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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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현대판 계급 사회가 횡행하면서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득실거리고, 그렇지 못한 부류는 아침 이슬과 같은 존재인 것 같이 무상하기만 하다. 힘깨나 있는 자들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늘 소외되고 없신여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세상이치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 다수인 힘없는 계층이 없다고 한다면 힘깨나 쓰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만 좇고 우러러 볼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범부들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삶의 의미를 더욱 가치있게 수놓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가끔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되뇌인다.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오는데 오십대인 요즘엔 뭔가를 펼치는 것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타인에게 나눠 줄 것은 주려고 한다. 평정심에서 우러나오는 작지만 의미있는 삶의 가치, 지혜, 경험 등을 현재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그러한 것들이 사소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타인의 마음에 전달되고 스며들어 각박한 세상이 조금씩 따스하고 살맛 나는 세상으로 변해져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줄 수 있다면, 거꾸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타인의 삶의 지혜, 가치, 경험담 등을 귀담아 들으면서 '인생이란 다채로운 것이다'라는 것을 내 가슴에 품으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가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잘못 살아온 시간들을 성찰하면서 더 큰 존재로 거듭나고자 한다.

 

 김훈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접했다. 위에서 살짝 얘기했듯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한 가족의 얘기를 마치 얘기 늘어 놓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의 얘기를 귀를 쫑긋하고 듣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삶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겠지만 흔히 말하는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모나지도 않고 특기할 만한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개인의 생애에는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세월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극복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질곡과 같은 세월을 감당해야만 한다. 나는 마동수 일가(一家)의 삶을 접하면서 가족이란 이렇게 처연스러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해방 후 박정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마동수 가장(家長)과 아내 이도순 그리고 두 아들인 마장세, 마차세 등의 삶의 면면이 꽃길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살아갔던 흔적이 역력하다. 마동수 일가의 삶 자체가 어쩌면 나와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흔히 밥벌이를 위해 모든 존심을 버리고 억척같이 살아야만 하는 지난한 삶 자체를 작가는 쉽지만 가슴 절절한 심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기억은 바래어져서 아무런 현실감이 없었지만, 임박한 죽음보다 더 절박하게 마동수를 옥죄었다. (중략) 세상은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p65

 

 마동수 형인 마남수가 일제 강점기시 조선에 들어온 미국 국회의원 행렬을 구경하러 갔다가 일본군에게 불령선인으로 오인받아 매 맞고 비명횡사할 뻔한 마동수 형이 풀려나 형의 허기를 채워주던 날의 기억을 되살린 것인데, 당시의 상황과 선연한 기억이 마동수의 마음을 크게 옥죄었을 것이다. 마동수의 젊은 날의 삶의 무늬 역시 차창에 서린 뿌연 김과 같이 앞길이 밝지 않았다. 학업에 진전이 없어 퇴학을 당하고 중국에서 하춘파의 하숙방을 거점으로 구릿내 나는 일들을 하면서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남태평양 괌에서 폐철 사업을 하는 첫째 마장세, 그리고 한국 철 물류 회사에서 일하는 둘째 마차세 역시 얼굴을 맞대며 형제의 우애를 나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특히 첫째 마장세는 아들로서 부모의 장례식에 와야함에도 시간과 거리를 핑계 삼아 이국에서 발이 묶이고 만다. 부모 장례 처리는 둘째인 마차세 몫이 되고 만다. 마차세는 결혼을 하여 따뜻한 가정을 갖게 되고, 마장세 역시 괌에서 만난 여인과 동거를 하게 되지만 가정을 이루지는 못한다. 괌에서 진행하던 폐철 무수히 바다 속에 집어 넣어 괌 당국에 적발되면서 마차세 회사까지 영향이 가게 된다. 이렇게 마동수 집안은 잘나지도 않고 드러낼 수도 없는 집안으로 풍비박산이 되는 형국으로 끝나고 만다.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는 지우고 싶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인상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은연 중에 자신의 삶에, 의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개인이든 다수든)와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으며 더 좋은 때와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나은 존재들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세속의 인간일진대, 김훈 작가는 왜 곡절 많고 냉기가 가득한 마동수 일가의 삶을 조명했을까. 인간의 삶과 생애는 저울로 잴 수도 없고 잣대로 잴 수도 없는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시사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까. 나 또한 이 글을 읽고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삶에 대한 시각을 보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각도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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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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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원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접했다. 《키조개》 《멍텅구리배》와 같이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추사》 《초의》 《흑산도 하늘길》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엮은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읽은 《사람의 맨발》은 신격화된 존재에서 실재적 인간의 고뇌로 거듭나는 붓다의 삶을 잘 구성해 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주로 한승원 작가의 장편을 읽었던 셈인데,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위기는 작가의 고향인 남도 바다를 배경으로 오고 가는 구수한 남도 말씨에 여성성을 자연스럽고 농밀하게 스케치하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당시로 돌아가 최대한의 상상력을 끌어와 집중적으로 인물과 당대의 사정을 교차식으로 엮어 내는 점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하겠다.

