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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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세월이 흐르다 보면 지나간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날 때가 있다.인간의 두되가 시간의 깊이 만큼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오감을 자극하고 충격적인 사건이고 반복되어 회자되는 일이라면 켜켜히 내려 앉은 시간과 세월의 먼지 만큼 기억과 추억거리도 문득 떠올리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는데 삶의 활력과 반전을 안겨 줄 때도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먹고 입고 여가를 즐기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 간다고 생각한다.그 속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을 것이지만 먹는 일이라면 쓴맛,단맛,신맛,매운맛에 형용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맛도 있을 것이다.나 또한 먹는 것은 좀 까다로운 편인데,할머니,어머니가 손수 텃밭,산과 들,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재료들로 만든 할머니,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서 추억에 잠길 때가 많은데,맞벌이를 하면서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요즘 음식들은 한 번쯤은 먹을 만한데 자주 먹으면 질리게 되는 간편음식이 많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기호와 추억거리가 다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음식은 서너가지이다.(하지)감자에 갈치를 넣어 조린 갈치조림,재래식 시장에서 파는 각종 국밥(돼지고기 및 콩나물),매운탕,그리고 각종 산채나물을 즐기고 선호한다.

 

모심기,벼베기,벼타작 등에는 할머니만의 갈치조림이 칼칼한 맛에 감자와 예쁘게 익은 갈치살이 입안을 적당하게 자극하고,어릴 적 아버지는 나를 재래시장에 자주 데리고 갔는데 돼지고기와 순대가 들어가 있는 국밥을 시켜 주셨다.그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아들에게 전해준 '따뜻한 보시이고 사랑이였구나'라는 것을 가슴 저리게 느끼곤 한다.고향이 전주라서 콩나물 국밥은 자주 먹었다.반찬은 새우젖과 넓적하고 큼직하게 썰어 놓은 깍뚜기이지만 추운 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서 참 좋다.끝으로 산채나물은 해와 바람,공기를 벗삼아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고사리,취나물,부추,가지,고들빼기,달래,돌나물(시골에서 돈나물이라고 함)가 들어 있는 나물반찬이 건강에도 좋고 자연과 친해지는 거같아 자주 찾고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저자 박찬일 셰프의 맛의 추억여행은 아련한 추억 한 장면 한 장면을 공교하게 연결하여 희미한 옛 시절의 오감을 자극하는 맛과 함께 했던 식구들,그리고 맛을 찾아,허기를 채우기 위해 발품을 팔아 나섰던 설레임과 맛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적 배경이 산과 들로,시장으로,어릴 적 초가집으로 나를 되돌리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추억이 깊게 배여 있는 그 시절의 맛에는 할머니,어머니,아줌마의 정성과 손재주의 결과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기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지만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추억의 맛을 절반만이라도 흉내를 내려 가끔은 직접 만들어 음미할 때도 있다.삶은 각박하지만 그리운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잊어 버린 추억의 맛들이 있어 사는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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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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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으로 잘 알려진 이츠키히로유키 작가의 삶은 감수성이 강한 시절인 10대에 조선식민지 시절 부모님과 함께 평양에 살다 종전이 되면서 일본 후쿠오카 지쿠호 고향으로 돌아오고,삶의 위기,삶의 방황이 그에게는 시련과 자살의 문턱에까지 겪었다고 한다.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뇌,갈등,번민,우울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정신적 피폐로 이어지기도 한다.다만,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바뀌어 가는데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생명에의 경이로움을 깨닫는다면 고귀하고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찰나와 같은 인생,이슬과 같은 인생이라는 세속어마냥 인생은 덧없다.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맞춰 살아 가는 순응력과 사회 제도의 틀 안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소임과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면 인생의 고통은 환희와 기쁨으로 바뀌어 가지 않을까 한다.

