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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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司法府,Judiciary)는 삼권 분립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적용하는 헌법 기관이다. -네이버 지식 인용

 

 지난 정권에서 불어 닥친 한국 사회의 화두는 상식과 정의였다.법률로 정해진 사회 제도와 시스템은 있으나마나한 몰상식과 부정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였다.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에 의한 해석과 심판을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해야 할 사법부의 위신도 국민들에겐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다.일종의 '무전유죄,유전무죄'의 판결 관행이 지속되었다.죄를 지어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겐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법의 판결을 받곤 한다.게다가 정권에 있다 떠밀린 사람의 경우에도 '미운 털이 박힌 격'이 되어 신체적,물질적 손해,손상을 입곤 한다.철저한 수사,증거.사실에 입각한 수사보다는 정권의 입모양에 따라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법부는 삼권 분립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정권의 하수인 격이 아닌 극히 중용과 독립을 생명으로 삼아야 마땅하다.죄를 지은 자에겐 당연히 법률에 의한 해석과 판결권을 갖은 법관의 냉철한 판단력에 의한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그런데 한국 현대사에 있어 아니 현재의 사법부의 모습까지도 일반인들이 사법부에 대한 이미지는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왜냐하면 법 위의 상위 기관이 늘 존재하고 있는데,그것은 당대 정권의 수장이 직.간접적으로 사법권마저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이념적,사상적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하여 정보기관을 활용하여 사법의 권위를 무색케 하고 정권의 시녀(侍女)화 했다고 본다.그래서 향후 사법부(司法府)의 위상은 독립적이고 중용의 차원에서 사법부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홍구 저자가 쓴 한국 현대사의 사법 부분은 말그대로 '회한과 오욕'이었는지 모른다.1945년부터 1997년까지의 사법 부분의 기록을 토대로 엮은 글로 대부분 당대 정권을 유지.수호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 안기부 -> 국정원 등에 의해 사법권이 심대하게 손상되고 말았다.사법부의 법관 가운데엔 대쪽 같은 분들도 존재하지만 정권의 눈에는 거추장스러운 미운 털로 보여 스스로 법복을 벗는다든지 종용에 의한 면직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법률과 법원이 제대로 작동해야 고통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법 피해자들이 줄어들 것이고,이념과 사상의 희생양이 된 분에겐 재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이 글은 2009년 5월 19일부터 2010년 6월 18일까지 『한겨레』에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사법부는 대부분 정권과 권력의 희생양이었다.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사법부를 시녀로 삼기 위해 남북 분단의 대치적 상황,이념과 사상의 잣대를 교묘하게 악용했던 것이다.중정과 안기부가 주동이 되어 사법권을 조종하고 깊숙이 개입한 한국 현대사 사법부는 법 위의 정권의 비위(脾胃)를 맞추어 나가야 했다.물론 이 글이 1997년까지의 사법 부분의 기록물이지만 그 이후의 사법 부분이 과연 얼마나 쇄신과 변화를 거듭해 왔을까.내 감각으로는 반신반의다.아직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꼴을 보면서 사법부의 권위,독립성이 갖춰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법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강자와 약자 모두 법 앞에 평등한 법인데 실제 법의 심판 내용의 면면을 보면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당대 정권을 중심으로 중정과 안기부가 주동 세력이 되어 사법권의 존재,위상을 뒤흔든 사법 파동을 한 두 가지가 아니다.당대 정권의 사상과 이념의 코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권력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물론 억울하게 사법의 피해를 본 당사자 및 후손들은 당사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신청하여 무죄를 선고 받는 케이스가 있다.대표적인 것이 인혁당 사건(2007년),오송회(五松會) 사건(2008년),아람회 사건(2009년),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2009년),김근태 고문 사건(2014년) 등이 있다.유죄판결을 끌어 내기 위해 중정.안기부는 사법부에 은밀한 공작과 회유를 얼마나 많이 자행했는지 (간접적이지만) 뼈 아픈 상처,고통이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다.특히 유신과 5공 시절 사상과 이념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주화 세력,시국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화해와 용서,명예회복을 진정으로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정권 유지 차원 및 사회 안정망의 훼손,한.일 과거사 문제,신형 안보문제 등이다.광우병 촛불 시위,용산참사,세월호 침몰 사건,메르스 파동,국회법 파동,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노동개악(改惡),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개성공단 폐쇄,사드(Thaad)배치,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Filibuster 議事妨害) 등 민주주의의 후퇴가 거듭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는 많은 문제를 지닌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형국이다.사법부의 법관은 편협되고 주관적인 견해를 고집하여 국리민복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권 유지를 위해 없는 죄도 만들어 냈던 수치스러운 한국 현대사의 사법부는 중정 - 안기부 등의 정보 기관에 의해 유죄판결을 언도해야 했다.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그런데 세상의 이치란 사필귀정이다.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1987년 6월 정치 민주화가 표면적으로 성취되었다.정말 민주주의다운 민주국가를 열망하고 기대했지만,실제 한국 사회의 정치 상황은 늘 정권 유지를 위해 존속하고 있는 것 같다.이와는 관계없이 사법부는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사법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그러한 원칙을 어기면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듯 하다.사법부의 요체인 검찰개혁이 시급한 부분이다.또한 사법부에 대한 외부 기관(국정원 등)의 개입과 압력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진전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마참히 짓밟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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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피 북 - 커피 한 잔에 담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니나 루팅거.그레고리 디컴 지음, 이재경 옮김 / 사랑플러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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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은 상품이다.1000년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자랑한다.16세기 이집트 카이로의 시끌벅적한 카페부터 18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커피 노예들의 비참한 삶에 이르기까지,그리고 거대 커피 생산국으로 19세기 혜성같이 등장한 브라질부터 오늘날 스타벅스에 의한 커피하우스 제국주의까지 커피 이야기는 끝이 없다.커피 이야기는 그 속에 함유된 성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로 인간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서문

