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 축제의 밤
문홍주 지음 / 선앤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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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대단히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자칫 헛눈질이라도 하면 코베어 가는 세상이다.사람과의 관계가 단순한 이해관계를 떠나 언제 어떻게 이용만 당하고 소외될지 모르는 세상이다.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집에서 한발자국만 내딛어도 CCTV가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에 사회안전이라는 차원에선 고맙기 그지없지만 때론 개인의 표현과 관련해서 불편한 점도 있는게 사실이다.사회안전망이라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부류도 있을리라 생각한다.나아가 예산을 아끼려는 날림공사,노후화된 건물들의 유지보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길을 걸어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언제 어떠한 형식으로 물체로 인한 상해의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무방비 상태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또 올것이 왔구나라는 탄식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삼풍사고가 일어나기 전해 성수대교 붕괴로 통근과 통학을 하던 승객들이 잘려나간 교각 아래로 비명사했고 그 슬픔과 원망이 채가시기도 전에 어느 정도 먹고 산다는 강남의 꽃,삼풍백화점이 무너질줄이야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삼풍이 무너진 날(6/29 목)은 근무라서 토요일을 이용해서 강남터미널역에서 하차하여 삼풍의 참상을 목도했는데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비극의 진실이 아슬아슬하게 눈앞에 다가왔다.

 

삼풍백화점 A동과 B동이 폭삭 주저앉고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상태에서 화약과 같은 매캐한 냄새와 코를 찌르는 연기,중장비가 동원되어 건물더미에 깔린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작업이 분주하게 돌아가고,삼풍 뒤의 삼호아파트,법원 건물은 강건너 불구경하기라도 하듯 무척 대조적이고 한량스럽게 보였다.사건사고를 조사하는 기자나 관련자가 아니기에 내 머리 속에선 건물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지은지 10년도 안된 건물이 맥없이 분해가 되고 저녁거리,쇼핑을 하려고 나온 이웃 아낙네,아이들만 희생양이 되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건물주,시공사,관할관청,시청관계자 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분노가 일었다.

 

삼풍이 무너졌던 것은 어쩌면 예견되었던 일이 아닐까 한다.삼풍이 건물을 완공하고 준공검사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가(假)사용 승인을 받으며 영업을 시작했고 준공검사는 가승인이 난 후 7개월이 지난 뒤였다고 한다.저자가 적시했듯 설계상 용도와 완공 후 용도가 사르거나,건축 면적을 초과했거나 건축 자재가 허가 때와 다른 경우가 준공검사를 못받으며,삼풍건설의 도급한도액이 96억원이었는데 건설공사비가 도급한도액을 훌쩍 뛰어넘어 230억에 육박했다는데 이것은 분명 관계기관의 담당공무원과 삼풍관계자간의 모종의 눈감아 주기에 따른 물질적 뇌물이 오고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삼풍건설 회장이었던 이준씨는 건설업계에서 화려한 경력으로 상급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인물이다.다만 그는 상품백화점 이전부터 1968년 550평 규모의 슈퍼마켓 도입,세운상가 준공 등과 관련하여 승인절차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점이 놀랄 뿐이다.그가 군인출신으로 대외적으로 인맥이 두텁고 그에게 편의를 제공할 만한 자들이 많았는지는 모르지만 건물은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에 준공검사는 필수사항이고 미승인 상태에서 영업을 했다는 점은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고 돈만 벌려 하는 악덕사업자에 불과할 비루함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1970년 와우아파트 준공 20일만에 붕괴 사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건물이라는 건물,교각들은 과연 안전한지,시공회사,관할 감독관청 등은 정기적으로 건물진단과 검사를 시행하는지를 묻고 싶다.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과 기업들이 '새 역사를 창조하며'를 부르짖으며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진전되었지만 기업과 관련 공무원들간의 담합과 물질적 수수작용으로 애궂은 일반인들만 희생과 트라우마를 안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삼풍아파트 사고 직후 생존자 구출이 가시화되면서 이름난 국회의원님들은 구조현장에 있었다라는 생색을 내려 억지포즈를 취하고,쓰러진 건물잔해에서 발견된 삼풍 설계도면에선 삼풍 백화점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것은 충격적이었다.밝혀진 진실은 거짓보다 상상을 초월한 추악과 비루함에 지나지 않았다.삼풍은 상가건물로 별도의 대들보를 사용치 않고 오로지 기둥만으로 무게를 분산시키는 무량판(無梁板) 구조로 지어졌으니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가 없음을 명약관화하지 않을까.브레이크없는,불법개조한 자동차를 몰고 나간 이들은 그대로 도로를 질주한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고 본다.