 

돈과 물질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삶이 각박하고 절박할 때가 많다.이것은 신자본주의라는 시장원리,무한 경쟁 그리고 자기책임이라는 그럴 듯한 환상으로 엮어진 각본에 의해 개개인은 정해진 범주를 넘어 더 많이 갖고 더 많은 권력,명예의 탐욕을 누리려 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간에 소통과 화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목과 질시,속임과 제거 등의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애처롭고 잔혹하고 절망의 늪에서 언제까지나 허우적거릴 수는 없는 것이다.나와 가족,친구 등의 관계망안에서 그 늪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실천력이 중요하다.그 너머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본의 불교 종파인 신란 사상을 귀히 여기며 이를 믿고 있다.혼탁해져만 가는 지구촌에서 유일하고 소중한 우주의 주인공인 자신이 막막하고 불안한 시간이 지속됨으로써 물질,마음도 믿을 수 없다면 차라리 혼탁한 세상을 멀리하고 지혜(소피의 세계)가 담긴 교양을 쌓고 뇌내 혁명을 일으켜 플러스 사고를 배양해 가자고 주장한다.플러스 사고를 통해 만사를 긍정적으로 기쁘게 수용해야 베타 엔도르핀이 뇌내 호르몬이 나와 심신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결백하게 살아온 중국의 시인 굴원은 혼탁하고 탁세한 세속에 물드느니 차라리 물에 몸을 던져 물고가 밥이 디는 게 낫다고 하며 그것이 자신이 사는 삶의 방식이라고 하며 물에 몸을 던져 자신의 결백,정직성을 증명했다고 한다.반면 현대라는 탁세에 굴원과 같은 청렴결백한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곱씹어 본다.대부분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에만 급급하는게 현실이 아닐까 한다.

 

길지 않은 삶,이슬과 같은 삶 속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고 남을 속이지 않으며 먹을 만큼,입을 만큼,잠잘 수 있는 공간만 있을 만큼의 수분지족을 받아들이고 향유하려는 부류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없을거 같다.인간이 주어진 자연의 섭리와 환경에 순응하여 살아 가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하루하루가 절박하게 쫓기는 삶은 살아 있는 의미가 없을거 같다.사회 제도와 분위기도 바뀌어 사람이 사람답게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풍토가 몸과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나보다는 가족과 타인을 한 번이라도 더 챙기고 화합하며 시대의 흐름도 바꾸어 놓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하고 개선해 나가되 사회의 역할도 크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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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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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글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는 글의 토양이 되는 소재 발굴과 글을 쓰기 위해 시난고난을 무릎쓰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철저한 작가 정신이 경이롭기만 하다.글이 세상에 빛을 발하기까지는 작품의 특징과 작가의 솜씨,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려야 비로소 잘 발효되어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만 때로는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매도,무관심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흔히들 일확천금을 거머쥐는 화려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수많은 시간을 책을 통해 자양분을 배양하고 글쓰기가 막히면 어디론가 '훌쩍' 막힌 머리를 식히러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다.바람 쐬러 나가지만 마음 속에는 글을 쓰기 위한 주제와 소재거리를 찾기도 하고 번뜩 떠오른 영감이나 소재거리,기억할 만한 것들이 햇빛 속의 이슬마냥 사라지기라도 할까 밥주머니와 같은 수첩에 빼곡하게 뭔가를 적어 나가기도 한다.

 

작가들은 일종의 자영업자들이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제어하며 주위와 세상과 균형과 조화,소통을 잘 해나가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한다.글쓰기를 할 때에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한 채 은거에 들어가야 하며,바깥과 소통을 할 때에는 사색과 고뇌의 빛이 찬란한 빛으로 발화하여 세인들에게 잔잔한 감성과 생각의 깊이를 느끼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작가는 참으로 고단하지만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량과 솜씨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성품과 기질,작품의 완성도,사회에 주는 영향도 정비례할 거같다.