 

 한승원 작가의 등단(登壇) 50주년을 맞이하여 자전 소설집이 탄생했다. 모두 열 세 편으로 대부분 처음 접하는 소설들이다. 196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로 작가의 고향 장흥을 배경으로 바다의 내음이 물씬 묻어나고 누이이고 어머니와 같은 여성성을 농밀하게 그려냈다고 본다. 1960,70년대 지금과 같이 복닥거리지 않은 어촌의 풍경들로 당시의 기혼 남.녀 간의 삶과 사고방식에 지금과 같이 '딱' 떨어지는 이해타산보다는 이심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주고 받는 시절을 그려냈다. 그것은 내 유소년 시절의 분위기와 교차되기에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내 고향 작가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동향의식을 자아내곤 했다. 그 시절 내 고향 마을과 근동의 마을 사람들의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구름이 남으로 북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열 세 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니 한 세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시 껴안고 보듬는 듯한 느낌과 오묘하리만큼 비현실적이고 과감하리만큼 노출신이 예술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주저 앉어버리는 느낌 사이에서는 시대적 이념과 주류 이데올로기에 막혀 '쓰다가 만 편지'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극히 시대의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막혀 표현의 자유가 막혀 버리지는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승원 작가는 인간의 속성과 진보된 예술성 사이를 잘 묘사하고 소화해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여순 반란 사건)로 리얼감 있게 그려 내고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물,사건,배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 듣고 배우고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동물과 달리 사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승원 작가의 소설 열 세 편은 이 작품의 제목마냥 야먄과 신화가 뒤섞인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현실 고발, 자극성 있는 작품들을 추구하는 현 시대와 비교한다면 이번 작품은 한 세대 위 어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야만과 신화적인 관점에서 그려 놓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갖은 것 부족하고 배운 것 얄팍해도 늘 인정과 동병상련이 살아 있었던 따스한 시대의 이야기가 주마등과 같이 스쳐 지나간다. 그 안에는 여성성이 소리없이 뭇 남자들을 품어 주고 있는 것과 같다. 작가는 가까운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그려가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생각과 이념에 역주행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던 갑남을녀들이 모인 세상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지혜까지 습득하는 멋진 작품을 대해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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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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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조직 문화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현대 조직인은 개인의 전문적 지식과 폭넓은 경험 그리고 사람 관리, 자기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고 있다. 게다가 관리층이라 할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단한 자기계발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관리하면서 목표 달성을 해야 하는 조직인에게는 목표를 달성해 나가면서 소소한 성과.성공은 물론 커다란 성취감을 동시에 맛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는 정반대의 현상에 부딪혀 곤혹과 좌절을 치르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수립한 목표는 주,월,분기,연별로 점검하면서 목표치를 달성하여 조직내에서 자신의 입지, 경제적 수입 등을 배가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는 어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경영노트가 아닌 자신의 목표달성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관리 방법의 지침서로 보여진다. 조직내에 속한 개개인이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분명하고도 간단명료한 요소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업무 메뉴얼 내지 절차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여 기존의 메뉴얼 내지 절차상의 문제에 수정 작업을 가하고, 이를 현실화하는데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피터 드러커는 목표를 달성하는 조직인을 지식근로자로 통칭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지식근로자로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보 및 산업사회의 현상을 늘 주시하고 통찰하려는 노력과 조직원(팀원 등)과의 업무 체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목표달성은 혼자서 달성하는 것이 아닌 조직원들의 힘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도서는 조직인이 목표달성을 위해 해야 할 방법을 다각도로 제시하고 있다. 목표달성 능력을 위해 습득방법이 무엇이고, 시간 관리법은 무엇이며 어떠한 점에 초점을 맞추어 목표에 다가가야 하는가 등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목표달성을 위해 자신의 강점 활용, 우선 순위,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는 방법, 목표달성을 위한 의사결정법, 목표 대비 현실 상황 파악 등이 주요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 목표달성 능력은 결국 배우면서 체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피터 드러커 저자가 말한 지식근로자가 목표 달성을 위해 익혀야 할 습관적인 능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안다.

 2.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활동의 초점을 외부 세계에 맞춘다.

 3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강점을 바탕으로 성과를 낸다.

 4.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우월한 성과가 월등한 결과로 연결될 수 있는 몇몇 주요 부분에 집중한다.