 

삼풍사고가 나면서 부상자와 희생자,건물잔해에 깔린 희생자들이 무사생환해 주기를 유족들은 빌고 빌었지만 아까운 생명은 멀고 먼 세상으로 가버리고 만다.건물이 무너지고 귀금속과 돈을 노린 좀도둑이 들끓고 문제해결을 위해 관련자들이 겸허하게 책임감을 느끼고 제대로 된 사과를 유족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서로 책임전가만 급급하고 결국 구조작업은 정부가 나서야 할 차제로 번지게 된다.얼마나 답답했으면 유족대표들은 사건의 대책위원장을 서울시장에서 내무부장관(당시)으로 안되니까 정부 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을까! 당시 서초구청장을 비롯하여 관련자들은 일벌백계해야 마땅한데 지능범과 같이 요리조리 법망을 잘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와 같은 존재이기에 잡을 수가 없어서인지 관련자들은 책임도 묻지 않고 승승장구하여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아니꼬운 소식만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삼풍백화점 자리에 희생자의 넋과 혼,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령제를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까닭,조화인지 삼풍백화점에서 멀리 떨어진 양재역 부근에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치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냄비 근성이 강한 한국인은 사건사고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쉬이 옛 일을 잊으려 하고 입에 담으려 하지도 않는다.모든 일은 과거보다 나은 현재,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이고 도정(道程)이다.과거를 통해 교훈을 배우고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인간의 질높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삼풍의 아픔은 사라졌지만 삼풍으로부터 사회의 의식구조와 물질만능의 폐단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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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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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태어나 기초사회 단위인 국민학교부터 민주국가가 최고로 좋고 공산국가는 나쁘다는 이념과 사상 교육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왔다.민주국가의 핵심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의 주체는 국민이다라는 헌법 조항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자체로만 봐서는 분명 국민의 힘이 최고이고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민의 공복이 되어야 함은 마땅하다고 생각되는데 민주주의라는 말자체를 시대와 정책에 의해 이리 저리 훼손시키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휘두르며 힘없는 다수의 민중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정권 유지를 위한 민주주의는 한낱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정권을 잡고 있는 핵심계층들만 민주주의를 넘어 절대권력의 달콤함과 그들만의 잔치를 벌여 온게 현대 한국사의 슬프고도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이 글에서도 밝혔듯이 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정권을 누가 쥐는 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실천해 왔다.그리스 에피다우루스 원형 야외 극장의 아고라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시에나,캄포 광장과 푸블리코 궁전은 민주사회의 시원이 되고 원형이 되고 있으며,왕과 교황의 세력이 막강하면서 인본주의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이 계속되고 20세기 들어서면서 영국에서 최초로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는 등 실질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날이 갈수록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만델라를 비롯한 민주 인사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민족차별의 중지가 결국은 '민주'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요근래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진전되고 있는 민주화의 거센 물결은 시대의 사명이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아직까지도 국민을 섬기고 국민에 의한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북한,쿠바 등도 시대적 요청과 물결 앞에 1인독재와 세습이라는 폐단이 무너지리라 믿는다.사회주의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다수의 국민의 생각과 의견,표현의 자유 등이 수렴되고 개진되지 않기 때문에 속칭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시대'이고 인간의 본능은 늘 보고 배우고 남과 비교하며 보다 나은 방향과 질이 무엇인가를 계속 궁리하고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탈출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클레이스테네스가 개인과 집단이 시민에게 상당한 권력을 쥐여준 정치제도 개혁안이 정치적 영향력이 컸으며,나아가 이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로 이어지게 되며 선거 문화의 확산되며 이는 도시,상거래,종교 협의회,인구의 다소를 떠나 어떤 형태로든 선거라는 형식를 치뤄내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중세에선 특이한 점은 그라우뷘덴의 관행과 전통의 차이가 공익에 대한 중세적 관념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그라우뷘덴의 시민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규정하는,코뮌에 충성을 맹세하고 개인의 덕성 및 천부적 자유권과 같은 사상은 단지 공동체에 참여했기에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나아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정치 세계는 신성하고 질서정연한 하나의 우주가 다수의 주권국가들로 탈바꿈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의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의 의식 수준과 사회참여율이 높아지면서 급진적인 민주형태를 보여 준다.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의회 정치,유권자 의식도 한층 증가되는데 18세기초반부터 19세기초반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선 정기 선거와 보궐선거가 36번이나 이루어졌다는 점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

