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동어미전
박정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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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국체로 삼고 남존여비사상이 사회적 분위기였던 조선시대에서는 여인들은 바깥으로 출입도 제한되고 오로지 한 남자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와 이상을 맘껏 펼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시골에서든 도회지에서든 아기에게 젖먹이고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가고 집에 돌아오면 밥하기,빨래하기,어른 모시기,경조사 챙기기,궂은 일 하기 등으로 여인들은 청춘을 숨죽이고 중년과 말년은 병에 들어 골골하니 어느 세월에 바깥 출입을 하고 이웃들과 회포를 풀었을까.고작 밭메고 빨래하면서 앞집,뒷집 누구네 엄마와 이런 저런 신세타령이나 하고 살았겠죠.

 

박정애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고향이 경북 청도이시고 이 글의 모태가 <소백산 대관록>의 필사본 시가집에 실린 <화전가>를 바탕으로 덴동어미가 등장하면서 여인들의 한많은 시간과 세월을 농밀한 경상도(영주.안동,경주.울산 일대) 사투리를 구성지게 풀어 놓으니 몇 십년 묵은 마음의 상처와 체증이 일소가 되는거 같다.

 

봄이 오지만 똑같은 봄은 아닐테고 다음해 봄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하늘과 땅,산과 물이 봄빛으로 물들어가는 봄의 정취를 완상하러 덴동어미를 비롯한 안동댁,단양댁,달실댁,골내댁 등이 주고 받는 얘기는 조심스럽지만 화전 놀이날만은 해방의 공간이 되고 여인들이 물만난 물고기와 같이 생동감과 발랄함,구성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엿장수인 덴동어미의 구성진 노래가락은 듣는 아낙네들로 하여금 신명을 불러 일으키고 덩실덩실 춤사위까지 유혹한다.또한 일찍이 어린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아온 청상과부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는 말도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 나고,아낙네들이 준비해 온 갖가지 음식 재료로 솥뚜껑 위에 지저대는 화전의 향기는 진달래꽃과 어우러져 감미로운 화음을 연출하고 해가 질 무렵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막막하기도 막막하고 섧기도 서러웠지마는 해 뜨면 한 그릇 밥나눠 먹고 해 지면 끌어안고 살 붙일 사람 하나 곁에 있으니 그 온기로 살 만했네. - 본문-

 

사회 구조가 여인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일상을 일구어 나가야 하니 그 많은 시간과 세월의 응어리를 화전 놀이에서는 유감없이 마음껏 그 스트레스를 풀었으리라.화전 놀이가 여인들의 해방 공간이라면 사람구경,물건 구경하는 유일한 낙은 각고을마다 정례적으로 서는 장날일 것이다.안동장,풍산장 등의 벅작벅작한 시장터에 떡,국밥,방물,옷감,자반 장사가 있고 덴동어미는 평생 엿장수가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부분에서 굴곡진 삶이 언제 어느 시절에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 치마,무명 저고리를 입고 머리는 비녀를 꽂은 채 봄바람에 치마폭이 나폴거리고 바둑이도 함께 하는 화전놀이는 여인들이 족쇄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남자는 술로 회포를 풀고 여자는 수다로 회포를 푼다는 말이 화전놀이에서도 그랬을 것이다.별미는 작가가 풀어내는 본토박이 경상도 사투리를 잘 구성하여 읽는 내내 재미와 흥미를 몇 곱절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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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고 우는 까닭 - 옛 노래에 어린 사랑 풍경
류수열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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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터놓고 할 수가 없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도 속으로 애간장만 끓게 하는 시절이 있었다.그 옛날 고려,조선조의 남녀 사이의 연정은 말그대로 속으로 삼키고 꿈에서나 만나야 하고 은유적으로 입으로 흥얼거리는, 처량하고도 애틋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읽는 가운데 당사자의 마음을 읽게 되고 그 입장이 되어 한 번쯤 뒤척이고 잠못들 때가 있으리라.