 5.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p20~21

 

 현재 나도 조직이라는 문화에 속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점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자신의 목표달성을 위해 매진해 나가고 있다. 시간 낭비 제거는 물론 내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조직원과의 타협적이고 원만한 관계 속에서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내가 무엇을 공헌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목표치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생산적이고 효율성을 높이면서 사람과의 관계에도 공헌하려고 한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자기계발, 인재육성이라는 효과적인 인간관계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려 한다. 하나의 목표치가 주어지면 목표달성을 위해 회의, 보고서 등이 수도 없이 오고 간다. 지식근로자로서 지식.경험을 모두 목표치에 쏟아부어야 마땅하다. 더불어 자신의 강점과 건강 및 야망(野望) 등을 활용하여 전반적인 성취능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목표치를 달성해 가는 과정에선 크고 작은 좌절과 성취감을 느낄터인데, 독단적인 일처리보다는 협업과 타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은 판단력의 바로미터로 폭넓은 경험과 직관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 조직의 모든 지식근로자는 하나의 『경영자』로 자처해야 한다. 최소의 인원,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능력이야말로 지식근로자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자기경영을 위한 지침서로 지식근로자의 직무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목표달성능력은 배워서 향상할 수 있다. 일 속에서 목표달성을 맛보고 자기 실현을 구현해 가는 것이 자기경영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피터 드러커 저자는 이론가, 학자, 컨설턴트로 1950년대에 쓰인 이 도서는 21세기 현대사회에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자기경영노트』를 어떠한 방향으로 모색해 나갈 것인지 방향성을 잃은 사람에게 이 도서는 매우 귀중한 지침서가 아닐 수가 없다. 또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요소가 듬뿍 담겨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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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
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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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으로 생각과 논리를 정리하고 통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한다. 일상과 일 속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겪었던 바를 붓가는 데로 또는 논리와 허구를 뒤섞여 두뇌와 손이 쌍두마차가 되어 글이 완성되던 시대는 꽤 오랜 옛날의 일처럼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인류 문명은 늘 진화되어 오고 앞으로도 진화되어 갈 것일진대, 인류의 지적 재산이라고 할 만한 기록물들이 이제는 디지털 기계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일상화된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한 과학 기술의 발명 덕택으로 가능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디지털 기계 장치에 수록되고 적출되며 기록으로 남게 되는 운명은 아닐런지.

 

 기록 기술의 발명은 6,000년 전 점토판(粘土版)의 발명에서부터 파피루스 두루마리, 인쇄, 사진,음향 녹음, 이동 가능하고 지극히 쉽게 손상되는 초소형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종으로서 우리의 성공을 좌우할 방대한 지식 저장고의 규모를 늘려왔다. -p6~7

 

 내가 사회 생활의 단초라 할 학창 시절을 1970년부터 1980년대,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21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저장고라 할 수 있는 페이퍼 작업들은 대부분 디지털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말았다. 페이퍼 작업을 꼭 해야 할 분야, 그것들이 즐기고 그리워하는 일부 계층과 사람들은 여전히 디지털 기계를 멀리하고 페이퍼 작업을 즐기고 예찬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류의 지적 재산이 종이에서 디지털 기계 장치로 옮겨져 가는 것은 넓게 볼 때 유익한 점이 많다. 바로 저장 능력과 정보 생산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저장 능력은 1990년대 초 월드와이드웹이 발명되고 소셜 미디어가 성장하면서 인류의 기록물은 한층 더 제고되어 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던 기록물과 청취물들이 IT기기로 대체되면서 현대인들의 세상살이 호기심과 삶의 풍경은 하나의 기계에 빨려 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공간을 불문하고 틈만 나면 IT기기에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기억이 과연 인간의 두뇌에 의해 생성한 생각과 감정, 논리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한정된 저장 능력, 정보의 생산 능력은 뛰어나다 해도 과연 얼마나 공고하고 안정적일까.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디지털 기억은 자칫 잘못하면 손상되기 쉬어 불안하기만 하다. 디지털 기기에 의한 기억의 산물들이 비록 생산성과 저장 능력, 초스피드함 등 우월성과 편리성 등이 있겠지만, 디지털 기억은 아날로그 기억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인류의 지적 재산인 집단 기억은 수많은 세월 속에 집적한 인간의 경험과는 견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방대한 지식, 기록, 권력과 문화가 뒤섞여 인류의 삶을 지탱해 왔던 것으로 인식한다.

 

인류의 문명의 변천사 가운데 변곡점이라 할 메소포타미아의 문자 발달, 고대 그리스의 도서관 발달, 그리스와 로마 문예의 부흥, 금속활자 발명, 18세 계몽 운동으로, 이것은 지식을 행위 동사로, 즉 진보하는 것으로 개조하고, 국가의 책임을 정보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까지 확대했다.