 

미국은 영국에서 넘어온 청교도 혁명세력에 의해 정당정치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고,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이라는 만인 평등과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게 된다.

 

20세기 접어 들면서 세계는 민주주의냐 공산국가로 양분되면서 이념과 사상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 미국,영국을 위시한 민주주의 진영으로 양분된다.그리고 소련과 동구 유럽은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과 폐단이 국민들의 삶에 핍박을 안겨 주고 경제적인 위기가 처참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20세기말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이 시장 자본주의를 태생시키며 중국은 국체는 사회주의이고 외형은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면서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가 민주화를 낳게 되고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가속화 시키면서 둘은 양분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시대와 지도자,흐름에 따라 변화와 개혁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절대 다수의 국민의 생각과 욕구마저도 획일적인 국가시스템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는다면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그들이 언제가는 밖으로 뛰쳐 나가려 사회와 국가에 대해 분노의 폭발이 없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또한 한국의 경우에도 정치 민주화는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현정권과 같이 정권유지에 반하는 세력에겐 감시와 처벌의 끈을 놓지 않고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폭압정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다만,깨어있는 지성인과 양심 세력들이 연대하여 세를 불려 나가는 길이 대다수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꽃이 피고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과 사회부조리,부정부패,부의 세습 등이 완화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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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머니 - 전 세계 부를 쥐고 흔드는 위험한 괴물
사트야지트 다스 지음, 이진원 옮김 / 알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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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생활비(엥겔계수)는 오르고 수입은 제자리 걸음이며 사회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갭이 너무 크기에 삶의 질,행복지수,살맛 나는 세상은 요원하기마 하는 걸까를 늘 생각해 본다.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임플로이드-오-미터에 의해 금융시장의 붕괴를 추적하면서 주택 가격 하락,모기지 대출 채무불이행 등이 사실상 예견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2006년까지는 누구나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미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서 채무자들은 모기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서 그 파장은 미국 국내를 강타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각국에서 경제 쓰나미가 불어 닥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은행과 모기지 브로커들의 기만적이고 냉소적인 영업 관행이 서브프라임으로 불리게 된다.

 

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과 인생의 생필품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데 이는 경제적인 독립과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보호장치 역까지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각국이 안고 있는 불량 채권과 채무는 방만한 부실경영을 하는 은행과 감독소홀의 책임이 있는 중앙은행,금융의 흐름을 통찰하지 못한 금융정책 담당자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또 다른 부동산을 매입하여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팔 시기가 되면 프리미엄과 함께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있는가 하면,금융위기 직전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최대한의 돈을 빌렸지만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집값은 내려가고 은행 이자는 높아만 가니,당사자로선 기가 막힐 일이다.일종의 이자도 제대로 못내는 상황이니 이를 두고 디폴트라고 해야 하나.