 

 이렇게 저자의 서문처럼 커피는 오랜 역사와 함께 뭇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나 자신 커피를 처음 입에 댄 것이 고교 시절로 당시(1970년대 후반)엔 가루용 커피였다.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모양의 커피 제품이 아닌 단순한 상품에 불과했다.커피를 마시고 즐겼던 시절이 아닌 커피의 태동기가 아니었을까.(내가 살던 당시 시골의 수준에선) 물론 시내에선 휴식과 사교,소통의 수단으로 커피를 파는 다방이 즐비했던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접어든 요즘에는 많은 커피 회사,커피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다.그만큼 커피가 대중들의 사랑과 인기를 듬뿍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현대인에게 휴식과 사교,기호(嗜號)식품으로 커피는 이제 만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생활문화의 필수품이다.

 

 휴식과 사교,기호 식품의 상징인 커피는 생활문화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오늘날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가 된 데에는 과거 식민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어디에 커피를 심고 어디에 팔 것인가를 정한 것도 식민주의 서구 열강이었다.갑으로 통하는 서구 열강과 피식민지이며 생산국인 을의 관계는 여전히 불공정무역 관행으로 남아 있다.물론 근래엔 공정무역이라는 형태로 생산자에게 적정한 수익을 안겨 주자는 '착한 소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국제공정무역 인증기관,Fair trade Labelling Organizations) 나아가 커피의 무역 구도는 경제 및 정치의 묘한 경쟁과 알력(軋轢) 관계의 산물이다.세계를 주무르는 대기업들과 강대국 정부들,그리고 막강한 무역 카르텔 등 거인들이 엉켜 싸우는 괴기스럽기 짝이 없는 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커피음료의 종류도 다양하다.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리스트레토,레귤러 커피,터키 커피,유기농 커피,캔 커피,병 커피,모카커피,커피 농축액,카푸치노 등이 있다.

 

 주요 커피 생산국은 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콜롬비아,에디오피아 등이다.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이 세계 제2의 커피 생산국으로 부상하면서 커피 공급 과잉 사태를 유발했다.에디오피아 갈라 부족의 전사들이 음식으로 먹기 시작(575년∼850년)하고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1000년에서 1300년 사이라고 한다.최초의 커피 경작은 575년 예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커피콩에 대한 기록은 10세기경이 되어서야 이루어진다.17세기 초까지는 아랍권이 커피 독점권을 차지했지만 인도에서 온 바바부단이라는 순례자에 의해 커피 씨를 도둑 맞았다고 한다.이후 네덜란드에서 보낸 산업스파이들이 커피를 나무째로 반출하면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커피는 커피하우스가 생기면서 사교의 장이 되었다.사회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어울리는 커피하우스는 공감대 형성과 외세의 박해에 맞서 의기투합하는 현상이 일어났다.사회적.정치적.윤리적 민의가 형성되기도 했다.그런데 커피하우스가 이슬람권에 유행을 타기 시작할 무렵 사원은 텅텅 비고 커피하우스에만 사람이 넘쳐나니 독실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커피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동시기 의학적 관점에서 커피의 효과가 불신으로 연결되며면서 커피 음용이 법으로 금지되고,몰래 커피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났다.일설엔 커피를 마시다 발각된 사람은 가죽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리는 형벌에 처해지기도 했다.또한 커피가 남자들의 생식능력을 떨어뜨려 밤 시간 독수공방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불만은 쌓여 가기만 했다고 한다.

