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연유산 - 유네스코가 선정한 5대 명소 가이드 여행인 시리즈 5
박지민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5,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56개 민족에 14억에 가까운 인구가 어우러져 있는 다민족 국가,울창한 열대 삼림부터 사막과 만년설까지 다양한 기후대와 지형을 품고 있는 광활하기만 한 중국 대륙은 표면적인 경제 성장에 가려져 그들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면모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와 광활한 대륙 중구에는 1985년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한 세계유산이 총 40곳이다.그 중에 문화유산이 28곳,자연유산이 8곳,복합유산이 4곳이라고 한다.문화유산은 둔황 막고굴부터 소림사까지 28곳이며,자연유산은 주자이거우를 비롯하여 단샤 퇴적암 지형까지 8곳이며,복합유산은 타이산,황산,어메이산과 러산대불,우이산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유람은 수박 겉핥기 식이었다.업무차,잠깐 이리 저리 휩쓸리고만 이름 모를 거리,유적지가 고작이기에 중국이 낳은 위대한 자연유산은 그림만 보아도 절로 탄식이 나온다.태초의 자연이 빚은 맑은 물과 오장육부를 얼얼하게 만들게 하는 위용과 장엄함이 충만한 자연생태계와 조각 조각 하늘을 향해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들은 어쩌면 남성의 면모 같기도 하고 어쩌면 육중한 어머니의 속살과도 같이 다가온다.

 

이번에 소개되는 중국의 자연유산은 주자이거우,황룽,황산,장자졔,싼칭산이 그것이다.신비로운 색채와 소수 민족 장족의 삶이 전통 그대로 살아 있는 주자이거우,늠름한 위용을 간직하면서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황룽의 다정한 모습,한국인 여행객이 즐겨 찾는다는 남성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황산의 절경,고대 중국 수묵화를 그려 놓은 듯한 산수화의 원본으로 착각할 정도의 장자졔,기송,기암,운해가 압권인 싼칭산이 차례대로 소개 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직항편은 없는 것 같다.상해,광주 등의 대도회지까지 간 다음 예약버스를 타고 명산까지 가는 방법이 대부분이다.특이한 것은 입장료가 비싸고 고산이 많다 보니 상비약을 준비해 가는 센스가 필요하다.그곳에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기에 시간이 되면 소수민족의 전통적 삶의 단면을 느껴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5대 자연유산은 자연과 세월,바람과 공기가 만들어 놓은 태초의 신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소수 민족들의 애잔한 삶과 그들을 안고 있는 명산은 분명 유네스코에 등재할 만하다.여행정보,트레킹 정보도 깔끔하고도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안심하고 다녀 올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산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5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지리산은 한국의 어머니와 같이 품이 넓고 사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명산 중에 명산이다.산을 좋아하고 산과 물을 따라 시심을 떠올리게 하는 지리산은 어머니의 속살과 같이 육중하기만 하다.멀리서 보면 산줄기들이 벼포기를 뉘어 놓은 듯 다소곳이 뉘어져 있고 평화롭기만 하다.또한 사계에 따라 달라지는 지리산의 풍모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선보이고 여행객들의 발 길을 잠시나마 놓게 만든다.

 

 

 

 

몇 년 전에 지리산 둘레길 여행차 들렀던 지리산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과 추억이 김영주작가와 함께 다시 떠나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지리산 한자락에 놓이게 되고,다시 그 곳을 찾은 느낌이다.고려말 이성계와 왜구와의 격전지 황산벌을 비롯하여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남은 빨치산의 거점 그리고 화개장터의 눈부신 벚꽃 길과 '토지'의 무대가 되고 있는 악양 벌판이 여행객을 부른다.

 

 

 

김영주작가는 고택 곡전재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자동차로 지리산 자락을 쉼없이 찾아 다니며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세세하게 전해 주고 있다.일종의 지리산 일지라고 할 정도로 지리산의 풍광과 풍문이 눈과 귀에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먹고 살기 바쁘기에 기나 긴 여행을 할 새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되니 기쁜 마음이 한량없다.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등 5개 군을 품고 있는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고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지리산은 최고봉(1,915미터)인 천왕을 주봉으로 반야봉,노고단이 3대 고봉이다.주능선과 가지능선이 천 길 만 길로 뻗어 있으며,6월이 되면 철쭉이 눈이 부시도록 만개한다.또한 기암괴석과 피아골.뱀사골.칠선계곡.한신계곡 등이 피서객의 온유하고 우람한 자태로 맞이해 준다.