 

이러한 사례는 평범한 자,부자를 막론하고 돈이 된다는 호기심에 부풀어 너도 나도 돈을 빌리려 했던 것이고,은행권 또한 빌려 주고 이자 받고 또 다른 곳에 투자하니 돈 세탁이 제대로 되는 것을 커다란 영업의 기쁨으로 알았던 것인데 금융 위기와 함께 은행권은 정치권과 예금자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고객수도 감소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자산을 담보로 빚을 지는 사람들은 사모퍼드나 헤지펀드와 같은 위험한 곳에 투자를 하고 이는 도미노 현상이 되어 여타 국가들에게도 번져 나갔던 것이다.

 

" 정신 밖에 있는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당신 자신의 정신을 소유하려고 애쓰는 영원한 게임"이라고 희곡 작가 유진 오닐은 예상했다. - 본문 -

 

미국 오바마 정권은 금융 위기와 더불어 민간 의료보험 문제로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유로의 경제권조차 휘청거리고 있으며,저자는 금융 위기의 돌파구가 오리무중의 암울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또한 금융 위기와 함께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기후 변화,석유와 물 같은 필수 자원들의 부족 현상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확실치 않고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이유로 위험을 회피하고 단기적인 이익을 쫓아 갔기에 금융인들은 그들만의 달콤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파괴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고객들을 현혹시키고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으며 결국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삶인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금융 위기 특히 채무 위기는 정부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사실과 금융시장을 낙관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기에 새로운 세금을 걷고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국가의 재정 상태를 더이상 악화시키는 행위는 막기 위해 거국적이고 거시적인 긴축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이 돈을 낳는 황금 거위알을 낳는 시대는 지났다.정부는 일자리 찾기와 고용 안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령화 시대에 접어 들었기에 노년층을 위한 각종 복리 시스템(연금,건강보험)을 비롯한 복지,생활수준,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발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오죽했으면 은행 산업이 스스템적 위험을 배출하고 익스트림 머니가 경제를 오염시킨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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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관계술 - 허정과 무위로 속내를 위장하는 법 Wisdom Classic 5
김원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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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그만큼 비정하고 냉정하다.또한 좋은 관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조직체계와 분위기,흐름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곧바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 표출한다든지 모난 행동을 함으로써 윗사람에게 미움과 질타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 조직 구성원간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법치사상과 법치 리더십으로 유명한 한비자의 법에 의한 인간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담아 들어야 할 말들이 많다.인간관계가 좋아야 일도 잘되고 신분상승도 잘되며 세상 사는 맛이 날것이다.한비자가 전해 주는 관계술의 요체는 법(法),술(術),세(勢)이다.노자의 사상과 순자의 사상을 융용하고 있다.그의 가슴엔 노자의 '무위자연설',머리에는 순자의 '성악설',몸에는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신도의 '세'를 조화하여 법술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군주와 신하 관계에서는 당대의 법을 기준으로 철두철미하게 이성적인 잣대로 부하를 다루고 엄정함을 요체로 삼고 있다.군주가 갖고 있는 지혜를 함부로 드러내 놓는다면 총명함을 잃는다는 것이고 마음을 보이면 사람을 잃는다는 것인데,인간은 영악하고 상대의 기미나 비위를 맞추며 상대에게 틈이나 나약함이 발견되면 이를 역이용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로 군주는 신하 앞에서 경거망동하는 행동을 보여주면 아니되기에 경외감을 심어 주어야 군신간의 관계가 제대로 확립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법시스템에 입각하여 칼로 두부 자르듯 신하를 대한다면 신하 또한 군주에 대한 친밀감은 멀어져 갈것이고 일은 일대로 제대로 진척되지 않을 것이기에 경외심과 존경을 한몸에 받으려면 개인의 수양을 비롯해 인과 덕을 부단히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그러려면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고,능력 있고 어진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하며,마음을 비우고 간언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조직과 사회의 지도자격에 있는 사람은 두고 두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군주가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삶의 즐거움을 잃고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길이다.그것은 법의 통치자가 법을 안으로 적용하여 일을 처리하고,법을 법 밖으로 확대하여 처리하는 것이며,남의 해를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 것이며,남의 환난을 즐거워하며,남의 편안함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고,사랑해야 할 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미워해야 할 자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다.이 문제는 누구나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사회전체를 놓고 볼 때는 사회구성원간의 부조화 및 마찰음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정실인사에 편중하다 보면 지도자로서 그릇이 부족할 뿐더러 상대를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다.신상필벌이 확실해야 공명정대하게 보이고 아랫사람의 불만이 해소되고 원하는 일들이 화합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어 갈 것이다.신하에겐 엄격하게 대하되 속으로는 덕(德)으로 가득찬 군주가 되어야 이심전심으로 군주를 신뢰하고 충성심이 발로하여 목숨마저 바치지 않을 것인가.