 

 이 도서는 커피에 대한 역사,커피 농장에서 커피 재배와 수확,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재배,정제,수출,선적,분배,로스팅,포장,재분배,커피 추출과 커피 음용),커피 무역의 과거와 현재,상업 메커니즘에 따른 커피 업체들의 시장 쟁탈전,커피 브랜드의 홍수시대와 커피가 소비자들에게 안기는 무언의 메시지 등이 잘 나타나 있다.1950년대 미국 커피 시장이 '거대 복합 기업화'를 표방하고 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휴식과 사교,교양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커피는 일반인들의 생활문화 깊숙이 파고 들었다.커피도 다양한 등급이 있기 마련인데,건강을 우선으로 하면서 즐겁고 유익한 휴식,사교의 장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커피 무역의 복잡다단한 사슬 형성이 이채롭기만 하다.

 

 커피는 인체에 생리학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카페인이다.전문용어로 1,3,7-트리메칠크산틴이라고 부르는 세 개의 메틸기를 가진 크산틴 구조 물질로 차 잎과 카카오 씨,커피콩 등의 식물에 존재한다.크산틴은 신경전달 및 조절작용을 하는 아데노신의 활성을 방해한다.결과적으로 두뇌활동이 활발해진다.하루 커피 두 잔으로도 두뇌 각성효과가 나타나고,더 많이 마시면 심장박동수와 호흡수가 증가한다.커피 중독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다.-p226

 

 최근 연구에서서는 커피에 간암과 제2형 당뇨병,담석증,신장결석,간경변,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스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커피에 노화방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이는 커피콩에 내재된 식물성 페놀성분과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멜라노이딘 혼합물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스타벅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같은 커피 브랜드 회사들이 커피 춘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특히 스타벅스는 중소 자영업 카페들의 씨를 말리는 문화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비난 받기도 한다.그럼에도 커피 마니아층들은 자신의 경제적 수준,교양의 정도에 따라 커피 브랜드를 찾아 다닌다.그곳에선 일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와 소통,사교를 연출하기도 한다.커피에 대한 역사.문화.정치.경제.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소개하고 있어 사뭇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생활정보를 동시에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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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마운틴 스캔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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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스릴러의 아이콘으로 각인되는 카린 지에벨 작가의 색다른 작품을 맞이하게 되었다.『너는 모른다』와 『마리오네트의 고백』을 접하면서 카린 지에벨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스타일을 맛보게 되었다.위기 상황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게다가 남과 여라는 두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협소한 공간,막다른 상황에서 등장인물의 선택지 등은 독자의 마음을 아슬아슬케 하고 다음 신(Scene)의 예측을 불가케 하는 마력을 지녔다.

 

 코냑추리소설 대상 수상작인 『빅마운틴 스캔들』은 독특한 공간 설정과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있다.산악 가이드인 남자 주인공 뱅상과 군인경찰대 소속의 여자 대원인 세르반이 일적으로 만나 사랑을 엮어 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 주고 있다.주무대인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은 카린 지에벨이 관리인으로 일했던 곳이라고 한다.이야기는 남.녀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 하다 후반부에 이르러 음모와 살인이라는 수렁텅이로 빠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게 된다.두 주인공은 과연 어떻게 될까.

 