 

"닿을 수 없는 거리"와 "이룰 수 없는 거리" 때문에 그리움이 생기고,그 그리움이 우리 목숨을 솟구치게 만드는 삶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 본문에서 -

 

고려와 조선 시대에 불려지고 전해져 오는 구비문학은 실제로 만나 농탕하게 사랑을 나누고 자유스럽게 당사자끼리 혼인을 맺는 게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젊은 청춘남녀들이 불타오르고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애욕은 그리움과 상사(相思)의 병만 더해가고 이를 구비로서라도 그 마음을 전케하니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초보적인 형태는 열정,친밀감,책임감중 하나만 있으며,열정만 있는 매혹감,친밀감만 있는 상태는 호감,책임감만 있는 상태는 공허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다.나아가 친밀감과 책임감만 있는 사랑은 우애,열정과 책임감만 있으면 육체적 사랑,열정과 친밀감만 있으면 낭만적 사랑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사월을 아니 잊어 오는구나,꾀꼬리 새여

 

무슨 일로 우리 임은 나를 잊었는가 <동동> [고려가요]

 

SNS,문자,메일,전화 등 광속도와 같이 요즘 사랑의 속삭임은 빠르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와 함께 사랑이 싹트고 성장하고 식어가기를 반복한다.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와 같은 요즘의 사랑은 그 옛날의 남녀사이의 은근하게 피어오르고 끓어오르는 사골육수와 같은 진한 국물과 같을까? 꿈 속에서라도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서 몸에 동이 트고 밥맛이 없어 시름시름해져는 상황을 말로나도 글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애틋한 마음의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풀어 놓고 있다.

 

만나지 못하니 마음의 병이 생기고 황홀한 고통이라는 역리가 그리움으로 번지며 과장과 웃음이 듬뿍 배어나는 옛 사람들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가 없지만 사후에서만이라도 꼭 만나 진실한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고 싶다는 애틋한 연가가 잘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짧은 인생 속에서 진실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행복한 여정을 함께 해줄 열정과 친밀감,책임감이 어우러진 관계는 이상적이고 고귀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엄마의 양수(羊水)속에 평온하게 유영하는 태아와 같은 천진무구한 어린 사랑이 옛 사랑 노래에는 그윽하고 따사로운 봄날과 같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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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금 - 세계 1%의 투자자들만 알고 있는 금에 대한 비밀
마스다 에츠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이지평 감수 / 다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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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렵고 현금이 떨어져 이래 저래 곤궁할 때 깊은 곳에 묵혀 둔 금반지를 보면 결혼을 앞두고 주고 받은 패물이지만 이 금반지를 팔까 어떨까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순금이 아닌 18K이지만 사랑의 증표로 받은 패물이기에 십 년을 넘어도 퇴색되지 않고 그대로 그 빛을 발휘하고 있는 금반지는 언제 어느 곳에 갖고 가더라도 제값을 받기에 돈이 없었던 시절엔 금반지를 팔까 말까로 고민하고 돈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금은 1998년 경제위기를 맞고 한국경제가 IMF 체제하에 들어갔을 때 당시 김대중 정부는 장롱 속에 고이 묵혀 두었던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새로운 시대로 돌입했던 적이 있다.너도 나도 금의 무게를 가리지 않고 선뜩 꺼내 IMF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던 국민들의 뜻의 동참의식이 신선하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처럼 실물경제가 불안정하고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만큼 값어치 있는 상품은 없다고 생각된다.주식,부동산 투자가 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만 금만큼은 경제 위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이고 공급과 수요적인 측면을 떠나 꾸준하고도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기에 매력적인 실물 상품이다고 생각된다.