 

작가는 아픔과 상처,소외되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아픔을 치유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다독이고 위무하는 전령사가 아닐까 싶다.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읽어 가다 보면 인간의 희노애락이 온전히 묻어 나기 마련이다.주인공의 심경,이야기의 사건,시간과 공간의 무대 등이 밝기도 하지만 일관되지 않고 어둡게 반전되다 또 밝게 변하기도 한다.작가는 이러한 글의 구성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수도 없이 고민과 사유,결정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오르한 파묵 작가가 하버드대에서 소설과 소설가를 주제로 강연한 강연록을 읽어 가다 보니,작가로서의 다양한 이력과 에피소드,글쓰기의 노하우가 무엇인지를 들려주고 있어 글을 좋아하는 내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그중에 무엇보다는 긴 시간 명작을 읽어 내려 가는 독서근육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단어와 문장을 하나 하나 음미하기 보다는 글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사건의 추이,결말 등을 자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음미하고 반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즉,등장인물의 특징(캐릭터)는 독자 스스로가 개연성있게 추측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이고 주제는 독자에 따라 수용의 정도가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서양의 작품보다는 국내소설 쪽을 좋아하는 편인데,오르한 파묵의 글을 읽다 보니 편독을 한거 같아 자격지심이 든다.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스탕달,디킨스 등의 거장들의 작품에도 시선을 돌려야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읽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생각과 감정,상상력의 발현이 누군가에게 영향과 공감,치유와 소통이 된다면 작은 이야기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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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의 수수께끼
찐웬쉐 / 우석출판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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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적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되는 일본의 문화는 한자 문화권에 동양권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일본인의 기원,뿌리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도 있고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없다.그러나 일본인의 기원은 확실한 정설은 아니지만 3갈래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거 같다.

 

동북아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도 중요하고 중국과 일본의 중간 거리에서 정치,경제,외교 등의 문제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실리적이고 상호호혜적 바탕에서 양국의 기저가 되는 역사,문화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가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거 같다(지피지기).그런 의미에서 일본인의 의식구조,문화의 특성 등을 알아가는 것은 전향적인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인종은 대륙과 한반도,남방의 섬에서 건너온 여러 인종이 혼혈하여 일본인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유전자 분석,변화한 유전자를 비교하는 것으로 대륙과 한반도,남방의 섬으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흘러 들어 가고,동남 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혼교되어 현대 일본인으로 되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글은 중국인의 공저에 의해 탄생되었고 발간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정작 일본어는 어느 정도 알고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피상적인 지식),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일천한지라 마음먹고 읽어 내려 갔다.일본인의 의식구조가 좀처럼 겉으로 속마음을 보이려 하지 않아 흔히 다테마에(겉마음)과 혼네(속마음)이 다르다고 하는데,일본인의 근원도 양파와 같이 벗기면 벗길수록 알쏭달쏭하다는 생각이 든다.문화의 원류라는 것은 유장한 역사만큼 근본적으로 파헤치기가 어려운 분야가 아닌가 싶다.

 

'일본'이라는 나라,'일본 여자','일본어','일본의 '세계 제일','지역성 차이'에 관한 수수께끼가 재미와 흥미를 넘어 일본의 문화의 저변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이를 일본인 및 일본문화의 교류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것도 장래 한일문화교류의 확장과 친밀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거같다.

 

또한 이 글에 수록된 각영역별 세부적인 항목은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있다.딱딱한 학술적인 내용이 아닌 일본 문화콘텐츠의 다이제스트로 보아도 무방하다.재미있는 대목은 '왜 일본에는 속옷 도둑이 많을까?','왜 일본여자는 이를 검게 칠했을까?' '일본 대학생의 동거 생활','일본 식문화 3제','왜 일본어에는 접두사 오お가 많이 붙을까?' '일본에서 요금이 비싼 베스트 10','일본인의 모든 기질을 갖춘 히로시마현'등이 각영역별 대표적인 내용들이다.내용이 알차기도 하지만 성(Sex)과 관련한 성문화와 관련한 일본인의 기질과 의식도 흥미롭다.