 산악 가이드인 뱅상은 산악인들의 ,조난 구출 작업 등이 주 업무이다.뱅상은 함께 살던 아내 로르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혼자가 된 몸이다.등산객들을 안내하고 외국 트레킹코스를 다녀 오기도 하는 뱅상은 콜마르 여행사 신참 직원 미리암을 알게 된다.뱅상은 육체적 사랑에 굶주리다 보니 어린 미리암을 탐하게 되고 미리암은 쉽게 뱅상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그런데 뱅상은 미리암과 길게 만나 사랑하고픈 생각이 없어 절교 선언을 한다.이에 미리암은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게다가 뱅상의 절친인 피에르마저 조난(遭難)을 당하게 된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다.심심풀이로 여성을 상대하는 뱅상은 미리암에게 상처를 주고 죽음까지 몰고 가고,신참 군인경찰대 세르반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군인경찰대 조직 속으로 둘의 만남이 소리소문없이 퍼져 나간다.피에르는 조난을 당해 불여귀가 되었을까,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을까를 두고 수많은 억측이 난무한다.피에르는 국립공원 관리소 반장 망소니 부인 기슬렌과 염문이 파다하고,피에르는 딸 에믈린이 자신의 부도덕한 과오를 들켜버려 자살했던 것으로 가상한다.그런데 피에르 생전 망소니 반장,앙드레 시장(市長) 등과의 행정적 업무 트러블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앙드레 시장의 각종 비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망소니 반장에게 부담스럽게 비쳐지고,망소니 반장은 무마조 내지 반대급부로 금전적 뇌물을 수뢰하게 된다.이러한 정황,사실이 신부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앙드레 시장은 자신의 부정적,부패 혐의가 세상에 들통나지 않도록 신부가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여 죽이고 만다.

 

 한편 뱅상과 세르반은 산악 조난자 구출 작업을 함께 하면서 일심동체가 되고,마음은 점점 얼었던 물이 녹듯 평온하게 가까워진다.세르반에 대한 뱅상의 마음은 신뢰,존중,우정 이상의 것이었다.그런데 군인경찰대 하사관 베르톨리를 비롯 망소니 반장,앙드레 시장 패거리들은 뱅상과 세르반을 집중 추격한다.그들은 뱅상과 세르반을 낭떨어지에 떨어뜨려 실족사로 위장코자 한다.뱅상과 세르반 둘은 구생일생으로 극적 탈출한다.손에 땀이 나는 지경이 아닐 수가 없다.뱅상과 속칭 조폭에 가까운 현직 시장과 군인경찰대 하사관 등이 반병신이 되도록 두 주인공에게 총상을 입히지만 둘의 사랑만큼은 이기지를 못한다.메르캉투르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숨겨진 진실과 부정부패에 얽힌 사건을 은폐하고 파헤치려는 치열한 브레인 게임이 살아 있는 한 편의 드라마를 관람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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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인문학 -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
정혜경 지음 / 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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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매일 먹는 한그릇의 밥 속에는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쌀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인의 생래적 DNA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쌀은 1만 5000년 전의 볍씨가 충북 소로리에 발견되었을 만큼 내리 밥을 사랑하고 먹어온 우리 민족이다.쌀은 영양과 칼로리도 밀에 견주하여 손색이 없다.게다가 발효 식품인 간장,된장,김치까지 만들어 낸 민족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쌀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희망,한(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런데 근래엔 세계자유무역(FTA)에 의해 외국산 쌀이 무분별하게 수입되면서 한국 풍토에서 재배되는 쌀은 예전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한 쌀로 지은 밥은 과연 어떠한 대상이고 한국인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기회이리라.

 

 쌀은 두 가지의 관점으로 분류된다.하나는 경제.자원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문화적인 접근으로 한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다.경제.자원적인 측면은 일제강점기와 같이 착취적인 식민주의적 경향 및 쌀 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른 쌀의 주식(主食)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경향과 맞물려 식단의 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져 가고 있다.우유와 빵,샌드위치 등 서구식 먹거리가 한국인의 식탁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번 도서가 전하려는 취지는 '인문학적 시각의 밥'에 대한 얘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내고 있다.특히 쌀은 한국인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무형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일종의 쌀은 한국인의 정령 이상은 아닐까.

 

 모유가 첫 번째 음식이었다면 그 다음은 쌀로 지은 밥을 입에 대었을 것이다.이가 자라나지 않은 아이에겐 미음을 만들어 먹였고,좀 더 성장하게 되면 다양한 밥을 먹으며 생활문화를 체득해 갈 것이다.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쌀로 지은 밥 또는 쌀과 함께 보리,조,수수,콩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쌀로 지은  밥(이하 밥)은 한국인에게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운명의 만남일 것이다.쌀은 인도 아삼지방과 중국 윈난 지역은 쌀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한반도에서 가까운 중국에서 도래해 온 것은 아닐까 한다.밥에 얽힌 얘기는 몇 날 며칠은 얘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특별한 밥은 살아 있을 때든 죽어서든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도서는 총 5부로 구성되었다.쌀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 보는 역사 속의 밥과 쌀 이야기,밥의 문화사를 연대기별로 살핀 이야기,밥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쌀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강상의 효능이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조리법을 순차적으로 수록했다.