-p22~23

 

 인류의 삶의 편리함과 효용성에 맞추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류의 지적 재산을 디지털에 맡겨도 될까를 두고 애비 스미스 럼지 저자는 인간의 기억의 저장고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변천.발전되어 왔는가를 짚어 주고, 현대사회의 총아로 불리는 디지털 기기에 의한 인류의 지적 재산의 집적이 과연 인간의 기억에 의한 기록과 어떠한 함수 관계를 갖었는지, 그 운명적 결합을 역사적 관점, 시사적 관점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무심코 디지털 기기에 쏠려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개개인이 배우고 겪은 바를 머리로 생각하고 정리하여 기록한 것들과 앵무새마냥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으로 기록되는 것들에 대해 가던 길을 멈추고 재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인간의 기록물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저자는 지식의 조직화를 통제하라는 점에 힘주어 말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고 소유할 영향력을 지닌 사적 주체들 사이에서 정보 양도가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맡아 관리할 탄탄한 비영리 기관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집단 기억상실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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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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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을 현실적으로 깊게 체감하고 있다. 개개인이 어떠한 삶의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고 매진해 나간다면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뜻하지 않은 복병과 시련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삶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흔들림 없이 준비하고 도전해 가는 사람에겐 반드시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좋은 자리, 입지를 굳힐 수가 없는 것이 현대사회의 단면이고 병폐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회인으로 인생의 화선지에 스케치를 그려갈 예비 사회인 내지 기성 세대들은 취업빙하기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얘기했듯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라는 말은 이해는 하지만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도 더 이상 삶의 레벨이 제고되지 않는 상황에선 어떻게 삶의 희망을 갖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초입을 달리고 있는 현 시대는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일명 자본가로 불리는 소수 계층들이 다수 계층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와 취업 환경에 따라 다수 계층은 묵묵히 순종(?)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자본의 힘으로 피고용인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비인간적인 처우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본은 무엇이든 부리는 법인가, 자본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신 현대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삶의 만족도 입신양명도 어려운 실정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자본을 갖은 10%도 되지 않은 소수 계층에 의해 사회와 국가의 명운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취업 및 고용 상황 역시 빙하기가 아닐 수가 없다.

 

 빈곤세대란 '가동(稼動) 연령층인 청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세대(15~39세)로, 빈곤상태로 지내야 할 숙명에 처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P12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식구는 모두 비정규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들 둘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알바를 해서 생활비 내지 학업에 보태고 있다. 나와 아내는 생계와 미래 대비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지만 학창시절 꿈꾸었던 내 삶의 목표와는 너무도 어긋나 있다. 하지만 일자리가 있어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경제적 수입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을 우선 순위로 두면서, 꾸준하게 몸을 움직이고 사람과의 관계, 소통을 중시해 나가려 한다. 아내 역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지만 아이들이 독립하고 노후 준비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두 아이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는 생각도 깊게 깔려 있다. 건강할 때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현재 한국 사회는 3포(三抛) 현상으로 연애.결혼.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젊은층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연애.결혼.출산을 꿈꿀 것인가. 게다가 경기가 위축되면서 취업, 내집마련, 인간관계, 희망의 끈마저 포기하는 7포 세대들마저 늘고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청년들, 경제적 독립을 할 수가 없어 부모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청년들, 학자들 대출을 갚기 위해 허덕이는 청년들... 이러한 청년들이 겪는 삶의 고달픔과 비애는 한 사회와 국가가 풀어내야 할 숙제(宿題)이다. 기성 세대의 한사람으로 청년세대들에게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이제 사회구조와 고용환경을 대수술해야 하는 시기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특히 입법.행정을 쥐고 있는 사회 권력층들은 보여 주기 위한 복지 정책, 고용창출이 아닌 제대로 된 정책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생활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말이다. 또한 기성 세대들이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 일하면 수입이 생긴다, 가족이 도와줄 것이다, 청년들은 건강하다, 옛날엔 더 힘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다. 사회구조와 고용환경이 크게 달라진 현실에 비추어 보면 청년들의 입장과 처지를 가감없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알바, 비정규직이 양상될대로 양산되어 버린 한국 사회의 고용환경은 단순히 청년계층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자본을 갖은 자들이 '갑'이 되고 힘없는 피고용인은 '을'이 되어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괴리와 간극은 지옥고와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의 빈곤세대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 도서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상처 입은 빈곤세대, 청년세대에 관심 없는 기성세대, 학교 밖으로 몰린 빈곤세대, 집 밖으로 쫓겨난 빈곤세대, 빈곤세대 구하는 법 등을 들려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빈곤세대는 일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배워 잘 살자'라는 중학시절의 교훈(校訓)을 되새기면 살아왔던 나도 이제는 사회구조 및 고용환경을 비켜가지 못하고 비정규직에 몸담고 있다. 나는 일할 수 있고 사람과의 관계.소통을 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반면 청년들이 겪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다각적인 대책과 미래 희망을 담아 내야 한다. 청년들이 방치되고 소외 당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미래의 명운이 달려 있는 중대사이다. 그리고 빈곤세대는 대를 이어가고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다수계층들이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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