 

사근사근하고 속삭이듯 손님(이방인)을 대하는 일본인과 일본의 문화는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에 애착을 갖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것이 특징이고,오랫 동안 외세문화의 변방에 있던 일본이 전국시대를 맞이하여 번주들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진출,제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전후 경제복구로 전세계 경제권을 제패했지만 버블 붕괴후 아직까지도 휘청거리는 일본은 정치,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어떻게 방향을 잡아 나갈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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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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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詩書畵)를 떠올리게 되면 예스럽고 기품이 있으며, 겉에 드러나지 않은 속살을 헤집어 내는 묘한마력과 환희가 있다.특히 그림은 시나 글과 같이 글에 나타난 행간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지만 그림은 화가의 심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배경,초목,동물,날씨 등을 잘 헤아려야 그림의 의미를 짐작할 수가 있고,화가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상과 연결하여 읽어내는 독화술을 갖었다면 그야말로 그림에 대한 심미안과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에 나뉘고 계절별로 17점 총 68편의 옛 그림을 작가의 자연스러운 해설과 함께 옛 그림이 시복을 안겨 주고 있다. 즉 조선시대 화원들이 그린 화폭을 응시하면서 일상 모습부터 화원의 심경,동.식물들이 뿜어내는 자태,사람과 동물간의 교호 작용 등이 매우 인상적이고 조물주가 내린 자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에 순수한 그 자체로 다가온다.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 역시 계급에 따라 다르게 묘사하고 있지만 짚신,흰 광목,초립,버선을 걸치고 신은 옛날 조상들의 숨결이 아롱새겨져 있다.

 

유교를 국체로 삼던 조선시대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고 불렀나 보다.신분은 중인층으로서 사농공상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한 계층이었던거 같다.그러나 그림 그리기가 천직이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배기지 못할 정도로 그림에 미친 환쟁이들의 그림은 근엄하고 응결된 자세로 붓과 벼루의 농담,상상력,그림을 그리는 의도를 한 폭에 모두 쏟아 냈던 것이다.그래서 보면 볼수록 애달파지기도 하고 정감이 가기도 하고 잊혀진 영감이 다시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인생무상같은 더없음도 느끼게 한다.

 

표지의 그림이 신윤복이 그린 <처네 쓴 여인>이고 작가는 헤어진 여인의 뒷모습으로 제재화했다.나부죽한 천생 조선 아낙의 모습으로,남정네를 만나고 헤어져 귀가하는 모습이다.뒷태가 시름겹게 다가오고 홀로 가는 길이 외롭기만 하다.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살짝 다가가서 헤어짐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한다.

 

특기할 점은 옛 그림을 해설하면서 사어(死語)가 되다시피한 예스러운 말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가끔 들어봄직한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말들이 사용되고 있기에 그림도 예스럽지만 작가의 해설도 예스럽고 정겹기만 하다.예를 들어 윤똑똑이는 자기 혼자만 잘난 체하는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로 가끔 듣고 있는 말인데 반해,몸의 일부를 가볍게 흔들며 촐싹거리는 모양을 욜랑욜랑이라고 한다.그 시절에는 그러한 말들이 예사로 쓰였을 거라 생각하니,타임머신을 타고 화폭으로 쏙 말려 들어 그들과 살짝 말을 걸어 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나물을 캐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담은 봄,수박 파먹는 쥐를 그린 여름,달밤의 솔숲을 그린 가을,작가미상의 백학도가 담긴 겨울은 각계절에 따라 화원의 심미안과 심경 등이 혼을 쏙 빼놓고 있다.검은 색과 흰 색,누런 흙색이 위주가 되어 농담이 잘 배합되어 독자들에게 옛 그림을 선사하고 있다.전생에나 있을 법한 옛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내 직계선조들은 당대 무엇을 하고 살았을지를 옛 그림들을 통해 깊게 유추해 본다.그립고 다정다감하고 애달프고 고독하지만 아름다움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전해져 온다.작가의 해학에 가까운 멋들어진 해설도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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