 

 한국인에게 밥은 역사,문화,정서,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선사시대,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 밥이 한국인에게 안겨 준 의미와 가치를 비롯하여 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서적,문화사적 의미 등을 흥미진진하게 엿볼 수가 있었다.또한 쌀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이번 기회에 불식시킬 수가 있었다.나아가 궁극적으로 쌀로 만든 밥이 한국인의 성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어떠한 사례들이 있었는지 제대로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쌀로 지은 밥은 개인이 다반사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커다란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제천의식,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쌀은 꼭 등장한다.시대적으로는 쌀밥은 귀족의 몫이고 모래 섞인 밥은 평민의 몫이었던 고려 시대,농민이 농사지은 쌀은 양반만이 먹었다는 조선시대,그리고 개항 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쌀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며,해방 이후에는 춘궁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릿고개'가 만연했다.그래서 한국인은 밥의 힘으로 산다는 '밥심'이라는 말이 힘을 얻어 갔다.누가 뭐라고 하든 밥 만큼은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야 수저를 내려놓았던 모양이다.요즘 이렇게 먹는다면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또한 시대별로 쌀에 얽힌 사정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현대 문학가들의 작품 속에도 밥에 관한 얘기들이 등장한다.대표적인 것이 최명희 작가의 『혼불』,박경리 작가의 『토지』,홍명희 작가의 『임꺽정』,박완서 작가의 『미망』이다.근래 허영만 화백이 쓴 <식객>은 각 지방의 주요 음식을 소개하고 있어 음식과 식재료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넓게 보면 한국인의 의식구조 및 우리 전통문화를 인식하는 단초가 된다.그런데 쌀을 중심으로 한 밥 이야기가 한국인의 정서를 크게 대변하고 있지만,해방 이후 부족한 쌀을 대체 작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 가운데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분식(紛食)이 새치기를 한 셈이다.

 

 밥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별밥,보리밥,부빔밥,잡곡밥,제밥,중등밥,송이밥,팟밥,조밥,콩밥,감자밥,굴밥,별밥,약밥,골동밥,연어밥,무밥 등이 있다.나아가 북한의 요리책에 소개된 밥들은 다음과 같이 흰쌀밥,오곡밥,기장찰밥,밀밥,풋당콩밥,강냉이밥,섞음밥,밤밥,남새밥,두릅나물밥,도라지밥,홀잎밥 등이 있다.쌀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밥을 요리했던 주부들의 솜씨,지혜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밥과 관련한 속담도 놓칠 수가 없는 대목이다.'제 밥그릇은 제가 지고 다닌다','제 밥 먹고 컸는데 남의 말 들을 리가 없다','제 밥 먹고 상전 빨래한다','제 밥 먹은 개가 발꿈치 문다','제 집 찬밥이 남의 집 더운밥보다 낫다' 등이 있다.짧지만 강렬한 의미를 내포한 말들이다.

 

 쌀은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좋다.칼슘과 철,인,칼륨,나트륨,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고,발암물질이나 비타민B1 등과 같은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279

 