 

2010년 채굴된 금의 총량은 약 16만 5,600톤으로 추정되며 이는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세 개 반을 채울 수 있는 양이락 하는데,금의 용도는 대부분 장식품(52퍼센트)이고 개인 가정이나 기업,공공기관에 보관되어 있다.민간 투자(18퍼센트),정부,공공기관,국제 협조 금융기관의 금준비(16퍼센트),공업용이나 치과의료용 원재료(12퍼센트)로 되어 있는데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는 양이 2퍼센트(약 3,300톤 정도)이니 금이 가치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류 역사상 금이 인간에게 각광을 받고 장식품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금값이 은값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 이유는 사람들은 은보다 금이 위기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자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실물경제에서 금이 차지하는 장식품과 화폐,금융 상품으로서 호황이나 불황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수요를 가지고 있으며 금융 위기가 심각해지고 전쟁이나 내란,폭동 등으로 생명과 재산이 위험에 노출된 가능성이 발생할 때 중량당 가치가 높은 금은 짐을 줄일 수 있고 많은 재산으로 여기는 금을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가 있다는 점이 금이 갖고 있는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한 나라를 보면 일본은 불완전하나마 청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청국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 일본은행이 금준비가 약 380톤이 증가되었고,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결과로 프로이센(독일)은 프랑스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 1,450톤 상당의 금본위제를 채택했으며,영국 역시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후 1파운드당 7,323그램이라는 금 평가로 금본위제를 도입했다.또한 미국은 미국-스페인 전쟁의 승리와 하와이 병합과 같은 '외교.군사적 쾌거'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라는 요인이 강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실물경제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는 증가하지 않는데 돈만 과잉 공급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대응책은 첫째 돈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으니 빨리 써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고 물건이나 서비스로 바꾸는 방법으로 화폐의 유통속도를 높이는 것이며,둘째는 생산활동도 침체딘 상태이므로 이 돈에는 액면만큼의 가치가 없음을 알면서도 물건과 교환하는 경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통속도를 낮추는 것이며 이는 디플레이션에 해당한다.가격지배력을 쥐고 있는 거대기업이 생산 축소를 강행하지 않는 한 디플레이션과 실물경제의 위축은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인다.이는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차입(借入)능력'의 차이로 빈부간의 격차가 커지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보다는 훨씬 양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의 증산(增産)에 따른 통화 공급 증가는 비용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좋고 불환지폐의 증쇄(增刷)에 따른 '수요 환기'라든가 '기폭제'같은 모호한 표현을 넘어 금의 증산은 그 자체가 경제 활동의 확대를 의미하고 금광 경영 회사가 기자재비와 연료비를 늘리는 것도 실물경제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좋은 징조라고 생각된다.

 

어떠한 경제 시장에서든 음모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금시장에도 음모가 있고 금값을 조작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있다.그들은 '세계 정복'의 수단으로 대체 통화,세계 통화,본위 통화 등 통화준비의 한 형태로서의 금지금을 매점하려 한다면 어리석은 계획이고 시장 메커니즘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믿지 않을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 음모세력은 기관투자가,각국의 중앙은행,국제 협조 금융기관,워싱턴 협정의 매각 카르텔 등이 말해주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음모와 조작 세력이 실패한 이유는 화폐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고 금가격이 오를 리가 없다라고 이론으로만 무장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성곽 도시가 발달되지 않아서인지 금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고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외국 문물과 물품을 대거 사들이면서 금과 은으로 대금결제를 하였고 미국과 유럽에 비해 금융 위기를 잘 넘긴 이유는 제조 기업의 기술 혁신력과 사양길에 접어든 대기업의 본업을 재빨리 제거하고 신규 분야를 개척해 조직적인 자기 혁신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통화 공그블 무작정 확대하지 않았던 일본은행의 책임감과 뚝심있는 의지로 화폐 가치의 유지에 공헌했고 엔화 강세가 진행되는 만큼 엔화의 구매력도 동반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반 투자와 달리 금에 대한 투자가 개인에게 유리한 이유는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기관 투자자나 개인 투자가가 접하는 정보의 격차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금은 재고 리스크가 거의 무결점이고 재고량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수치 정보가 공시된다는 점이며,실용적인 측면에서 현금 흐름에 따른 현재 가치 환원법 DCF(Discounted Cash Flow Method,현금흐름할인법)이라는 수익 예측 모델이 금광업에는 비교적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계속 증가되며 불가항력인 전쟁과 폭동과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해도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도 편안하고 가볍게 몸에 지니고 피할 수가 있다는 점과 금에 대한 정보 역시 개인이든 기관투자자이든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접할 수가 있으며 불환지폐로서 갖는 금의 매력은 투자 및 장식품으로서 식을 줄 모른다.금에 대한 역사와 금이 갖고 있는 가치,환금성으로의 경제력은 개인이든 기관투자자에게든 종이돈보다는 훨씬 가치와 유익성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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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탄생 - 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아서
이국운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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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사행외시 및 공인회계사 등에 패스하여 권력과 명예,돈을 거머쥐는 것을 커다란 목표로 삼고 있다.특히 학교 성적이 좋고 머리가 뛰어나다고 생각되면 대학에 입학마자 마자 학교 수업을 거의 도외시한 채 '고시촌'으로 잠적하고 그곳에서 몇 년을 전력투구한다.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을 거치고 각 법조 지역에서의 적응 및 동화 단계를 거쳐 검사,판사,변호사로 제 갈길을 가게 되는데 그때부터 한 인생의 향방이 판가름나며 판사는 권위,검사는 권력,변호사는 수임료라는 것을 머리에 두고 일선에서 원고와 피고의 사안을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원만하게 사건을 종결짓는 경우도 있다.

