내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성숙하고도 알찬 내면의 세계와 부모님의 커다란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효심과 생명의 존엄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멈추지를 않고,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한문이 떠오른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중국 대지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 옌롄커는 중국의 중견작가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이 작품은 그의 자식세대인 팔링허우(八零後) 즉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생존의 기록이고 살아있기에 기억을 하고 그 기억은 역사의 한 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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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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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원미동은 원미산과 더불어 공기 맑고 인심이 후한 동네였던거 같다.산업화와 투기열풍이 불면서 월세와 전세를 살던 사람들이 살기 좋고 개발이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외진 곳으로 이동의 꼬리를 물고 이동하게 된다.개발에 대한 얘기는 신문지상보다는 유력한 자의 한마디에 소리 소문없이 발빠르게 번져 나가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투기꾼들은 빚은 내서라도 가난만은 면하고 대대손손 부를 거머쥐기 위해 생사쟁탈전을 벌인다.그러한 광경은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가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일부 계층이 꼭 있게 마련이다.그러한 사람들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내 돈으로 내것을 산다는데 누가 간섭할 권리가 있냐는 식이기에) 과열이 되다보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허탈감과 상실감만 누적되어 가고 삶의 질이 떨어지며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 역시 증폭되어 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투기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120만원의 전세에서 신혼초 2,400만원의 전세에 이르기까지 십회에 가까운 이사를 왔다 갔다 했다.혈혈단신이었던 총각 시절엔 세간살이가 단촐하여 리어카 하나와 친구,가족이 도와주면 이사는 수월하게 끝이 났지만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새간살이가 늘어나고 챙길 것도 많고 이사하는 장소가 먼거리였기에 이사 비용은 나가지만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사문제를 해결해야 했다.이 글에서도 재미있게 묘사했듯 이사할 때에는 피아노가 가장 골치가 아프다.인부들고 낑낑 거리며 혹시 모서리에 상처라도 날까봐 좌우 앞뒤를 신중하고도 힘을 주어 보물다루듯 옮기곤 한다.그래서 이사를 여러번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정처가 없어지고 가재도구들은 폭격에 맞고 폭풍에 휩쓸린 물건마냥 앙상하게 변하고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부천 원미동은 개발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움이 넘쳤던 전원적인 시골마을의 상징이었던거 같다.글에 등장하는 '강노인'처럼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전답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모습에서 진정 전형적인 농부이고 농촌을 지키겠다는 숨은 파수꾼이지만 나라에서 개발을 확정하고 밀어 붙이기 식으로 나오면 공권력에 당할 장사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개발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렛대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론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야만 하는 촌부들의 가련함과 정부의 냉정함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도 씁쓸하다.

 

 주인공인 내가 원미동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지물포,형제슈퍼,사진관,써니전자,강남부동산,정육점,미용실,화장품 가게가 생겨나면서 가게들은 저마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한 가격경쟁을 이어나간다.또한 다방이 성행하던 시절이어서인지 다방레지들의 발빠른 배달과 애교섞인 콧소리 등도 간지럽게 다가오는데 내가 대학시절(1980년대)의 풍경은 원미동 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일상에서 보고 지나쳤음직한 추억의 장소들이다.경호네와 형제슈퍼 김반장이 슈퍼를 운영하는데 '싱싱청과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 지고 종국에는 들여오는 가격(본전)도 뽑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경호네와 싱싱청과물 주인은 육탄전을 벌이는데 동네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사건은 불상사로 이어지고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원미동 23통 근처는 하루가 멀게 이런 저런 가게가 생겨나고 동네 사람들의 이런 저런 얘기가 입이 가벼운 아낙네들의 안주거리가 된다.행복사진관 주인이 유부남으로서 여성과의 교제로 인한 썸씽이 스캔들로 비화되어 주민들의 입에 오르게 되고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작가는 11편의 단편 소설을 원미동 사람들과 연관성 있게 풀어 나가고 있으며 '한계령' 편에서는 원미동 사람들의 인생 역정을 총괄적으로 정리한다.'86아시아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원미동은 개발붐과 투기의 장으로 변하게 되면서 고만고만하게 일상을 꾸려가고 삶을 이끌어가던 가게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어디론가 새 삶의 터전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질곡과 같은 인생의 역정을 시대와 사회상을 들추어 내고 1980년 당시를 혈기왕성하게 살아왔던 세대들에겐 비록 아날로그와 같던 시절이고 궁색하고 비좁은 불편한 삶이었지만 지나간 시절 서민들이 질펀하게 울고 웃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나도 그런 때가 있었구나'라고 회고해 보는 추억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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