 태어나 미음으로 시작하고 망자의 입에 쌀을 물리는 등 한국인에게 쌀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동반자이다.밥,국,김치 등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한국인의 대표적 음식으로,한국인의 역사,문화,정서와 함께해 온 산물이고 운명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씻은 쌀을 물에 몇 시간 불려 돌솥에 앉혀 익힌 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입맛을 한층 돋구워준다.잘 익힌 밥과 국,김치,나물,생선 등과 함께 인체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간다.쌀과 밥,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해서인지 나는 밥알 만큼은 한 톨도 버리지 않을 정도로 밥그릇을 싹싹 비워낸다.불과 삼십 여 년 전 아버지,할아버지께서 모를 심고 물을 대고 농약을 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벼를 수확하던 시절은 잊혀지지 않는 내 마음의 추억이고 선물이다.근간 시간을 내어 오곡밥을 맛있게 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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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 존중받지 못한 내 마음을 위한 심리학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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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부모님 세대 이상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을 해야 하는 삶이었다.자신을 가꾸고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개인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흔히 '고생 고생해서 먹고 살 만하니 세상을 뜨게 되었다'라고 망자에 대한 회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에 와서는 무한 경쟁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자신의 삶의 진정성이 무엇인가를 잊고 살아야 할 정도로 삶의 질이 만만치가 않다.흔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다운 삶을 살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을 나 자신부터 싸늘한 기분으로 느끼곤 한다.어차피 삶은 고통과 번뇌의 연속이라고 해서 스스로 삶다운 삶을 체념한다든지 포기한다면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가치를 펼치지도 못한 채 가련하고 안타까운 삶의 나락에 긴 세월 빠져들지는 않을까 걱정과 우려가 교차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의 재주와 능력보다는 돈과 물질을 앞세운 제도와 시스템이 만연하다 보니 자신이 자신답게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제도,시스템에 부응하는 계층및 주변 세력은 그렇지 못한 계층 및 대다수 사람들보다 힘들이지 않고도 불편하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게 현실이다.반면 돈과 물질,권력이 없는 계층들은 무거운 삶의 짐을 이겨내려 안간 힘을 써야 한다.그러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신과 내면과 대화를 하면서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날이 갈수록 삶의 질이 낮아지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더욱 붕괴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자신답게 살아가고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진짜 자신이 누군인가를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누군가가 자신에게 "당신의 참모습은 무엇이고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말문이 막힐 것이다.대신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집단,기관,단체와 관련하고 사회적 직위와 신분,경제적 소득 등을 중점으로 자신을 과장하고 합리화하려 드는 게 많다.물론 나는 이러한 부류들은 꽤 많이 보았고 접해서 어느 정도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의 심리를 인지하는 편이다.대신 앞서 얘기했듯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 이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가치성 등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략 난감해 하기에 아예 묻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수가 있다.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당연 기질과 성격,현재의 모습,미래에 대한 자신의 모습 그리기 등을 통해 보다 점진적이고 상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소소하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안겨 주는 심리 관련 도서들이 줄을 잇고 있다.『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역시 자신의 내면 세계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한편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삶의 목표를 주체적인 자신의 관점에서 모색해 나가자는 의미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개인 및 집단의 눈치와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내면 세계를 가꾸고 다지기보다는 외부 세계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그곳에 이입시킨다고 보면 된다.그러니 어릴 때 또는 성장 과정에 꿈꾸었던 미래의 삶의 목표는 이미 휴지통에 들어가 버리고 자신이 원치 않는 곳에 내맡겨진 채 속물주의 근성을 내면에 잔뜩 채워 나가는 것이다.자신을 잘 알아야 하되 바람직한 자신 알기는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게다가 내면의 불청객과 같은 부분도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주체적인 자신을 가꾸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박진영 저자 진짜 내 모습을 찾아,행복하자,마음 다치지 않게,내 인생 좀 더 의미 있게,이해하며 삽시다 등 다섯 개의 장(章)으로 서술하고 있다.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바로 자신일테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애써 부정하고 잊으려고만 한 거 아닌지 각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할 문제이다.사회적 기준의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이해하여야 자신이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이렇게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사회 속에 던져졌을 때 자신의 내면에 찾아오는 불청객과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지혜로운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그러면서 마음의 안정과 행복감은 순간 순간 찾아오면서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예민한 성격이다 보니 남들보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몇 년 전 가까운 친척과의 금전문제는 내 마음에 쓰라린 생채기가 되었다.게다가 불안정한 사회 생활과 양호하지 못한 인간관계가 똬리를 길게 틀면서 신경증은 더욱 심각해졌다.또한 운동부족과 불균형적인 식습관,생활 패턴이 질병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젠 어느 정도 안정된 심신과 탄력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꾸려 가려고 한다.그 가운데 긍정적인 마인드를 늘 견지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보다 밝고 달라진 내 자신의 모습을 이어가려 한다.즉 물질적으로 뭔가를 채우려 하기보다 정신적 근육을 보다 단련해 나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련다.채우고 비우는 것을 균형있게 하고,바른 생활습관과 공감과 소통이 있는 인간관계 역시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인간은 결국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돈과 물질이 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의 늪에 살아갈지라도 자신이 자신답게 살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매사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자기인식을 제고시켜 나가야 한다.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책을 읽고 통합.분석한다든지 자신이 가장 즐기고 보람을 느낀다고 여기는 분야,일에 매료되어 열정을 바치는 것도 행복과 의미있는 삶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그리고 상생이 부족한 한국사회의 구조를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내미는 베품과 사랑의 정신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게 됨과 동시에 품격 높은 인생의 주인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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