 

현대적 법률 인사의 맥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로 올라가고 1943년 판,검,서기관,서기,통역인까지 1,275명이었는데 그중에 조선인의 수는 10퍼센트를 넘지 못해쓰며 복심법원과 고등법원은 합의체 법원이었는데,합의부에는 반드시 1인 이상이 일본인이어야 했고,조선인은 재판장이 될 수 없었으며,일본인 판사는 1인의 의사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법률가 지단은 <과도법원조직법> 제정 이후 미군정과의 사이에서 확보한 물밑 협상의 결과물을 5월 10일 선거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정치권력과의 투쟁 속에서 방어해내는 과정이었고 1948년 6월부터 시작된 헌법 제정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긴급 사법 체제가 발동하였는데 <국가보안법>이나 긴급명령권은 약식 형사 절차만으로 가혹한 형벌을 부과할 수가 있었고,긴급 입법을 집행하는 일차적 권한은 법원 - 검찰로 이어지는 통상의 사법제도 바깥의 특무대.헌병대.보안사.정보사.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등의 정보 수사기관들이었으며,인신 구속을 전제로 운영되던 억압적인 수사 관행은 긴급 사법 체제가 작동하는 실제적 토대가 되었으며,긴급 사법 체제는 통상의 사법제도와도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일단 혐의를 받고 법망에 포착되면 인권보다는 건수를 올리는데 혈안이 되고 인신공격,탄압,쳐넣기 등이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기에,힘없고 백없고 돈없는 약자들 사이에서는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도 성행할 만하다.특히 법률이 특권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음은 매체나 증언을 통해 증명되고 있고 해방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법처리의 문제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법조계가 힘없는 자를 위하고 공명정대하게 집행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편파수사 및 보복수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법조계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듯하다.

 