 

 

 

지리산에는 불교문화의 색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붉고 푸른 단청이 일색인 화엄사,천은사,대원사,쌍계사,실상사,연곡사,법계사 등이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 있으며,조선시대 다양한 문인들이 유람하고 수양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대표적으로는 김종직,조식,유몽인 등의 인물이 전해지고 있다.

 

 

 

원시림과 야생동,식물의 천국이고 신비스러운 장관을 간직하고 있다.볼거리가 많고 찾아 다녀야 곳이 많은 지리산은 구역을 나누고 찾아 갈 곳을 정하여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음미하며 체험하는 곳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또한 환경 오염과는 먼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리산이기에 모든 것들이 안심되며 든든한 곳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1928년에 때어나 1967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죽은 체 게바라는 살아 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살아 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즉 1968년 프랑스 '5월 운동' 당시 영웅으로 추대 받았고,4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체 게바라는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그의 삶의 궤적은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볼리비아 반군에 의한 참혹한 죽음은 그를 '전사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그는 자본주의를 가장 경계했으며,그의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살아 남아 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친구와 남미를 여행하던 중 남미의 민중들이 심한 탄압과 굶주림을 목격하면서 착취계급,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피착취자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의를 불사르게 된다.특히 1950년대 남미 민중의 삶이 매우 열악하고,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 자본가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되어 하층민들의 삶이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그는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진보 정권이 비교적 자유로운 과테말라로 갔는데,그 곳에서 여성 혁명가인 첫 번째 부인 일다 가데아를 만나고,과테말라의 아루벤스 정권이 아르마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자는 것을 목격하면서 남미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무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아르마스 독재 정권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 체 게바라는 멕시코로 망명을 하고 아내의 소개로 쿠바의 망명 정치가인 피델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그는 피델 카스크로를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강인하면서도 온화한 새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그러면서 쿠바 해방 운동에 동참을 한다.본격적인 쿠바 민중 해방을 위한 게릴라 투쟁이 시작되고 활동거점은 주로 산악에서 펼치고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미니카로 망명하면서 반군들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다.그 공로로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알레이다 마치와 재혼을 한다.1959년부터 1965년까지 체 게바라는 쿠바의 요직을 두루 거친다(요새 사령관,국립은행 총재,산업부 장관).그런데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의 보장된 미래와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자신이 믿는 혁명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쿠바를 떠나는데,카스트로에게 '쿠바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는 편지를 남긴다.그것은 쿠바가 미.소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원했지만 카스트로는 의견이 달랐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1965년 11월 볼리비아로 혁명을 불길을 지피는데 볼리비아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볼리비아 민중은 본국 혁명 대장을 원했고 외국인인 체 게바라를 경원시했던 것으로 보여지며,혁명군 내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강하게 작용했다.결국 1967년 10월 볼리비아 하사관에 의해 사살되는데,하사관 역시 투신자살하면서 체 게바라의 사상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혁명가이다.그러나 그가 믿는 신념,민중을 해방시켜 미.소국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려는 혁명가적인 실천력은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고도 남는다.이념적으로 냉혹하고 거친 시대에 혁명가로 일생을 마친 체 게바라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유머가 넘치는 세상을 꿈꾼 순정한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 타이완 희망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시절 동창생들은 대만으로 4주 짜리 언어연수,관광차 다녀 오면서 중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일종의 스펙 쌓기를 했다.돌아가신 아버님이 군대 기간(27개월) 동안 매월 3만원씩 저축해서 제대하면 대만에 보내 준다는 말씀에 어찌나 기대가 되고 설레였던지 모른다.그런데 제대하고 보니 사정이 바뀌어 저축은 커녕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그만 대만에는 가보지를 못했다.그 때는 아버지가 참 야속하기도 하고 아들의 앞 날에 대해 무심하지 않았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지만,지금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마음과 가정의 살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학시절의 배웠던 중국어는 주로 대만어(국어)를 배우고 익혔다.아열대 기후에 고산족이 살고 장졔스가 국공합작이 결렬되어 중국의 보물을 모두 대만으로 가져왔다는 사실 등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 밖에 없었다.대학시절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대만이었는데 결혼하고 살다보니 결국 가보지를 못하고 여행에세이로 나마 그 곳의 이모 저모를 접하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지상작가는 1980년대 후반 대만 여행을 하고 20여 년이 흐른 뒤 다시 그 곳을 찾게 되었다는데,작가는 대만의 역사와 풍경보다는 대만 특유의 먹거리 문화에 홀딱 반한 것 같다.중국식 만두,교자,국수에서부터 생과일 주스 등을 즐겨 찾고 그리워하고 사랑으로 대했던 것 같다.한국의 포장마차격인 야시장(야타이)에는 젊은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출출한 속을 채우려 북적거린다.이방인의 눈에는 이색적인 광경,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사람 냄새로 오감을 자극한다.