 

상대방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마음을 함부로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특히 코 베어 가는 세상이고 남을 속여야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꼼수'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고 안해도 될 말과 행동은 목에 칼이 날아와도 침묵을 지킬 줄 아는 배짱 있는 인간형이 오늘날 복잡하고 각박한 시대에서 상대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또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교훈이 되고 되새겨볼 고사(故事)가 많아 처세술 학습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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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창비시선 200
신경림 엮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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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듯 불이 완전히 소화된 것이 아니고 바닥 저변에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해 주는거 같다.그리고 뭔가 활활 타오르면서 분노와 억눌림이 한꺼번에 터져 버릴거 같은 느낌을 안겨 준다.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고 사회가 썩어 문드러지고 군에 의한 독재정치가 횡행한다면 일반인은 어쩔 수 없이 면종복배와 동상이몽의 길을 걸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해방이후 5년,한국전쟁,이승만정권하의 부정선거,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시대에 인권탄압과 민주화의 후퇴가 현대사의 상징이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주검으로 몰게 하고 희생시켰던 것이기에 현재를 살고 있는 대다수는 이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창비에서 발간된 이 시집은 농민의 아픔,정치적 주장,체제 변혁을 노래하는 등 사회성이 짙게 깔리고 당대의 사회 부조리와 부정부패,인권탄압에 대해 암묵적인 요구가 거세어지면서 시로 형상화하여 민중의 아픔과 고단함을 달래려 했던 것이 시공간적으로 가깝게 다가온다.그리고 그러한 모순되고 부패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시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얻으려 했다는 점이고,사회비판적인 시인들은 달콤한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었기에 사회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직간접적인 시의 언어로 억눌림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름만 대면 거의 알 수 있는 저명 시인들의 시들이 암울했던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은,신경림,황도유,마종기,김지하,정호승,황지우,곽재구,박노해,김용택,도조완,안도현 등이다.시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읽다 보면 행간과 행간의 의미가 저절로 느껴지고 억눌리고 짓밟히던 시대에서 푸른 창공으로 나래를 박차고 날아가고 싶은 진정한 자유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찟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 박노해 시다의 꿈에서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 신경림 파장(罷場)에서 -

 

사회는 빠르지는 않지만 거꾸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농경사회에서 산업화,탈산업화를 거쳐 신자본주의의 그늘에 살고 있는 요즘 실낱같은 지난 시절의 가난과 무지,억눌림,고초,몸부림이 새살이 돋아나 성숙되어 가고 당사자와 후손들에게 역사와 삶의 교훈이 될 것이다.인간은 실수와 오류를 범하면서 그 전철(輾轍)을 밟지 않으려는 지성과 지혜를 갖고 있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1987년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까지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온갖 회유와 탄압,고문에도 굴하지 않았기에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아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역사는 늘 굴곡으로 점철되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산재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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