나아가 법조계도 기업형 내지 대형병원과 같이 수사를 분야별로 나뉘어 진행하고 있는데 미국식 로펌 형태를 빌리고 있다.한국의 경우에는 2003년 '빅4'를 형성하는 로펌이 김&장.태평양.세종.광장이 있다.변호사 시험에 패스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어 로퍼 수련으 쌓아 조직적이고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승진이 되고 로펌 안에서 인정을 받으며 명예와 재물까지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만 오랫동안 연구 및 실전경험을 쌓아야 하기에 돈과 인내력,인맥,운(fortunate) 등이 잘 따라 주어야 하고,미국과 같은 로펌 시장이 한국에도 형성된다면 법조계는 대기업과 대형병원의 전문적 분야가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연과 연줄에 의하고 상임고문이라는 자리를 전직 고위관료가 차지하는 파행적이고 비스마트한 방향으로 흘러 국민의 기대를 한껏 샀던 로펌의 명예가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내 자신도 법과 법조계를 향해 소변도 보고 싶지 않다. 법조계에 대한 내 인상과 선입견은 너무 먼 당신이어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법률을 공부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용어 자체가 일본식 법률용어가 비일비재하고 소위 '지체가 높고 잘난체하는 부류'라는 생각이 든다.법률이 어려운 과목인 만큼 어렵다는 법조계에 입신했으니 얼마나 도도하고 행색을 부릴까라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만 담벼락을 너무 높게 쳐놓아 일반인들이 출입하기엔 버겁고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고 그들은 사회권력과의 유착을 맺고 암묵적으로 추켜 세워주는 지원군이 있기에 법과 법률가에 대해선 일반 시민들에겐 선택권이 없게끔 만들어져 있다.절대 죄를 지어서는 아니되고 법률에 저촉되는 일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듯 건너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과다한 수임료,사건 브로커들의 수임 비리,관행화된 전관 예우,섭외 사건들에서의 무능력 등 사법 현실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 카르텔을 형성한 채 담합(談合)을 일삼는 악덕 법률가들로 인해 강한 시민사회의 모델로서 1994년 김영삼 정권에서 시장주의의 관점이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개혁 담론의 총아로 등장하면서 '사법도 서비스다'라는 슬로건하에 법률 서비스 소비자들의 주권 의식을 고양시켰지만 실제로 나아졌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왜냐하면 돈과 권력은 재미가 쏠쏠하고 나름대로 사회에서 우월의식을 살아가며 엘리트 의식이 몸과 마음 속에 한껏 담겨져 있기에 껍데기만 선진법조이지 실제는 능구렁이 담너머 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그래서 법률 자체는 좋게 보이지만 이를 행하는 법조계의 검찰,법원 등의 판결을 보면 속이 뒤집어질 정도이다.

지난 노무현정권하에서 사법 개혁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다고는 하나 정권이 바뀌니 검찰의 본성은 고개를 다시 들고 현정권과 유착된 검찰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사법의 올가미로 집어 넣고 정치 보복을 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사법 개혁은 비단 법과 법률의 차원만은 아니다.사법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정치,경제,교육,행정,지방,재정 개혁과 맞물리고 이는 한국 사회 전체의 재구성을 목표하는 '총체적 사회 개혁'의 하나로 이해되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이기에 의미심장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사법 개혁은 사법 개혁을 이끄는 정치적 리더십과 그것이 내세우는 정치적 비전에 관련된 문제인 만큼 사법 서비스의 수요를 확충하면서,한편으론 시장 내부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인데,서비스의 수요 확충은 사회 내의 다른 엘리트 집단과의 투쟁을 전제하고 법률가 집단에게 좀 더 손쉬운 것은 시장 내부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며 법률가 집단이 법률가 공급 통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공급 조절을 통한 독점이윤의 유지이고 이를 통해 사법 서비스의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순응하게 되는 까닭도 분석되어야 한다고 리처드 에이블은 연구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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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법조계도 세계화를 향해 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는 법률가의 활동 공간이 확대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법학의 논리,법률가의 사고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함축하고 법 공동체로서 국민국가가 약화된다는 것은 그 권위에 입각한 법전이나 판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린다는 의미도 있으니 법률가는 '존재해야 할 법'의 전문적 변증가로서 자신의 전문 직업적 정체성을 변화시켜야 하고,법률 업무의 중심은 송무에서 정책으로,사법 변론에서 입법 면론으로 옮겨져야 하며,법치주의의 중심 또한 소극적인 법 준수가 아닌 적극적인 법 실현으로 궤도 전환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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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혼
김원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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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하에 좌.우 이데올로기가 형성이 되고 미국 자본의 종속이 되고 부패한 이승만 정권이 지속되면서 학생들에 의한 이승만정권 퇴진이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계획을 세워가는데,해방 후 일본과의 외교해빙을 내세워 1964년 일본에게 배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한.일외교 수립이 진행될 무렵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서울 시내 대학가에서 극력시위로 번지면서 이 시위(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인혁당(인민혁명당)을 적발하면서 체제에 맞지 않고 눈에 가시가 되는 세력들은 모조리 잡아 들이며 각종 탄압과 인권말살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정권하에서 수많은 민주인사와 진보학생들이 굴비 엮어가듯 연행되고 고문을 받으며 그 후유증으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의 시간과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인혁당 가담자들의 숨막히는 삶과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사형소식이 알려진 후 국제사면위원회 등은 박정희정권의 비이성적인 법치 행위를 규탄하기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한국의 정치 상황이 괄목한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느껴진다.이 시대의 정의.진실.인권옹호라는 측면에서 <푸른 혼>은 당시의 사회문제를 현장감과 밀도감있게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에 남게 되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8명에게는 늦은 감이 있지만 심심하게 조의와 명복을 빈다.