 

 

6개의 민족이 혼재되어 있고 경상도 면적보다 좀 큰 대만은 인구 밀도 전세계 1위인 대만은 1980년대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신흥경제대국이었다.특히 리덩후이를 비롯한 하카족은 선진경제의 선봉이라고 한다.중소기업형의 제조업이 발달하고 일제강점기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으며,불교를 믿으면서도 도교문화권이 발달한 탓인지 집안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늘 분향하고 명복을 빈다.

 

 

대만의 북쪽 지룽항에서 신주,타이베이,화롄,타이루거 협곡,타이둥,헝춘,가오슝,타이난(정성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자이와 아리산,구강과 자아화,타이중,베이푸,예류,대륙과 마주한 마쭈 열도 그리고 한국 여행자들의 숙소인 금석객잔의 여정이 그림과 같다.낯선 외국인을 보면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대만인들의 열린 마음과 다민족이 커다란 잡음 없이 살아가는 대만인들을 보게 된다.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대만에 대한 로망과 설렘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학창 시절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중국어도 활용하고 대만의 풍물과 문화,역사,음식을 직접 체험하고 진한 추억으로 삼고 싶다.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기에,기회를 만들어 대만여행을 준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많이 알고 이것을 풀어서 좌중을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다.딱딱하게 문자를 섞는 것보다는 인간의 희노애락의 단면을 씨줄과 날줄을 교묘하게 엮어 내는 힘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연민,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인간의 오욕칠정을 오감을 탁 건드리는 마력의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깃털과 같이 가벼운 듯 하고 항간에 떠도는 일상의 이야기를 잘 풀어 내는 작가가 있다면 단연 성석제작가라고 생각한다.흔히 입담이 풍부하다는 생각과 그가 작가가 되면서 이곳 저곳을 순례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겸허하게 듣고 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이야기의 힘 속에는 보석과 같이 영롱하고 플래쉬와 같은 섬광이 번뜩인다.

 

 

 

작가는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아까운 이야기,모두 알고 있지만 나만 몰랐던 어떤 것,보고 들으면 유쾌하고 흥미로우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과 느낌을 잘 전해주고 있다.남자들이라면 군대 이야기 사흘 날 사흘 밤을 해도 모자라고,여자들이 모여 이런 저런 세상사,사연을 풀어 내도 모자라는 듯한 인간의 속내를 들춰 내는 항담(巷談)은 격식이 없기에 정겹고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성석제작가는 천성적으로 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새로운 것이 생기면 지적 호기심에 못이겨 알아 내고 조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아닐까 한다.이 글에 실린 글들은 예스러운 구전도 있고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생채기가 아물어 든 그 시절의 얘기도 섞여 있다.순간 '풋'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무미건조함을 생기발랄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대개는 다 아는 이야기이고 진부하며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지만,이 글 속에는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그 에피소드 속에는 유쾌하고 흥미로운 얘기가 살아 꿈틀거리기에 시복도 안겨 주고 마음 속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의 힘,관점에 따라 다르다,오후의 국수 한 그릇,문자의 예술로 나뉘고 있다.대학시절의 풋풋하고 덜 익은 이야기,사건,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 출출할 때 그리워지는 한 그릇의 푸짐한 국수요리,한자어와 한글에 관련되어 작가만의 해석법 등이 학습적으로 유익하기도 하고,허기를 채워야 하는 생리작용,일상의 단상을 추억담으로 듣기에 충분하다.나는 작가의 얘기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것처럼 재미와 흥미를 자아내게 한 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