 

해방 이후 좌우의 갈등으로 빚어진 억울한 죽음들은 셀 수도 없다.제주 4.3항쟁,지리산 빨치산 사건,여.수민란 사건,보도연맹 가입자들의 희생,군사정권 독재 아래 민주화 운동에 희생된 인사들도 대표적인데 그들이 꿈꾸려 그렸던 계급 착취 없는 사회정의 실천,국민복지 달성으로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었고 이는 박정희정권과는 맞물리지 않은 낭패와 같은 성질이었다고 보여지지만 어떻게 사형 확정 발표가 선고되고 항소심도 없이 익일 사형을 집행했는지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그만큼 당시의 인권침해 및 인권에 대한 한국의 주소를 생생하게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서도원.도예종.송상진.우홍선.하재완.이수병.김용원.여정남 등은 서대문 구치소에서 사형을 집행받고 익일 새벽 남겨진 후손과의 이별,생의 굽이굽이에서 겪었던 회환,거미줄처럼 끊어질 듯 흔들리는 사형 의식이 육체적 고통을 한사코 밀쳐 내며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둥걸는 극한의 공포와 함께 마지막 말을 내뱉을 사이도 없이 그들은 사형 집행하는 교도관이 기계적인 절차에 의해 이승과 하직하고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말았다.

 

인혁당 회원들은 그들의 뜻을 펼치기 위해 회원들과의 은밀한 접촉을 행하고 사회 동태를 파악하는 등 분주하면서도 심중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특히 (지금으로 볼 때)말도 안되는 법망이 그들의 주위로 좁혀져 오면서 낮에는 산 속 깊은 곳에 은신을 하고 밤이 되어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밑으로 내려오는(야산대) 등 인혁당 회원들의 당시의 삶은 백척간두에 있었다고 보여진다.인혁당의 주동 인물들은 대구의 학생운동권인 여의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중앙정보부는 여의남을 매개로 인혁당과 민청학련을 연계시키면 대박을 떠뜰릴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들은 간첩 연루사건으로 몰아가면서 박정희정권은 유신체제를 공고히 하고 방해세력은 발본색원하려고 했던 것이다.

 

팔공산,두 동무,여의남 평전,청맹과니,투명한 푸른 얼굴,임을 위한 진혼곡으로 구성된 이 글은 인혁당 인물들의 뜻이 진보적이고 혁신적이었음에 틀림없다.사회정의 실천,국민복지 달성 등을 구현하기 위한 그들은 분명 시대를 앞서가고 국가의 밝은 미래를 꿈꾸었던 인물들임에 틀림없다.인혁당 주동인물들에 여러 죄목을 그럴듯하게 들씌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형을 집행했지만,그 일로부터 한국은 인권 침해 국가로 낙인이 찍히고 뜻있는 지성인과 양심세력들은 한국의 정치행각을 백안시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정치선진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편파수사로 인해 시비가 끊이질 않고 보복성 공소와 재판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정치권과 사법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싯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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